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근대기의 역사적ㆍ예술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적극 발굴해 문화재로 등록함으로써 보존ㆍ관리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광복군가집 제1집」(1943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 선전위원회 펴냄), 「애국창가 악보집」(1916년 하와이 편찬 등사본), 「안익태 대한국애국가 자필악보」(1949년 필사) 세 가지를 등록했다.
이상의 3가지 음악자료는 애국가의 수록을 주목한 자료이다. 처음으로 근대 음악인 애국가의 자료를 국가가 관리하게 된 것으로 바람직한 결과이다. 이 세 가지 자료에는 현 애국가의 해외동포사회 확산과 광복군 수용 사실, 그리고 안익태가 작곡했음을 입증하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자료만으로는 현 애국가의 역사를 알려주는 자료로는 부족하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사’으로 시작하는 후렴이 사용된 <무궁화가>가 작사된 것이 1897년이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으로 시작하는 가사가 작사 된 것이 1907년이고, ‘애국가’로 민중의 공인을 받은 것이 3ㆍ1만세운동기를 통해서이고, 임시정부 광복군들에 의해 불려 국가적 위상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가사 변화와 보급 상황, 특히 3ㆍ1만세운동 기간에 불린 애국가들의 상황, 많은 ‘애국가’들의 정체성도 함께 밝혀져야 함은 당연하다. 앞으로 더 많은 애국가 자료가 발굴, 정리되어 이 맥락적 간극을 메꿔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동안 발굴된 필사자료들을 주목하여 살필 필요가 있다. 이중에 1917년 수집ㆍ정리된 「애국창가집」을 실례로 삼을 수 있다. 이 자료는 지금까지 발굴된 애국창가집 중 애국가류를 인식하고 정리한 자료인데, 이는 1919년 3ㆍ1만세운동 기간 전국에서 불린 다양한 애국가의 존재를 추정 할 수 있게 해 준다.
1910년 일제의 국권침탈로 애국가류의 작사자나 수집 정리자를 밝힐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런 까닭으로 1910년대 이후 필사된 자료에 작사자가 밝혀진 것이 없다. 이 자료집에도 각각의 작품 정보가 없음은 물론, 수집ㆍ정리자도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자료의 핵심 가치는 ‘애국가’ 명칭 자료와 일반 애국창가를 구분하여 정리ㆍ수록했다는 점이고, 이는 곧 1917년 전후의 ‘애국가’ 명칭 자료의 실상을 알게 한다는 점이다. 전체 29종을 밝힌 목차는 다음과 같다.
애국가
1 애국가-동해물과 백두산이
2 애국가-산고수려 동반도는
3 애국가-긴날이 맛도록
4 애국가-동해의 돌출한
5 애국가-만왕 우리하나님계서는
6 애국가-우리나라 동반도난
7 애국가-화려한 강산 우리대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