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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4대 핫이슈 토론, 한국민요학회 추계학술대회인쇄하기 닫기 오피니언 > 포럼·세미나 4대 핫이슈 토론, 한국민요학회 추계학술대회 등록 2015-11-27 17:04:00 | 수정 2016-12-28 15:59:07 【서울=뉴시스】지난해 한국민요학회 동계학술대회. 이보형, 이소라, 김기현, 김익두, 이창식 교수 등이 참여했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한국민요학회(회장 김익두) 추계 학술대회가 28일 오후 1시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 회의실에서 열린다. 제1발표는 '한국민요학과 한국민요학회의 발전을 위한 방향 모색'(발표 조영배·제주대, 토론 김익두·전북대), 제2발표는 '상사소리의 존재양상과 국면 전개 연구'(발표 강등학·강릉원주대, 토론 정한기·전주교대),제3발표는 '한국 민요 선법(토리)에 대한 연구 현황과 재고'(발표 신은주·전북대, 토론 서정매·부산대), 제4발표는 '호머 헐버트 채록 아리랑에 대한 재평가'(발표 기미양·안동대, 토론 유명옥·한국자연치유학회)다. 최헌 부산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종합토론을 진행한다. realpaper7@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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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아리랑, 월간영웅 주목…기미양 작 '아무르 아리랑'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일반 안중근 아리랑, 월간영웅 주목…기미양 작 '아무르 아리랑' 등록 2015-10-29 10:47:35 | 수정 2016-12-28 15:49:19 【서울=뉴시스】왼쪽부터 기미양 아리랑학회 연구이사, 안중근 의사의 증손자 토니 안, 유명옥 서울아리랑보존회 회장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기미양 아리랑학회 연구이사가 만든 '아무르 아리랑'이 월간 '영웅'이 창간 기념으로 진행한 '안중근 문학작품 공모'전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아무르 아리랑'의 아무르는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해 중국 둥베이 국경 등을 따라 흐르는 아무르 강을 가리킨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 아무르 강을 건너 단지동맹을 맺었다. 월간 '영웅'을 발행하는 도서출판 '꼬레아 우라'는 아무르강 4000㎞의 유장함과 안 의사의 깊은 한을 민족어 아리랑에 반영한 '아무르 아리랑'을 높게 평가했다. 이 아리랑은 윤은화(양금연주자)가 편곡하고, 유명옥(서울아리랑보존회 회장)이 창을 맡아 음반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월간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뜻과 사상을 되살려 통일 대한민국과 세계 평화의 길잡이로 삼겠다'는 취지로 창간됐다. 안중근의거 106돌 기념일인 지난 26일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월간 '영웅' 창간 기념식을 열었다. 【서울=뉴시스】'아무르 아리랑' 이날 배포된 창간호는 안 의사 증손자 안도용씨의 글, 3대에 걸쳐 안 의사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 온 윤자성 미국 안의사기념사업회 회장 인터뷰, 김월배 중국 다롄(大連)외국어대 교수의 논문 등으로 채워졌다. 월간지 제호 공모전에는 초등학생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가 참여해 232편이 응모됐다. 발행인은 박창재 에픽소프트 대표다. 2013년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주관하는 '안중근 아카데미' 강의(15주)를 수강한 뒤 사비를 털어 잡지를 창간했다. realpaper7@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s://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1029_0010380102&cID=10701&pID=10700#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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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안중근 아리랑, 월간영웅 주목…기미양 작 '아무르 아리랑' (2015.10.29)안중근 아리랑, 월간영웅 주목…기미양 작 '아무르 아리랑' 기사입력 2015.10.29. 오전 10:47 기사원문 스크랩 본문듣기 설정 좋아요 화나요 좋아요 평가하기2 댓글 요약봇 글자 크기 변경하기 인쇄하기 보내기 【서울=뉴시스】왼쪽부터 기미양 아리랑학회 연구이사, 안중근 의사의 증손자 토니 안, 유명옥 서울아리랑보존회 회장【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기미양 아리랑학회 연구이사가 만든 '아무르 아리랑'이 월간 '영웅'이 창간 기념으로 진행한 '안중근 문학작품 공모'전에서 특별상을 받았다.'아무르 아리랑'의 아무르는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해 중국 둥베이 국경 등을 따라 흐르는 아무르 강을 가리킨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 아무르 강을 건너 단지동맹을 맺었다.월간 '영웅'을 발행하는 도서출판 '꼬레아 우라'는 아무르강 4000㎞의 유장함과 안 의사의 깊은 한을 민족어 아리랑에 반영한 '아무르 아리랑'을 높게 평가했다.이 아리랑은 윤은화(양금연주자)가 편곡하고, 유명옥(서울아리랑보존회 회장)이 창을 맡아 음반으로 제작할 예정이다.월간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뜻과 사상을 되살려 통일 대한민국과 세계 평화의 길잡이로 삼겠다'는 취지로 창간됐다.【서울=뉴시스】'아무르 아리랑'안중근의거 106돌 기념일인 지난 26일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월간 '영웅' 창간 기념식을 열었다.이날 배포된 창간호는 안 의사 증손자 안도용씨의 글, 3대에 걸쳐 안 의사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 온 윤자성 미국 안의사기념사업회 회장 인터뷰, 김월배 중국 다롄(大連)외국어대 교수의 논문 등으로 채워졌다.월간지 제호 공모전에는 초등학생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가 참여해 232편이 응모됐다.발행인은 박창재 에픽소프트 대표다. 2013년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주관하는 '안중근 아카데미' 강의(15주)를 수강한 뒤 사비를 털어 잡지를 창간했다.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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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양, 월간 ‘코레아우라’의 특별상 ‘아무르아리랑’ 특별상 수상안중근의거 106돌 기념일인 지난 10월26일, 월간 ‘영운’ 창간 기념식이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괌(관장 안응모)에서 개최되었다. 월간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뜻과 사상을 되살려 통일 대한민국과 세계 평화의 길잡이로 삼겠다’는 취지로 도서출판 ‘꼬레아우라’의 정기간행물이다. 이날 배포된 창간호는 안 의사 증손자 안도용 씨의 글, 3대에 걸쳐 안 의사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 온 윤자성 미국 안의사기념사업회 회장 인터뷰, 김월배 중국 다롄(大連)외국어대 교수의 논문 등으로 채워졌다. 월간지 제호 공모전에는 초등학생부터 80대 할아버지까지 232편이 응모했다. 발행인은 기업인 박창재(60)씨다. 그는 컴퓨터 솔루션 개발 전문인 아이티(IT)업체 에픽소프트의 대표다. 2013년 우연히 신문 광고를 보고,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주관하는 ‘안중근 아카데미’ 강의(15주)를 수강으로 감명을 받아 이후 이사를 맡게 됐다. 사비를 털어 이번 안의사 관련 잡지를 창간하게 된 동기다. 1년 동안 준비를 거쳐 23일 안중근기념관에서 창간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창간기념 안중근 문학작품 공모전 발표에서 눈길을 끈 것은 기미양(아리랑학회 연구이사)의 ‘아무르아리랑(작사)’의 특별상 수상이다. 4000km의 유장함과 안의사의 깊은 한을 민족어 아리랑에 반영한 것을 주목한 결과이다. 아므르강(Amur River)은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하여 중국 둥베이(東北滿洲)의 국경을 따라 동류하고 하바롭스크 부근에서 북동류하여 동해(오호츠크해)에 이른다. 아므르아리랑 원수하고는 살 수가 없어 팔걷고 뛰어나와 의병되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므르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동양평화 하자하자 외치는 소리 하늘땅 온세상 진동하누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므르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다섯발 내디뎌 도적 쓰러트려 동양평화 대역사 시작되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므르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서릿발 칼날같은 저 용맹 아무르 흑룡강에 흐르고 흘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므르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아므르 흑룍강 흐르고 흘러 동해바다 향해 아리아리 아라리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므르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인물 추모 아리랑을 개척하여 역사인물을 추모하는 소리로 자립잡기를 기대한다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윤은화(양금연주자)의 편곡을 거처 유명옥(서울아리랑보존회 회장)의 창으로 음반화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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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4대 주제 토론, 한국민요학회 추계 전국학술대회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일반 4대 주제 토론, 한국민요학회 추계 전국학술대회 등록 2015-10-21 14:38:58 | 수정 2016-12-28 15:46:58 【서울=뉴시스】최고(最古) 아리랑 악보. 19세기 말 헐버트의 영어편지에서 발견됐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2015 한국민요학회 추계 전국학술대회'가 11월28일 오후 1시 서울 공평동 태화빌딩 회의실에서 열린다. 최헌 부산대 교수가 좌장으로 나서 한국민요와 관련된 4가지 주제로 토론한다. 제1발표인 '한국민요학과 한국민요학회의 발전을 위한 방향 모색'에서는 조영배 제주대 교수가 발표하고, 김익두 전북대 교수가 토론한다. 제2발표인 '상사소리의 존재양상과 국면 전개 연구'에서는 강등학 강릉원주대 교수와 정한기 전주교대 교수가 발표자와 토론자로 함께한다. 제3발표는 '한국 민요 선법(토리)에 대한 연구 현황과 재고'다. 신은주 전북대 교수가 발표자, 이윤정 한양대 교수가 토론자다. 마지막 제4발표는 '호머 B 헐버트 채록 아리랑에 대한 재평가'다. 기미양 안동대 민속학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하고, 유명옥 한국자연치유학회 이사가 토론한다. realpaper7@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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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동포 또 다른 이산가족_2015년 9월 25일일제 강점기 당시, 사할린으로 징용을 갔던 어르신들이 안산의 한 마을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들의 영구적인 귀국을 돕고 정착할 수 있게 만든 고향마을 인데요. 그런데 고향에 돌아온 어르신들이 또 다른 그리움에 사무쳐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문 기자입니다. 올해 91살의 박연동 할아버지는 이번 추석도 노부부 단 둘이서 쓸쓸하게 지내야 합니다. 슬하에 5명의 자식이 있지만 아들 딸들은 모두 러시아 사할린에 살고 있습니다. 2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 18살 나이에 사할린으로 징용을 갔습니다. 해방이 됐지만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고 그곳에 가정을 꾸렸습니다. 57년 만인 지난 2000년, 정부가 이들을 귀국 시켰지만 자식들은 예외였습니다. [인터뷰] 박연동 (91세 / 18세에 사할린 징용) "내 자식, 손자, 증손자, 이 아이들이 남의 나라에서 고생하는 것이 나는 제일 중요하다고. 그런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데려오지 못하지 한국에서는 찾아오지 않지 자기 민족인데도.” 반 평생을 그리워했던 고향 땅을 밟아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곧 자식들과 생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한국에 자식들은 러시아 사할린에 살아야 합니다. 이산가족이 되고만 가족들은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야 하는 힘든 여정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부돌 (안산 고향마을 거주) "처음에 2000년에 왔는데 그때는 자식들 2명이 들어왔어요. 사할린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는 안 되겠더라구요. 보고 싶어서 안 되겠더라구요. 한 1년 동안 자식 보고 싶어서 안 되겠더라구요.” 지난 2000년 고향마을 입주 당시 귀국했던 사할린 동포들은 모두 972명.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657명 만이 살고 있습니다. 자식을 그리워 하며 한국에서 쓸쓸히 눈을 감기도 했고 자식을 보고 죽겠다며 다시 사할린에 돌아가 생을 마감한 동포들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10년째 국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티브로드 뉴스 이제문 입니다. #안산고향마을#고향마을#사할린#사할린동포#영구귀국#영주권#티브로한빛방송#이제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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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양의 아리랑로드 (1997-2020)아리랑로드 답사기 기미양_러시아 동포와 함께, 겨레기념일 ‘아리랑의 날’ (뉴시스. 2017-10-01) 기미양_군함도탄광과 아리랑고개 (영웅, 8월호, 2017. 코레아우라) 기미양_지옥섬 군함도, 아리랑 고개 낳았다···저항·대동·상생 (뉴시스, 2017.07.03.) _기미양 “2014, 아리랑 창조적 계승의 해”…위대한 3대 성과 (뉴시스, 2014-12-3) 기미양_민간주도 아리랑의날, 전국 7곳 열광…국가차원 지원 절실 (뉴시스. 2014-10-13) 기미양_우리의 무기여, 아리랑이여!”…기미양 북간도 답사기, (뉴시스. 2015.08.10) 기미양_왜 우리는 일본의 아카지마 아리랑 고개로 가는가" (뉴시스. 2015-02-06) 기미양_7세 박주빈·25세 송미진, 日아카지마 아리랑평화음악제 합류 까닭, (뉴시스, 2015-02-06) 기미양_안 의사 아리랑' 마침내 탄생, 안중근 동양평화론 현장 가다, (뉴시스 2014.07.28.) 기미양_아리랑 루트 확인, 설정…남은혜·기미양·김연갑 '삼인삼색 연변기행' (뉴시스 2013.08.26.) 인쇄하기 닫기 사회 > 사회일반 “우리의 무기여, 아리랑이여!”…기미양 북간도 답사기 등록 2015-08-10 11:28:36 | 수정 2016-12-28 15:26:09 【북간도=뉴시스】중국 방천에서 북중러접경지대를 조망하다. 조러대교가 보이고 북한 두만강시가 펼쳐져 있다. 멀리 압록강 하류가 끝나는 곳에서 동해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북간도=뉴시스】기미양 이사 (아리랑학회) = 2013년 북간도 지역 음악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갔을 때는 ‘북간도답사’였다. 2014년 안중근의사독립운동유적지를 찾았을 때는 ‘조·중·로접경지역답사’였다. 그리고 이번 북한대학원대학교 답사는 ‘북·중접경지역답사(단장 이우영 교수)’였다. 모두 같은 역사성으로 연결되는 지역이지만 답사 목적에 따라 지명을 달리했다. 북간도, 또는 만주나 동북삼성으로 불려지는 이 지역은 나로서는 주최 측의 목적에 더해, 나름으로 늘 가슴에 절절하게 담았던 화두를 갖고 갔기 때문에 이런 지명의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왔던 듯하다. 첫 번째 답사는 남은혜 명창의 음반 ‘북간도아리랑’을 구상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안중근의 의병정신을 주제로 한 ‘아무르아리랑’을 구상하기 위해서였고, 이번에는 항일무장 투쟁 ‘무기로서의 아리랑’ 현장을 가슴에 담는 것이 개인적인 관심사였다. 무기로서의 아리랑이란 주제를 가슴 속에 담은 것은 두 가지 계기에 의해서이다. 하나는 북한의 음악정치 원천이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시절 보천보전투와 간삼봉전투에서의 아리랑으로부터라는 사실 때문이다. 또 하나는 최근 읽은 1940년대 말 미국 좌파 포크그룹 <얄마닉 싱어즈>(Almanac Singers)의 ‘무기로서의 노래(Use of Songs as a weapon)’ 동아리 활동상의 감동에서다. 이들은 아리랑을 반전음악으로 사용한 피터 시거(PETE SEEGER)와 맥을 잇는 그룹으로서, 세계 저항음악을 말할 때 내 놓는 ‘무기로서의 노래’라는 슬로건을 창출한 음악가들이다. 필자의 과잉된 생각일런지는 몰라도 일제항일투쟁기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투사들의 아리랑 변용은 바로 이들보다 앞서 노래를 무기로 변용한 사례로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실례는 김산의 아리랑, 정율성의 아리랑, 광복군아리랑, 그리고 김일성의 아리랑 등을 그렇게 본다는 관점이다. 향수를 달래주고, 공동체적 친밀감으로 일체감을 형성시키고, 배우지 않아도 부를 수 있는 아리랑 곡조에 항일적인 사설을 담은 것이다. 이는 향유하는 노래이면서 저항하는 무기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7월 18일부터 24일까지의 조중접경지역 답사 내내 1930년대 말 중국 항일전선 지역으로 돌아가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을 구상했던 용정, 김산이 다닌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던 유하현 합리하, 김정숙이 김일성을 만나러 건넌 삼합, 보천보전투가 있었던 혜산진이 보이는 장백현, 뗏목아리랑이 흘렀던 압록강변에서 나운규와 김산, 그리고 정율성과 김정숙의 아리랑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독립당 출몰, 영사관 오도빠이···아리랑 아리랑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는 부를 수 없는 아리랑이 중국과 러시아에 이르는 접경지대에서 불려졌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게 보게 된다. 필자가 수집한 자료 중 가장 앞서는 것은 1932년 7월 김경재가 북간도 상황의 기록 중에 조사한 다음의 사설이다. “독립당의 출몰이 자즈니/ 영사관 오도빠이 달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백두산=뉴시스】백두산 천지에서 아리랑남북공동등재를 기원하면서. 간도 용정에 있던 일본 영사관이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려고 싸이렌을 울리며 내달리는 상황을 아리랑에 각인시켰다. 일제의 오토빠이는 독립당을 추격하는 상징임을 모두에게 알림과 동시에 독립당은 계속해서 출몰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런 전승양상은 결정적으로 1941년 중경임시정부가 3대 군가의 하나로 채택한 광복군아리랑에서 진가가 발휘된다. “우리네 부모가 날찾으시거든/ 광복군 갔다고 말전해 주소/ 후렴-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소/ 동실령고개서 북소리 둥둥나더니/ 한양성 복판에 태극기 펄펄날려요.” 아리랑이 고난 극복의 추동체라는 사실을 말할 때, 떠올리는 이 광복군아리랑은 국내 진공작전으로 일제를 밀어내고 승리한 기쁨을 앞당겨 자축하게 함으로 용전의 힘을 내게 하였다. 곡조가 밀양아리랑이니 배우지 않고도 즉석에서 합창할 수 있었으니 유용한 심리전술의 무기였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강렬하게 되살아 난 아리랑 사연은 2013년 북간도답사 때 연길 정암촌에서 중국동포 음악가 김봉관 선생이 전해준 이야기이다. 요약하면 독립군 빨지산 활동상의 가슴 아픈 아리랑 사연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 관동군 토벌대들이 산골짜기에 들어섭니다. 앞장에 선 ‘길 안내자’는 흰옷을 입은 조선족 노인이었습니다. 주위의 산봉우리를 둘러보던 노인은 목청을 뽑아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이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도 못가서 발병난다…. 【북간도=뉴시스】2015 조중접경지역 답사 이동경로. 두만강 하류에서부터 백두산, 백두산에서 두만강 상류~하류. 미구에 노인은 일본군인의 군와 총에 쓰러지고 포위망을 늘인 항일유격대들의 분노의 총소리는 노인이 못다 부른 아리랑의 노래 가락을 이어갔답니다. 중국 조선족 가운데 널리 알려진 항일투쟁 이야기입니다. 조선 노인을 왜놈 토벌대가 들이닥쳐 빨지산을 대라고 하며 끌고 갔는데, 노인은 약속한 장소로 가서 의연하게 아리랑을 불렸다 말입니다. 그것은 신호입니다. 그러니 아리랑은 처절한 왜놈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일본 토벌대(討伐隊)와 독립군 간의 추격전에서 “**도 못가서···”라는 대목의 숫자는 일본 토벌대의 규모를 알리는 것이다. 암호로 쓴 것인데, 어느 단계에 이르러 이러한 사실이 간자에 의해 일제에 알려졌고, 결국 독립군을 돕던 한 노인이 이 암호를 쓰다가 희생됐다는 이야기다. 이는 중국민족학교 황유복 교수의 ‘힌 옷의 동포’라는 책 속에도 들어있어 사실로 받아 들여지는 이야기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숙의 아리랑 사연도 관심 있게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앞에서도 말했듯 북한의 음악정치는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제7사 활동의 최고 전과라는 보천보전투와 간삼봉전투에서의 아리랑 역할을 확대, 재현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항일전선에서의 아리랑은 다양한 상황에서 확인 되는 것인데, 북한의 불후의 고전명작 ‘한 자위단원의 운명’이나 혁명가극 ‘밀림아 이야기 하라’, 그리고 다부작(多部作)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불린 아리랑이 이런 상황에서 확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보천보와 간삼봉전투 아리랑> 【북간도=뉴시스】북한대학원대학교 2015 조중접경지역 현장답사단(단장 이우영 교수) 보천보에 홰불 올린 혁명군은 기세 높아/ 간삼봉의 싸움터엔 노래소리 드높았네/ 빨찌산녀장군이 선창 떼신 아리랑/ 봉이마다 릉선마다 뢰성타고 울렸네/ (후렴) 아리랑 스리랑/ 간삼봉에 불비 와서 아라리가 났네. 이 ‘간삼봉전투에 울려퍼진 아리랑’은 앞서 치러진 보천보전투에 이은 승전으로, 이 때 김일성과 김정숙이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는 사실을 표현했다. 당시<매일신보> 1937년 7월 9일자가 보도한 ‘토벌대와 교화 중에도 노래 부르는 여당원, 김일성 일파 공비 격퇴’에서도 추정되듯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30년대 후반기 중국에서의 항일투쟁이 침체에 빠지는 시기로 중국군벌의 도움으로 유지되던 독립투쟁이 지하화 하는 상황에서 거둔 승전보였다. 이 승전은 일본 경찰을 격퇴한 전투로 김일성의 존재를 분명하게 알린 전투이다. 1992년 4월 김일성 80회 생일 기념으로 발행된 자서전『세기와 더불어』에 두 전투에서 아리랑이 혁명의 동지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기록하였고, 이를 계승, 2002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으로 형상화시킨 것이다. 1937년 6월 4일 새벽, 일방적으로 대승한 전투, 장백현에서 보이는 함경남도(현 양강도) 혜산진으로부터 20㎞ 떨어졌다는 기록을 되살려 응시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상상의 전투신이 오버랩 되었다. 빨치산 전투방식대로 방화를 통한 충격과 주재 일본경찰을 비롯한 일인 관리만을 처단하여 공포심을 극대화 했다. 이 사실을 언론에 전해주어 대서특필, 동아일보는 호외까지 발행하게 했다. 선전선동 활동으로 군사적 성과 이상의 정치적 성과를 거둔 전투였다. “간삼봉 전투장에 울린 <아리랑>은 혁명군의 정신적 중심을 비쳐 보이고 낙천주의를 시위하였다. 적들이 <아리랑>을 듣고 어떤 기분에 잠겼겠는가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후에 포로들이 고백하기를 그 노래를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졌고 다음 순간에는 공포에 잠기였으며 나중에는 인생 허무를 느꼈다고 하였다. 부상자들 중에는 신세를 한탄하며 우는 자들도 있었으며 한쪽에서는 도망병까지 났다.” 김일성의 ‘세기와 더불어’ 제6권에 나오는 대목이다. 무장투쟁 사상 처음으로 가장 큰 규모의 국내 진공작전으로 평가하는 전투에서 아리랑을 불렸으니 북한이 아리랑을 ‘혁명동지’로 표현할만한 것이다. 【북간도=뉴시스】수풍댐에서 배를 타고 북한 사람들의 일상과 만나다. 우리가 손을 흔들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면 그들도 손을 흔들며 웃어 준다. ◇백두산은 없고 장백산은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1930년대 아리랑 여행’(?)에서 현실로 일깨운 것은 백두산 답사에서였다. 그 이유는 천지를 오르기 위해 세 번이나 중국에 돈을 내야함은 물론 모든 표기에서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는 사실이었다. 여기에 조선족 동포들이 부르는 ‘장백산아리랑’이 조선족 스스로가 현실적으로 중국신민임을 상징적으로 표현 한 노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심 더욱 안타까웠다. 그래서겠지만 이 노래는 1983년 전국민족단결현상모집에서 창작상을 받기도 했다. <장백산아리랑> “그 옛날 천지엔 선녀 내렸고/ 오늘은 세월 좋아 벗님들이 이 고장에 찾아 오누나/ 신선의 꽃 활짝 피는 우리네 장백산은/ 중국의 명산이요 연변의 자랑일세.” 조국(조선이나 대한민국)의 명산이 아니고, 중국의 명산이고, 연변의 자랑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름도 백두산이 아니고 장백산이다. 만일 북한 지역에서 오른다면 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임은 당연한 명칭이다. 이런 문제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자 갑자기 1930년말 상황과 달라진 것인 없다는 생각에서 천지에 오르는 발길이 너무나 힘겨웠다. 조중접경지 7일간의 답사, ‘여행’이 아니고 ‘답사’여야 하는 이유를 실감했다. 아리랑조차도 역사와 현실적 해석을 달리해야 하고, 산에 오름이 분명 여행이고 등산임에도 여행이 아닌 답사임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의 인내를 필요로 할 듯하다. 중국의 역사와 현재, 이곳에서 만나는 조선족이라는 중국신민들, 그리고 멀리서만 볼 수밖에 없는 북한이 중첩된 곳이기에, 이를 어떻게 풀어 낼 것인지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다시 무거운 마음으로 답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www.arirang21.org Copyr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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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단성사 내부에 '단성사 기념관' 설치해야 한다"…왜?인쇄하기 닫기 연예 > 영화 "단성사 내부에 '단성사 기념관' 설치해야 한다"…왜? 등록 2015-04-27 09:13:07 | 수정 2016-12-28 14:55:09 【서울=뉴시스】박동욱 기자 = 1907년 세국내 최초로 문을 연 상설영화관인 단성사가 건물을 담보로 잡고 있던 은행의 대출금 회수 절차로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사진은 5일 오후 문 닫힌 서울 종로구 단성사의 모습. 2015.02.05. fufus@newsis.com 【서울=뉴시스】한겨레아리랑연합회(상임이사 김연갑)가 25일 “단성사를 우리나라 극장의 역사로 존치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근거는 크게 아홉 가지다. 단성사는 1907년 6월4일 ‘역사와 개량 발전의 시대적 사명을 연설(演說)한 사회를 조성하기 위하여 단성사(團成社)라 명칭’한 연예관으로 탄생, 1918년 12월21일 최초의 영화 상설관이 된 극장이다. 우리 근대 문화사를 함께한 민족극장이다. 단성사는 1919년 10월27일 최초의 우리영화인 김도산 감독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를 개봉하여 ‘영화의 날’(1963년 제정)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극장이다. 단성사는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을 1926년 10월1일 개봉하여 ‘민족영화 아리랑’을 탄생시켰다. 민간전승 민요 아리랑을 문화영역 대중예술 아리랑으로 확산시켜 다양성과 초역사성을 갖게 한 기념비적 유적지이다. 단성사는 소속 감독이며 변사인 김영환을 통해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를 편곡하게 하여 전 민족 구성원에 확산시켜 ‘민족의 노래 아리랑’으로 위치시켰다. 이를 기념한 ‘아리랑의 날’(2013년 제정)을 탄생시킨 아리랑 역사의 거점이다. 단성사는 1926년 10월1일 오후 4시,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 개봉으로부터 1947년 11월12일 ‘다시보자 아리랑’ 상영까지 재개봉, 재상영, 동시상영, 특별상영 등으로 20여년 간 31회나 상영하여 아리랑 위상에 기여했다. 단성사는 나운규 감독·주연 영화 ‘아리랑’ 제1편(1926), 2편 ‘아리랑, 그 후 이야기’(1929), 제3편 ‘말 문 연 아리랑’(1936)은 물론, 홍개명 감독 영화 ‘아리랑 고개’(1936), 이강천 감독의 ‘아리랑’(1954), 김소동 감독의 ‘아리랑’(1957), 최무룡 감독의 ‘아리랑, 나운규의 일생’(1966), 유현목 감독의 ‘아리랑’(1968)까지 개봉한 ‘아리랑 극장’이다. 【서울=뉴시스】영화 ‘아리랑’ 단성사는 무용 ‘아리랑’(1929·배구자 작), 레뷰 ‘춘하추동 아리랑’(1930·연극사 제작), 민요극‘아리랑’(1933·나운규 작), 연극 ‘아리랑 반대편’(1931·신불출 연출), 가극 ‘아리랑’(1943·이부풍 작), ‘신 아리랑’(1943·김춘광 작), 연극 ‘아리랑’(1945·예원좌), 종합쇼 ‘아리랑 환상곡’(1945·한영철 연출), 그리고 김석민 작·연출 ‘양자강의 아리랑’ 등 다양한 장르의 아리랑 명칭 작품 80여 편을 공연하여 아리랑을 대중문화로 인식시킨 극장이다. 단성사는 1927년 전문 영화음악 연주단 ‘단성관현악단’을 운영하고 1931년 영화 전문지 ‘영화가’를 발간하고, 1937년 8월11일 영화감독 나운규의 영결식을 거행하는 등 기업문화를 실현한 업체이다. 단성사는 1993년 영화 ‘서편제’ 개봉 최장 상영기록 194일을 기록하며 진도아리랑의 흥과 멋을 알려 국악진흥에 기여한 ‘문화 공간’이다. 1907년 ‘연예관 단성사’에서, 1953년 ‘㈜단성사’로 , 2005년 ‘멀티플렉스 단성사’로, 2008년 4월 ‘씨너스 단성사’로, 다시 2008년 11월 ‘아산 단성사’로 역사를 이어왔다. 그리고 2010년 7월 휴면에 들었다.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26번지(묘동 56) 지하 4층∼지상 10층(1만3642㎡) 단성사 건물은 ‘경성부 수은동 단성사’ 107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표지석도 없이 5년간 방치되었다. 2015년 3월12일, 5년을 건너 버스 판매 주력업체인 영안모자 계열사 자일오토마트가 새 주인이 되어 ‘영안 단성사’로의 출발을 기대하게 되었다.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1996년 영화 ‘아리랑’ 개봉 60주년을 맞아 당시 단성사에게 ‘역사 코너’를 건의했고, 1996년 ‘아리랑’ 필름 되찾기운동을 공동으로 시행했고, 2006년 ‘단성사 100년사’ 공동 출판을 논의한 바 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서울=뉴시스】영화 ‘아리랑’의 복원된 전단. 신나라레코드가 1만매를 제작했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영안 자일오토마트사와 문체부, 문화재청, 서울시에 다음 사항을 청원한다. 하나, 단성사 건물 주변에 역사성과 의의를 새긴 기념 표지를 설치해야 한다. 더불어 2005년 설치한 기념 조형물을 처음 설치한 위치에 존치시켜야 한다. 둘, 규모를 떠나 ‘단성사’ 명칭의 영화 상영관이 유지되어 근대문화사의 명소로 우리 곁에 있게 해야 한다. 셋, 극장 단성사와 영화 ‘아리랑’과 영화인 나운규를 기념하는 가칭 ‘단성사 기념관’을 건물 내에 설치하여 근대 대중문화사의 메카로 삼아야 한다. 넷, ‘단성사 기념관’이 민족영화 ‘아리랑’ 필름 찾기운동 등의 역사적 영화 필름 찾기 활동 거점으로 활동하게 해야 한다. 다섯, 세계의 노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란 아리랑의 위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기억의 장소’로 존치시켜야 한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사무국장은 “영안모자 자일오토마트 측이 단성사 건물에 단성사 기념관을 설치한다면 전시자료 제공과 운영을 무상으로 전담할 수 있다”고 밝혔다.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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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뉴스] 박수현“공주아리랑,백제예술혼 알려야”공주아리랑 발전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3월 1일 오후 1시 30분 공주문화원 대강당에서 박수현 국회의원주최, 공주아리랑보존회 주관으로 열렸다.이번 공주아리랑 발전을 위한 정책토론회는 공주아리랑을 특화, 발전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박수현 국회의원은 이날 개회사에서 "우리민족은 아리랑을 부르면서 울분을 달래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민족혼을 지켰다”며 "공주는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의병과 애국지사들이 태어났던 곳이고 3.1만세운동 때 공주장터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가장 격렬하게 외세의 억압에 투쟁을 했던 의로운 고장이었다” 고 밝혔다.그리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콘텐츠 공주아리랑이 백제예술의 혼을 알리고, 나아가 공존의 가치를 역설하는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게 될 미래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조길행 충남도의회의원은 "공주는 기업, 농업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로 발전해야 나가야 될것”이라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공주아리랑이 더욱 많이 발췌, 채록되어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은혜 공주아리랑보존회장은 이날 "국악인생 40여년중 공주의 30여년의 삶은 보람찼다”며 "삼일절에 공주아리랑으로 함께 할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토론회를 통해 공주아리랑의 가치를 파악,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더욱 소중한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연갑 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의 사회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주아리랑의 미래화 세계화’에 대한 주제 발표가 있었다. 토론자로는 박수현 국회의원, 남은혜 공주아리랑보존회장, 김연갑(아리랑학회상임이사). 이창식 세명대 교수, 권오성 전 한양대 교수, 기미양 아리랑학회 연구이사, 신용희 금강뉴스 대표, 박일신 충청남도 문화정책과장이 참여해 공주아리랑의 미래와 세계화 등에 대한 다양한 토론을 펼쳤다. 이어 제16회 공주아리랑 정기공연이 펼쳐졌다. http://http://www.expres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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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지마 아리랑⑥]그 이름 아리랑, 인류보편 ‘고난의 메타포’인쇄하기 닫기 국제 > 아시아/대양주 [아카지마 아리랑⑥]그 이름 아리랑, 인류보편 ‘고난의 메타포’ 등록 2015-02-16 16:19:52 | 수정 2016-12-28 14:35:25 【아카지마(오키나와)=뉴시스】아카지마 아리랑 평화음악제 추진단(단장 기미양)이 10일 아카지마(阿嘉島)의 아리랑고개를 찾아 위령제를 올렸다. 유일한 20대 단원 송미진씨가 당시 위안부 숙소 앞에서 오열했다. 사진= 엄문희 여행작가 【오키나와=뉴시스】김연갑 상임이사·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 “조국의 아리랑은 나의 영혼이자 블루스, 내 몸 안의 DNA와 같다.” 교포2세 가수 아라리 에이치, 박영일(新井英一)이 한 말이다. 1994년 발표한 <청하아리랑>(清河への道~48番)이 주목을 받아 1995년 일본 레코드 상을 수상했고, tbc TV 10시 메인뉴스 테마뮤직으로 1년간 방송되었다. <청하 아리랑>은 그가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청하군(현 포항시 북구 청하면)을 방문한 뒤 작사·작곡한 작품이다. 교포2세로 차별을 받고 미군 기지에서 이국인 취급을 받은 서러움을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나는 간다”라고 강렬한 목소리로 외쳤다. 1950년부터 후쿠오카 이와쿠니 미군기지에서 접시닦이를 하다 미국행을 한 후 정체성을 지닌 노래를 해야한다는 강렬함에 부르게 된 노래다. “아리랑은 특별한 고난을 겪은 이 만이 부르는 특권을 가진 노래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기 나름의 고난을 가진 사람,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는 이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하게 하는 힘을 가진 노래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의 메타포(metaphor)로서의 아리랑은 반드시 조선이라는 공간이나 조선인이라고 하는 민족에 한정되어 있지 않은 보편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드라마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강력한 리소스(財源)인 것이다.” 아리랑을 연구한 일본 학자가 쓴 글의 일부이다. ‘고난의 메타포’라고 했다. 이어 교표2세들의 아리랑을 살펴본다. 바로 이들의 부친 대부분은 징용에 끌려왔다 잔류한 이들이다. 백룡의 <아리랑의 노래>는 아마도 동포2세들이 공통으로 갖는 아리랑의 정서일 것이다. “술을 드신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 그것은 고향의 멜로디 아리랑의 노래/ 그 무엇을 그리며 부르시는 걸까/ 그 때의 현해탄 아니면 어릴 적 고향산하/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네.” 호타루 아리랑 <특공대의 노래> 붉은 피가 샘솟는 요카레노(특공대의)/ 일곱 개의 제복단추 아침 해에 빛난다/ 오늘도 비상한다 가노야의 창공에/ 큰 희망의 부푼 구름 샘솟네 치쿠호우(筑豊) 탄광 아리랑 우리의 고향은 경상북도인데/ 나는야 어째서 숱(석탄)파러 왔느냐/ 일본땅 좋다고 누가 말했냐/ 일본땅 와보니 배고파 못살겠네/ 숱 팔 때는 배고파 못살겠네/ 이 말만 하면은 몽둥이로 맞았네/ 배가 고파요 어머니 보고 싶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내었네/ 어머니 소리도 크게 못하고/ 감독이 겁나서 가만히 불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넘어 간다 봄 아리랑 【아카지마(오키나와)=뉴시스】아카지마 아리랑 평화음악제 추진단(단장 기미양)이 10일 아카지마(阿嘉島)의 아리랑고개를 찾아 한국인 위안부들의 넋을 달랬다. 사진= 엄문희 여행작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영감이 어디로 가나?/ 아리랑 고향에는 살수가 없어/ 추운 만주로 쫓기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정처 없이/ 아리랑 국경을 넘어서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동포는 무엇을 먹나?/ 아리랑 나라는 쌀의 나라/ 아리랑 동포는 좁쌀도 없다/ 무자비한 왜놈에게 빼앗기고/ 오소리 지주에게 착취당해 이런 아리랑을 부르는 재일동포는 70여만명, 부라쿠민(部落民; 천민 후예), 오키나와인에 이은 세 번째 소수자 집단이다. 천민계급이 피차별부락(被差別部落)이었다가 부락만 남았다. 아이누족, 오키나와인, 재일 한국인, 재일 중국인, 류큐인과 함께 일본 내의 대표적 소수 집단이다. 재일동포 아리랑은 이런 굴곡을 헤치고 피어난 꽃이다. 아리랑은 기존의 구비문학 또는 민요 서술의 지배 담론과는 다른 시각에서 의미체계를 구성해야 함을 일깨운다. 텍스트로서의 특정 아리랑에 대한 물음의 해답은 하나이다. 그러나 아리랑 문화로서의 물음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이다. 이 일본 속의 아리랑이 그렇다. 어찌 민요론적인 해석으로 답할 수 있는가? 역사적 전개와 맥락에서 아리랑을 조감해야 함을 실감한다. 아리랑은 전승과 창조적 계승에서 자발적이라는 사실과 역사적 지속성, 문화적 개성, 현실적 가치에서 탁월한 보편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유산과 다르다. 보편적이되 특수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오키나와로부터의 아리랑은 이런 현학을 떠나 더 높은 것이어야 함을 깨우쳐 준다. 만국진량(萬國津梁), ‘만국에 열려있는 가교’, 1458년 제작된 류큐국 종(鐘)에 세겨진 경구이다. 아리랑은 만국에 열려있고, 만국을 노래해야 한다. 그래서 만국에 통해야 한다. 만국을 위해! 누치토타가라! 생명 이상의 존귀함은 없다! 이 귀한 두 경구(警句)에 아리랑이 있어야 한다. 루치난추 대대로 내려오는 이 경구는 수없는 역사적 고난을 극복하며 얻은 진리일 터, 어쩌면 우리의 피, 우리의 아라리가 담겨있을 터! 누치토타가라 아리랑! 누치토타가라 아리랑! 누치토타가라 아리랑! www.arirangsong.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