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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아리랑학교] 우리가 모르는 이별의 이야기' - 이산의 섬 러시아 사할린 [ YTN기획특집 다큐멘터리 ]

기사입력 2021.02.2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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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모르는 이별의 이야기' - 이산의 섬 러시아 사할린 [ YTN기획특집 다큐멘터리 ]


    [인터뷰: 서진길 / 1944년생]

    "라디오 보듬고 울고 고향 생각이 나지 아무래도."


    [인터뷰: 김정자 / 1942년생]

    "누가 누구누구를 찾는다

    그런 소리만 들었습니다."


    [인터뷰: 조영제 / 1932년생]

    "막 아버지가 쫓아와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네 사촌 동생이 

    너를 찾고 있다'. 일어나라고 쫓아 나오니 

    방송 끝나버렸지."


    [내레이션]

    1945년 8월, 온 한민족이 기쁨에 넘친 

    한반도 해방.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산의 아픔을 뜻하기도 했다.

    여기, 애끓는 그리움 속에서

    가족을 찾는 동포들의 이야기가 있다.


    [내레이션]

    러시아 극동의 섬, 사할린.

    자작나무 숲과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이곳에

    한인들의 애절한 역사가 묻혀 있다.


    [인터뷰: 이경숙 / 1952년생]

    "(아버지는) 언제든지 날마다 말했습니다. 

    (한국에) 가고 싶다고, 고향 이야기했죠.

    그래도 뭐 편지도 못 쓰고 가보지도 못하고 

    다 돌아가셨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여기서."


    [내레이션]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사할린의 

    북위 50도 이남을 차지했다.

    석탄과 목재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사할린.

    일본은 이곳의 자원을 전쟁에 활용하기 위해

    한인 3만여 명을 사할린 탄광과

    벌목장으로 징용했다.

    징용된 이들은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의 땅에서 나무를 베고 석탄을 캐야 했다.


    [인터뷰: 김윤덕 / 1923년생]

    "(전등이) 무거워요. 그래도 날이 되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요. 

    처음에는 해 놓으면 계속 앞으로 떨어지지."

    (탄광에서) 앉아서 엎드려 일하는 데도 있고.

    뒤로 누워서 일하는 데 있단 말이요. 

    여기 봐. 전부 새카매. 

    이렇게 엎드려서 올라가다 보니 

    모두 굳은살이 됐어, 전부."


    [인터뷰: 서진길 / 1944년생]

    "겨울에 일한 때 산에서 일한 사람은 

    얼어 죽은 사람도 있고. 

    추우니까 산에 가다가 돌아가신 사람도 있고."


    [인터뷰: 이쾌임 / 1935년생]

    "내 남편이 여기 끌려와서 2년 동안 

    일본인 밑에서 일하면서, 탄광에 일하면서 

    2년 동안 월급 하나도 못 탔어. 

    하나도 못 타고 그냥 다 (45년에) 해방되고 

    (월급) 다 없어졌지." 



    [내레이션]

    1941년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일본,

    연합군이 반격에 나서자 갈수록 

    수세에 몰리게 된다.

    사할린 한인들에게 닥친 시련도 더욱 가혹해졌다.

      

    [인터뷰: 안복순 / 1934년생]

    "41년, 42년, 43년도에 일본이 좀 약해졌네.

    소련(연합군)이 강해지고. 

    그래서 남자들을 다 일본 규슈로 끌고 갔죠." 


    [내레이션]

    1944년 연합군이 일본 해상을 장악했다.

    일본과 사할린 간 석탄 운반 길도 끊어졌다.

    일본은 사할린에서 운영하던 탄광 일부의 문을 닫고

    한인 3천여 명을 군함도를 비롯한 

    각지 탄광으로 동원했다.

    두 번째 징용, 이중징용이다.


    [인터뷰: 조영제 / 1932년생]

    "학교 가서 공부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낮 12시쯤 되어서 (일본으로) 떠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아버지한테서 

    편지 연락도 없고 아무 소식이 없었지요."


    [인터뷰: 이수진 / 1942년생]

    "남사할린 북쪽, 우글레고르스크, 

    레소고르스크, 보쉬니아코보. 

    여기서 제일 많이 (이중징용) 갔어요.

    그때 빨리 데려가야 한다고, 

    '(일본에) 먼저 가라, 식구들 다음에 보내준다'고 거짓말하고 데려갔지. 

    그때 그 시대 안 가면 죽여 버리지 말도 못 하지. 그렇게 밤에 빨리 가라고. 그렇게 싹 데려갔지"


    [내레이션]

    가족을 데려갈 수 없었던 이중징용 광부들.

    패전 후 일본은 이들을 

    사할린으로 보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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