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렴이 탄생 된지 120년이 되었다. 곧 오늘의 애국가 후렴이란 점에서 곧 애국가의 출현 120년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120년 전부터 현 애국가가 탄생하는 1907년까지는 ‘무궁화가’, ‘무궁화노래’, ‘애국가’로 그 이름을 달리하며 불렀다. 이 번 회에사는 이 ‘무궁화가의 미디어상의 전승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의 ‘무궁화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대한제국 지식인들은 계몽운동으로 국민들의 실력을 향상시켜 자주독립 국가로 가야함을 역설했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언론도 이에 앞장섰다. 그래서 애국계몽 노래들을 발표하여 널리 보급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가운데 1907년 10월 30일자 대한매일신보 잡보에 ‘무궁화가’라는 곡명의 4절 노래가 한글판과 국한문판에 동시에 게재되었다. 이 역시 이 신문의 자주독립을 각성시키기 위해 ‘무궁화’를 수록했다.
一 셩ᄌᆞ신손 오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슈려 동반도 우리 본국일셰
(후렴) 무궁화 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 대한으로 기리 보젼셰
二. 츙군 일편단심 북악치 놉고 국 열심의긔 동치 깁헤
三. 쳔만인 오ᄌᆞᆨ 나라랑여 농공샹귀쳔업시 직분만다셰
四. 우리나라 우리황실 황텬이 도으샤 국민동락 만만셰에 태평독립셰
(순한글판)
一 聖子神孫 五百年은 우리 皇室이요 山高水麗 東半島 우리 本國일세
(후렴) 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 大韓으로 길이 保全셰
二. 忠君는 一片丹心 北岳치놉고 愛國는 熱心義氣 東海티 기페
三. 千萬人 오ᄌᆞᆨ 한마 나라랑여 士農工商貴賤업시 職分만다셰
四. 우리나라 우리皇室 皇天이 도으샤 國民同樂 萬萬歲에 泰平獨立셰
(국한문판)
한글판과 국한문판에 게재된 전 4절 가사는 앞에서 살핀 1899년 6월 29일자 독립신문 잡보란 방학예식 기사에 수록된 것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무궁화 노래’가 한자형 ‘무궁화가’로 바뀐 것이다.
2. 도산본 애국창가집 ‘제14편’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