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리랑을 비롯하여 서울 경기지방의 본조(本調)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 외에도 문경아리랑, 상주아리랑, 해주아리랑, 대구아리랑, 공주아리랑, 영천아리랑, 용천아리랑, 등등 지역의 특징적인 아리랑은 수도 없이 많다는 이야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기도 했지만, 식민지 시절,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지정하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각 지방에서 부르기 시작했으리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또 무엇보다도 아리랑의 음악적 특징은 간결하면서도 정제되어 있는 형식과 선율형이 간단해서 쉽게 부를 수 있다는 점, 3박자형의 리듬구조, 지역마다의 시김새가 다양하다는 점, 그 중에서도 특히 떠는 소리의 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즉석에서도 지어 부를 수 있는 풍부한 노래말이라든가, 박자의 조절이나 감정의 상태에 따라 슬픔과 기쁨 등 음악적 분위기를 바꾸어 부를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이처럼 한국인이 좋아하고 잘 부르는 민요, 아리랑은 누가 지었고, 언제부터 불러온 노래일까? 하는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찾기 어렵다.
다만, 1800년대 중반, 경복궁을 중건할 때, 각 지역에서 차출된 인부들을 위한 연희에 사당패들이 초청되어 각 지역의 아리랑을 불렀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아리랑은 그 곳에 참여한 일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파급되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 이후 1896년에 외국인 선교사 헐버트(hulbert)가 당시 부르던 아리랑을 서양의 5선보로 채보하였는데, 이 곡은 현재의 아리랑이 아닌 그 이전에 불러오던 <구 아리랑>이다.
당시 불려지던 아리랑은 박자도 느리고, 가락도 부분적으로는 현재의 아리랑과 다른 형태이다. 가령 현재의 아리랑은 시작부분의 “아리랑, 아리랑”이란 노래말에서 앞에 것은 쏠(sol)로 낮게 시작하고, 뒤에 것은 도(do)로 4도 높게 내서 <쏠-도>의 서로 다른 음높이로 부르지만, 구아리랑은 시작부분의“아리랑, 아리랑,”을 동일한 음높이로 반복하는 차이를 보인다.
구아리랑이 채보된 30년 뒤, 1926년, 단성사에서는 나운규의 <아리랑>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여기에 주제곡으로 쓰인 아리랑은 헐버트가 채보했던 <구아리랑>이 아니라, 영화를 위해 새롭게 편곡된 <신아리랑> 이었다. 그러니까 현재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아리랑이 바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속의 아리랑이란 노래가 영화와 함께 관람객의 민족 감정을 폭발시킨 것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애절한 장면을 목격하면서, 동시에 배경 음악인 아리랑을 가슴으로 듣게 되면서, 억압받으며 살던 관객은 항일감정을 여지없이 폭발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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