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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갑의 애국가를 찾아서 13] 1917년 수집ㆍ정리된 <애국창가집>의 가치

기사입력 2021.02.2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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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7년 수집ㆍ정리된 <애국창가집>의 가치

    [김연갑의 애국가를 찾아서 13]

    [우리문화신문=김연갑 아리랑학교 교장]  문화재청은 2011년 초 근대음악유물 등록문화재 3편을 공고했다등록문화재’ 제도는 50년 이상이 지난 것 중 역사문화예술사회 등 각 분야에서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근대문화유산을 급격한 멸실훼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2001년도에는 건축물 및 시설물, 2005년도에는 동산문화재 분야에 도입한 제도이다.

     

    이에 따라 근대기의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적극 발굴해 문화재로 등록함으로써 보존관리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광복군가집 제1(1943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 선전위원회 펴냄), 애국창가 악보집(1916년 하와이 편찬 등사본), 안익태 대한국애국가 자필악보(1949년 필사세 가지를 등록했다.


    1917년 수집ㆍ정리된 <애국창가집>
    ▲ 1917년 수집ㆍ정리된 <애국창가집>

     

     

    이상의 3가지 음악자료는 애국가의 수록을 주목한 자료이다처음으로 근대 음악인 애국가의 자료를 국가가 관리하게 된 것으로 바람직한 결과이다이 세 가지 자료에는 현 애국가의 해외동포사회 확산과 광복군 수용 사실그리고 안익태가 작곡했음을 입증하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자료만으로는 현 애국가의 역사를 알려주는 자료로는 부족하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사으로 시작하는 후렴이 사용된 <무궁화가>가 작사된 것이 1897년이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으로 시작하는 가사가 작사 된 것이 1907년이고, ‘애국가로 민중의 공인을 받은 것이 31만세운동기를 통해서이고임시정부 광복군들에 의해 불려 국가적 위상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가사 변화와 보급 상황특히 31만세운동 기간에 불린 애국가들의 상황많은 애국가들의 정체성도 함께 밝혀져야 함은 당연하다앞으로 더 많은 애국가 자료가 발굴정리되어 이 맥락적 간극을 메꿔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동안 발굴된 필사자료들을 주목하여 살필 필요가 있다이중에 1917년 수집정리된 애국창가집을 실례로 삼을 수 있다이 자료는 지금까지 발굴된 애국창가집 중 애국가류를 인식하고 정리한 자료인데이는 1919년 31만세운동 기간 전국에서 불린 다양한 애국가의 존재를 추정 할 수 있게 해 준다.

     

    「애국창가집」의 안창호 작사 ‘애국가’
    ▲ 「애국창가집」의 안창호 작사 ‘애국가’

     


    1910년 일제의 국권침탈로 애국가류의 작사자나 수집 정리자를 밝힐 수 없는 처지였다이런 까닭으로 1910년대 이후 필사된 자료에 작사자가 밝혀진 것이 없다이 자료집에도 각각의 작품 정보가 없음은 물론수집정리자도 밝혀져 있지 않다그러므로 이 자료의 핵심 가치는 애국가’ 명칭 자료와 일반 애국창가를 구분하여 정리수록했다는 점이고이는 곧 1917년 전후의 애국가’ 명칭 자료의 실상을 알게 한다는 점이다전체 29종을 밝힌 목차는 다음과 같다.

     

    애국가

     

    애국가-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산고수려 동반도는

    애국가-긴날이 맛도록

    애국가-동해의 돌출한

    애국가-만왕 우리하나님계서는

    애국가-우리나라 동반도난

    애국가-화려한 강산 우리대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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