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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갑의 애국가를 찾아서 12] 애국가, 최초의 곡명은 ‘찬미가 14장’이다

기사입력 2021.02.20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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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가, 최초의 곡명은 ‘찬미가 14장’이다

    [김연갑의 애국가를 찾아서 12]

    [우리문화신문=김연갑 아리랑학교 교장]  우리들의 8월은 애국가의 달이다해방과 광복과 정부수립이란 역사적인 기념의 달이기에 가장 의미있게 애국가가 불리는 달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8월에는 애국가의 역사를 한 번쯤 돌아 볼 필요가 있다그래서 최초의 기록을 살피기로 한다.


    <애국가>를 수록한 첫 문헌은 1908년 발행 재판 찬미가(초판은 1907년으로 추정되나 미확인)이다비록 현<애국가>를 비롯한 두 편의 애국가류와 영미(英美찬송가 12편을 수록한 18쪽의 소책자지만 여러 측면에서 조명해 볼 가치가 있다애국가를 수록했고개화기 출판물이고발행사가 광학서포이고, ‘역술(譯述)’ 같은 출판 용어를 사용한 점 등으로 그렇다.


     

    음악인이 아니면서 학생들을 위해 제한적인 목적으로 발행 된 무곡보(無曲譜애국창가집이다지금까지 이 자료는 공식적인 영인 출판이 되지 않은 탓인지 창송가사(讚頌歌史)에 한정된 석사 논문의 대상이 되었을 뿐 특별한 조명을 받지 못했다이제 찬미가의 개론적 접근을 통해 그 가치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은 최초의 서지 정보를 제공해 주는 국립중앙도서관 사서(司書윤학구의 <해제 찬미가(解題 讚美歌)>의 일부다.

     

    윤치호(尹致昊(譯述), 융희(隆熙) 2(1908), 활자본(金屬活字) 1, 17.5cm x 12.5cm 18p, 장정(裝幀적황색(赤黃色표지 湖附裝이 자료는 초판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초판의 인쇄도 재판으로 미루어 보아 1년 미만에 발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이 책은 명치45(1912) 2월 7일 판매금지도서가 되었다국사편찬위원회를 비롯하여 국가기관에서도 엄연한 사실을 밝히지 않고 적당히 넘겨왔으나 이제는 윤치호가 작사자임을 사실대로 밝혀서 그릇된 역사를 시정하여야 할 것이다.”(월간 도서관국립중앙도서관, 1970, 7, 52)

    이상의 내용은 찬미가에 대한 최초의 해제(解題)로 네 가지 점에서 논의의 대상이 된다하나는이 책이 1912년 총독부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 준다는 것이다둘은 이 시점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이 책이 소장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 것이다현재 이 책은 원본이 확인되지 않고 사본(寫本)만 존재하는 실정이다. 

    셋은 초판 발행 시기를 재판 발행 1년 전인 1907년으로 추정한 사실이다현재 초판이 발굴 되지 않아 1905년설, 1907년설이 대두 된 상태로 아직 단정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마지막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이 책을 통해 현 <애국가>의 작사자는 윤치호라고 단정했다는 사실이다이는 이후의 다양한 윤치호 작사 주장과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로 애국가 가사에 대해 많은 글을 쓴 임중빈(任重彬/1939~2005)이 쓴 <새 자료로 보는 좌옹 윤치호>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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