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아리랑연합회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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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이사장] 무세중#박창수의프리토크 #무세중3월, 문화예술계 선생님들과 함께한 #박창수의프리토크 마지막 게스트는 시대를 앞서간 전위예술가, #무세중 선생님이십니다. ⠀ 무세중 선생님은 민족 연극의 모체인 굿과 놀이를 현대적 안목으로 풀어내면서, 작품을 통해 사회와 예술계에 날카로운 비판을 던져 왔습니다. ⠀ 무세중과 박창수, 두 전위예술가의 이야기를 오늘 프리토크에서 함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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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역 아리랑 전승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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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하이 서울 <퓨젼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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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전국아리랑 전승단체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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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아리랑본부 사할린 지부에서 보내준 '세계 여성의 날' 축하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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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아리랑 찾아 40년… "전국에 70종, 그 시대의 소셜미디어였죠"서울 안국역에서 북쪽으로 오르막을 15분쯤 올랐다. 내장 같은 골목길 오른쪽으로 창덕궁이 저만치 보였다가 사라지곤 했다. 스마트폰으로 주소를 확인하는데 "이쪽입니다!"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김연갑(65) 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한복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이 서지학자가 들어앉은 원룸에는 누렇게 빛바랜 책이 가득 차 있었다. 네 평쯤 되려나. 방이라기보다는 창고, 과장하면 토굴에 가까웠다. 그는 '막다른 집'이라 불렀다. 문헌·악보·음반·사진 등 자료 4000여 점은 어수선했지만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다. 아리랑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데 40년을 바쳤다는 김씨는 고서점 주인처럼 무엇이든 척척 찾아냈다. "이게 1926년 10월 1일 자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공돼 기념식을 한 날이었어요. 여기 광고를 보세요. 단성사에서 나운규 영화 '아리랑'이 개봉됐습니다. '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동냥의 쪽박이 다 웬일인가~'라는 가사 보이지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좋은 땅에 길 내고 다 빼앗으니까 아리랑으로 저항한 거예요. 사흘 뒤엔 '가사가 불온하여 전단 1만장을 압수했다'는 기사가 실립니다." 아리랑 박사, 아리랑 독립군, 아리랑에 미친 사람…. 그에게 붙은 별명들은 아리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아리랑이 뭐기에 한 사람의 인생을 지배할까. 출발선에 선 육상 선수처럼 김씨가 심호흡을 했다. 아리랑을 찾아 헤맨 40년이 풀려나올 참이었다. 1979년 정선군 사북읍 -20대 중반에 왜 하필 아리랑에 꽂혔나요. "단국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다 강원도 철원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최전방 대남방송으로 들리는 북한 아리랑은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해 뜨고 달 뜨고 별도 뜨네~'처럼 가사가 낯설었어요. 해는 김일성, 달은 김정일이었지요. 제대하고 동두천 재건학교(일종의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는데 어느 날 미군이 찾아와 질문을 던졌어요." -무엇을요? "호랑이, 태권도, 아리랑이 한국의 상징이라는데 아리랑을 사전적으로 짧게 설명해달라는 거예요. 그때는 즉답을 못 했어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 질문이 저를 움직였어요." -지금 다시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한민족의 노래라고 하겠지요. 1979년 말 강원도 정선으로 아리랑 답사를 갔는데 버스를 잘못 타 사북읍에 내렸습니다. 탄광 노동자들이 어용 노조와 저임금에 분노해 봉기한 사북사태(1980년 4월) 직전인데 그곳에서 상상도 못 한 아리랑을 들었습니다. '남양군도 검둥이는 얼굴 손이 검지만/ 우리네 탄쟁이들은 얼굴 손 가슴까지 검다네~'." -남양군도는 어디고 가슴이 검다는 건 또 무슨 뜻인가요. "태평양 적도 부근 남양군도(南洋群島)로 끌려가 탄광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광복 후 돌아왔습니다. 고국의 막장에 다시 들어갔는데 진폐증에 걸려 가슴까지 까맣다는 울분을 아리랑에 실은 거예요. 아, 이게 아리랑이구나. 친구들과 '아리랑 기행단'을 조직해 수집과 연구를 시작했어요." -정선, 밀양, 진도… 지역마다 아리랑이 참 많은데. "모두 70종이 넘어요. 강원도 인제에는 뗏목 아리랑이 있습니다. 나무를 베어 뗏목으로 강을 타고 서울에 내다 팔던 사람들을 떼꾼이라 부르잖아요. '떼돈'이 거기서 나왔고요. 울릉도 아리랑은 '울릉도 고개는 자물통 고개/ 한번 들어오면 나갈 줄 모르네~'로 흘러갑니다. 아리랑은 곡보다 가사가 더 중요해요. 경상도는 투박한 맛이 있고 전라도는 껴안는 즉흥성이 강하지요." -노래 채록 다닐 때 일화라면. "전남 진도에선 강아지 옆구리를 찔러도 아리랑이 나온다는 말이 있어요. 진도 옥주여관에서 그날 녹음한 아리랑을 들려줬더니 '나보다 못 부르네' 하는 겁니다(웃음). 여주인이 막걸리 한잔 걸치곤 불러 젖히는데 과연 가락을 잘 뽑아요. 어디에 가면 누가 최고로 잘한다고도 알려줬지요. 전국에 아리랑 가락이 활어처럼 펄펄 살아 있었습니다. 민초들이 불만을 토해내고, 시어머니를 욕하고, 항일 감정을 담고, 삶의 교훈을 들려주고…. 요즘 시대의 SNS(소셜미디어) 같은 역할을 아리랑이 한 겁니다. 아리랑에 얹기만 하면 확산이 됐으니까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남북한이 공동 입장하고 응원할 때도 아리랑을 썼지요. "1991년 남북 탁구 단일팀 때부터 아리랑을 단가로 사용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나운규 아리랑이죠." "아리랑에는 파벌도 순위도 없어" 아리랑 역사에서 대격변은 1865년부터 7년간 경복궁을 중수(重修)할 때 일어났다. 부역꾼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흩어졌다. 함경도·강원도·경상도 일대에서 부르던 노래 아라리가 이 과정에서 아리랑으로 퍼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조선총독부는 조선인 노래에 뭐가 들어 있는지 정탐하고 기록으로 남겼다"며 "나운규의 '아리랑' 이후 아리랑이 탄압을 받으면서 가사가 지하로 흘러들었다"고 했다. -일본은 아리랑을 어떻게 탄압했나요. "유명한 가수를 데려와 아리랑 음반을 내면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가사를 뺐어요. 민족적 울분을 억누른 겁니다. 총독부가 1935년 유포한 '비상시 아리랑'은 모두 황군(皇軍)이 돼 비상사태를 막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내용이었어요. 1940년대엔 예술인을 동원해 군수공장에서 악극을 올렸는데 제목을 '아리랑'으로 붙였습니다. 아리랑 수난사지요." -숨어 있는 자료를 찾는 데 도사라고 하더군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일제강점기 신문을 20년 동안 훑었어요. 기사든 광고든 연재물이든 '아리랑'이 하루도 빠짐없이 나왔습니다. 구한말 외국인 대사 부인들의 모임이 '아리랑클럽'이었어요. 1999년 첫 다목적 실용위성도 아리랑 1호잖아요. 우리 문화에서 그만한 지분을 차지하는 게 또 있을까요?" -잡지 창간호 모으는 일도 하셨더군요. "1980년대 초 서울 상계동은 보물창고였어요.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망한 사람들이 그곳으로 모였고 헌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고물상들 틈에 끼어 잡지 창간호를 수집했어요. 1984년 서지학자 최서면 박사의 한국학연구소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헌 공부를 시작했지요. 서울올림픽 덕도 좀 봤습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자문하기 시작하면서 방송국들이 아리랑 전문가 김연갑을 찾았으니까요." -아리랑으로 생계가 해결되나요? "회원들이 쌀과 콩을 보내줍니다. 수입이 박하니 가족에겐 면목이 없고요. 고종의 헤이그 밀사 호머 헐버트(1863~1949)가 1886년 아리랑 후렴구를 기록한 편지를 발굴했고, 2012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아리랑을 등재했다는 데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지학을 믿어도 될까, 하는 의구심도 있습니다만. "저는 최서면 박사 등에게 철저하게 배웠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해요. 문헌을 꼼꼼하게 대조하고 교차 점검을 합니다. 중국이 2011년 동북공정 논리로 조선족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재로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아리랑을 내팽개치고 있을 거예요. 당시 중국 대사관 앞에서 제가 시위를 하자 '한국은 아리랑을 길거리 음악으로 내버려뒀는데 왜 이제 와서 중국에 문제를 삼느냐'고 했습니다." -진부하고 쉰내 난다며 아리랑을 배척하는 사람도 많은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요. 제가 1993년 사할린에 처음 갔습니다. 아리랑을 부르면 동포들이 알아듣고 다들 울어요. (이 대목에서 그는 울컥했다) 우리말도 모르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들었다는 거예요. 사할린 아리랑은 우리가 부르는 것과는 전혀 달라요. 흥이 나질 않고 응어리가 터져 나와요. 아리랑 하나만이라도 껴안고 있어야 나중에라도 조선 사람이라고 하지 않겠나, 하는 존재 증명 같았습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은 우리말은 몰라도 김치는 먹더라고요. "11월 15일부터 사흘간 축제를 하러 또 사할린에 갑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나는 언제나 고향에 갈까~'에는 그리움과 억울함이 겹쳐 있어요. 저를 포함해 아리랑을 하는 사람들도 국내에선 대우를 못 받아요. 오히려 해외 동포들과 부둥켜안고 아리랑을 부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면. "아리랑은 그냥 서정민요가 아녜요. 우리 문화가 응축돼 있습니다.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정선 아리랑을 해당 지자체가 3대 아리랑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리랑 정신에 어긋납니다. 시야를 넓혀야 해요. 아리랑에는 파벌도 순위도 없어요." -아리랑 정신이란 무엇인가요. "저항과 대동, 상생입니다. 아리랑은 여럿이면서 하나이고 옛것이면서도 새것입니다." 그는 "씨름만큼만이라도 아리랑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숱하게 넘었을 마음속 아리랑 고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아리랑 고개는 문경새재?… "경복궁 중수 때 아리랑 전파한 부역꾼들이 넘은 고개" 시인들은 "마음속의 고개일 뿐" 임권택 감독 영화 '서편제'에서 송화(오정해)는 아리랑을 육자배기로 구성지게 부른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진도아리랑에 왜 문경새재가 등장할까? 나운규 영화 '아리랑'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아리랑 고개에서 일본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에선 "나를 위해 울지 마십시오. 나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나와 함께 아리랑을 부른 생각을 하며 불러주십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관객을 울렸다. 김연갑씨는 "아리랑에서 '아리랑 고개'가 없다면 영화와 시, 연극이 만들어졌을까"라며 "문경새재가 아리랑 고개라는 게 내 지론"이라고 주장했다. "삼남에서 부역꾼들이 올라올 땐 대부분 문경새재를 넘어야 하잖아요. 거기 박달나무가 많았는데 지금 가보면 없어요. 경복궁 중수 7년 동안 다 공출당한 거예요. '문경새재 박달나무는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는 게 그 말입니다. 학정을 비웃는 소리, 상실감의 표현이지요." 아리랑 고개가 어디인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시인들은 '마음속 심상의 고개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씨는 "여럿이 흥겹게 아라리를 불러야 하니까 후렴이 필요해졌고 음감이 좋은 말(아리랑)이 있어야 했다"고 설명한다. 밀양아리랑에도, 진도아리랑에도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나온다. "1920년대 말까지는 여러 지역에서 그렇게 수용했습니다. 문경 사람들이 박달나무를 다 베어 가는 불만을 노래한 거죠." 경복궁 중수 때 강제 부역을 한 사람들이 흩어질 무렵 개항이 시작됐다. 상당수가 철도 노동자로 변했다. "회령 출신인 나운규는 철도 노동자들이 부르는 아리랑이 절절해 가슴에 담았다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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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아리랑 일곱색깔[앵커]우리나라 3대 아리랑인 '밀양 아리랑'이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음반으로 발매됐습니다.밀양지역 초등학생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마을 주민들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온 구전 민요를 일곱 가지 형태로 만들었습니다.보도에 최세진 기자입니다.[리포트]["날 좀 보소~ 날 좀 보소~."]지난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밀양 아리랑'.흥겨운 가락과 후렴구는 같지만, 시대마다 지역마다 수백 가지의 가사가 구전으로 내려옵니다.[이용만/밀양 감내게줄당기기 보유자 : "어깨너머로, 할아버지들이 가르쳐줄 때 뭐라 하냐면 세 박자, 밀양 아리랑은 세 박자다, 세마치장단을 하면 된다."]주민들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온 다양한 가사를 모아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7개 버전의 음반이 제작됐습니다.법흥 상원놀이, 무안 용호놀이 등 지역 민속놀이 전승 단체 5곳에서 47명이 참여했습니다.[손기복/밀양 법흥상원놀이 보존회 사무국장 :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고 사장되어 가는 그런 상황이거든요. 그걸 저희들이 채록하고, 발굴하고..."]동요 '반달'의 작사가인 윤석중 시인의 노랫말로 만든 '어린이 밀양 아리랑'과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결기를 드러내는 광복군 아리랑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서정매/동국대 한국음악과 외래교수 : "소리나 내용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양상이 보이기 때문에 그걸 다 담아낸 작업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 작업의 소리 부분을 음원으로 담아낸 것도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경남 밀양시는 '밀양 아리랑'을 주제로 전문 소리꾼 육성사업과 학생들에게 보급하는 교육청 연계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KBS 뉴스 최세진입니다.촬영기자:서다은/그래픽:박수홍 최세진 기자 cejin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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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사할린한글학교 후원회 가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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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하의 대구아리랑 전승활동 연보 (1983-2020년)정은하 대구아리랑 전승활동 연보 (1985-2018년) <대구아리랑제(소리극) 연보>(주관:(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이사장:정은하) 2003.8.23~24 제1회대구아리랑제-팔도아리랑축제 (대구시민회관 대강당) 2003,10.23 제1회대구아리랑제(앙콜공연)-팔도아리랑축제(계명대학교 노천당) 2004,08.25~26 제2회대구아리랑제-팔도아리랑 대구에 다 모였네 (대구시민회관 대강당) 2005,08.15~16 제3회대구아리랑제-통일아리랑(대구오페라하우스) 2006,08,15 제4회대구아리랑제-김삿갓의 팔도아리랑(대구오페라하우스) 2007,08,15 제5회 대구아리랑제-대구의 노래. 대구아리랑(대구오페라하우스) 2008,08,15 제6회 대구아리랑제-김구의 아리랑 2009.08,15 제7회 대구아리랑제-김산의 아리랑(대구오페라하우스) 2010.08,15 제8회 대구아리랑제-아리랑을 부른다 영남의 아리랑 2011.08,15 제9회 대구아리랑제-아리랑을 부른다 팔도아리랑축제 2012.08,15 제10회 대구아리랑제-안중근아리랑 (대구오페라하우스) 2013.08.15 제11회 대구아리랑제-김산의 아리랑 2014.08.15 제12회 대구아리랑제-유관순아리랑 2015.08.15 제13회 대구아리랑제-안중근아리랑 (대구 아양아트센타) 2016.08.15 제14회 대구아리랑제-아라리가 났네 (대구 아양아트센타) 2017.08.15 제15회 대구아리랑제-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대구 아양아트센타) 2018.08.15 제16회 대구아리랑제 -국가중요문화재 제129호! 대구아리랑 2019.08.15 제17회 대구아리랑제 - 2020.08.15 제18회 대구아리랑제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네 정은하 대구아리랑 전승과정 연보 출판 정은하, 달성의 소리, 민속원. 2015 음반 영천아리랑(2000) 탄생, 대구아리랑(2003) 영남아리랑의 재발견(2006) 1976. 07,16~ 이창배, 안비취 사사 1980,12,23 kbs 민요백일장 장원 1983 한국구비문학대계 대구 불로동 최양환 -불로동 아라리(대구아리랑) 채록 1985, 대구에서 영남민요조사 시작 /불로동 아리랑 발굴 1986.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영남민요와 경기민요 선율과 사설 대비 1986 대구시 국악협회 민요분과장 위촉 1986 아시안게임기념 공연-대구시민회관: 대구아리랑과 아리랑메들리 공연 1988. 88올림픽게임; 거리퍼레이드- 대구아리랑 합창 한국민요연구원 개원 1991. 대구문화방송 창사28주년기념[다큐] ‘영남아리랑’-대구아리랑 공연 1991 음반 <최양환의 대구아리랑> 녹음 10.20.달구벌 예술축제 -아리랑한마당 (사회 및 해설:김연갑/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국장) 정은하:대구아리랑 공연/김병하.김길자:정선아리랑/박병훈:진도아리랑 / 김연갑:아리랑선언문 낭독 1994.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 2000. 영남민요연구회 설립/영남민요발표회 2002.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통령상 수상 2002 음반 <영천아리랑> 발매 2004 팔도아리랑경창대회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 2003 정은하 작창 대구아리랑 음반 발매<탄생, 대구아리랑> 2006 <영남아리랑의 재발견>음반 발매-대구아리랑 수록 2003-현재 대구아리랑제 개최 (통상14회) 대구아리랑전국경창대회 개최 2006 대구아리랑보존회 설립 아리랑한마당(서울:국립민속박물관) 정은하의 대구아리랑 2007 사단법인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창립 2009 제1회영남아리랑학술대회 개최-<영남아리랑의 재발견> 2010 최계란의 대구아리랑 음반(1936년) 발굴기념 재현 공연 참관(주관:서울소리보존회) 2012 제12회 아리랑상 공로상 수상-정은하 (주최: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주관:아리랑학회)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회장 취임 2014 판아리랑(서울 창덕궁소극장)(통산3회) 정은하의 대구아리랑과 영남아리랑 제1회대구아리랑제 공연(최계란기념공연, 대구 불로동) 2015 제4회서울아리랑페스티발-전국아리랑경창대회 <컬러플 도시 대구, 대구아리랑!> 공연 (은상 수상) 제2회대구아리랑제 공연(최계란기념공연, 대구 불로동) 남북한공동유네스코등재아리랑통일운동 출범식(한국유네스코본부)-대구아리랑 공연 2015 제1회영남아리랑학술대회 개최-<대구아리랑의 오늘과 내일> 2016. "2015지역아리랑활성화지원사업 선정단체 지정",<대구, 영남아리랑 얼씨구 한마당 공연> 2016 제1회사할린아리랑제-대구아리랑 공연 (러시아 사할린) <2016전통아리랑 공연 ‘아리랑, 삶을 노래하다>-대구아리랑 공연(국립무형유산원) 2017 제5회 아리랑의 날 기념공연 -대구아리랑 한마당 2017아리랑학회학술대회 공동주관(아리랑학회/전국아리랑전승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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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8회 영천아리랑전국경창대회제8회 영천아리랑전국경창대회 11.07 *요강,신청서 변경 편집부 기자 등록 2020.10.22 14:58 조회수 6,691 목록 메일 프린트 스크랩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 본 대회는 코로나-19 및 감염병 예방을 위해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객석거리두기 및 비대면 영상심사(학생부)를 운영합니다. 또한 학생부 외 참가자분들은 대회 당일 방역에 관련한 진행요원의 요구에 적극 협조 부탁드립니다.(비협조시 퇴장조치) ■ 행사 개요 ○ 행 사 명 : 제8회 영천아리랑 전국경창대회 ○ 일 시 : 2020. 11. 07.(토) 10:00 ○ 장 소 : 영천시민회관 스타홀 ○ 참가대상 : 명창부, 일반부(대학생 포함), 단체부(5인이상), 학생부단체(5인이상) ○ 주 최 : (사)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 ○ 주 관 : (사)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 제8회 영천아리랑 전국경창대회 추진위원회 ○ 후 원 : 경상북도, 영천시, 영천시의회, 영천교육지원청,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경북TV, 영천역사문화박물관 ■ 행사 내용 가. 경연부분 1) 명창부 : 영천아리랑(1소절)과 아리랑(5분 이내) 2) 일반부 : 영천아리랑(1소절)과 아리랑(5분 이내) 3) 단체부 : 영천아리랑(1소절)과 아리랑(3~5분 이내) 4) 학생부 : 영천아리랑(1소절)과 아리랑(3~5분 이내) 5) 지정곡(필수사항) : 영천아리랑 1소절 (단 • 영천아리랑 선곡시 지정곡 제외) ※ 영천아리랑 음원 : 영천시민회관 홈페이지 및 국악신문에서 다운로드 나. 경연방법(※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위에 따라 변경 가능※) 1) 명창부 : 예선, 결선(동일곡 가능하며 대면심사) 2) 일반부 : 단심(대면심사) 3) 단체부 : 단심(대면심사) 4) 학생부 : 단심(영상심사) 다. 경연 및 심사 : 11. 7.(토) 10:00 ※ 학생부 외 대면심사 경연순서는 참가신청 순서에 따라 개별공지 라. 축하 공연 : 2020. 11. 8(일) 14:00~15:30(가수 조명섭 축하공연) 마. 공연 장소 : 영천시민회관(스타홀) 바. 심사 발표 : 당일 각 부별 심사 후 즉시 영천시민회관 정문에 공고문 부착 (학생부는 영천시민회관 홈페이지 공고문 개시) 및 수상자 개별연락 사. 시상식 : 각 부분 별 시상내역 참조 (단체부는 대표자만 참석) ■ 대회 요강 가. 참가 자격 아리랑을 사랑하는 전 국민 명창부, 일반부(대학생 포함), 단체부, 학생부단체 단. 1인 중복신청 불가(단체, 개인 중 선택) 나. 제출 서류 1) 참가신청서 1부(소정양식) 2) 증명사진 1부(결선시 본인확인 가능한 신분증 필참) 3) 학생부는 녹화영상 첨부 ※ 영천시민회관 홈페이지 및 국악신문에서 다운로드 다. 신청서 교부 및 접수처 1) 교부 및 접수일자 : 2020. 10. 19(월) ~ 11. 4(수) 18:00까지 2) 신청서 교부 · 영천시민회관 홈페이지 http://ycac.yc.go.kr: 커뮤니티 → 공지사항 → 다운로드 · 국악신문 홈페이지 www.kukak21.com: 제8회영천아리랑전국경창대회 → 다운로드 3) 접수처 • Fax 접수 : 054)330-6649(※학생부 제외) • 이메일 접수 : marines923@korea.kr ※ 당일 신청접수 불가 (접수기한 내 신청접수 마감) 4) 문 의 054)330-6650, 010-8853-6384 5) 참가비 : 없음 6) 고 수 : 지정고수 동반가능 (희망자에 한해 고수 무료 지원가능 신청서에 사전 신청 요망) 7) 지원사항 : 동상이상 수상자는 시상식 참여자에 한해서 숙박, 조식 제공합니다. ※ 명창부 대상수상자는 11월 8일 시상 후 축하공연에 공연하여야함. 8) 학생부 영상 촬영 방법 ① 동일한 조건의 평가를 위하여 휴대폰으로 촬영 및 녹음함 해상도 1920×1080(FHD) 설정해 주시길 바랍니다.(마이크 및 필터 사용 불가) ② 첫 화면은 A4용지에 대회명, 녹화일, 참가명을 크게 작성하여 화면에 제시 한 후 녹화 시작함 (예시)영천아리랑전국경창대회(대회명) / 20년10월13일(녹화일) / 홍길동 또는 단체명(참가명) (대회요강 마지막 페이지 별첨 참고) ③ 출전자는 본인의 정면에 거치대를 고정하여 전신 촬영함, 반주자는 영상 안에 노출되지 않아야 됩니다. (장구장단 및 소리 북 반주 외 다른 악기반주 불가) ④ 인사 생략, 한복착용 촬영 ⑤ 영상의 화질과 음질은 심사가 가능 할 정도의 소음이 없고 밝은 공간에서 촬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촬영장소의 배경은 심사에 영향을 주지 않음. (거울 및 유리 앞 촬영 삼가) ⑥ 공고기간 촬영한 동영상만 인정, 영상 및 사운드 등 편집 절대 불가 9) 학생부 영상 및 참가신청서 접수방법 ① 접수기간 내에 "신청서”와 "동영상 파일” 함께 이메일로 제출 ‘이메일 제목’ - ‘신청서 파일명’ - ‘동영상 파일명’은 동일하게 학생부 ○○○”로 작성하여 이메일 발송 (예시) 학생부 홍길동, 홍길순 또는 학생부 팀명 ■ 시상내역(단위:원) 부 문 내 용 시상 훈격 시상금 시상일 계 7 11,900,000 26명(팀) 명창부 대 상 경상북도지사상 3,000,000 11월 8일 금 상 영천시장상 1,000,000 은 상 국회의원상 700,000 동 상 영천시의장상 500,000 일반부 금 상 영천시장상 1,000,000 은 상 국회의원상 700,000 동 상 영천시의장상 500,000 장려상 대회장상 600,000 (30만×2명) 11월 7일 인기상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장상 200,000 (10만×2명) 단체부 금 상 영천시장상 1,000,000 11월 8일 은 상 국회의원상 700,000 동 상 영천시의장상 500,000 장려상 대회장상 400,000 (10만×4팀) 11월 7일 학생부 금 상 영천교육장상 300,000 우편발송 은 상 대회장상 200,000 동 상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장상 600,000 (10만×6팀) ※ 대회 사정상 시상내역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대면 심사 이의 제기 시 심사위원회에서 결정(당일 이의 제기에 한함) 편집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제8회-영천아리랑경창대회모집요강수정.hwp (22.0K)다운로드 영천아리랑전국경창대회 참가신청서.hwp (15.5K)다운로드 영천아리랑녹음파일.avi (2.3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