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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아리랑] 만정 김소희 명창 생가에서 귀명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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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칼럼

[상주아리랑] 만정 김소희 명창 생가에서 귀명창들

만정의 묘소에서 눈물 글썽인 귀명창들
귀명창들의 판소리 유적지 순례-1
상주아리랑과 김소희 명창


만정의 묘소에서 눈물 글썽인 귀명창들
귀명창들의 판소리 유적지 순례-1
김기(mylove991) 기자
▲ 만정 김소희 명창 생가에서 행사를 마친 귀명창들.
© 김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판소리. 세계에 유래가 없는 우리만의 독창적인 음악양식으로 어디서건 마음껏 자랑해도 모자랄 것이 판소리이다. 모노 드라마와는 차원이 다른, 혼자서 천인의 역할을 하고, 만 번의 감정을 오가야 하는 1인 종합예술의 극치이다.

판소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데에는 두 부류의 공헌자가 존재했다. 우선은 명창을 들 수 있겠고 그 다음은 바로 귀명창의 존재이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명창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를 인정할 귀명창이 없었더라면 판소리의 존재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전승되지 못했을 것이다. 명창과 귀명창의 관계는 비단 판소리에만 국한하지 않고 산조, 무용 등 우리 민간예술 전반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국악이라고 할지라도 궁중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정악에는 그런 예가 없다. 그러나 민간예술에서는 하나의 연주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주자 외에 귀명창들의 추임새가 적절히 어우러져야 했다. 그렇지 못한 공연은 누구한테도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절의 각박함은 귀명창을 판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 만정제 춘향가 '어사또 남원 내려오는'대목을 부르는 만정의 친딸 박윤초 명창
© 김기

그 원인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나,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강요된 서양식 공연예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무용과 산조 등의 장르에서 귀명창들의 추임새는 거의 사라졌으며 판소리 무대도 그들의 존재는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어서 소리꾼들은 자주 "추임새 좀 넣어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하는 실정이다.

유네스코가 각국의 유무형 문화유산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과 영예를 부여하는 이유의 저변에는 ‘특별한 대책이 없다면 사라질 위기’가 깔려 있다. 귀명창은 예술의 형식으로 지정하거나 양성할 수 없는 것이나, 정작 판소리가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명창 발굴과 더불어 귀명창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귀명창을 위한 프로그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평론가추천 판소리축제’가 매년 겨울마다 열리고 있고, 작년부터 매월 KBS 1FM <흥겨운 한마당>의 ‘귀명창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 행사로 인해 소외되었던 귀명창의 존재가 공식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를 좀 더 독려하고자 하는 행사가 마련되었다. 나라음악큰자치(위원장 한명희)가 14일부터 집중행사로 ‘판소리 명창의 발자취를 찾아서’를 시작했다.

▲ 만정제 춘향가 중 '어사또 남원 내려오는 데' 중 이몽룡이 춘향의 편지를 읽는 대목.
© 김기

행사에 참가한 귀명창은 45명. 14일 새벽 세종문화회관에 모인 참가자들은 45인승 버스와 승용차 편으로 첫 번째 방문지 만정 김소희 명창의 생가가 있는 전라북도 고창으로 향하였다.

10월 중 주말을 이용해 총 3회 방문행사를 갖는 첫 날에 참가한 귀명창들은 설레는 모습이 역력했다. KBS 1FM 귀명창대회 입상자들, 판소리 동호회, 개별 참가자 등으로 구성된 순례단은 우선 판소리의 둘째가라면 서러울 애호가들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전라도 인심을 느낄 수 있는 푸짐한 점심상에 고창의 명물 복분자주 반주 한 잔으로 일행들은 짧지 않은 주말 버스여행의 피로를 속였다. 지은 지 100년이 넘었다는 식당 마당에서 기념 촬영하는 잠시의 뜸만 들이고 곧바로 김소희 명창의 생가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만정의 생가는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335번지에 위치했다. 읍내에서 차량으로 10 여분 소요되는 거리로 소박한 농촌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동네였다. 만정의 생가가 원래대로 복원된 것은 2002년 5월이었고, 그전에는 마을주민들이 개축하여 관리하였다고 한다.

▲ 신영희, 박윤초 두 명창이 덤으로 불러준 남도민요 진도아리랑에 신명이 난 귀명창들은 덩실덩실 춤으로 화답
© 김기

그러나 아직도 부엌에는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고, 장독대에 빈 항아리 몇 개만 덩그렇게 놓여 있어 국창에 대해 소홀한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행들은 무엇보다 명창의 생가에 처음 발을 디딘 감격에 겨워했다. 넓지도 않은 소담한 생가를 뭔가를 찾는 것인지 꼼꼼히 둘러보는 모습들이었다. 다시 대할 수 없는 절개 굳고, 자존심 깊은 생존의 모습과 음성을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정 김소희(본명 김순옥)은 1917년 고창에서 태어났다. 13세에 명창 송만갑의 제자로 입문하고 15세에 서울로 올라가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정정열 등에게 소리, 춤, 기악을 두루 사사했다. 타고난 재주에 노력을 더하여 빠른 시기에 명창반열에 올랐으며, 만정제 춘향가를 완성하여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국립국악고등학교와 더불어 우리나라 국악교육의 양대 산맥을 이룬 서울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여 수많은 국악인을 양성하였고, 1995년 5월 향년 79세를 일기로 인생을 마감하였다. 만정은 여류명창으로는 드물게 국창의 칭호가 따랐으며, 광복 50주년에는 ‘역사를 만든 한반도의 주역 50’에 선정될 정도로 국악계의 큰 별이었다.

▲ 한명희 위원장, 박윤초 명창 등 일행은 헌화와 함께 만정의 명복을 빌었다.
© 김기

만정의 생가에서 조촐한 공연이 열렸다. 만정의 친딸 박윤초 명창과 만정의 직계 제자 쓰리랑 아줌마 신영희 명창이 차례로 만정의 춘향가를 이어 불렀다. 오랫동안 두 명창과 호흡을 맞춰온 신규식 고수가 북을 잡았다.

비록 생전의 만정 성음은 아닐지라도 장소가 그래서인지 두 명창의 소리는 그대로 만정의 현신처럼 다가왔다. 그리움 때문인지 귀명창들의 추임새는 명창의 소리를 덮을 정도로 장내를 크게 울렸다. 이렇게 명창과 귀명창이 만나지 않고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소리판의 진풍경이었다.

자기 대목을 모두 마친 두 명창은 아쉬움이 남았던지 좁은 쪽마루에 나란히 서서 남도민요 두 곡을 구성지게 불렀다. 첫 곡 성주풀이에 이어 진도아리랑을 부르자 구경하던 몇 사람이 흥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소리를 하던 두 명창은 때때로 소리를 놓고, 어머니 혹은 스승의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던 분위기는 어느덧 가시고 짧지만 흥겨운 판으로 생가 일정을 마쳤다.

▲ 묘소에서 만정 김소희 명창을 기리는 시 한명희 작 '판소리 별, 북두의 별'과 박윤초 작 '사모곡'을 낭송한 시낭송가 공혜경
© 김기

생가를 뒤로하고 일행은 만정의 묘소로 향하였다. 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오솔길 앞에서부터 낮은 가을 햇살을 등에 이고 나지막한 산길을 따라 올랐다. 밭 두렁을 지나고 오솔길을 지나 도착한 만정의 묘소는 생각보다 초라한 모습이었다. 전통예인들에 대해 얼마나 소홀하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하였다.

한명희 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장과 박윤초 명창 내외가 대표로 헌화하고, 일행 모두가 고개 숙여 명창의 명복을 빌었다. 한명희 위원장의 회상과 박윤초 명창의 어머니에 대한 소회가 이어졌고, 낭송가 공혜경이 두 편의 시를 낭송할 때는 참가자 모두의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만정을 위해 한명희 위원장이 써 묘소 한쪽에 시비로 세워져 있는 ‘판소리 별, 북두의 별’과 딸 박윤초 명창이 쓴 ‘사모곡’을 낭송했다.

만정의 생가와 묘소를 찾기 위해 새벽에 출발해 서울로 돌아온 시각은 밤 11시. 잠을 설치거나 아예 꼬박 밤을 새우고 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나 모두 밝은 모습으로 귀가를 서둘렀고, 일부는 피로를 아랑곳 않고 짝을 이뤄 뒷풀이로 향하였다.

▲ 묘소에서 만정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한명희 위원장. 왼쪽 비문에 국창 만정 김소희라고 써있다.
© 김기

한명희 위원장은 "축제라는 것이 반드시 많은 인파를 끌어 모은다고 다가 아니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행사는 어차피 수백 명이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은 인원이지만 판소리 명창의 기리는 동시에 판소리 애호가들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행사 의의를 설명했다.

또한 우리 나라 판소리 동호회 중 가장 오래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단체 중 하나인 ‘소리랑’ 대표 박종민씨는 "아주 좋았다. 가능하다면 3번 모두 참가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심화된 내용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되길 바란다”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출처: https://eastpeak.tistory.com/4042 [동쪽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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