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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남북아리랑의 재발견, ‘춘천의병아리랑 특별창작공연’국립춘천박물관 강당에서 야간개장 음악회 ‘춘천의병아리랑 특별창작공연’을 개최했다. [사회=한국인터넷기자클럽] 한국인터넷뉴스 허문영 기자 = 지난 4.26.(수) 문화가 있는 날 저녁 7시 26일 국립춘천박물관 강당에서 야간개장 음악회 ‘춘천의병아리랑 특별창작공연’을 개최했다. 이번 공연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아리랑 등재 5주년 기념 <강원 남북아리랑의 재발견> 공연으로 남북으로 갈라진 강원도 지역 아리랑을 춘천에서 최초로 재현했다는 것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유네스코에 등재한 북한지역 아리랑 중에서 북 강원 아리랑인 강원도 아리랑, 삼일포아리랑, 고산아리랑, 고산엮음아리랑, 양양아리랑이 무대에서 재현됬다. 특히, 춘천의병아리랑과 초혼무, 춘천아리랑 공연은 무대화를 위해서 김채원 단장이 전통 춤사위를 근간으로 하여, 아리랑 선율에 맞추어 "아리랑춤사위”를 새롭게 창작한 작품으로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기연옥 강원아리랑보존회 회장이자 (사)춘천의병아라랑보존회 이사장은 "이렇게 뜻깊은 공연이 강원도민들에게 홍보가 부족하여 좀 더 널리 알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그는 "아리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넋과 숨결이 깃들어 있는 노래이며, 우리나라의 민요를 대표하고 민족을 상징하는 노래일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의 음악적 재능이 한껏 어려 있는 온겨레의 노래"라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날 선조들이 불렀던 아리랑은 어둡고 탁한 소리였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밝고 고운소리로 형상되며 굴곡이 심한 통성을 피해 까다로운 굴림들을 유연하게 펴줌으로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편안하고 우아한 강원도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려고 노력하겠다."고 강조 했다. 한편, 기연혹 이사장은 앞으로의 희망에 대해서 "목이 메이도록 부르는 소리, 가슴이 메이도록 애닳픈 가사, 1895년 이후 묻혀 있던 소리, 농사지으며 힘에 겨워 부르던 선조들의 소리고 이제는 우리가 알아야 하고 불러야 하는 소리이기에, 소멸되지 않도록 온전히 보전하고 좀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보급하고 계승발전 시켜야 함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이토록 노력하는 아리랑단체들이 더 이상 어려움에 처하지 않토록 도와주고 관리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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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아리랑’ 주역들 한자리에인쇄하기 닫기 문화 > 공연/전시 ‘사할린 아리랑’ 주역들 한자리에 등록 2017-03-09 21:23:58 | 수정 2017-03-09 21:56:58 【인천=뉴시스】문경아리랑보존회(송옥자 임이순),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기연옥 안상옥 김은자 이진선 임유진), 공주아리랑보존회(남은혜), 경기북부아리랑보존회(김기상), 아리&랑무용단(김채원), 아리랑학회(기미양), 아리랑학교(이인영), 남동사할린센터(신동식),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공노원)가 한 데 모였다. 고려인 강제 이주 80주년 사할린 아리랑 순회공연 ‘사할린 동포들과 함께 아리랑’이 8일 인천 남동사할린센터에서 펼쳐졌다. 지난 3·1절 공연에 이은 이날 무대에는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와 각 지역 아리랑보존회 그리고 아리&랑무용단이 참여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따뜻한 조선을 놔두고 내 여기 왜 왔나. 사할린에는 내가 왜 왔던가. 사할린이 좋다고 내가 왔나. 일본놈들 무서워 내 여기 왔지.’(사할린 아리랑) reap@newsis.com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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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양 “2014, 아리랑 창조적 계승의 해”…위대한 3대 성과인쇄하기 닫기 연예 > 가요 기미양 “2014, 아리랑 창조적 계승의 해”…위대한 3대 성과 등록 2014-12-31 08:28:00 | 수정 2016-12-28 13:53:14 【서울=뉴시스】기미양 이사·아리랑학회 = 2011년 중국의 아리랑 자국 국가무형유산 지정으로 고조된 아리랑 현상은 금년 북한의 유네스코 등재에 이어, 내년 중반기 우리 문화재청의 아리랑 국가주요무형문화재 지정과 중국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신청 여부로까지 이어질 듯하다. 3국이 하나의 종목을 각각 역사와 성격과 내용을 달리하여 자국 문화재로 지정한 것도 이례적인데,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아리랑 현상’을 있게 할 만하다. 이는 아리랑을 단순한 전통민요의 하나로만 보아야 하느냐는 본원적인 문제와 함께 각기 다른 국가명으로 인류무형유산이 된 남북의 아리랑이 과연 ‘아리랑 분단’ 효과 그 이상이 검증될 수 있는가의 문제까지 제기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아리랑 현상’ 속에는 자발적 전승주체임을 자긍심으로 삼고 아리랑을 향유한 지방 곳곳의 아리랑꾼들이 있었다. 바로 이들이 아리랑판의 주인인 것임을 믿는다. 필자는 두 번에 걸쳐 아리랑판의 주인공들을 기록했다. 오늘 2014년의 마지막 날 기억하고 싶은 아리랑 사연을 가슴에 담으려 한다. 단견으로 표현하면 ‘창조적 계승’ 아리랑 판 세 가지이다. 하나는 경서도 국악인 유지숙의 창작 아리랑 14편을 담은 음반 ‘우리 아리랑’ 발매(신나라레코드)이고, 둘은 한국가곡연구소의 ‘아리랑 한국예술가곡집’ 발간이고, 마지막은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 아리랑을 수록한 음반 ‘I Was, I Am, I Will’을 발매한 것이다. 모두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이란 선례로 내세울 만한 성과작들이다. ◇‘구동존이 아리랑’에서 ‘우리 아리랑’으로 2년 전, 늦었지만 나와야 하는 아리랑 음반이 나와 주목을 끈 것이 유지숙의 ‘구동존이(求同存異) 아리랑의 재발견’(신나라레코드)이다. 전공인 서도창으로 북한과 중국 동포들의 아리랑을 우리가 음반화한 것이다. 진정한 통일이 ‘어느 시점의 순간적인 사건’이 아닌 땅과 사람과 마음이 하나되는 통합이라면, 알고 부르고 있는 아리랑이 서로 같은 아리랑으로 불리는 것이 앞서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음반은 소중한 남북문화교류의 실적인 것이다. 【서울=뉴시스】최영식 소장·한국가곡연구소 = ‘아리랑 한국예술가곡 대축제’가 막을 내렸다. 한국가곡연구소는 금년 5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2014 세계무형유산활용 관광자원화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아리랑 한국예술가곡대축제 ‘아리랑 혼(魂)으로 타오르다’(부제)를 기획하였으며,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10월12일)과 의정부예술의전당(11월14일·공동주최)에 이어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세 번째 연주를 마지막으로 축제를 마쳤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되어있는 아리랑, 판소리, 가곡, 농악 등 17개 종목의 훌륭한 우리나라 문화자원을 보존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개발하고 활용하여 문화관광 콘텐츠로 만드는데 목적을 두고 지원사업을 시행해오고 있으며, 서양음악 장르 중 한국예술가곡을 연구하는 단체인 본 연구소가 아리랑을 다양한 장르로 확산시켜 세계인의 아리랑으로 발전시키자는 취지 아래, 한국예술가곡에 입힌 아리랑을 주제로 아리랑 한국예술가곡대축제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여, 어렵사리 행운을 얻은 것이다. 이문태 이사장과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기금을 받은 단체는 금년 안에 모든 행사를 마쳐야 하는 조건이므로 축제를 치르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 온 6개월이었다. 후원기업을 찾기 위해 가진 능력 안에서 최대한 노력하였으며 연주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수시대관의 어려움을 감수해야했다. 국가의 문화상징인 아리랑이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사회 전반에서 여러 형태의 행사와 축제가 봇물 터지듯 하며 아리랑 붐이 급격히 일어났다. 한국가곡연구소는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하면서 행여 시류에 편승하는 모양새로 비춰지지 않을까 고심하였으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음악인으로서 순수예술 중 가장 대중과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한국예술가곡의 주춤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과 해결과제는 십수 년동안의 화두였으므로, 아리랑을 소재로 가져 온 아리랑한국예술가곡이라고 할지라도 같은 맥락으로 여겨질 수 있어서 본격적인 무대를 만드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만만치 않았다. 뮤지컬, K팝 등 급변하고 있는 음악문화의 현실 속에 클래식 장르인 한국예술가곡은 극히 일부의 애호가와 소수의 전공자만이 맥을 이어가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리랑을 한국예술가곡에 입히기로 하고 아리랑 한국예술가곡집을 펴내기 위해 몰두하고 있던 즈음, 지원 단체로 선정되어 아리랑 한국예술가곡축제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을 하면서 아리랑이 왜 민초의 소리인지, 아리랑을 부르면 목이 메이고, 아리랑을 들으면 왜 눈물이 고이는지 알게 되었으며 준비 전의 막연한 불안감과 우려는 서서히 사라졌다. 당연한 결론인 것이었다. 한국인의 뛰는 가슴과 아픈 소리에 전율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무심하고 무덤덤했던 조국애가 내심 부끄러웠고 서양음악 분야에서 긴 세월 성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서양음악의 틀에 갇혀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과 흥을 지혜와 해학으로 풀어나가는 겨레의 멋과 숨결 그리고 우리 민족의 굴곡진 삶이 고스란히 베인 아리랑을 한국예술가곡에 본격적으로 가져오는 작업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였으며, 축제에 참가한 연주자들의 한국예술가곡에 대한 사랑과 확신어린 모습을 보며 희망과 용기를 얻었고 한국예술가곡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무대를 압도하며 뛰어난 연주기량을 펼치는 그들을 보며 커다란 축제를 준비하며 달려온 벅찬 과정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국내 성악계의 중진 소프라노 김영애 가천대 교수, 소프라노 박정원 한양대 교수와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베이스 전승현과 소프라노 박현주 숙대 교수, 테너 신동원, 진성원 그리고 세계 고음악계의 거장들과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있는 소프라노 임선혜와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금년 국내 오페라계의 신데렐라로 주목받은 소프라노 손지혜와 해외 오페라 극장에서 초청받고있는 바리톤 나건용은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의 예술가곡인 한국예술가곡과 아리랑의 소중함을 알고 축제에 참뜻을 모아 준 것이다. 지휘자 김성진은 서양악기와 전통악기의 비율을 3대 2로 조합하여 새로운 음색을 만들어내며 국내 유일의 아리랑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아리랑 한국예술가곡 연주를 윤택하고 조화롭게 이끌었으며 배우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아리랑 한국예술가곡의 역사성을 드라마적으로 풀어내어 무대에 극적 흥미와 긴장감을 더해 주었다. 오대환 음향감독과 총연출을 맡은 유은선 전 국립국악원 연구실장의 날카로운 예술적 감각은 세 번째 축제무대인 예악당 연주를 축제의 완결편마냥 꽃 피웠다. 예악당 무대는 배우 유인촌 전 문화체육부장관이 1917년 1차세계대전 당시 러시아로 이주한 고려인의 후손들이 포로수용소에 갇혀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부른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었음을 알리며, 서울음대 성악과 저학년으로 구성된 12명과 당시의 상황을 간단히 재현하였다. 학생들은 서울대 윤현주 교수의 지도로 작곡가 이건용(서울시립오페라단 단장)의 아카펠라 ‘아리랑’을 수용소에 갇힌 복장으로 차려입고, 청아한 음색으로 정제된 듯 곱게 모아 부르면서 밑에서 위로 배우 유인촌과 함께 이동무대를 타고 올라와, 당시의 시대적 극한 상황을 그렸다. 마지막 무대는 서울시 구립여성합창단연합회, 서울아버지합창단과 서울대중창단이 부르는 아리랑(진규영 편작곡) 합창과 아리랑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아리랑 판타지에 양길순 선생과 제자들의 도살풀이춤에 이어 명창 안숙선이 진도아리랑과 문경새재아리랑을 구성지게 불러 감동어린 아리랑을 선사했으며 객석과 함께 아리랑 제창으로 마무리하였다. 연주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다는 객석의 많은 분들은 녹화를 한 SBS의 방송날짜를 기다리겠노라고 전하였다. 이번 축제가 가지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아리랑이 서양음악의 클래식 장르인 예술가곡과 만남으로써 예술가곡무대로서는 처음으로 서양음악과 전통음악과의 융합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였다. 둘째, 아리랑이 본격적으로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음악언어인 예술가곡 장르와 결합함으로써 아리랑한국예술가곡으로 재탄생되어, 세계인의 한국예술가곡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다양한 스타일의 아리랑예술가곡의 레퍼토리를 발굴, 아리랑의 한국예술가곡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방향정립에 한 몫을 하였다고 본다. 특별히 소프라노 임선혜와 손지혜가 부른 ‘소프라노를 위한 세 개의 아리랑’(이영조 곡)과 베이스 전승현이 부른 ‘아리랑 산촌에’(백병동 곡) ‘장터아리랑’(정애련 곡) 그리고 소프라노 김영애와 박정원이 부른 ‘정선아라리’(임준희 곡)는 국내 초연으로 아리랑 한국예술가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곡으로 독일가곡과 이탈리아가곡 등에 견주어 전혀 손색없는 뛰어난 작품으로 이번 축제를 통해 받은 선물이다. 모르고도 부르고 알고도 부르고 그저 마음 가는대로 가슴으로 부르는 우리들 삶의 소리 아리랑을 만나 사랑을 키운 2014년의 늦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은 그저 노랫말이 좋아 흥얼거리며 한국예술가곡에 탐닉하기 시작한 시절보다 몇 갑절 진한 사랑과 애틋한 연민에 빠진 날들이었다. 축제의 마지막 날, 방송매체의 어느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내 글 중에 좋은 것이 있어서 써왔다고 하였다. ‘이번 축제는 한국예술가곡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분들의 무대이다.’ 기자는 왜 좋은 글이라고 한 걸까. 나는 왜 한국가곡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분들의 무대라는 표현을 굳이 했을까. 못내 아쉬운 여운이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길을 가노라면 동행하는 벗도 만나게 되고 뜻밖의 선물에 눈이 부셔 이유도 없이 눈물이 핑 돌 것만 같다. 첫눈을 보면 반가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지는 동심 어린 아이처럼…. http://koreartsong.com/ 이를 바탕으로 아리랑을 주체화한 유지숙이 이 땅 곳곳을 표제화 한다는 마음에서 금년에 제주도에서 경기도까지의 지명 아리랑을 창작하여 음반화했다. 작곡가(이상균 세한대 전통연희학과 교수)와의 일심으로 이뤄진 것으로 각각의 작품마다 지역성을 충실히 고려하였다. “서도소리와 경기소리가 섞여있는 지방이라서 강화아리랑을 그 선율에 얹었다. 제주아리랑은 제주의 독특한 선율과 방언을 가사로 만들어 이질감 없이 자연스런 아리랑이 되도록 했다. 제주도청이 관심을 갖고 방언을 감수했고 탐라문화제 때 초청해 부르도록 해줬다.”(유지숙) 14곡의 창악 아리랑을 한 음반에 담고, 이를 발표회에서 실연하였으니 이는 이미 ‘아리랑 완창’으로 표현했듯이 민요계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작곡·작사가나 창자의 활동은 앞으로 강원도와 북한지역 대상 아리랑을 창작하리라는 확장성을 기대하게 한다. 이 확장성은 이 음반이 번다한 아리랑 상황 속에서 의미있는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 작업의 실증임을 기록하게 하는 것이다. ◇아리랑의 세계화 ‘아리랑 한국예술가곡집’ 유지숙의 작업이 아리랑을 민족의 노래로 역할하게 하는 것이라면, 한국가곡연구소의 ‘아리랑 한국예술가곡집’(KOREAN ART SONG, INTERNATIONAL EDITION) 발간은 아리랑의 세계화를 위한 성가로 보게 된다. 이미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와의 참여로 2012년 발행된 ‘한국예술가곡집’ 제1권의 발행으로부터 인연이 있는 연구소와 아리랑 가곡을 집대성한 자료집을 발간하여 해외에 알리는 것이 의미있겠다는 논의를 하였다. 이후 필자는 세 곡 정도의 창작을 발의하고 백병동, 임준희, 그리고 이탈리아 피렌체 음악원 교수인 파올로 푸를라니(Paolo Furlani)에게 위촉하였다. ‘정선아라리’ 사설에서 가사를 선(選)하고, 창작 아리랑인 ‘아리랑 산천에’와 ‘베니스아리랑’을 낳게 하였다.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첫 번째 정규 앨범 '아이 워즈, 아이 엠, 아이 윌(I WAS, I AM, I WILL)' 발매기념 쇼케이스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번 앨범에는 미니 앨범의 대표곡과 새롭게 창착한 곡 등 13곡이 실렸으며, 포크, 록, 재즈, 월드뮤직 등 다양한 장르를 담았다. 최고은은 '아이 워즈, 아이 엠, 아이 윌' 발매를 기념, 11월 20일~21일 서울 홍대 앞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2014.11.20. bluesoda@newsis.com 필자로서는 2000년 12월10일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시상식 때 조수미가 “아리랑은 평화를 상징한다(Arirang is a symbol of peace)”라는 멘트와 함께 ‘아리 아리랑’(작곡 안정준)에 감동한 후로 아리랑 가곡작품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2001년 ‘통일아리랑축전’을 기획하며 작곡가 최영섭 선생에게 ‘의병아리랑’과 ‘따르리라’ 라는 두 곡을 위촉, 초연을 한 바 있다. 이번에 이들을 포함하여 가곡집에 모두 수록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제1집에서 시도되어 평가를 받은 가사에 국제음성기호(IPA)를 적용, 아리랑 가곡에 세계 솔리스트들이 용이하게 접근하게 하였다. 분명 한곡가곡의 역사 만 아니라 아리랑의 세계화에도 평가가 기대되는 작업으로, 아리랑의 예술가곡화라는 창조성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 기대는 두 작곡가의 발언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아리랑 멜로디가 이토록 강한 영감을 주는 것이 놀랍다”(파올로 푸를라니),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는 가사 두 줄에 이렇게 아름다운 문학적 미학이 숨겨진 줄 몰랐다.”(임준희) 이미 피렌체 무대에 ‘콩쥐팥쥐 이야기’를 오페라로 작곡하여 올렸던 만큼 우리 아리랑에 대한 정서를 갖고 있는 작곡가의 평가이고, 현역 중 대표적인 작곡가인 암준희 선생은 아리랑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말한 것으로 세계화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최고은 ‘I Was, I Am, I Will’ 속의 아리랑 필자의 핸드폰 컬러링은 나윤선의 ‘아리랑’이다. 유럽 재즈계에 알린 작품이라 많은 이들에게 선물을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에 사용했다. 그런데 이 작품만큼 좋은 또 하나의 아리랑이 출현했다. 바로 세 장의 미니 앨범을 통해 안정적인 가창력과 호흡법에서 깊은 인상을 주는 보컬로 평가를 받은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 부른 ‘본조아리랑’이다. 【서울=뉴시스】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 첫 공식 음반 ‘I Was, I Am, I Will’ 11번 트랙 곡으로 6번의 뱃노래와 함께 감동을 받았다. 뱃노래는 ‘편곡-해체’로 전통민요를 모티브로 한 로킹 사운드라면, ‘아리랑’은 세 가지 악기에 의한 ‘포크적 재해석’이다. 인트로와 엔딩이 전혀 아리랑이 아니다. 이런 편곡이 오히려 4분을 아득한 아지랑이 속으로 유도한다. 자신의 어쿠스틱 기타와 간결한 드럼, 전기 기타가 주는 단출함이 최고은 특유의 서정성을 더해 주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혹시라도 이 두 줄 가사를 거친 해석만으로 칙칙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꼭 최고은의 이 곡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존 바이즈의 ‘리버 인 더 파인’의 서정성을 느끼는 반전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아리랑에서 존 바이즈를 느낀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반전인가? 이는 아마도 앞선 트랙 타만 네가라(Taman Negara)에서 갖게 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말레이시아 밀림에 대한 동경심과 다음 트랙 ‘봄’에서 ‘우리는 왜 서로가 숲이 될 수 없는가’라는 성찰적 가사로 이어지게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최고은이 판소리와 민요에 능한 가수라는 기대감의 반전이 주는 즐거운 배신감에서 느낀 것일 수도 있다. 또 아니면 엔딩 부분의 ‘아~리~’만의 무심한 읊조림이 추임새보다 더 긴 여운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 나는 이제 내 핸드폰의 컬러링을 바꾸게 될 것 같다. 창작 아리랑으로? 가곡 아리랑으로? 아니면 최고은의 아리랑으로? 새해 어느날 확인해 드리리다. <사진> 위부터 명창 유지숙, 아리랑 한국예술가곡 대축제, 가수 최고은, 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 www.arirang21.org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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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기념, ‘아리랑’공연국민리포트 월~금요일 07시 40분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기념, ‘아리랑’공연 회차 : 458회 방송일 : 2016.12.13 재생시간 : 04:10 기사인쇄 글자확대 글자축소 공유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 메일 보내기 URL 복사 13580 팝업보기 전체 영상보기 앵커>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을 대표하는 대표 가락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보물이죠.전국 아리랑 공연이 열렸는데, 지역마다 특색있는 아리랑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박세정 국민기자가 아리랑의 세계로 안내해 드립니다.[기사내용]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사랑하고 즐겨 부르던 노래 아리랑!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는 ‘아리랑, 삶을 노래하다’ 공연이 펼쳐졌습니다.전국 각 지역을 대표하는 6개 아리랑 보존회가 참여해 노동과 만남, 이별, 사랑, 유희 등 다섯 가지 주제로 공연을 이어갔습니다.논에서 또 밭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잘살아 보겠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부르던 예천 아리랑!농사짓는 사설에 이어 되풀이되는 후렴구에 어깨춤이 절로 납니다.과거 탄광촌 막장에서 힘든 아픔 속에 한을 삭히면서 노래한 부아리랑!'노동'을 노래하면서도 지역의 생활환경에 따라 아리랑도 달리한 것입니다.독특하게 중국 간도에 남아 있는 청주 자진아리랑, 간도를 향하는 마음과 새로운 가족으로 맞는 시집 식구와의 갈등을 그린 한이 담긴 노랩니다.인터뷰> 심광자 회장 / 청주아리랑보존회"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옛날에 며느리 시집살이를 많이 시켰잖아요. 그런데 한 맺힌 소리, 시집살이 한을 노래로 푼 거죠.”화전민아리랑은 깊은 산속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던 촌부들의 투박하면서 익살스런 해학이 녹아 있는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대구아리랑은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경상도적인 시어로 잔잔한 감흥을 줍니다.제주아리시리는 바다에서 젊은 청춘을 물허벅 장단에 춤추고 숨 쉬는 해녀의 이야기를 가슴 저미도록 부르는 노랩니다.막바지 아리랑 공연 무대, 진도아리랑이 선보이자 관객들은 귀에 익숙한 후렴구에 끌려 어느새 손뼉치며 감동으로 후끈 달아오릅니다.인터뷰> 강송대 / 남도잡가 예능보유자"우리 진도 아리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리랑이에요. 끈끈한 차진 맛에 구성진 맛에 얼씨구 대목에 유머 있는 대목도 있고 해학적인 면도 있고 해서 짧은 가운데도 다양한 음이 들어 있어요.”지역마다 서로 다른 아리랑에 외국인 관람객들도 흠뻑 취합니다.인터뷰> 시라이 마유미 / 일본 관광객"공연 보고 한국의 곳곳에 다양한 아리랑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저도 모르게 어깨춤이 나왔어요. 너무 재미있어서.”인터뷰> 김정표 사무국장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지역 아리랑 보존 단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단체들을 우선 지원해서 아리랑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고 대중화, 세계화를 위해 세계적인 음악가나 작곡가와 접촉해서 아리랑을 해외로 보급할 생각입니다.”일상 속 삶의 즐거움과 고단함을 담아낸 세계 속의 문화유산 아리랑!이번 공연을 통해 그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국민리포트 박세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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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아리랑전승자들, 애국애족 실천…감동의 ‘2016 사할린 아리랑제’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일반 아리랑전승자들, 애국애족 실천…감동의 ‘2016 사할린 아리랑제’ 등록 2016-12-03 15:00:06 | 수정 2016-12-28 18:01:04 【서울=뉴시스】춘천의병아리랑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2016 사할린 아리랑제’가 러시아 동포사회를 끌어안았다. 한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가 1, 2일 사할린에서 2016사할린 아리랑제를 펼쳤다. 12개 지역 아리랑 단체 37명의 아리랑 공연을 고려인 2, 3세가 즐겼다. 1930~40년대 현지로 간 한인들이 망향의 서러움을 달랬다. 1세대가 고국에서 듣고 부른 우리나라 곳곳의 아리랑을 선곡한 덕분에 호응은 더욱 컸다. 대구아리랑제 15년 주제곡인 대구아리랑, 구한말 의병들의 활약상을 담은 춘천의병아리랑,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들의 고난을 그린 문경탄광아리랑, 북간도 이주의 설움을 노래한 상주아리랑, 1930년대 동래 권번의 애환이 서린 동래아리랑, 중국 동포가 이주 현장에서 부른 망향가 청주아리랑, 1940년대 독립군 군가 광복군아리랑, 그리고 창작아리랑인 성주아리랑이 울려퍼졌다. 【서울=뉴시스】문경탄광아리랑(위), 상주아리랑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기연옥 안상옥 함미경 위정순 김은자 이화정 강복순, 상주아리랑보존회 김동숙 박노경 김인순 김갑태, 대구아리랑보존회 김상준 이상헌 곽노린 김선오, 영남아리랑보존회 정은하 권숙조, 성주아리랑보존회 임옥자 이금향, 서울아리랑보존회 유명옥, 구미아리랑보존회 장선주, 부산아리랑보존회 김희은, 청주아리랑보존회 강옥선, 문경아리랑보존회 송옥자 장순덕 안원규 최옥자 장순자 임이순, 김채원무용단 김채원, 김애경무용단 김애경씨 등이 조국의 혼을 담은 무대로 박수를 받았다. 유명옥 서울아리랑보존회장은 아리랑체조도 선보였다. ‘갑돌이와 갑순이’ 춤을 춘 칠순의 김갑태씨가 "세 살 때 헤어진 아버지가 사할린으로 징용을 가 탄광에서 돌아가셨다는 말만 듣고 살았다. 아버지를 위해 재롱을 부리는 2인무를 준비했다”고 하자 객석은 숙연해졌다. 【서울=뉴시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A M 슈호메소브 홈스크시장, 공연 현장, 사할린 이중징용자위령비 앞 제. 시장은 "한국 역사와 아리랑의 관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며 환영했다. 정은하 한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은 "40여년 간 아리랑을 전승해오는 사람으로서 늘 마음에 부채감이 있었다. 이곳 사할린에서 열 두 가지 아리랑을 풀어 놓게 돼 가슴이 벅차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이번 공연의 역사적 의의를 ‘우타리아리랑’이라고 정의했다. "우타리는 사할린 원주민 아이누족의 서사시에 나오는 말인데 ‘경계 없이 함께 같이 살기’라는 뜻이다. 원주민과 다양한 소수민족이 함께 거주하는 사할린에서 아이누의 순수한 정신은 아리랑의 상생정신과 통한다. 다문화 시대에 필요한 아리랑이 바로 우타리아리랑”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사할린아리랑제 지속과 확장을 위한 업무협약. 김영순 홈스크한인회장(왼쪽), 정은하 한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 김 상임이사는 "일제는 물론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까지 외면한 영령들에게 어쭙잖게 ‘위문’이니 ‘위로’를 들먹이는 것은 모독”이라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기미양 아리랑학회 연구이사는 "역사를 읽다가 비분에 아리랑을 부르려거든 북만주 명동땅 함성을 기억하자. 꼬여서 뒤틀린 나라 탓에 아리랑을 부르려거든 우스토베 벌판의 막막함을 기억하자. 이산에 분단에 눈물의 아리랑을 부르려거든 사할린 폐광산에 고인 눈물을 기억하자. 모집에, 관 알선에, 이중징용에, 그 시절 서린 한이 거기에 있다”고 웅변했다. 【서울=뉴시스】공연단. 홈스크시립문화회관 홈스크한인회 등은 "아리랑만으로 구성된 최초의 공연에 기대를 갖고 초청했다. 동포들에게 뜻 깊은 공연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인사했다. reap@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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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일보] 조선족 민속학자 김봉관 선생, 12회 아리랑상 수상한겨레아리랑연합회(이사장 차길진)는 7일 오후 인사동 태화빌딩 회의실에서 아리랑상 수상식을 열었다. 올해로 12회를 맞이하는 아리랑상은 중국 조선족 전통문화를 지켜온 민속학자이며 '중국조선족 아리랑(2015)'을 공동 집필한 김봉관 선생(77)이 수상했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아리랑의 전승지역인 한국과 북한 중국의 아리랑 상황을 민족 아리랑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실적을 올린 김봉관 선생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며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김봉관 선생은 1940년 중국 화룡현 출생으로 연변예술학교 이론작곡반을 졸업한 뒤 도문시문공단 음악창작원 악대대장과 도문시 가문단 단장을 지냈다. 1998년 도문시 창작편집실 부연구관(부교수급)에 올랐으며 2000년 정년퇴직했다. 김 선생은 청주아리랑을 세상에 알린 조선족 민요연구가로 '옛이야기-리서방과 그의 안해' <천지>4기(1985년) 외 다수의 저술활동을 하였고, 논문으로는 '조선족민요의 유래' <예술세계> 6기(1998년), '청주아리랑' <예술세계> 7~8기(2004년), '청주아리랑의 학술적조명과 보존을 위한 제언'(2003년), <동아시아민중들의 민요와 삶, 그 연구의 쟁점>(2009년) 외 다수가 있다. 그는 저서를 통해 "아리랑은 조선반도에서 기원하여 중국 땅에서 조선족들에 의해 보존 전승, 발전의 과정을 거처 오늘에 이르렀다”밝혔다. 그는 "아리랑을 전승해 길이 보존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의무이며, 나아가 젊은 세대들이 세계 속의 아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12회 아리랑상 특별상은 극장 단성사가 수상했다. 단성사와 영화'아리랑'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운규 감독·주연 무성영화 <아리랑> 제1편(1926), 2편 <아리랑, 그 후 이야기>(1929), 제3편 발성영화<말 문 연 아리랑>(1936)은 물론, 홍개명 감독의 발성영화 '아리랑 고개'(1936)를 모두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이사장은 "아리랑 3대정신인 저항, 대동, 상생을 바탕으로 이제는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땅 통일, 사람 통일, 마음 통일은 아리랑으로 이루도록 노력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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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제12회 아리랑상 수상자로 조선족 민속학자 김봉관 선정제12회 아리랑상 수상자로 조선족 민속학자 김봉관 선정 한준호 기자입력 2016-10-05 15:00:09, 수정 2016-10-05 15:51:50 [한준호 기자]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이사장 차길진)는 오는 7일 오후 3시 인사동 태화빌딩 회의실에서 제12회 아리랑상 수상식을 거행한다. 아리랑상 올해 수상자는 중국 조선족 전통문화를 지켜온 민속학자이며, ‘중국조선족아리랑(2015)’을 공동 집필한 김봉관 선생(77)으로 결정됐다.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측은 “아리랑의 전승지역인 우리와 북한과 중국의 아리랑 상황을 ‘민족’아리랑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실적을 올린 김봉관 선생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며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김봉관 선생은 1940년 중국 화룡현 출생이며, 연변예술학교 리론작곡반을 졸업, 도문시문공단 음악창작원 악대대장를 거쳐 도문시 가문단 단장을 지냈다. 1998년 도문시 창작편집실 부연구관(부교수급)이 됐고, 2000년 정년퇴직 했다.김봉관 선생은 청주아리랑을 세상에 알린 조선족 민요연구가로, ‘옛이야기-리서방과 그의 안해’ <천지> 4기(1985) 외 다수의 저술활동을 했고 논문으로는 ‘조선족민요의 유래’ <예술세계> 6기(1998), ‘청주아리랑’ <예술세계> 7~8기(2004), ‘청주아리랑의 학술적조명과 보존을 위한 제언’(2003), <동아시아민중들의 민요와 삶, 그 연구의 쟁점>(2009) 외 다수를 집필했다.수상식은 차길진 이사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이훈상 월곡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겸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와 홍파 스님이 축사를 한다. 수상자 심사결과 보고에 이어 아리랑상 본상은 차길진 이사장이 시상하고, 극장 단성사에 시상하는 특별상은 김종욱(영화사가) 씨가 수여한다.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차길진 이사장은 “아리랑 3대 정신인 저항, 대동, 상생을 바탕으로 이제는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땅 통일, 사람 통일, 마음 통일은 아리랑으로 이루도록 노력할 때”라며 “아리랑을 전승해 길이 보존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의무이며, 나아가 젊은 세대들이 세계 속의 아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이번 시상식을 앞두고 그 의미를 전했다. 이와 함께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제12회 아리랑상 특별상으로 ‘극장 단성사’를 선정했다. 단성사는 영화 ‘아리랑’의 개봉관으로, 1907년 연예관으로 문을 열고 1913년 영화 상설관으로, 1918년 영화 전용관으로 성업했다. 일제강점기 조선, 우미관과 함께 대표적인 개봉관으로 명성을 떨쳤다. 1941년 총독부의 압력으로 일본인 업주에게 넘어가며 대륙극장(大陸劇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46년 초 단성사로 다시 복귀했다.단성사와 영화 ‘아리랑’은 매우 각별한 인연이 있다. 나운규 감독·주연 무성영화 ‘아리랑’ 제1편(1926), 2편 ‘아리랑, 그 후 이야기’(1929), 제3편 발성영화 ‘말 문 연 아리랑’(1936)은 물론, 홍개명 감독의 발성영화 ‘아리랑 고개’(1936)가 모두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그리고 해방 후 50년대 들어 국내 감독들이 나운규와 제1편에 대한 오마주(Hommage)로 리메이크 또는 나운규의 삶을 주제로 해서 만든 영화들 역시 단성사에서 상영됐다. 그 영화들은 이강천 감독의 ‘아리랑’(1954)을 비롯한 김소동 감독 ‘아리랑’(1957), 최무룡 감독 ‘아리랑, 나운규 일생’(1966), 유현목 감독 ‘아리랑’(1968) 등이 대표적이다. 1993년 첫 100만 관객 돌파로 진도아리랑을 대중화 시킨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도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2017년이면 110년의 역사를 맞는 단성사는 이처럼 아리랑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한국 영화의 산실인 단성사는 2001년 기존 건물이 헐리고, 2003년 지하 4층 지상 10층의 현 건물이 완공되어 단성사라는 이름을 유지하며 스크린 7개를 갖춘 멀티플렉스로 재개관 했지만 분양의 어려움으로 부도 처리됐다. 2012년 경매로 매각돼 현재 영안모자 계열사에 의해 ‘골드단성사’로 재 단장됐다. 그동안 아리랑상의 역대 수상자는 제1회 ‘아리랑의 탄생’ 저자인 미야스카 도시오, 제2회 ‘아리랑의 역사’의 저자 오태환, 제3회 재일음악인 김학권, 제4회 ‘노근리 아리랑’의 저자 소설가 이동희, 제5회 야마우치 후미타카, 제6회 SBS ‘아리랑고개의 비밀’, 제7회 김기덕 영화 ‘아리랑’, 제8회 ‘조선민요아리랑’의 저자 윤수동, 제9회 KBS보도국 문화부, 제10회 ‘분야아리랑’을 제작한 일본 오카모토 분야, 제11회 아리랑의 의례화와 공공활동을 통한 확장력의 업적을 세운 차길진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 대표였다.tongil77@sportsworldi.com김봉관 선생.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제공단성사의 옛모습.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제공제12회 아리랑상 수상식 포스터.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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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안중근 의사 받드는 일본인들, 진정한 평화교류 현장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계 안중근 의사 받드는 일본인들, 진정한 평화교류 현장 등록 2016-09-14 12:06:57 | 수정 2016-12-28 17:38:58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한·일 교류를 통한 평화의 전범과도 같은 자리가 마련됐다. 안중근(1879~1910) 의사 탄신 137주년 법요식이 11일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 구리하라(栗原)시 다이린지(大林寺)에서 열렸다. 법당 본존불 불단에 모셔진 안중근 의사와 지바 도시치(千葉十七·1885~1934) 헌병을 한국의 안중근의사숭모회와 일본의 다이린지가 함께 추모했다. 사이토 다이겐 다이린지 주지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과 지바 도시치의 우의가 발현돼 널리 확산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36년 간 노력하는 양측의 의지를 소중히 하자”고 주문했다. 센다이대한민단 대표, 황해도민회 대표, 재일본민단 본부장 등이 분향헌화하고 지바의 묘소도 참배했다. 안중근이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 사형 당하기 직전 일본 육군 관동도독부 상등병인 지바에게 써 준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 유묵 사본과 이를 새긴 석비 2기가 다이린지에 있다. 1910년 일본으로 돌아온 지바는 안중근의 유묵을 자택에 모셔두고 공양했다. 지바 사후 유족이 다이린지로 옮긴 인영의 사본이다. 원본은 1980년 우리나라로 와 보물 제 569-23호로 지정됐다.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있다. 교수형으로 순국하기 직전 안중근은 지바에게 “다 읽지 못한 책이 있으니 시간을 좀 달라”고 했고, 5분 남짓 독서했다. 이때 당신을 4개월여 담당한 지바가 글씨를 청하자 ‘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고 써줬다. 생애 마지막 붓글씨다. 지바는 안중근의 동양평화 이념에 공감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 진정한 군인정신이라는 안중근의 말을 자신의 가족에게 전했다. 지바는 안중근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대화했다. 안중군의 우국충정, 사형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의연함, 천주교 신앙인으로서의 경건함, 하급 옥리인 자신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모습에 감복했다.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한·일 교류를 통한 평화의 전범과도 같은 자리가 마련됐다. 안중근(1879~1910) 의사 탄신 137주년 법요식이 11일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 구리하라(栗原)시 다이린지(大林寺)에서 열렸다. 법당 본존불 불단에 모셔진 안중근 의사와 지바 도시치(千葉十七·1885~1934) 헌병을 한국의 안중근의사숭모회와 일본의 다이린지가 함께 추모했다. 사이토 다이겐 다이린지 주지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과 지바 도시치의 우의가 발현돼 널리 확산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36년 간 노력하는 양측의 의지를 소중히 하자”고 주문했다. 센다이대한민단 대표, 황해도민회 대표, 재일본민단 본부장 등이 분향헌화하고 지바의 묘소도 참배했다. 안중근이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 사형 당하기 직전 일본 육군 관동도독부 상등병인 지바에게 써 준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 유묵 사본과 이를 새긴 석비 2기가 다이린지에 있다. 1910년 일본으로 돌아온 지바는 안중근의 유묵을 자택에 모셔두고 공양했다. 지바 사후 유족이 다이린지로 옮긴 인영의 사본이다. 원본은 1980년 우리나라로 와 보물 제 569-23호로 지정됐다.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있다. 교수형으로 순국하기 직전 안중근은 지바에게 “다 읽지 못한 책이 있으니 시간을 좀 달라”고 했고, 5분 남짓 독서했다. 이때 당신을 4개월여 담당한 지바가 글씨를 청하자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고 써줬다. 생애 마지막 붓글씨다. 지바는 안중근의 동양평화 이념에 공감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 진정한 군인정신이라는 안중근의 말을 자신의 가족에게 전했다. 지바는 안중근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대화했다. 안중군의 우국충정, 사형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의연함, 천주교 신앙인으로서의 경건함, 하급 옥리인 자신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모습에 감복했다. 지바가 살던 마을의 세이운지(靑雲寺) 입구에는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정애(情愛)의 영웅 지바 도시치 거사’라는 문구를 새긴 유묵비가 있다. 법요식과 별도로 구리하라의 지식인 모임 사단카이(史談會)와 국제교류협회는 올해로 15회째 일한교류회를 개최했다. 안중근 의사와 지바 도시치를 현창하고, 이를 기반으로 양국이 평화를 위해 교류하자는 취지다. 안응모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은 “인간은 이 두 분처럼 거룩할 수 있으며, 이를 깊이 숭앙해 이런 실천 모임을 이어오는 사단카이에 동의해 매년 참여한다”고 밝혔다. 정대수 센다이대한민국총영사관 부총영사는 2017년에는 청소년 대상 글짓기 대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남은혜 명창은 안중근을 기리는 ‘아무르아리랑’을 열창, 양국 참가자들을 감동시켰다. 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는 “다이린지에는 아리랑 편액도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적국의 간수를 군인으로 대한 존중심 그리고 저항·대동·상생의 아리랑 정신은 상통한다는 사실을 이곳 다이린지에서 확인했다”고 전했다. reap@newsis.com 지바가 살던 마을의 세이운지(靑雲寺) 입구에는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정애(情愛)의 영웅 지바 도시치 거사’라는 문구를 새긴 유묵비가 있다. 법요식과 별도로 구리하라의 지식인 모임 사단카이(史談會)와 국제교류협회는 올해로 15회째 일한교류회를 개최했다. 안중근 의사와 지바 도시치를 현창하고, 이를 기반으로 양국이 평화를 위해 교류하자는 취지다. 안응모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은 “인간은 이 두 분처럼 거룩할 수 있으며, 이를 깊이 숭앙해 이런 실천 모임을 이어오는 사단카이에 동의해 매년 참여한다”고 밝혔다. 정대수 센다이대한민국총영사관 부총영사는 2017년에는 청소년 대상 글짓기 대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남은혜 명창은 안중근을 기리는 ‘아무르아리랑’을 열창, 양국 참가자들을 감동시켰다. 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는 “다이린지에는 아리랑 편액도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적국의 간수를 군인으로 대한 존중심 그리고 저항·대동·상생의 아리랑 정신은 상통한다는 사실을 이곳 다이린지에서 확인했다”고 전했다. reap@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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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연갑 ‘아리랑 5도 답파기’ <1>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일반 아리랑, 역사의 현실화·현실의 역사화 엄격해야 등록 2015-12-16 07:47:00 | 수정 2016-12-28 16:04:30 【서울=뉴시스】왼쪽부터 표재순, 이춘희, 김동진, 브루스 헐버트, 윤영달, 김연갑 【서울=뉴시스】김연갑 ‘아리랑 5도 답파기’ <1>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2015년 오늘의 아리랑 현상은 2011년 6월, 중국이 전체 인구의 0.016%인 조선족의 아리랑을 자국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 명록적 통지 아리랑 11-147호’로 지정함으로써 그 반동에서 얻어진 일종의 ‘우연한 행운’, 세렌디피티(serendipity)이기도 하다. 이에 의해 2012년 우리가 ‘한국의 서정민요 아리랑’(Arirang, lyrical folk song in the Republic of Korea)과 2014년 북한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아리랑 민요’(Arirang Folk song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였다. 그리고 관련 지자체의 관심이 촉발되고 금년 10월 국가주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연속적인 관심은 역사상 없었던 ‘아리랑 현상’이다. 이 같은 아리랑 현상은 금년이 정점이다. 물론 내년이 나운규감독 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이라는 계기가 있지만, 국가적 관심은 하향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금년까지의 현상은 아리랑사의 중요한 국면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하여 검토하는 것은 의의가 있을 것이다. 특히 갑작스럽고 과잉된 관심으로 인해 정작 오랫동안 자발적으로 아리랑을 전승해 온 전승자들의 공로가 희석된 점 등은 조명되어야 한다. 이 글은 이런 현장의 보고이다. 다만 전제하는 것은 한 관찰자의 단견이기 때문에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비판과 험잡기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또 다른 아리랑 현상을 위하여 오늘의 아리랑 현상을 검토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양해가 있길 바란다. 이제 가장 의욕적인 아리랑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경북 문경시가 지난 13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아리랑 도시 선포식’ 소식 중심으로 시작하여 5회에 걸쳐 정리하고자 한다. # “2015년 8월 19일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가 1886년, 그러니까 129년 전 한국에 온 지 석 달만에 어린이들로부터 아리랑을 듣고 감동하여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아리랑을 채보했다는 사실과 그 편지가 공개되었다. 인류보편적인 음악 재현 방식인 오선 채보 사실과 이를 입증하는 원본의 국내 존재는 문명교류사적 실체를 입증하는 가치 있는 사실과 유물이다. 이 편지 원본의 근대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문화재청의 검토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제1회 아리랑상 시상식 축사에서 2015년 9월14일) 음악사학자 이혜구박사는 “음악에서의 채보는 천언만어(千言萬語)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에게 세종 시대부터 쓰여 온 육보·정간보 같은 전통적 기보법이 있었지만 아리랑은 채보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1886년 입국한 미국인 헐버트라는 교육자에 의해 서양 오선보로 채보되었으니, 이는 일본의 대표 민요 사쿠라(-サクラ)나 중국의 대표민요 모리화(茉莉花)가 서양에 소개된 것보다 앞선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하게 된다. 더불어 헐버트가 1896년 ‘한국소식’에 아리랑의 어원·역사·전파상황 등을 구체화하여 기술한 것이 10년 동안이나 관심을 갖고 연구한 결과라는 사실도 알게 하였다. # “2015년 9월 24일, 문화재청은 아리랑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9호(아리랑의 최초 기록 시점으로 계산한 ‘129’란 수와 문화재청 아리랑 지정 호수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2015년이 아리랑 현상의 정점임을 알려주는 것일 수 있다)로 지정했다. 향토민요 또는 통속민요로 불리는 아리랑 계통의 악곡을 모두 포함했다. 이번의 아리랑 지정은 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특정하지 않고 지정한 것으로 첫 사례이다. 2012년 유네스코 등재로 도치(倒置)되었던 아리랑 위상이 제 위치를 잡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바로 오늘의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회원 여러분의 아리랑 사랑이 얻어낸 것이다.”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창립대회 축사에서 2015년 9월25) 아리랑의 현실적 위상인 ‘민족의 노래’라는 표현은 다른 종목과 다르게 각 지역에서 활동해온 자발적 전승자들의 향유적 활동 결과이다. 이는 아리랑 현상에서 매우 강조되어야 할 덕목인데, 영남지역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멀게는 1983년 창립된 ‘모임 아리랑’(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전신)부터이고, 가깝게는 2003년 사단법인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회장 정은하)의 창립으로부터 형성된 20여개의 아리랑보존회가 그 실체이다. 이들은 다른 종목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조교·이수자가 되기 위해 보존회를 결성하는 것과 다르게, 스스로 즐기는 것으로 전승한다는 마음에서 보존회를 결성한 것이다. 이들이 2012년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신청서에 향유 커뮤니티로 전승을 다짐하는 서명을 하였다. 이 서명이 요건을 충족시켜 유네스코 등재 심사에 이를 수 있었다. 바로 이들의 자부심이 “국가정책 범위 안에서 공연, 연구, 조사 업무 등의 지원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자 한다”며 아리랑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기여하겠다며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회장 정은하, 사무총장 고성환)를 결성한 것이다. 최근 문화재청을 방문, 국민적 아리랑경창대회를 개최하여 명실상부한 창조적 계승을 하겠다고 밝혀 활동이 주목된다. ◇문경시의 아리랑사업에 박수를 # “아리랑을 ‘민족의 노래’라고 하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이를 ‘과잉된 민족주의적 표현’이라고 비난했고, 지방자치단체는 표면적으로는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기화에 한정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더 큰 문제는 ‘민족’의 90%가 아리랑의 전승 주체인 농투산이들이며, 오늘에서는 전국의 자생적 전승자들인데, 이 사실을 인정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일부 교수들조차 이들의 아리랑 전승 사실을 마치 자신들의 연구대상 쯤의 하나로만 보아 전승 과정 일부의 과(過)를 부각시켜 비판하는 이들도 있고, 지자체에서는 2012 유네스코 등재를 사업의 출발 기점으로 삼아 전승자들의 기왕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일부 시·군 지자체 사업에서도 무시되거나 의도적으로 배제되기도 했다. 연구자는 연구 성과로, 예술가는 예술성으로, 전승자는 창조적 계승으로, 운동가는 확산 보급으로 지자체 사업에 협조와 자문을 해야 하는데, 마치 한 지자체의 업적 기록자로 전락한 듯한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글쓴이 같은 운동가나 자생적 전승자들은 안중에도 없고, ‘열매 따기’까지 가는 투자자(?)들만이 함께 하는 듯하다.” (제4회 동래아리랑제 축사에서 2015년 12월5일) 【문경=뉴시스】문경새재아리랑비 돌려 말할 필요 없이 이 대목의 키워드는 문경시의 아리랑 현상을 말한 것이다. 지난 12월13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아리랑도시 선포식’이 있었다. 문경아리랑의 가치를 인식시키기 위한 강연과 국립박물관 건립을 발의하여 전시회와 자문위원단을 구성하고, 팔도아리랑 사설을 한글(서예가 아님)·한지·아리랑의 융합을 통해 세계에 알리자는 제안과 실행 주체 구성을 한 본인으로서는 이런 발전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재단을 설립하여 운영한다고 하니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정선군에 이은 두 번째 아리랑재단 출현이니 문경시의 아리랑사업에 대한 진정성이 묻어나는 선언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경시의 아리랑 사업에서 반드시 극복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반드시’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문경아리랑의 역사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헐버트의 아리랑악보로’(‘아리랑도시 선포문’ 2쪽) 세운 비석의 문제이다. 이 비는 아리랑 사업의 초기 공(功)을 과(過)로 치부할 수 있게 할 만한데, 비(碑)는 그 영구성과 기록성으로 하여 ‘기념비적’이기에 숙고에 숙고를 거쳐 건립되어야 한다. ◇헐버트 ‘아리랑악보비’인가 ‘문경새재아리랑비’인가? 왜 문경시가 세운 이 비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느냐는 우선 내용이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과 건립을 발의하고 추진하고 성문(成文)하고 새기고 입비(立碑)하는 과정에 누구도 진정성 있는 자문을 해주지 않았거나, 건립자인 시장이나 실무자인 일부 공무원의 독단으로 자문을 거치지 않았거나, 또 아니면 자문 내용을 무시했을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문경새재아리랑은 근대민요로서의 아리랑 시원’임을 입증하려는 취지를 명문화 비명(碑銘)과 내용이 후일치하지 않고, 내용이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글쓴이가 1차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에 응답이 없었고, 그 시점으로부터 10여개월이 지났는데도 수정이나 폐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과 담당 공무원의 독단이 있다고 판단된다는 점이다. 글쓴이가 강원도 정선군 정선역 광장에 있던 ‘도원가곡비’에 대해 1986년 내용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자 이의 사실을 확인한 정선유도회와 정선청년회의소는 즉시 철거, 폐기하였다. 이는 비의 기록은 그만큼 정확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의 책임은 막중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결과인데, 이런 전례에 비추어 보면 문경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거나 시장과 일부 공무원의 독단이 내재해 있다고 보게 된다. 문제를 제기한 글쓴이에게 문경시는 반론도, 지적에 대한 문의도 일체 없었다. 이제 1차 시장과 담당자, 2차 시장에게 전달한 비의 문제점을 다시 지적하는 것으로 수정이나 폐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비 전면 표제 ‘KOREAN VOCAL MUSIC’은 논문 표제이지 아리랑 악보에 대한 표제가 아니다. 이 표제의 논문 안에는 아리랑 외에 두 개(시조와 군밤타령 악보 각 1편)의 악보가 더 있어 비명과 일치하지 않는다. 당연히 비 후면 내용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후면의 문제다. ‘문경새재아리랑비 건립취지문’은 ‘문경새재아리랑비’ 건립취지문인지, ‘문경새재아리랑의 가사를 쓴 헐버트의 채보 아리랑 기록’에 대한 취지문인지 분별이 되지 않는다. 이런 불명확함은 대표사설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들어가는 것은 곧 ‘문경새재아리랑’이라고 하는 오류를 낳게 된다. 그래서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아리랑의 원형인 헐버트의 아리랑악보’(선포문 원고 2쪽)같은 표제나 문구 사용은 비 같은 선언적 기록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또한 후면 내용 중 “모든 아리랑의 고개 대명사···”라는 문장도 정확한 기술이 아니다. 굳이 표현한다면 “모든 아리랑고개의 대명사···”로 해야 한다. ‘아리랑의 고개’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 아리랑 기록상 그 첫 시원···”이란 문장이다. 이는 “근대민요 아리랑 기록상 그 첫 시원···”이라 해야 옳다. 왜냐하면 1896년 기록을 기준으로 한다면 1894년 정월 ‘매천야록 신성염곡 아리랑’ 기록과 1894년 5월 일본 우편호우지신문 ‘조선의 유행요’ 기록에 이은 세 번째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타 지역의 반발을 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부차적인 문제는 다음이다. 헐버트의 공식 직함을 ‘외무특사’라고 했다. 그러나 헐버트는 처음 ‘교육자’로 왔다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다시 ‘선교사’로 입국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1904년부터 1905년 사이 고종의 특사(밀사)로 활동하였으니, 그의 직함은 교육자·선교사·고종특사 모두를 쓸 수는 있다. 그렇다고 ‘외무특사’만 쓰는 것은 자칫 아리랑 채보가 외교관의 돌발적인 의외의 결과로 1886년부터 1896년까지 10년간 연구한 결과라는 사실을 희석시킬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직함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비 후면 끝에 ‘문경시장 고윤환’이라 새겼다. 이는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고윤환’으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 아리랑은 문경을 넘어, 영남을 넘어, 남한을 넘어, 남북을 넘어, 세계 인류 보편적 문형유산이 되었기 때문에 ‘문경시장 고윤환’이란 표현은 소아적이다. 이 시대 아리랑 사업 중에 헐버트의 기록을 기리고 이 기록과 문경아리랑의 연관성을 주목하는 모든 이들의 추대로 구성된 ‘건립추진위원회’ 대표로 비를 건립했다는 명분과 역사성을 함의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리랑의 핵심인 대동정신에 입각할 때에도 ‘나의 업적’이 아니라 동시대 ‘우리의 업적’이어야 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족-헐버트의 1896년 아리랑 기록은 글쓴이가 1985년 10월30일자 조선일보를 통해 발굴, 보고했고 1886년 육필악보 수록 편지 존재도 필자가 2015년 8월18일 민영통신사 뉴시스와 KBS 9시뉴스를 통해 발굴, 보고하였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www.arirangsong.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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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영남아리랑학술대회 (주관:(사)영남아리랑보존회:정은하)제2차 영남아리랑학술대회 (주관:(사)영남아리랑보존회:정은하)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회장 정은하)가 주최한 대구아리랑 주제 학술 심포지엄이 대구 근대역사관에서 열렸다. 대구아리랑은 두가지로 나뉜다. 1992년 정은하가 부른 최양환제 대구아리랑과 2003년 역시 정은하가 작창(작사 김기현)한 창작 대구아리랑이다. 이 두 가지 대구아리랑을 주제로 음반이 나오고 방송이 됐으며, 2003년 '대구아리랑제'가 열렸다. 이후 대구와 영남 일대에 영남아리랑권이 형성됐다. 지난 5일 심포지엄은 이 같은 대구아리랑 현상에 대한 학술적 검토의 장이었다.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의 진행으로 최헌 교수(부산대)가 '아리랑, 민요에서 문화로'를 기조발제, 강원·경상 일대의 메나리조에 영향을 받은 것 중 하나가 대구아리랑이라고 계보를 제시했다. 민요장르에서 아리랑문화로 보편화할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연갑 상임이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가 '아리랑 현상과 대구아리랑의 현실'을 주제로 발표했다. 지난 9월 문화재청의 아리랑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9호 지정을 2011년 중국의 아리랑 자국무형유산 등재로 촉발된 현상에 의한 결과로 파악했다. 아울러 정부의 지원에 의한 전승보다는 전국의 자생적 아리랑 전승단체들의 현재적 향유를 가치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대구아리랑은 자생적 전승단체의 활동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적시하기도 했다. 대구MBC 이영환 국장은 중국아리랑 자국문화재 지정에 대한 배경을, 반드시 동북공정 논리로만 봐야 할 근거는 희박하다는 반론을 폈다. 2015년 12월 5일은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된지 꼭 3년이 되는 날이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금년 201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어 명실상부하게 ‘민족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남과 북, 180개국 동포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유네스코 등재 3주년이 되는 오늘을 기념하고자 합니다. 전국 아리랑 전승자들이 모여서 아리랑과 대구아리랑을 살피고자 합니다. 또한 이 뜻깊은 날 함께 해야 할 아리랑 어른들을 기리고자 합니다. 정선의 김병하선생, 최봉출선생, 밀양의 김상경선생, 울릉도의 김재조선생이십니다. 엄동설한에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부르다가 가신 님들의 넋에게 아리랑을 헌사하는 자리를 대구에서 열려고 합니다. 그리고 ‘세계의 노래. 아리랑’의 위상을 얻기까지는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와 아리랑학회의 지속적인 학술적 도움이 뒷받침이 되어 왔습니다. 아리랑전승자협의회 모든 보존회를 대표하여 감사드린다. 오늘 ‘대구아리랑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를 위해 함께 한 발표자와 토론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오신 아리랑 전승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회장 정은하 2015년 제2차 영남아리랑학술대회 일정표 주제:대구아리랑의 오늘과 내일 축사: 정은하/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진행:기미양/아리랑학회 좌장: 최헌/부산대 1부-영남아리랑학술심포지엄 제1 발표주제: “대구아리랑의 지속과 변용” 발표자:김연갑/한겨레아리랑연합회 지정토론:이영환/대구MBC 제2발표주제: “대구아리랑 가창자 최계란 명창의 문헌적 고찰” 발표자: 손태룡/한국음악문헌학회 대표 지정토론: 이인수/대구교대 제3발표주제: “대구아리랑의 선율적 특성 연구” 발표자:유대안/계명대 지정토론: 주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