특별한아리랑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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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양, "영화 주제가 <아리랑> 연구"영화 주제가 <아리랑> 연구 논문요약 이 논문은 영화 주제가 <아리랑> 연구를 통해 ‘주제가 <아리랑>’ 사설이 형성되는 상황과 사회문화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주제가 <아리랑>의 의미와 특성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새로운 아리랑인 ‘주제가 <아리랑>’이 근대 미디어에 의해 사회문화적으로 대중화 되는 과정에서 대중문화예술 전 분야로 확산되는 성격변화를 거치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주제가 <아리랑>은 모든 아리랑을 지칭하는 대표성을 부여받아 ‘아리랑’으로 통칭된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아리랑’의 문화적 코드에 대해 이해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아리랑’이 어느 시점에선가 남과 북, 그리고 한민족 동포사회에서 ‘민족공동체의 동질감과 사회적 통합을 갖기 위한 기저로 작용하여 상징적 지위를 부여받게 된 것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일차적으로 일반적으로 오래 전부터 불리어진 전통 민요로 잘못 알고 있었던 주제가 <아리랑>의 형성배경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민요로써의 <아리랑>, 주제가로써의 <아리랑>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서 나운규가 감독한 영화 <아리랑>과 주제가 <아리랑>에 대해 근대의 시각으로 심도 있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영화 <아리랑>의 작품론, 작가론 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있어 왔다. 그러나 민요 아리랑과 주제가 <아리랑>, 주제가 <아리랑>과 영화 <아리랑>은 불가분의 관계인데도 학계에서는 각각 개별적인 연구에만 머물러 왔다. 이 논문은 영화 서사구조 속에서 영화적 장치에 의해 의도적으로 작용하여 불리어지는 주제가 <아리랑>의 특성을 도출하려고 한다. 더불어 영화의 인기와 장기상영에 의해 주제가 <아리랑>이 사회문화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주제가 <아리랑>의 성격 변화를 규명하는, 주제가 <아리랑>에 대한 융합(hybrid)연구이다. 나아가 선행연구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그동안 국문학계, 영화학계, 민속학계, 음악학계 등에서 서로 타자의 입장에서 방치해왔던 주제가 <아리랑>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를 기대해 본다. 연구의 시각과 방법론은 영화 개봉 1926년을 기점으로 하여 이전의 ‘전승 아리랑’ 상황을 개괄하여 주제가의 형성과정을 인식하고, 영화 서사 구조 내에서 작용하는 주제가의 기능과 의미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영화개봉 전후 관련 자료와 나운규와 당시 영화 관계인들의 증언을 통해서, 기존의 4절과 발굴된 5절의 주제가 전 9절이 ‘나운규 작사, 김영환 편곡으로 이루어 졌고, 주제가 각 절이 영화적 장치에 의해 서사 구조 속에서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불려졌음을 재구성하여 확인하여 본다.ABSTRACTA study on the cinema Theme Song <Arirang> Kee Mee Yang Korean Language & Literature Sungkyunkwan University This study examines the conditions for the formation of the editorial of the 'Theme Song <Arirang>' and the process of it to expand socially and culturally by studying the movie Theme Song <Arirang>. Processing this, this study aims at defining the meaning and features of the Theme Song <Arirang>. In the process of the new Arirang called 'Theme Song <Arirang>' being popularized socio-culturally through modern media, it undergoes feature changes that permeates to all sectors of public cultural arts. Under such circumstances, Theme Song <Arirang> is commonly called 'Arirang' as the one that represents all Arirang songs. This aims at understanding the cultural code of 'Arirang' that continues until today based on such background. Through this, it is expected to define the application of 'Arirang' as a foundation for homogeneity of a race and social integration for North and South Korea, and in the Korean emigrant society, while defining how it receives a symbolic position. Considering these points in this study, while examining the background for the formation of Theme Song <Arirang> that was wrongfully known as a traditional folk song, <Arirang> is analyzed as a folk song and as a theme song. For this, there is a need for in-depth inquiry on the Theme Song <Arirang> and the movie <Arirang> directed by Na Woon-gyu from a modern approach. There has already been many studies made on the work and director of the movie <Arirang>. However, despite the fact that the folk song Arirang and Theme Song <Arirang>, and the Theme Song <Arirang> and movie <Arirang> are inseparable, the academic sector has for some reason only made individual studies on them. This study attempts to examine the features of the Theme Song <Arirang> that is intentionally used through cinematographic tools within the film's narrative structure. In addition, this is 'a Hybrid' study on the Theme Song <Arirang> and defines the changes of the features of the Theme Song <Arirang> in the process of which it becomes socio-culturally proliferated through the popularity and long runs of the film. Furthermore, integrated studies on the Theme Song <Arirang> that has been abandoned from the different perspectives of the traditional music sector, cinematography sector, folk study sector and music sectors can be expected by supplementing the problems with preceding studies. The visuals of the study and its methodologies becomes aware of the formative process of the theme song by summing up the situation of 'passed-down Arirang' prior to 1926 when the film was released and analyzes the functions and meanings of the theme song that is effective within the film's narrative structure. Based on relevant information before and after the release of the film and through the testimonies of Na Woon-gyu and film critics, verses 4 and 5 and verse 9 of the theme song were written by Na Woon-gyu and composed by Kim Young-hwan. In addition, it was reconstructed that these verses were intentionally placed in the narrative structure through cinematographic tools.Key Words : Traditional Arirang, Common Arirang, Jabga Arirang, Na Woon-gyu, Movie <Arirang>, Theme Song <Arirang>, New Arirang, Popular Song Arirang, Bonjo Ar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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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기념 나운규아리랑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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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상으로 본 ‘아리랑’···민속기록학회 학술대회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일반 사진·영상으로 본 ‘아리랑’···민속기록학회 학술대회 등록 2019-06-05 12:44:41 영화 ‘아리랑’(각색·감독·주연 나운규), 1926년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기록과 영상, 지역기록관과 민속기록의 측면에서 ‘아리랑’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민속기록학회(회장 양종승)가 8일 오후 1시30분 서울 은평구 진관2로 샤머니즘박물관(금성당)에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한다.‘영상문화유산 개념과 새 공공영상문화유산 정책포럼 활동범위’(최효진·한국외대), ‘스틸자료를 통한 영화 아리랑의 재현’(기미양·안동대), ‘영상기록을 통한 디아스포라 실상과 의미-디아스포라 아리랑’(김명기·고려대), 그리고 ‘지역기록관에서 민속자료의 활용’(김덕묵·한국민속기록보존소) 등을 논한다.suejeeq@newsis.com https://newsis.com/view/?id=NISX20181113_0000471707&cID=10701&pID=10700#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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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나운규 선생을 찾아가는 길-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 (201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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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단성사 내부에 '단성사 기념관' 설치해야 한다"…왜?인쇄하기 닫기 연예 > 영화 "단성사 내부에 '단성사 기념관' 설치해야 한다"…왜? 등록 2015-04-27 09:13:07 | 수정 2016-12-28 14:55:09 【서울=뉴시스】박동욱 기자 = 1907년 세국내 최초로 문을 연 상설영화관인 단성사가 건물을 담보로 잡고 있던 은행의 대출금 회수 절차로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사진은 5일 오후 문 닫힌 서울 종로구 단성사의 모습. 2015.02.05. fufus@newsis.com 【서울=뉴시스】한겨레아리랑연합회(상임이사 김연갑)가 25일 “단성사를 우리나라 극장의 역사로 존치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근거는 크게 아홉 가지다. 단성사는 1907년 6월4일 ‘역사와 개량 발전의 시대적 사명을 연설(演說)한 사회를 조성하기 위하여 단성사(團成社)라 명칭’한 연예관으로 탄생, 1918년 12월21일 최초의 영화 상설관이 된 극장이다. 우리 근대 문화사를 함께한 민족극장이다. 단성사는 1919년 10월27일 최초의 우리영화인 김도산 감독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를 개봉하여 ‘영화의 날’(1963년 제정)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극장이다. 단성사는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을 1926년 10월1일 개봉하여 ‘민족영화 아리랑’을 탄생시켰다. 민간전승 민요 아리랑을 문화영역 대중예술 아리랑으로 확산시켜 다양성과 초역사성을 갖게 한 기념비적 유적지이다. 단성사는 소속 감독이며 변사인 김영환을 통해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를 편곡하게 하여 전 민족 구성원에 확산시켜 ‘민족의 노래 아리랑’으로 위치시켰다. 이를 기념한 ‘아리랑의 날’(2013년 제정)을 탄생시킨 아리랑 역사의 거점이다. 단성사는 1926년 10월1일 오후 4시,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 개봉으로부터 1947년 11월12일 ‘다시보자 아리랑’ 상영까지 재개봉, 재상영, 동시상영, 특별상영 등으로 20여년 간 31회나 상영하여 아리랑 위상에 기여했다. 단성사는 나운규 감독·주연 영화 ‘아리랑’ 제1편(1926), 2편 ‘아리랑, 그 후 이야기’(1929), 제3편 ‘말 문 연 아리랑’(1936)은 물론, 홍개명 감독 영화 ‘아리랑 고개’(1936), 이강천 감독의 ‘아리랑’(1954), 김소동 감독의 ‘아리랑’(1957), 최무룡 감독의 ‘아리랑, 나운규의 일생’(1966), 유현목 감독의 ‘아리랑’(1968)까지 개봉한 ‘아리랑 극장’이다. 【서울=뉴시스】영화 ‘아리랑’ 단성사는 무용 ‘아리랑’(1929·배구자 작), 레뷰 ‘춘하추동 아리랑’(1930·연극사 제작), 민요극‘아리랑’(1933·나운규 작), 연극 ‘아리랑 반대편’(1931·신불출 연출), 가극 ‘아리랑’(1943·이부풍 작), ‘신 아리랑’(1943·김춘광 작), 연극 ‘아리랑’(1945·예원좌), 종합쇼 ‘아리랑 환상곡’(1945·한영철 연출), 그리고 김석민 작·연출 ‘양자강의 아리랑’ 등 다양한 장르의 아리랑 명칭 작품 80여 편을 공연하여 아리랑을 대중문화로 인식시킨 극장이다. 단성사는 1927년 전문 영화음악 연주단 ‘단성관현악단’을 운영하고 1931년 영화 전문지 ‘영화가’를 발간하고, 1937년 8월11일 영화감독 나운규의 영결식을 거행하는 등 기업문화를 실현한 업체이다. 단성사는 1993년 영화 ‘서편제’ 개봉 최장 상영기록 194일을 기록하며 진도아리랑의 흥과 멋을 알려 국악진흥에 기여한 ‘문화 공간’이다. 1907년 ‘연예관 단성사’에서, 1953년 ‘㈜단성사’로 , 2005년 ‘멀티플렉스 단성사’로, 2008년 4월 ‘씨너스 단성사’로, 다시 2008년 11월 ‘아산 단성사’로 역사를 이어왔다. 그리고 2010년 7월 휴면에 들었다.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26번지(묘동 56) 지하 4층∼지상 10층(1만3642㎡) 단성사 건물은 ‘경성부 수은동 단성사’ 107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표지석도 없이 5년간 방치되었다. 2015년 3월12일, 5년을 건너 버스 판매 주력업체인 영안모자 계열사 자일오토마트가 새 주인이 되어 ‘영안 단성사’로의 출발을 기대하게 되었다.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1996년 영화 ‘아리랑’ 개봉 60주년을 맞아 당시 단성사에게 ‘역사 코너’를 건의했고, 1996년 ‘아리랑’ 필름 되찾기운동을 공동으로 시행했고, 2006년 ‘단성사 100년사’ 공동 출판을 논의한 바 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서울=뉴시스】영화 ‘아리랑’의 복원된 전단. 신나라레코드가 1만매를 제작했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영안 자일오토마트사와 문체부, 문화재청, 서울시에 다음 사항을 청원한다. 하나, 단성사 건물 주변에 역사성과 의의를 새긴 기념 표지를 설치해야 한다. 더불어 2005년 설치한 기념 조형물을 처음 설치한 위치에 존치시켜야 한다. 둘, 규모를 떠나 ‘단성사’ 명칭의 영화 상영관이 유지되어 근대문화사의 명소로 우리 곁에 있게 해야 한다. 셋, 극장 단성사와 영화 ‘아리랑’과 영화인 나운규를 기념하는 가칭 ‘단성사 기념관’을 건물 내에 설치하여 근대 대중문화사의 메카로 삼아야 한다. 넷, ‘단성사 기념관’이 민족영화 ‘아리랑’ 필름 찾기운동 등의 역사적 영화 필름 찾기 활동 거점으로 활동하게 해야 한다. 다섯, 세계의 노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란 아리랑의 위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기억의 장소’로 존치시켜야 한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사무국장은 “영안모자 자일오토마트 측이 단성사 건물에 단성사 기념관을 설치한다면 전시자료 제공과 운영을 무상으로 전담할 수 있다”고 밝혔다.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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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김연갑 위업 쾌거, 영화 ‘아리랑’ 전단복원인쇄하기 닫기 사회 > 사회일반 [신동립 잡기노트]김연갑 위업 쾌거, 영화 ‘아리랑’ 전단복원 등록 2014-10-07 22:42:20 | 수정 2016-12-28 13:28:51 【서울=뉴시스】영화 ‘아리랑’의 복원된 전단. 신나라레코드가 1만매를 제작했다.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464> 1926년 10월1일 오후 7시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춘사(春史)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전단이 복원됐다. 88년 전 일제경찰은 이 영화 선전지 1만매를 압수했다. ‘아리랑 노래 중 공안을 방해할 가사’를 문제 삼았다. 이 팸플릿은 그동안 1장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개봉 전후 광고문구를 통해 전단의 내용과 함께 ‘공안을 방해할’ 노랫말을 찾아냈다. 10월1일 광고에는 있고, 10월3일 광고에서는 삭제된 ‘문전에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쪽박에 신세가 웬일인가’다. ‘아리랑’ 개봉 이틀 뒤인 1926년 10월3일 매일신보는 "아리랑-선전지 압수, 내용이 불온, 작일 밤부터 시내 수은동 단성사에서 상영한 ‘아리랑’의 활동사진 광고 팜프랫토 중에 아리랑 노래 중 공안을 방해할 가사가 있음으로 경찰당국에서는 9월30일에 선전지 1만매를 압수하였다더라”고 전했다. 개봉 전날 모두 압수당했다는 보도다. 【서울=뉴시스】영화 ‘아리랑’ 사라진 ‘아리랑’ 전단 복원은 ‘농중조’ 전단과 ‘아리랑’ 광고(조선일보·매일신보) 덕분에 가능했다. 같은 조선키네마 주식회사가 ‘아리랑’보다 석 달여 앞서 선보여 나운규의 성가를 높인 영화 ‘농중조(籠中鳥)’의 전단에 근거한 복원이다. ‘농중조’ 전단은 ‘아리랑’의 제작사가 만들었다. 나운규는 ‘농중조’에 출연했다. ‘아리랑’의 감독 겸 주연도 나운규다. 따라서 이들 두 영화의 전단 형태는 같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같은 전제 하에 조선일보 1926년 10월 1일자 5단 광고, 3일자 매일신보의 전단 압수 기사와 5단 광고를 살피면 실타래가 풀린다. 전단 압수 사실을 전한 기사는 주제가가 불온하다고 했을뿐 가사는 밝히지 않았다. 답은 뜻 밖에도 이틀 전 신문광고에 담겨 있다. ‘현대비극 웅대한 규모! 대담한 촬영술 조선영화사상의 신기록! 당당봉절(堂堂封切) 촬영3개월간 제작비용 1만5000원 돌파! 보라! 이 눈물의 하소연! 일대 농촌 비시(悲詩)! 10월1일 봉절. 매석 7시 시영(每夕七時 始映) 조선키네마 초특작 주옥편. 눈물의 아리랑, 웃음의 아리랑, 막걸리 아리랑, 북구(北丘)의 아리랑, 춤추며 아리랑, 보내며 아리랑, 떠나며 아리랑. 문전에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쪽박에 신세가 웬일인가! 현대비극 아리랑 전8권. 누구나 보아 둘 이 훌륭한 사진. 오너라, 보아라. 감독 쓰모리 히데가츠(津守秀一)씨, 원작각색 춘사, 주연 나운규 신일선, 출연자 나운규씨 남궁원씨 신홍련(신일선)씨 주인규씨 이규설씨. 대봉절장 단성사.’ 【서울=뉴시스】영화 ‘아리랑’ 조선일보 광고 1일자 조선일보 광고에는 ‘문전에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쪽박에 신세가 웬일인가’라고 명기돼 있다. 3일자 매일신보 광고에는 이 노랫말이 ‘근사 초일 대만원(謹謝 初日 大滿員)’이란 문구로 교체됐다. 이 가사를 트집 잡은 일제가 전단을 전량 압수한 것이다. 1929년 나운규 생존 시 발행된 영화소설 ‘아리랑’에 수록된 악보는 아리랑 4절을 수록했다.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도 못가고 발병나네 2.청천하날엔 별도 만코 우리네 살림사린 말도 만타 3.산천초목은 젊어만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가네 4.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온다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네.’ 여기에 신문광고에서 확인된 노랫말 ‘문전에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쪽박에 신세가 웬일인가’를 더하면 아리랑은 마침내 5절로 완결된다. 【서울=뉴시스】영화 ‘아리랑’ 매일신보 광고 ‘아리랑’ 전단 복원은 기미양(영화 ‘아리랑’ 연구가), 김연갑(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김종욱(‘실록 한국영화총서’ 저자) 등 사계의 권위 3인의 2년에 걸친 노고의 결실이다. 김연갑 상임이사는 "복원작업을 통해 ‘아리랑’은 치정이나 항일을 앞세운 영화가 아니라 당시 살 길을 찾아 북간도로 떠나는 식민지 농촌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 관객이 ‘나의 영화’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조선총독부는 농민들이 북간도로 이주해 항일운동을 확산할 것을 우려했고, 나운규는 ‘아리랑’으로 총독부의 토지조사 등 식민정책에 저항했다는 점을 ‘아리랑’ 전단이 확인해준 셈이다. ‘아리랑’의 주제가 아리랑은 이후 ‘항일의 노래’ ‘조국의 노래’로 널리 불렸다. 광복 후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의 노래’가 됐다. 남북 공히 ‘민족영화 1호’로 손꼽는 ‘아리랑’은 필름도, 시나리오도, 포스터도 남아있지 않다. 【서울=뉴시스】영화 ‘농중조’(감독 이규설) 전단 ‘아리랑’ 전단 복원, 이것은 영화사의 기념비요 금자탑이다. 온라인편집부장 reap@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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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신을 담은 나운규의 아리랑 / YTN 사이언스민족정신을 담은 나운규의 아리랑 / YTN 사이언스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노래, 아리랑그런데 우리에게 익숙한 이 아리랑이 백 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 아리랑이 만들어지고 불려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한 편의 영화였다1926년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영화가 우리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민요 '아리랑'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한국 영화 초기의 무성영화가 우리 영화사에 전환점이 된 영화이자 우리 민족의 노래를 심어놓은 작품 '아리랑'왜 '아리랑'을 주제로 영화로 만들었고, 그 작품에 담고자 했던 것을 과연 무엇일까?'아리랑'에 담긴 정신을 풀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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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영화 아리랑 개봉80주년기념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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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탄생 백준년 문헌 전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