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아리랑연합회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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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애국염원, 10월1일 10시1분에 아리랑 노래한 사람들Ⅰ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일반 이것은 애국염원, 10월1일 10시1분에 아리랑 노래한 사람들Ⅰ 등록 2015-10-02 14:34:36 | 수정 2016-12-28 15:41:47 【서울=뉴시스】영남아리랑보존회 정은하 회장과 회원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전국 17개 지회가 '제3회 아리랑의 날'을 맞아 1일 오전 10시1분 해당 지역 아리랑 1절을 전국에서 동시에 불렀다. 이어 UNESCO 아리랑 남북 공동재등재 서명운동을 펼쳤다. 【서울=뉴시스】성주아리랑보존회 임옥자 회장과 회원들 영남아리랑보존회(회장 정은하), 밀양아리랑보존회(회장 이영만), 진도아리랑보존회(회장 박병훈), 문경아리랑보존회(회장 송옥자), 상주아리랑보존회(회장 김동숙), 공주아리랑보존회(회장 남은혜), 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기연옥), 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회장 김희은), 대구아리랑보존회(회장 곽동현), 성주아리랑보존회(회장 임옥자), 인동아리랑보존회(회장 서주달), 구미아리랑보존회(회장 김종남), 경산아리랑보존회(회장 우종현), 경기북부아리랑보존회(회장 김기상), 안성아리랑보존회(회장 조명숙), 제천아리랑보존회(회장 김정옥), 서울아리랑보존회(회장 유명옥) 등이 참여했다. 【서울=뉴시스】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송옥자 회장과 회원들 이들 각 지회는 UNESCO 본부에 아리랑 공동재등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이 운동을 확산시킨다. 【서울=뉴시스】부산아리랑보존회 김희은 회장과 회원 2016년 초에는 해외 동포사회에서 아리랑 공연 '두 손을 마주 잡고'를 선보일 계획이다. 【서울=뉴시스】서울아리랑보존회 유명옥 회장과 회원 realpaper7@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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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애국염원, 10월1일 10시1분에 아리랑 노래한 사람들Ⅱ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일반 이것은 애국염원, 10월1일 10시1분에 아리랑 노래한 사람들Ⅱ 등록 2015-10-02 14:34:55 | 수정 2016-12-28 15:41:47 【서울=뉴시스】봉화아리랑보존회 조순남 회장과 회원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전국 17개 지회가 '제3회 아리랑의 날'을 맞아 1일 오전 10시1분 해당 지역 아리랑 1절을 전국에서 동시에 불렀다. 이어 UNESCO 아리랑 남북 공동재등재 서명운동을 펼쳤다. 【서울=뉴시스】의병아리랑보존회 기연옥 회장과 회원 영남아리랑보존회(회장 정은하), 밀양아리랑보존회(회장 이영만), 진도아리랑보존회(회장 박병훈), 문경아리랑보존회(회장 송옥자), 상주아리랑보존회(회장 김동숙), 공주아리랑보존회(회장 남은혜), 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기연옥), 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회장 김희은), 대구아리랑보존회(회장 곽동현), 성주아리랑보존회(회장 임옥자), 인동아리랑보존회(회장 서주달), 구미아리랑보존회(회장 김종남), 경산아리랑보존회(회장 우종현), 경기북부아리랑보존회(회장 김기상), 안성아리랑보존회(회장 조명숙), 제천아리랑보존회(회장 김정옥), 서울아리랑보존회(회장 유명옥) 등이 참여했다. 【서울=뉴시스】공주아리랑보존회 남은혜 회장과 회원 이들 각 지회는 UNESCO 본부에 아리랑 공동재등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이 운동을 확산시킨다. 【서울=뉴시스】밀양아리랑보존회 이영만 회장과 신명숙 명창 2016년 초에는 해외 동포사회에서 아리랑 공연 '두 손을 마주 잡고'를 선보일 계획이다. 【서울=뉴시스】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 전은석 회장과 회원 realpaper7@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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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양의 아리랑로드 (1997-2020)아리랑로드 답사기 기미양_러시아 동포와 함께, 겨레기념일 ‘아리랑의 날’ (뉴시스. 2017-10-01) 기미양_군함도탄광과 아리랑고개 (영웅, 8월호, 2017. 코레아우라) 기미양_지옥섬 군함도, 아리랑 고개 낳았다···저항·대동·상생 (뉴시스, 2017.07.03.) _기미양 “2014, 아리랑 창조적 계승의 해”…위대한 3대 성과 (뉴시스, 2014-12-3) 기미양_민간주도 아리랑의날, 전국 7곳 열광…국가차원 지원 절실 (뉴시스. 2014-10-13) 기미양_우리의 무기여, 아리랑이여!”…기미양 북간도 답사기, (뉴시스. 2015.08.10) 기미양_왜 우리는 일본의 아카지마 아리랑 고개로 가는가" (뉴시스. 2015-02-06) 기미양_7세 박주빈·25세 송미진, 日아카지마 아리랑평화음악제 합류 까닭, (뉴시스, 2015-02-06) 기미양_안 의사 아리랑' 마침내 탄생, 안중근 동양평화론 현장 가다, (뉴시스 2014.07.28.) 기미양_아리랑 루트 확인, 설정…남은혜·기미양·김연갑 '삼인삼색 연변기행' (뉴시스 2013.08.26.) 인쇄하기 닫기 사회 > 사회일반 “우리의 무기여, 아리랑이여!”…기미양 북간도 답사기 등록 2015-08-10 11:28:36 | 수정 2016-12-28 15:26:09 【북간도=뉴시스】중국 방천에서 북중러접경지대를 조망하다. 조러대교가 보이고 북한 두만강시가 펼쳐져 있다. 멀리 압록강 하류가 끝나는 곳에서 동해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북간도=뉴시스】기미양 이사 (아리랑학회) = 2013년 북간도 지역 음악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갔을 때는 ‘북간도답사’였다. 2014년 안중근의사독립운동유적지를 찾았을 때는 ‘조·중·로접경지역답사’였다. 그리고 이번 북한대학원대학교 답사는 ‘북·중접경지역답사(단장 이우영 교수)’였다. 모두 같은 역사성으로 연결되는 지역이지만 답사 목적에 따라 지명을 달리했다. 북간도, 또는 만주나 동북삼성으로 불려지는 이 지역은 나로서는 주최 측의 목적에 더해, 나름으로 늘 가슴에 절절하게 담았던 화두를 갖고 갔기 때문에 이런 지명의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왔던 듯하다. 첫 번째 답사는 남은혜 명창의 음반 ‘북간도아리랑’을 구상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안중근의 의병정신을 주제로 한 ‘아무르아리랑’을 구상하기 위해서였고, 이번에는 항일무장 투쟁 ‘무기로서의 아리랑’ 현장을 가슴에 담는 것이 개인적인 관심사였다. 무기로서의 아리랑이란 주제를 가슴 속에 담은 것은 두 가지 계기에 의해서이다. 하나는 북한의 음악정치 원천이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시절 보천보전투와 간삼봉전투에서의 아리랑으로부터라는 사실 때문이다. 또 하나는 최근 읽은 1940년대 말 미국 좌파 포크그룹 <얄마닉 싱어즈>(Almanac Singers)의 ‘무기로서의 노래(Use of Songs as a weapon)’ 동아리 활동상의 감동에서다. 이들은 아리랑을 반전음악으로 사용한 피터 시거(PETE SEEGER)와 맥을 잇는 그룹으로서, 세계 저항음악을 말할 때 내 놓는 ‘무기로서의 노래’라는 슬로건을 창출한 음악가들이다. 필자의 과잉된 생각일런지는 몰라도 일제항일투쟁기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투사들의 아리랑 변용은 바로 이들보다 앞서 노래를 무기로 변용한 사례로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실례는 김산의 아리랑, 정율성의 아리랑, 광복군아리랑, 그리고 김일성의 아리랑 등을 그렇게 본다는 관점이다. 향수를 달래주고, 공동체적 친밀감으로 일체감을 형성시키고, 배우지 않아도 부를 수 있는 아리랑 곡조에 항일적인 사설을 담은 것이다. 이는 향유하는 노래이면서 저항하는 무기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7월 18일부터 24일까지의 조중접경지역 답사 내내 1930년대 말 중국 항일전선 지역으로 돌아가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을 구상했던 용정, 김산이 다닌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던 유하현 합리하, 김정숙이 김일성을 만나러 건넌 삼합, 보천보전투가 있었던 혜산진이 보이는 장백현, 뗏목아리랑이 흘렀던 압록강변에서 나운규와 김산, 그리고 정율성과 김정숙의 아리랑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독립당 출몰, 영사관 오도빠이···아리랑 아리랑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는 부를 수 없는 아리랑이 중국과 러시아에 이르는 접경지대에서 불려졌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게 보게 된다. 필자가 수집한 자료 중 가장 앞서는 것은 1932년 7월 김경재가 북간도 상황의 기록 중에 조사한 다음의 사설이다. “독립당의 출몰이 자즈니/ 영사관 오도빠이 달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백두산=뉴시스】백두산 천지에서 아리랑남북공동등재를 기원하면서. 간도 용정에 있던 일본 영사관이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려고 싸이렌을 울리며 내달리는 상황을 아리랑에 각인시켰다. 일제의 오토빠이는 독립당을 추격하는 상징임을 모두에게 알림과 동시에 독립당은 계속해서 출몰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런 전승양상은 결정적으로 1941년 중경임시정부가 3대 군가의 하나로 채택한 광복군아리랑에서 진가가 발휘된다. “우리네 부모가 날찾으시거든/ 광복군 갔다고 말전해 주소/ 후렴-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소/ 동실령고개서 북소리 둥둥나더니/ 한양성 복판에 태극기 펄펄날려요.” 아리랑이 고난 극복의 추동체라는 사실을 말할 때, 떠올리는 이 광복군아리랑은 국내 진공작전으로 일제를 밀어내고 승리한 기쁨을 앞당겨 자축하게 함으로 용전의 힘을 내게 하였다. 곡조가 밀양아리랑이니 배우지 않고도 즉석에서 합창할 수 있었으니 유용한 심리전술의 무기였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강렬하게 되살아 난 아리랑 사연은 2013년 북간도답사 때 연길 정암촌에서 중국동포 음악가 김봉관 선생이 전해준 이야기이다. 요약하면 독립군 빨지산 활동상의 가슴 아픈 아리랑 사연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 관동군 토벌대들이 산골짜기에 들어섭니다. 앞장에 선 ‘길 안내자’는 흰옷을 입은 조선족 노인이었습니다. 주위의 산봉우리를 둘러보던 노인은 목청을 뽑아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이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도 못가서 발병난다…. 【북간도=뉴시스】2015 조중접경지역 답사 이동경로. 두만강 하류에서부터 백두산, 백두산에서 두만강 상류~하류. 미구에 노인은 일본군인의 군와 총에 쓰러지고 포위망을 늘인 항일유격대들의 분노의 총소리는 노인이 못다 부른 아리랑의 노래 가락을 이어갔답니다. 중국 조선족 가운데 널리 알려진 항일투쟁 이야기입니다. 조선 노인을 왜놈 토벌대가 들이닥쳐 빨지산을 대라고 하며 끌고 갔는데, 노인은 약속한 장소로 가서 의연하게 아리랑을 불렸다 말입니다. 그것은 신호입니다. 그러니 아리랑은 처절한 왜놈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일본 토벌대(討伐隊)와 독립군 간의 추격전에서 “**도 못가서···”라는 대목의 숫자는 일본 토벌대의 규모를 알리는 것이다. 암호로 쓴 것인데, 어느 단계에 이르러 이러한 사실이 간자에 의해 일제에 알려졌고, 결국 독립군을 돕던 한 노인이 이 암호를 쓰다가 희생됐다는 이야기다. 이는 중국민족학교 황유복 교수의 ‘힌 옷의 동포’라는 책 속에도 들어있어 사실로 받아 들여지는 이야기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숙의 아리랑 사연도 관심 있게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앞에서도 말했듯 북한의 음악정치는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제7사 활동의 최고 전과라는 보천보전투와 간삼봉전투에서의 아리랑 역할을 확대, 재현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항일전선에서의 아리랑은 다양한 상황에서 확인 되는 것인데, 북한의 불후의 고전명작 ‘한 자위단원의 운명’이나 혁명가극 ‘밀림아 이야기 하라’, 그리고 다부작(多部作)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불린 아리랑이 이런 상황에서 확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보천보와 간삼봉전투 아리랑> 【북간도=뉴시스】북한대학원대학교 2015 조중접경지역 현장답사단(단장 이우영 교수) 보천보에 홰불 올린 혁명군은 기세 높아/ 간삼봉의 싸움터엔 노래소리 드높았네/ 빨찌산녀장군이 선창 떼신 아리랑/ 봉이마다 릉선마다 뢰성타고 울렸네/ (후렴) 아리랑 스리랑/ 간삼봉에 불비 와서 아라리가 났네. 이 ‘간삼봉전투에 울려퍼진 아리랑’은 앞서 치러진 보천보전투에 이은 승전으로, 이 때 김일성과 김정숙이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는 사실을 표현했다. 당시<매일신보> 1937년 7월 9일자가 보도한 ‘토벌대와 교화 중에도 노래 부르는 여당원, 김일성 일파 공비 격퇴’에서도 추정되듯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30년대 후반기 중국에서의 항일투쟁이 침체에 빠지는 시기로 중국군벌의 도움으로 유지되던 독립투쟁이 지하화 하는 상황에서 거둔 승전보였다. 이 승전은 일본 경찰을 격퇴한 전투로 김일성의 존재를 분명하게 알린 전투이다. 1992년 4월 김일성 80회 생일 기념으로 발행된 자서전『세기와 더불어』에 두 전투에서 아리랑이 혁명의 동지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기록하였고, 이를 계승, 2002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으로 형상화시킨 것이다. 1937년 6월 4일 새벽, 일방적으로 대승한 전투, 장백현에서 보이는 함경남도(현 양강도) 혜산진으로부터 20㎞ 떨어졌다는 기록을 되살려 응시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상상의 전투신이 오버랩 되었다. 빨치산 전투방식대로 방화를 통한 충격과 주재 일본경찰을 비롯한 일인 관리만을 처단하여 공포심을 극대화 했다. 이 사실을 언론에 전해주어 대서특필, 동아일보는 호외까지 발행하게 했다. 선전선동 활동으로 군사적 성과 이상의 정치적 성과를 거둔 전투였다. “간삼봉 전투장에 울린 <아리랑>은 혁명군의 정신적 중심을 비쳐 보이고 낙천주의를 시위하였다. 적들이 <아리랑>을 듣고 어떤 기분에 잠겼겠는가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후에 포로들이 고백하기를 그 노래를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졌고 다음 순간에는 공포에 잠기였으며 나중에는 인생 허무를 느꼈다고 하였다. 부상자들 중에는 신세를 한탄하며 우는 자들도 있었으며 한쪽에서는 도망병까지 났다.” 김일성의 ‘세기와 더불어’ 제6권에 나오는 대목이다. 무장투쟁 사상 처음으로 가장 큰 규모의 국내 진공작전으로 평가하는 전투에서 아리랑을 불렸으니 북한이 아리랑을 ‘혁명동지’로 표현할만한 것이다. 【북간도=뉴시스】수풍댐에서 배를 타고 북한 사람들의 일상과 만나다. 우리가 손을 흔들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면 그들도 손을 흔들며 웃어 준다. ◇백두산은 없고 장백산은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1930년대 아리랑 여행’(?)에서 현실로 일깨운 것은 백두산 답사에서였다. 그 이유는 천지를 오르기 위해 세 번이나 중국에 돈을 내야함은 물론 모든 표기에서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는 사실이었다. 여기에 조선족 동포들이 부르는 ‘장백산아리랑’이 조선족 스스로가 현실적으로 중국신민임을 상징적으로 표현 한 노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심 더욱 안타까웠다. 그래서겠지만 이 노래는 1983년 전국민족단결현상모집에서 창작상을 받기도 했다. <장백산아리랑> “그 옛날 천지엔 선녀 내렸고/ 오늘은 세월 좋아 벗님들이 이 고장에 찾아 오누나/ 신선의 꽃 활짝 피는 우리네 장백산은/ 중국의 명산이요 연변의 자랑일세.” 조국(조선이나 대한민국)의 명산이 아니고, 중국의 명산이고, 연변의 자랑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름도 백두산이 아니고 장백산이다. 만일 북한 지역에서 오른다면 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임은 당연한 명칭이다. 이런 문제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자 갑자기 1930년말 상황과 달라진 것인 없다는 생각에서 천지에 오르는 발길이 너무나 힘겨웠다. 조중접경지 7일간의 답사, ‘여행’이 아니고 ‘답사’여야 하는 이유를 실감했다. 아리랑조차도 역사와 현실적 해석을 달리해야 하고, 산에 오름이 분명 여행이고 등산임에도 여행이 아닌 답사임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의 인내를 필요로 할 듯하다. 중국의 역사와 현재, 이곳에서 만나는 조선족이라는 중국신민들, 그리고 멀리서만 볼 수밖에 없는 북한이 중첩된 곳이기에, 이를 어떻게 풀어 낼 것인지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다시 무거운 마음으로 답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www.arirang21.org Copyr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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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아리랑 공동등재기원 아리랑통일운동출범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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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사 내부에 '단성사 기념관' 설치해야 한다"…왜?인쇄하기 닫기 연예 > 영화 "단성사 내부에 '단성사 기념관' 설치해야 한다"…왜? 등록 2015-04-27 09:13:07 | 수정 2016-12-28 14:55:09 【서울=뉴시스】박동욱 기자 = 1907년 세국내 최초로 문을 연 상설영화관인 단성사가 건물을 담보로 잡고 있던 은행의 대출금 회수 절차로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사진은 5일 오후 문 닫힌 서울 종로구 단성사의 모습. 2015.02.05. fufus@newsis.com 【서울=뉴시스】한겨레아리랑연합회(상임이사 김연갑)가 25일 "단성사를 우리나라 극장의 역사로 존치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근거는 크게 아홉 가지다. 단성사는 1907년 6월4일 ‘역사와 개량 발전의 시대적 사명을 연설(演說)한 사회를 조성하기 위하여 단성사(團成社)라 명칭’한 연예관으로 탄생, 1918년 12월21일 최초의 영화 상설관이 된 극장이다. 우리 근대 문화사를 함께한 민족극장이다. 단성사는 1919년 10월27일 최초의 우리영화인 김도산 감독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를 개봉하여 ‘영화의 날’(1963년 제정)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극장이다. 단성사는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을 1926년 10월1일 개봉하여 ‘민족영화 아리랑’을 탄생시켰다. 민간전승 민요 아리랑을 문화영역 대중예술 아리랑으로 확산시켜 다양성과 초역사성을 갖게 한 기념비적 유적지이다. 단성사는 소속 감독이며 변사인 김영환을 통해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를 편곡하게 하여 전 민족 구성원에 확산시켜 ‘민족의 노래 아리랑’으로 위치시켰다. 이를 기념한 ‘아리랑의 날’(2013년 제정)을 탄생시킨 아리랑 역사의 거점이다. 단성사는 1926년 10월1일 오후 4시,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 개봉으로부터 1947년 11월12일 ‘다시보자 아리랑’ 상영까지 재개봉, 재상영, 동시상영, 특별상영 등으로 20여년 간 31회나 상영하여 아리랑 위상에 기여했다. 단성사는 나운규 감독·주연 영화 ‘아리랑’ 제1편(1926), 2편 ‘아리랑, 그 후 이야기’(1929), 제3편 ‘말 문 연 아리랑’(1936)은 물론, 홍개명 감독 영화 ‘아리랑 고개’(1936), 이강천 감독의 ‘아리랑’(1954), 김소동 감독의 ‘아리랑’(1957), 최무룡 감독의 ‘아리랑, 나운규의 일생’(1966), 유현목 감독의 ‘아리랑’(1968)까지 개봉한 ‘아리랑 극장’이다. 【서울=뉴시스】영화 ‘아리랑’ 단성사는 무용 ‘아리랑’(1929·배구자 작), 레뷰 ‘춘하추동 아리랑’(1930·연극사 제작), 민요극‘아리랑’(1933·나운규 작), 연극 ‘아리랑 반대편’(1931·신불출 연출), 가극 ‘아리랑’(1943·이부풍 작), ‘신 아리랑’(1943·김춘광 작), 연극 ‘아리랑’(1945·예원좌), 종합쇼 ‘아리랑 환상곡’(1945·한영철 연출), 그리고 김석민 작·연출 ‘양자강의 아리랑’ 등 다양한 장르의 아리랑 명칭 작품 80여 편을 공연하여 아리랑을 대중문화로 인식시킨 극장이다. 단성사는 1927년 전문 영화음악 연주단 ‘단성관현악단’을 운영하고 1931년 영화 전문지 ‘영화가’를 발간하고, 1937년 8월11일 영화감독 나운규의 영결식을 거행하는 등 기업문화를 실현한 업체이다. 단성사는 1993년 영화 ‘서편제’ 개봉 최장 상영기록 194일을 기록하며 진도아리랑의 흥과 멋을 알려 국악진흥에 기여한 ‘문화 공간’이다. 1907년 ‘연예관 단성사’에서, 1953년 ‘㈜단성사’로 , 2005년 ‘멀티플렉스 단성사’로, 2008년 4월 ‘씨너스 단성사’로, 다시 2008년 11월 ‘아산 단성사’로 역사를 이어왔다. 그리고 2010년 7월 휴면에 들었다.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26번지(묘동 56) 지하 4층∼지상 10층(1만3642㎡) 단성사 건물은 ‘경성부 수은동 단성사’ 107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표지석도 없이 5년간 방치되었다. 2015년 3월12일, 5년을 건너 버스 판매 주력업체인 영안모자 계열사 자일오토마트가 새 주인이 되어 ‘영안 단성사’로의 출발을 기대하게 되었다.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1996년 영화 ‘아리랑’ 개봉 60주년을 맞아 당시 단성사에게 ‘역사 코너’를 건의했고, 1996년 ‘아리랑’ 필름 되찾기운동을 공동으로 시행했고, 2006년 ‘단성사 100년사’ 공동 출판을 논의한 바 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서울=뉴시스】영화 ‘아리랑’의 복원된 전단. 신나라레코드가 1만매를 제작했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영안 자일오토마트사와 문체부, 문화재청, 서울시에 다음 사항을 청원한다. 하나, 단성사 건물 주변에 역사성과 의의를 새긴 기념 표지를 설치해야 한다. 더불어 2005년 설치한 기념 조형물을 처음 설치한 위치에 존치시켜야 한다. 둘, 규모를 떠나 ‘단성사’ 명칭의 영화 상영관이 유지되어 근대문화사의 명소로 우리 곁에 있게 해야 한다. 셋, 극장 단성사와 영화 ‘아리랑’과 영화인 나운규를 기념하는 가칭 ‘단성사 기념관’을 건물 내에 설치하여 근대 대중문화사의 메카로 삼아야 한다. 넷, ‘단성사 기념관’이 민족영화 ‘아리랑’ 필름 찾기운동 등의 역사적 영화 필름 찾기 활동 거점으로 활동하게 해야 한다. 다섯, 세계의 노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란 아리랑의 위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기억의 장소’로 존치시켜야 한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사무국장은 "영안모자 자일오토마트 측이 단성사 건물에 단성사 기념관을 설치한다면 전시자료 제공과 운영을 무상으로 전담할 수 있다”고 밝혔다.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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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지마 아리랑⑥]그 이름 아리랑, 인류보편 ‘고난의 메타포’【오키나와=뉴시스】김연갑 상임이사·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 "조국의 아리랑은 나의 영혼이자 블루스, 내 몸 안의 DNA와 같다.” 교포2세 가수 아라리 에이치, 박영일(新井英一)이 한 말이다. 1994년 발표한 <청하아리랑>(清河への道~48番)이 주목을 받아 1995년 일본 레코드 상을 수상했고, tbc TV 10시 메인뉴스 테마뮤직으로 1년간 방송되었다. <청하 아리랑>은 그가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청하군(현 포항시 북구 청하면)을 방문한 뒤 작사·작곡한 작품이다. 교포2세로 차별을 받고 미군 기지에서 이국인 취급을 받은 서러움을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나는 간다”라고 강렬한 목소리로 외쳤다. 1950년부터 후쿠오카 이와쿠니 미군기지에서 접시닦이를 하다 미국행을 한 후 정체성을 지닌 노래를 해야한다는 강렬함에 부르게 된 노래다. "아리랑은 특별한 고난을 겪은 이 만이 부르는 특권을 가진 노래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기 나름의 고난을 가진 사람,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는 이에게 보편적으로 어필하게 하는 힘을 가진 노래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의 메타포(metaphor)로서의 아리랑은 반드시 조선이라는 공간이나 조선인이라고 하는 민족에 한정되어 있지 않은 보편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드라마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강력한 리소스(財源)인 것이다.” 아리랑을 연구한 일본 학자가 쓴 글의 일부이다. ‘고난의 메타포’라고 했다. 이어 교표2세들의 아리랑을 살펴본다. 바로 이들의 부친 대부분은 징용에 끌려왔다 잔류한 이들이다. 백룡의 <아리랑의 노래>는 아마도 동포2세들이 공통으로 갖는 아리랑의 정서일 것이다. "술을 드신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 그것은 고향의 멜로디 아리랑의 노래/ 그 무엇을 그리며 부르시는 걸까/ 그 때의 현해탄 아니면 어릴 적 고향산하/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네.” 호타루 아리랑 <특공대의 노래> 붉은 피가 샘솟는 요카레노(특공대의)/ 일곱 개의 제복단추 아침 해에 빛난다/ 오늘도 비상한다 가노야의 창공에/ 큰 희망의 부푼 구름 샘솟네 치쿠호우(筑豊) 탄광 아리랑 우리의 고향은 경상북도인데/ 나는야 어째서 숱(석탄)파러 왔느냐/ 일본땅 좋다고 누가 말했냐/ 일본땅 와보니 배고파 못살겠네/ 숱 팔 때는 배고파 못살겠네/ 이 말만 하면은 몽둥이로 맞았네/ 배가 고파요 어머니 보고 싶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내었네/ 어머니 소리도 크게 못하고/ 감독이 겁나서 가만히 불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넘어 간다 봄 아리랑 【아카지마(오키나와)=뉴시스】아카지마 아리랑 평화음악제 추진단(단장 기미양)이 10일 아카지마(阿嘉島)의 아리랑고개를 찾아 한국인 위안부들의 넋을 달랬다. 사진= 엄문희 여행작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영감이 어디로 가나?/ 아리랑 고향에는 살수가 없어/ 추운 만주로 쫓기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정처 없이/ 아리랑 국경을 넘어서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동포는 무엇을 먹나?/ 아리랑 나라는 쌀의 나라/ 아리랑 동포는 좁쌀도 없다/ 무자비한 왜놈에게 빼앗기고/ 오소리 지주에게 착취당해 이런 아리랑을 부르는 재일동포는 70여만명, 부라쿠민(部落民; 천민 후예), 오키나와인에 이은 세 번째 소수자 집단이다. 천민계급이 피차별부락(被差別部落)이었다가 부락만 남았다. 아이누족, 오키나와인, 재일 한국인, 재일 중국인, 류큐인과 함께 일본 내의 대표적 소수 집단이다. 재일동포 아리랑은 이런 굴곡을 헤치고 피어난 꽃이다. 아리랑은 기존의 구비문학 또는 민요 서술의 지배 담론과는 다른 시각에서 의미체계를 구성해야 함을 일깨운다. 텍스트로서의 특정 아리랑에 대한 물음의 해답은 하나이다. 그러나 아리랑 문화로서의 물음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이다. 이 일본 속의 아리랑이 그렇다. 어찌 민요론적인 해석으로 답할 수 있는가? 역사적 전개와 맥락에서 아리랑을 조감해야 함을 실감한다. 아리랑은 전승과 창조적 계승에서 자발적이라는 사실과 역사적 지속성, 문화적 개성, 현실적 가치에서 탁월한 보편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유산과 다르다. 보편적이되 특수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오키나와로부터의 아리랑은 이런 현학을 떠나 더 높은 것이어야 함을 깨우쳐 준다. 만국진량(萬國津梁), ‘만국에 열려있는 가교’, 1458년 제작된 류큐국 종(鐘)에 세겨진 경구이다. 아리랑은 만국에 열려있고, 만국을 노래해야 한다. 그래서 만국에 통해야 한다. 만국을 위해! 누치토타가라! 생명 이상의 존귀함은 없다! 이 귀한 두 경구(警句)에 아리랑이 있어야 한다. 루치난추 대대로 내려오는 이 경구는 수없는 역사적 고난을 극복하며 얻은 진리일 터, 어쩌면 우리의 피, 우리의 아라리가 담겨있을 터! 누치토타가라 아리랑! 누치토타가라 아리랑! 누치토타가라 아리랑! www.arirangs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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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왜 우리는 일본의 아카지마 아리랑 고개로 가는가"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계 "왜 우리는 일본의 아카지마 아리랑 고개로 가는가" 등록 2015-02-06 09:25:51 | 수정 2016-12-28 14:32:32 【서울=뉴시스】일본 오키나와 현 미야코지마 시의 아리랑비 【서울=뉴시스】기미양 추진단장(아카지마 아리랑 평화음악제) = 만남은 언제나 설레임을 갖게 한다. 그 설레임이 비록 아픈 역사적 사실을 만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2월9일 일본 오키나와 현에 있는 ‘아리랑 고개’를 만나러 간다. 실재적 아리랑고개인 경북 문경새재를 노래하는 문경아리랑보존회와 함께 역사적 아리랑고개인 오키나와 아카지마 아리랑고개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아직 보름 정도를 남겼지만, 사단법인 문경아리랑보존회와 함께 문경새재를 찾아가서 만남의 설레임을 나눴다. 지난 24일 문경새재 제2관문 문경아리랑노래비 앞에서 송옥자 회장과 회원들의 아리랑을 들으면서 이 고개에 스며있는 외침과 전쟁의 상흔들을 기억해냈다. 고개는 변혁의 기점이다. 시작과 끝이 동시에 이뤄지는 곳이다. 그러므로 고개는 극단의 기점이기도하다. 전쟁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비로소 희망으로 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이 같은 땅의 수많은 고개는 문경새재로 상징된다. 고개 정상에 떨어진 빗방울이 반은 한강으로 가고, 반은 낙동강으로 가는 자연적 극점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지만 과거급제의 기쁘고 경사스런 소식을 듣는 고개가 문경새재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높은 민중사 격변의 기점이기도 했는데, 임진왜란 시 경복궁을 불태우고 평양으로 내닫게 한 배경은 신립 장군이 문경새재 방어를 포기한 까닭이었고, 경복궁 중수 7년 공사로 수난을 당한 삼남인들의 아픈 기억과 이후의 의병전과 동학혁명, 특히 한국전쟁 시 낙동강 방어선을 놓고 남북 군인은 물론 중공군과 미군을 비롯한 UN군의 격전으로 많은 피를 뿌린 문경 전투의 사연이 이 고개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문경새재아리랑의 “문경새재 박달나무는/ 홍두깨방망이로 다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는 이 같은 문경새재의 아픔과 상흔을 특산품의 상실감으로 표현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개를 넘어 가는 의지를 노래한다. 이렇게 아리랑은 문경새재가 자연적이고 실재적인 고개이면서, 심상적(心象的)이면서 역사적인 고개임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연유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오키나와 현의 작은 섬 아카지마 아리랑고개는 얼마나 아프고 또한 그 깊이만큼 높은 어떤 희망이 담겨있는지를 생각하면 설레임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 오키나와의, 아카지마의 아리랑고개도 문경새재의 사연만큼이나 깊고 높은 아픔과 희망을 담고 있지는 않을까? 3박4일 만나게 되는 ‘아리랑노래비’와 ‘아리랑고개’···. 내 땅이 아닌 일본의 외딴 섬에 있다는 이 아리랑노래비와 아리랑고개의 존재는 역사적으로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아리랑 사연으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의외의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서 만나, 알고, 이해하여, 이를 아리랑정신으로 승화시키려고 한다. 저항·대동·상생이란 아리랑정신으로! 【서울=뉴시스】아카지마아리랑평화음악제 추진단이 문경새재를 찾았다.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송옥자 회장과 회원들, 아리랑홍보대사 송미진, 문경아리랑경창대회 최연소 수상자 박주빈(당시 3세), 상여소리 명창 금명효, 기미양 단장, 유명옥·이인영 부단장, 이준용 다큐작가. <사진= 여행작가 엄문희> 아리랑정신의 승화는 아카지마 아리랑고개에서 세계적인 평화음악제를 개최하여 태평양전쟁 종전 70주년과 한일협정 5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새로운 미래 역사로 바꿔가는 것이다. 역사의 고개를 넘자는 것이다. 이의 추진을 위해 15명의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앞장서서 두 개의 고개를 통한 미래 역사를 새롭게 기록해 나갈 것인가를 확인하여 지속적인 교류를 준비할 것이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아카지마아리랑평화음악제 추진단’이란 이름으로 진용을 짰다. 위령제와 고국의 아리랑을 올리는 공연을 위해 밀양아리랑보존회(광복군아리랑)·㈔김애경무용단(초혼무 아리랑)이 함께 하기로 했고, 류쿠국과 ‘아라리’ 교류 및 한국전쟁 직전까지 미군 위문공연연예단의 아리랑 공연들을 조사하기 위해 아리랑학회와 ㈔한국전통음악치유협회가 참가하기로 했다. 그리고 관련 지자체 등에 보고하고 출판을 위해 영상 다큐팀(이준용)과 여행작가(엄문희)도 동행하기로 했다. 조선인 종군위안부 위안소와 조선인군부 강제수용소 조사 및 증언 기록은 이인영 선생과 송미진 선생이 맡고, 특별강의 ‘누치토타가라 아리랑 담론’ 강사로 아리랑연구가 김연갑 선생도 동행한다. 특히 일본 내 아리랑 역사유적지 전문여행 기획을 위해 ㈜세종해외관광여행사 한상준 대표도 동행한다. 이번 답사에 ‘문경새재아리랑마을’에 5대째 터를 잡고 있는 김순옥 여사의 “시아버지(송영철)가 일본 징용 시절을 회상할 때는 언제나 아리랑을 불렀다”는 증언, 상여소리 명창 금명효 선생의 “탄광부였던 아버지(금인수)가 부른 탄광아리랑에는 일본말이 들어있어 징용의 사연이 담겨있다”는 증언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설레임을 더해 주었다. 아카지마아리랑평화음악제가 아카지마를 ‘평화의 아리랑섬’으로 발신할 수 있기를 바라며 서울에서 온 추진단 일행은 문경을 떠나왔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남북 당국이 아리랑으로 막힌 교류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읽었다. 아! 또 하나의 역사적 아리랑고개를 마주하였다. www.arirang21.org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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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아리랑박사 김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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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기미양, 내가 만난 ‘아리랑 축제’ 현장·현장·현장인쇄하기 닫기 문화 > 공연/전시 기미양, 내가 만난 ‘아리랑 축제’ 현장·현장·현장 등록 2014-12-12 12:50:02 | 수정 2016-12-28 13:48:29 【서울=뉴시스】상주아리랑보존회 김동숙 회장. 서울 '2014 아리랑 판' 초청공연에서 상주아리랑을 열창하고 있다. 【서울=뉴시스】기미양 이사·아리랑학회 = 유네스코는 인류문화유산 '서정민요 아리랑'(Arirang, lyrical folk song in the Republic of Korea)의 다양성. 공동체성, 창조성에 주목했다. 이러한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2주년 기념행사가 전국적으로 개최되었다. 이 중 필자는 지난 4~5일 바쁘게 세 곳의 행사에 참여했다. 상주아리랑축제, 문경아리랑전수관 오픈식, 춘천의병아리랑 우석여중 공연이다. 모두 나름의 주제 하에서 자발적 전승을 실천하는 현장이었다. ◇상주아리랑, 영남아리랑과의 새로운 융합 현장 유네스코는 아리랑이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하는 '창조적 계승'에 주목했다. 아리랑 역사에서 창조적 계승 작품을 시대적으로 꼽는다면 그 첫째가 1926년 영화주제가 아리랑, 둘째가 1950년대 김옥심제 정선아리랑, 셋째가 1980년초 김소희에 의해 작창된 상주아리랑이다. 이 가운데 마지막 상주아리랑이 목하 주목을 받고 있다. 무용음악(김영희 작 '고난의 꽃 아리랑')으로의 장르 확산은 물론 통일아리랑(이광수 소리), 북간도아리랑(남은혜 소리) 등으로 '노가바'되고 있다. 메나리조에 육자배기조 융합의 묘가 이런 장르 확산현상을 낳고 있는 것이다. 상주아리랑축제는 이번이 세 번째로 1997년부터 김동숙 회장(69)을 중심으로 30여명의 회원으로 보존회가 구성되어 2008년 첫 행사를 개최했고, 2012년 12월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일인 12월5일 두 번째 행사를 개최했고, 금년 등재 2주년 기념으로 12월4일 세 번째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사단법인 영남아리랑보존회 6개 지부(상주·영천·대구·부산·봉화·성주)와 함께 하여 상주아리랑과 영남지역 아리랑의 새로운 융합을 꾀하였다. 상주시민과 영남 지역 아리랑의 이해와 자극을 통해 상주아리랑의 위상 확립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특히 관객과 소통하고 이해를 위해 해설이 있는 공연으로 필자가 맡아 진행했다. 나름으로는 상주아리랑의 융합정신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려 노력했다. 【서울=뉴시스】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아리랑 등재 2주년 기념, 12월4일 2014 상주아리랑축제. 상주아리랑보존회 김동숙 회장 초청으로 사단법인 영남아리랑보존회 6개 지부(상주·영천·대구·부산·봉화·성주)가 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행사는 '난타아리랑'으로 막을 열어 김동숙 회장의 상주아리랑으로 시작했다. 이어 사단법인 영남아리랑보존회 정은하 회장이 1936년의 대구아리랑과 2003년 자신이 작창한 대구아리랑을 열창했다. 이어 영천아리랑보존회 전은석 회장과 회원들의 영천아리랑, 조순분과 임옥자의 봉화아리랑과 성주아리랑, 부산아리랑보존회 김희은의 동래아리랑까지 이어졌다. 이외에도 북한에서 널리 불리고 있는 서도아리랑·영천아리랑·경상도아리랑·해주아리랑을 선보였다. 창작 아리랑으로는 독도아리랑, 부산아리랑, 달성아리랑이 소개되었다. 이렇게 상주를 중심으로 하여 영남의 아리랑 전승 활동이 역동적으로 융합하는 현장에 있었다. 2014 제3회 상주아리랑축제는 새로운 융합을 모색하는 아리랑시대의 한복판이었다. ◇문경아리랑 전수관 준공식 2010년대 들어 존재 부각에 성공한 지역 브랜드 중 문경아리랑은 수위로 꼽힌다. 이 과정에 오랫동안 문경아리랑을 전승해 온 송옥자의 존재는 분명하다. 박달나무가 문경새재를 상징했듯 문경아리랑은 송옥자(63·단법인 문경아리랑보존회 이사장)가 상징해왔다. 그래서 문경시는 2013년 음반 '고개의 노래 문경아리랑' 취입으로 송옥자의 위상을 인정했고, 이번 12월5일 문경아리랑보존회(회원 40여명)를 전승 단체로 인정하여 전수관을 준공, 기념식과 공연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상주 행사를 마치고 다음날 문경으로 넘어와 전수관 준공식에 참석했다. 송옥자 이사장은 축사에서 "오늘 아리랑 등재 2주년 기념일에 오랜 꿈이었던 전수관의 준공식을 갖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라고 했다. 고윤환 시장도 축사에서 "국립아리랑박물관건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여 그 열기를 확인했다. 이 열기 속에는 문경아리랑보존회의 견고한 공동체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아는 이들은 알고 있다. 【서울=뉴시스】12월5일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전수관 준공식. 송옥자 회장, 고윤환 문경시장, 기미양 이사 등이 참석했다. 문경아리랑보존회의 견고한 공동체성은 이날 기념식에서도 확인되었다. 회원 모두가 잔치음식을 집에서 손수 마련해 와서 함께 한 것인데 도토리묵과 두부가 양념장으로 맛을 더했고, 북어찜과 닭발찜이 특별 잔치임을 알렸다. 배추전, 식혜, 시루떡도 푸짐했다. 문경아리랑의 전승 의지에 답한 아리랑전수관 준공, 이에 다시 화답한 것이다. 이만한 잔치상이 또 있겠는가? 각박한 서울살이에 쪼들린 필자의 지나친 감상만은 아닐 것이다. 전국의 이런 저런 많은 전승 단체를 겪어온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이 공동체성은 소중한 아리랑정신의 하나인 대동정신의 바탕일 것이다. ◇의병아리랑보존회의 의로운 활동 강원과 경북 일대에서 불려지는 아라리에는 지명과 서사가 있는 사설이 있다. 의병사를 입증하는 구비(口碑) 사설 6수이다.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①춘천의 봉의산아 너잘있거라/ 신연강 뱃터가 하직일다 【서울=뉴시스】사단법인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송옥자 명창. 2010 한국구비문학대계 문경 편에서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민속아카이브 작업을 위해 문경새재아리랑 108수를 불렀다. ②귀약통 납날개 양총을 매고/ 벌업산 접전에 승전을 했네 ③우리나 부모가 날기르실제/ 성대장 줄려고 날길렀나 ④할미성(고모성) 꼭대기 진을치고/ 왜병정 오기만 기다린다 ⑤마고자 실갑에 양총을메고/ 북망산 접전을 가네 【서울=뉴시스】2014 의병아리랑 특별공연 현장 ⑥고부백산 접전시에/ 알뜰한 군병이 다죽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싸 아라리야 이 사설을 독립시켜 의병아리랑이라고 부른다. 아리랑으로서의 연속성(continuity)을 갖고, 호남 의병장 기우만의 직손 기연옥의 창조적 수용에 의한 변이(variation)로, 의병정신을 선택(selection)하여 부르는 것이다. 3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의병아리랑보존회 기연옥(62) 이사장이 2010년대 들어 차근차근 보급시키고 있다. 강원도와 춘천시의 후원으로 '2014 해설이 있는 의병아리랑' 순회공연을 종료하고, 유네스코 등재 2주년 기념으로 양구여중에서 특별공연을 가졌다. 체육관 조명과 음향의 부족함을 똘망한 여중생들의 눈빛으로 밝히며 유인석 의병장과 윤희순 여성 의병장의 활동상과 아리랑의 인류문화유산적 보편가치를 전했다. 의병아리랑·윤희순아리랑·춘천아리랑·의병살풀이 등을 20여 회원들의 자원(自願) 무료공연, 의로운 재능기부 활동이다. 강원지역 전계층에 보급을 넘어 제천, 문경, 장성 지역은 물론 중국 하얼빈과 러시아 연해주 동포사회까지 보급을 준비하고 있다. 금년의 강원도 10개 시군 순회공연을 통해 내용과 규모를 조정해왔다. 멀리뛰기를 준비한 것이다. 승용차로, 고속버스로 2박3일을 경북에서 강원도를 오르내렸다. 관객으로 또는 해설자로 만난 세 곳의 현장, 참으로 벅차게 마주했다. 이런 벅찬 현장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갈 것이다. 아! 아리랑,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박3일만 같아라! www.arirang21.org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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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아리랑답사-문경 "외국인과 함께 가는 아리랑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