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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당시 취재 다큐 "아리랑, 세계를 품다" (KBS 121209 방송)김치도 한복도 아리랑도 한국 고유의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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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문경아리랑제 5국5색 -산과 고개의 노래 -자료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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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양, "영화 주제가 <아리랑> 연구"영화 주제가 <아리랑> 연구 논문요약 이 논문은 영화 주제가 <아리랑> 연구를 통해 ‘주제가 <아리랑>’ 사설이 형성되는 상황과 사회문화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주제가 <아리랑>의 의미와 특성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새로운 아리랑인 ‘주제가 <아리랑>’이 근대 미디어에 의해 사회문화적으로 대중화 되는 과정에서 대중문화예술 전 분야로 확산되는 성격변화를 거치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주제가 <아리랑>은 모든 아리랑을 지칭하는 대표성을 부여받아 ‘아리랑’으로 통칭된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아리랑’의 문화적 코드에 대해 이해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아리랑’이 어느 시점에선가 남과 북, 그리고 한민족 동포사회에서 ‘민족공동체의 동질감과 사회적 통합을 갖기 위한 기저로 작용하여 상징적 지위를 부여받게 된 것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점에 유의하여 일차적으로 일반적으로 오래 전부터 불리어진 전통 민요로 잘못 알고 있었던 주제가 <아리랑>의 형성배경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민요로써의 <아리랑>, 주제가로써의 <아리랑>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서 나운규가 감독한 영화 <아리랑>과 주제가 <아리랑>에 대해 근대의 시각으로 심도 있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영화 <아리랑>의 작품론, 작가론 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있어 왔다. 그러나 민요 아리랑과 주제가 <아리랑>, 주제가 <아리랑>과 영화 <아리랑>은 불가분의 관계인데도 학계에서는 각각 개별적인 연구에만 머물러 왔다. 이 논문은 영화 서사구조 속에서 영화적 장치에 의해 의도적으로 작용하여 불리어지는 주제가 <아리랑>의 특성을 도출하려고 한다. 더불어 영화의 인기와 장기상영에 의해 주제가 <아리랑>이 사회문화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주제가 <아리랑>의 성격 변화를 규명하는, 주제가 <아리랑>에 대한 융합(hybrid)연구이다. 나아가 선행연구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그동안 국문학계, 영화학계, 민속학계, 음악학계 등에서 서로 타자의 입장에서 방치해왔던 주제가 <아리랑>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를 기대해 본다. 연구의 시각과 방법론은 영화 개봉 1926년을 기점으로 하여 이전의 ‘전승 아리랑’ 상황을 개괄하여 주제가의 형성과정을 인식하고, 영화 서사 구조 내에서 작용하는 주제가의 기능과 의미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영화개봉 전후 관련 자료와 나운규와 당시 영화 관계인들의 증언을 통해서, 기존의 4절과 발굴된 5절의 주제가 전 9절이 ‘나운규 작사, 김영환 편곡으로 이루어 졌고, 주제가 각 절이 영화적 장치에 의해 서사 구조 속에서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불려졌음을 재구성하여 확인하여 본다.ABSTRACTA study on the cinema Theme Song <Arirang> Kee Mee Yang Korean Language & Literature Sungkyunkwan University This study examines the conditions for the formation of the editorial of the 'Theme Song <Arirang>' and the process of it to expand socially and culturally by studying the movie Theme Song <Arirang>. Processing this, this study aims at defining the meaning and features of the Theme Song <Arirang>. In the process of the new Arirang called 'Theme Song <Arirang>' being popularized socio-culturally through modern media, it undergoes feature changes that permeates to all sectors of public cultural arts. Under such circumstances, Theme Song <Arirang> is commonly called 'Arirang' as the one that represents all Arirang songs. This aims at understanding the cultural code of 'Arirang' that continues until today based on such background. Through this, it is expected to define the application of 'Arirang' as a foundation for homogeneity of a race and social integration for North and South Korea, and in the Korean emigrant society, while defining how it receives a symbolic position. Considering these points in this study, while examining the background for the formation of Theme Song <Arirang> that was wrongfully known as a traditional folk song, <Arirang> is analyzed as a folk song and as a theme song. For this, there is a need for in-depth inquiry on the Theme Song <Arirang> and the movie <Arirang> directed by Na Woon-gyu from a modern approach. There has already been many studies made on the work and director of the movie <Arirang>. However, despite the fact that the folk song Arirang and Theme Song <Arirang>, and the Theme Song <Arirang> and movie <Arirang> are inseparable, the academic sector has for some reason only made individual studies on them. This study attempts to examine the features of the Theme Song <Arirang> that is intentionally used through cinematographic tools within the film's narrative structure. In addition, this is 'a Hybrid' study on the Theme Song <Arirang> and defines the changes of the features of the Theme Song <Arirang> in the process of which it becomes socio-culturally proliferated through the popularity and long runs of the film. Furthermore, integrated studies on the Theme Song <Arirang> that has been abandoned from the different perspectives of the traditional music sector, cinematography sector, folk study sector and music sectors can be expected by supplementing the problems with preceding studies. The visuals of the study and its methodologies becomes aware of the formative process of the theme song by summing up the situation of 'passed-down Arirang' prior to 1926 when the film was released and analyzes the functions and meanings of the theme song that is effective within the film's narrative structure. Based on relevant information before and after the release of the film and through the testimonies of Na Woon-gyu and film critics, verses 4 and 5 and verse 9 of the theme song were written by Na Woon-gyu and composed by Kim Young-hwan. In addition, it was reconstructed that these verses were intentionally placed in the narrative structure through cinematographic tools.Key Words : Traditional Arirang, Common Arirang, Jabga Arirang, Na Woon-gyu, Movie <Arirang>, Theme Song <Arirang>, New Arirang, Popular Song Arirang, Bonjo Ar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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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전시기 통속민요 아리랑의 문화적 성격과 가사의 주제양상/강등학1945년 이전시기 통속민요 아리랑의 문화적 성격과 가사의 주제양상/강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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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김산의 아리랑*총기획:김산연구회 *후원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아리랑세계화위원회/ *해설- 김연갑·기미양 *낭송- 김수희(영어)·김연갑(한국어) *소리- 김영임 *사진 및 문헌자료 제공- 벤처아리랑 *디자인 (주)신나라 디자인실 *캘리그라피- 강병인 *번역 :기미양/아리랑학회 *Planned by Synnara *Sponsors Korean Arirang Association Arirang globalization board Venture Arirang *Commentary by Yeongab Kim 쪾Meeyang Ki *Reciters Soohee Kim/Yeongab Kim *Singger Youngim Kim *Photos & Materials Venture Arirang *Design Synnara Design Dept. *Calligraphy Byungin Kang *English Translation by Andi Roselund *Editor Chungmyun Lee ---------------------------------------------------------------- Content 08 아리랑의 참다운 이해를 위하여 10 혁명가 김산, 아리랑을 노래하다 16 김산, 그는 누구인가? 18 김산연보 22 집필활동 24 <Song of Ariran>속의 아리랑 35 아리랑에 대한 인식 계기 42 In order to truly understand Arirang... 44 The Revolutionary Kim San Sings Arirang 48 Who is Kim San? 50 Chronology of Kim San 54 Kim San? Writings 56 The Arirang within 《Song of Ariran》 92출연자소개 01 아리랑, 심금을 울려주는 선율 Arirang, The Heart-String Ringing Melody 01-1 김영임 <아리랑고개> Youngim Kim <The Arirang Hills> 02 아리랑, 사형수의 노래 Arirang, The Song of a Death row Inmate 03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Death is not Defeat 04 아리랑, 위험한 노래 Arirang, A Dangerous Song 05 “나는 아리랑고개를 보았다” "I Saw the Arirang Hills" 06 조선의 혁명은 11월에……. The Revolution of Korea in November 07“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며 모두 울었다” "We Sang this Song and All Wept" 08 죽음과 패배의 노래 A Song of Death and Defeat 09 동포의 피눈물로 아로 새긴……. The Bitter Tears of Displaced Koreans 10“또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 "I Am Crossing the Arirang Hills Once Again" 11 활동사진 영화 <아리랑> <Arirang>, The Motion Picture 12 김영임 <아리랑연가> Youngim Kim <Love Song of Arirang> 12-1 아리랑연가 Love Song of Arirang 13김영임 <아리랑옥중가> Youngim Kim <Prisoner's Ballad of Arirang> 13-1 아리랑옥중가 Prisoner's Ballad of Arirang --------------------------------------------------------------------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다. 아리랑은 민요, 노래 그 이상의 절대적 가치를 지닌 노래로 ‘민족’, ‘ ‘조국’을 표상하는 노래이다. 이러한 아리랑의 위상과 의미를 부여한 이가 바로 1930년대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고 혁명가인 김 산이다. 그의 자전적 전기 <song of ariran>과 공동저자 님 웨일즈의 취재노트 <연안 노트> 에서 확인된다. (기미양) “조선에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려 주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이 담겨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오랫 동안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김산) #김산 #아리랑 #기미양 #김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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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 지역 아라랑음반 총기획(1999-2020)<아리랑 음반 기획> (기획:아리랑학회/ 해설:김연갑 기미양/ 발매:신나라 뮤직) 01. 1999년03월01일 음반 남북 공식음원 협약에 의한 제1호 <북한아리랑> 공동기획, 공동제작 02. 2002년12월 음반<일본속의 아리랑 >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3. 2002년03월 음반<최은진의 다시 부르는 아리랑>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4. 2003년06월 음반<남북아리랑의 전설> >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5. 2003년11월 음반<3대가 부른 진도아리랑>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6. 2003년12월 음반<탄생, 대구아리랑>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7. 2004년05월 음반<3대가 부르는 정선아리랑>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 08. 2006년06월 음반<연변아리랑:아리랑랑랑> >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9, 2006년03월 음반<정선아라리3대명가>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0. 2007년03월01일 음반 <김산의 아리랑>(영문해설)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1. 2007년07월20일 음반 <영남아리랑의 재발견>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2. 2010년10월01일 음반 H.B. 헐버트 <쌀의 노래 아리랑>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3. 2010년10월01일 음반<밀양의 명물 밀양아리랑>기획, (영문번역). 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4. 2011년03월01일 유네스코아리랑등재신청기념음반<최영숙의 아리랑> (일문 영문 중문 번역)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5. 2012년 유네스코아리랑등재신청기념음반 <남은혜의 공주아리랑> (일문 영문 중문 번역)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6. 2012년 유네스코아리랑등재신청기념음반 <남은혜의 북간도아리랑> (일문 영문 중문 번역)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7. 2012년12월 유네스코아리랑등재신청기념음반 <구동존이 유지숙의 아리랑>(중문, 영문 번역)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8. 2012년12월05일 유네스코아리랑등재기념음반 <역사적 기억의 전승, 의병아리랑> (중문 영문번역) 기획/해설 19. 2013년08월15일 음반<고개의 노래, 문경아리랑>(영문 중문 일문 번역) 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20. 2014년06월12일 음반<남은혜의 아리랑>(영문 중문 일문 번역/국제음성기호 수록) 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21 2015년 실사구시 서울아리랑- 음반기획 및 해설 22. 2019년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음반기획 및 해설 23. 2019년~2020년 한러수교30주년 기념음반 -------이혜솔 아리랑-------음반기획 및 해설 진행중 24 .2020년 카레이스키아리랑: 한러수교30주년 기념음반--------------------음반기획 및 해설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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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옥 남은혜 권정희 노래·김연갑 기미양 해설 '렉처 8도 아리랑'…호응↑인쇄하기 닫기 사회 > 교육/취업/노동 기연옥 남은혜 권정희 노래·김연갑 기미양 해설 '렉처 8도 아리랑'…호응↑ 등록 2013-09-14 18:55:18 | 수정 2016-12-28 08:03:53 【서울=뉴시스】왼쪽부터 김연갑 상임이사, 기미양 연구이사, 권정희 명창, 남은혜 명창, 김찬구 관장 【서울=뉴시스】오제일 기자 = 연구자와 실연자가 아리랑의 진면목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서초구립 반포도서관(관장 김찬구)이 지난 12일 도서관 1층 다목적실에서 '렉처 8도 아리랑'을 펼쳤다. 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가 기획하고, 기연옥(의병아리랑보존회) 남은혜(공주아리랑보존회) 권정희(강릉아리랑보존회) 명창이 공연했다.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이날 특강에서 "아리랑의 특징은 자생적 계승에 있는데, 이는 중요한 전통문화 계승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7개 코드로 읽는 아리랑문화'를 주제로 아리랑의 속성, 특징, 이유, 가치, 유네스코 등재, 원칙, 그리고 '누가?'를 강의했다. 아라리(정선·강릉 아리랑)의 시원성(始原性), 문경·의병 아리랑의 변혁성, 밀양아리랑의 동시대성, 진도아리랑의 즉흥성(토속성), 본조아리랑의 보편성, 영천아리랑의 역동성, 상주·대구·공주 아리랑의 창의성(도시성) 등 특징도 정리했다. 또 전승지역의 광역성(지역초월), 전승기층의 견고성(전세대성), 전승사설의 적층성(積層性), 전승주최의 자발성(커뮤니티 중심) 등 아리랑이 생명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도 제시했다. "왜 아리랑을 부르는가? 한의 정서를 수렴하고, 모순에 대한 저항을 발현시키고, 극단을 차단하고, 고난에 대한 극복의지를 추동(推動)시켜주기 때문"이라는 김 이사의 설명에 참석자들은 특히 공감했다. 춘천에서 의병아리랑보존회를 이끌며 지난해 음반 '의병아리랑'을 발표한 기연옥 명창은 토속적이고 텁텁한 목소리로 춘천 의병아리랑과 윤희순 의병아리랑을 노래했다. 아리랑의 역사와 의병사의 만남을 통해 풍찬노숙 전쟁통에도 아리랑이 불려진 이유를 확인시켰다. 【서울=뉴시스】아리랑 명창들과 함께하는 '렉처 8도 아리랑' 올 여름 북간도를 답사하고, 공주아리랑과 북간도아리랑을 녹음 중인 남은혜 명창은 힘찬 통성으로 공주 엮음아리랑을 들려줬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1940년대 초 이주한 이후 평생 만나지 못한 친정 식구들을 그리워 한 곳이 북간도"라는 사연도 전했다.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장단과 경기민요를 전공한 권정희 명창은 정선아라리와 강릉아리랑에 메나리조 토속 정조를 담았다. "강원도는 메나리조 소리를 바탕으로 강릉·삼척·고성 아리랑으로 지역명을 달아 부른다"는 해설과 함께 즉석에서 가사를 지어 부르기도 했다. 공공기관이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개설하는 '렉처 8도 아리랑'은 전국 곳곳으로 이어진다. kafka@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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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 아리랑' 마침내 탄생, 안중근 동양평화론 현장 가다인쇄하기 닫기 국제 > 아시아/대양주 '안 의사 아리랑' 마침내 탄생, 안중근 동양평화론 현장 가다 등록 2014-07-28 07:45:00 | 수정 2016-12-28 13:07:48 【서울=뉴시스】"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쾌거 현장이다. 【서울=뉴시스】기미양 이사(아리랑학회) = 매년 해외 ‘아리랑 루트 확정’을 위한 한민족 이주사 현장 답사를 해오고 있다. 올해는 안중근의사숭모회와 안중근의사기념관 주관으로 ‘제10기 안중근 의사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단’에 지도위원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7월 8일부터 15일까지 7박8일 동안 러시아와 중국 동북삼성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하고 왔다. 지난해 8월 북간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어 올해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 조·중·러의 국경지대 훈춘과 동북삼성을 중심으로 하얼빈까지 안중근 의사의 행적을 따랐다. 이 중에 핵심은 러시아 지역은 블라디보스토크 우스리스크 크라스키노, 중국은 훈춘 연길 하얼빈, 대련(여순)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집단거주지 신한촌과 우수리스크 최재형 정착지, 그리고 안중근 의사 의거현장인 중국 하얼빈역, 순국 장소인 뤼순 감옥은 숙연한 마음으로 답사를 했다. 모두 세계사 변혁기라는 맥락에서 수난사의 정점이고 최후를 마친 곳이라는 점에서 추모와 정신 계승이란 의무감 때문이었다. 특히 올해는 러시아 이주 150년이 되는 해이어서 더욱 뜻 깊었는데, 지난 6월18일 사단법인 고려인돕기운동본부의 초청으로 고려인 124명이 고국방문을 함께하여 러시아 150년 이주사를 되새기는 기회도 가졌다. 8월15일에는 비로비쟌에서 광복절 기념공연을 ‘아리랑’을 주제로 한다는 소식을 접하였는데, 미주 이주 100년 기념을 아리랑으로 했듯이 러시아 이주 150년 기념도 아리랑으로 하는 아리랑의 역사성을 되새기는 뜻 깊은 해임을 절감했다. ◇독립운동의 아버지, 최재형의 나라 연해주 연해주에서는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을 고리로 안중근 의사와 13도 의군의 유인석 대장의 활동을 확인하는 곳이다. 이 곳을 인천에서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하여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이 분들은 상상을 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송구스럽기도 했고, 감격스럽기도 했다. 전자는 민족 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풍찬노숙을 각오하고 백두산을 넘어 간 경로가 아득하고 처참한 생각이 들어서고, 후자는 님들의 희생으로 만든 나라의 후손들이 단숨에 건너 백년역사를 단 며칠 만에 답사할 수 있는 세상임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연해주는 해삼위, 노령, 블라디보스토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듯이 이주의 루트가 다양했다. 비행장에서 버스로 1시간 이동으로 다다른 신한촌(유적비)은 1863년 한인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형성되어 많은 후손을 키워 낸 곳이지만 일제와 러시아 정부에 의해 처참한 박해로 목숨을 묻은 곳이다. 그리고 드디어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그 이름 ‘신한촌’으로 역사 속에 각인시켜 유적비를 남긴 곳이다. 그나마 이 유적비조차도 1999년에 3·1 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세운 것이다. 비문에 새겨져 있듯 13도 의군 창설, 1919년 망명정부(대한국민의회) 수립으로 대일항쟁의 의지를 불태운 곳이다. 지난해도 들렀던 곳이지만 1910년대 해외 독립운동 기지의 중요한 거점으로 항일역사가 응축된 역사현장인 것이다. ‘독수리전망대’에서 바라본 역사적 기억은, 조국에서 들어오는 이들과 중국에서 들어오는 한인들이 약속지점으로 삼은 뜻 깊은 곳이다. 물론 이 ‘약속’은 오늘 같은 시간 단위가 아니라 길게는 계절, 짧게는 상순·하순 정도였으니 약속 자체가 곧 기다림이었던 것이다. 이곳은 고려인들에게는 눈물과 웃음이 다 마른 이들이 뜬 눈으로 서성였던 처소였다. 해외 한인 유적지 가운데 만남의 장소로 중국 연변 일송정과 함께 매우 특별한 유적지이다. 이 독수리전망대를 내려와 혁명광장으로 이동하여 ‘혁명의불’을 찾았다. 이 기념 불꽃은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 붉은광장에도 있어 사회주의 국가의 상징이 되었는데, 나는 이번에 다른 시각으로 보기 위해 찾았다. 그것은 ‘아리랑의 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연추 하리마을-연해주에서는 1905~1908년 두만강 대안인 연추지역(크라스키노)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지난해에 이은 10월1일 ‘아리랑의 날’을 기념하여 금년 9월 중순 쯤 태백산에서 채화하여 전국 지회로 순회하여 모시는 ‘아리랑의 불’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의 불은 혁명의 기념물이지만 우리는 ‘아리랑의 불멸성’을 기리려는 것이다. 이 ‘혁명의 불’은 가스로써 태풍에도 꺼지지 않게 기술적 완벽성을 갖췄다는데 해군이 관리하고 있다. 기술적인 설명은 찾을 수가 없었지만 개념정도는 확인하여서 소득이 있었다. ◇라즈돌노예 역, 치르치크 아리랑 9일 전용버스로 우수리스크로 이동하던 중 라즈돌노예 역사를 들렀다. 1937년 9월의 강제이주를 증언해 주는 곳이다. 사할린 지역에 사는 동포까지 불러온 이들을 이곳 역에서 태워 출발한 이주의 현장이다. 그날의 절망과 고난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지난 번 방문에서도 생각했지만, 이곳에서부터 중앙아시아까지의 가혹한 여정을 아리랑으로 서사화한 작품을 만들어 교민들과 남북한이 함께 하는 공연을 정례화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다.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임에야 이런 역사적 현장을 보듬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신허(한인 최초의 마을)를 경유하여 크라스키노 전망대에서 최재형, 이범윤, 안중근, 유인석 선생 등의 활동이 집약된 대표적인 연추(Ianchikhe) 마을을 보았다. 연추하(延秋河)가 흐르고 있고, 상·중·하 세 마을이 보였다. 이 마을들은 북한과 러시아 국경인 두만강과 가까워 일대 한인마을 중 가장 많은 한인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지금은 사라진 연해주 최초의 한인마을인 지신허와 함께 대표적인 고려인 마을이다. 특히 연추는 안중근 의사가 최초로 의병을 창설하기 위해 찾은 해외 의병사의 메카이다. 의병들이 조국과 중국의 훈춘, 북간도 등을 오갈 때면 반드시 거쳤던 곳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1908년 봄 최재형, 이범윤, 이위종 등 한인 지도자들과 동의회(同議會)를 조직한 의병 본부지가 있었던 곳이니 중요한 유적지이다. 당시 많은 고려인 마을이 있었다는 곳이지만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러시아 극동식 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연해주 남쪽지역 최초의 한인마을 지신허를 중심으로 남북 수십리, 동서 사오리를 흐르는 지신허강 주변은 아름다운 곳이다. 상상 만으로도 고려인들이 자리를 잡을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크라스키노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를 마주했다. 연해주에서 버스로 4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러시아·북한 국경지역인 추카노프카라는 마을로 두만강이 멀지 않은 민간인통제구역이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2월 동료 11명과 함께 왼손 무명지를 끊어 단지회(斷指會; 일명 단지동맹)를 결성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것을 맹세하며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 네 글자를 썼던 역사의 현장이다. 비문을 읽고 해설을 들으며 격분과 함께, 의혈의 안 의사 모습을 그리며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역사를 뜨겁게 만나다’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비에 새겨진 글이 선연한 핏빛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직계 조상 기정진, 기우만, 기산도, 기삼연님들의 의병활동이 안 의사의 활동과 오버랩 되어 자긍심을 맛보기도 했다. 크라스키노 국경 세관에서 러시아 출국수속을 마치고 국경을 넘고 다시 장영자 세관을 거쳐 훈춘으로 들어갔다. 조·중 경계선인 도문시에서 대동강 너머 북한 산하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민족사의 비감을 오늘에 되짚어 보는 곳이었다. 일정을 위해 쉬지 않고 봉오동 전투 승전지를 탐방하고 다시 연길로 이동하여 항일유적지를 탐방했다. ◇코레아 우라! 【서울=뉴시스】안중근의사기념관앞에서.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주최한 제10기 안중근 의사 국외독립운동 사적지 탐방단. 돈화에서 하얼빈행 기차를 탔다. 장장 8시간, 기내숙박(6인1실)으로 하얼빈 평방역에 도착했다. 먼저 찾은 곳이 731부대(죄증박물관)이다. 끔직한 생체시험과 화학실험을 자행한 일제의 잔혹상을 상징하는 곳이다. 건물도, 비치된 유물도, 모두 일그러진 고통스런 얼굴 형상으로 보이는 것은 나 만의 느낌일까? 오래 있기가 싫었다. 일제의 망령이 깊게 전해져 안 의사 유적을 찾는 걸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드디어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도착했다. 국내의 보도를 통해 본 것보다 위용이 느껴져 뿌듯했다. 1909년 10월26일의 장거를 기념하는 뜻 깊은 기념관이다.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기 위해 삼년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목적을 도달치 못하고 죽노니 우리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자 분발하여 …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원한이 없겠노라”는 것이 안 의사의 유언이었고, 소망이었다. 이 문구는 우리 모두를 압도했다. 이 앞에서 누군들 떳떳할 수 있겠는가? 단지 마음을 다듬어 역사 만이라도 바로 보는 자세를 갖출 뿐이었다. 교과서의 흑백사진과 몇 년 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기차에서 내리는 이토의 모습을 떠올랐다. 1907년 연해주에 도착한 안 의사는 단지동맹에서 맹세한대로 3년 내에 이토를 처단하리라고 다짐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1909년 10월26일 이토가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와 회담을 위해 온다는 정보를 듣고 동지들과 치밀한 준비를 했다. 하얼빈역에서의 거사는 안 의사가 맡기로 했다. 드디어 운명의 순간, 예상대로 이토는 기내에서 회담을 마치고 하얼빈 총영사, 궁내대신 비서관, 만주철도주식회사 이사의 호위를 받으며 러시아 의장대를 향해 내려섰다. 순간 사열대와 환영군중의 뒤편에서 숨죽이고 있던 안 의사의 권총이 국모시해 국권침탈 국적(國賊) 이토(伊藤博文)를 향해 불을 뿜었다. 세 번의 총성이 울렸다. 이어 이토는 물론 주변의 몇 명이 함께 비틀거렸다. 총성으로 대열이 흩어지고 급기야 러시아 의장대와 호위대가 안 의사를 덮치듯 달려들었다. 이에 안 의사는 당당하게 마주하며 외쳤다.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총성보다 더 크고 장렬하게 ‘대한만세, 대한만세’를 외친 것이다. 대한국(大韓國) 의병(義軍) 참모중장(參謀中將), 특파독립대장 겸 아령지구군사령관으로서의 당당한 군사활동이었다. 안 의사가 총을 쏜 장소에는 ‘삼각형’, 이토가 코코프체프 쪽으로 쓰러진 자리에는 ‘사각형’ 표시가 되어 있다. 위대한 대한국 의병대장 거사 현장이 이 두 가지 표시로만 증거하니 소중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인류문명 발상지가 한 점 샘(泉)으로만 증거하듯, 위대한 동양평화 정신 발양지도 이 두 점으로만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뉴시스】하얼빈시 조선민족예술관 강월화 관장(왼쪽)에게 문경아리랑, 구동존이 아리랑, 의병 아리랑, 남은혜의 아리랑 음반을 기증했다. 강 관장은 조선민족예술관 2층 안중근 의사 기념실이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이전하기까지 모든 책임을 맡았다. 2014년 첫 번째 아리랑로드 확정을 위한 하얼빈 지역 답사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의 현장 답사였다. 이제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기념 제1호 아리랑 음반, ‘역사적 기억의 전승, 의병아리랑’ 음반을 제작하며 미진했던 중국과 러시아 지역 의병유적지 답사에 대한 숙제를 마쳤다. 그리고 완성을 미룬 ‘안 의사 아리랑’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야 아리랑 얼쑤 아라리야 (후렴) 왜놈과는 하늘 아래 살 수가 없어 팔걷고 뛰어나와 의병되었네 동양평화 하자하자 외치는 소리 하늘땅 온세상 진동하누나 다섯발 내디뎌 도적 쓰러트리니 【서울=뉴시스】단지동맹비.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기념, 2001년 10월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설치했다. 동양평화 대역사 시작하였네 서릿발 칼날같은 저 용맹 아무르 흑룡강에 흐르고 흘러 아므르 흑룍강 흐르고 흘러 동해바다 향해 아리아리 아라리야.’ 나는 이 ‘안 의사 아리랑’으로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가슴에 담았다. 소란함 속에서 아리랑을 읊조린다. ‘동양평화 하자하자 외치는소리, 하늘땅 온세상 진동하누나.’ 이번 귀한 기회를 준 안중근의사숭모회와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감사드린다. 동시에 소중한 담론을 공유하게 해준 참여자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kibada@naver.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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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메일] 문경새재아리랑 전국 확산…방송·음반 발매 기록 발견문경새재아리랑 전국 확산…방송·음반 발매 기록 발견 매일신문 배포 2017-11-03 00:05:01 | 수정 2017-11-03 00:05:01 조선일보 1939년 1월 19일 자에 실린 문경새재아리랑 음반 광고. 1896년 서양 악보로 최초로 채록돼 세계에 알려진 '문경새재아리랑'이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전국적으로 라디오 방송을 타고 음반으로도 발매됐다는 기록이 무더기로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연갑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와 기미양 한국아리랑학회 이사는 2일 문경새재아리랑이 1938년 7월 17일 오후 8시 KBS라디오 전신인 조선방송(JODK)에 방송됐고, 영국의 레코드사가 취입해 음반으로도 내놓았다는 당시 조선일보 기사와 광고를 비롯한 방송자료를 발견해 매일신문에 공개했다. 이들 자료는 조선일보 ▷1930년 7월 12일 자 김재철 씨의 글 ▷1938년 7월 17일 자 라디오방송 프로그램 표 ▷1939년 1월 19일 자 레코드사 포리도루(Polydor Records)의 문경새재아리랑 음반 광고 등이다. 자료를 종합하면 조선방송의 제2조선어 방송 국악 프로그램에서 문경새재아리랑의 국악 곡명 '문경새재'가 '진도아리랑'과 함께 당시 최고 연주자의 반주와 명창의 소리로 방송됐다. 방송 몇 개월 후 포리도루 레코드사가 '문경새재' 곡명으로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김 이사는 "당시 음반 유통 방식은 음반 취입 전후 방송을 통해 알리고 음반과 축음기를 판매하는 관례 그대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음반 발매 시점은 1938년 7월부터 11월 사이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레코드사 포리도루는 1924년 영국에서 설립된 회사로 1926년 일본에 진출했고 1931년부터 조선에 진출해 조선 음악을 발매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문경새재'의 음반 취입자는 영남지역 소리꾼으로 유명했던 임소향(1918~1978)이다. 경북 김천 또는 성주군 초전면 출신으로 알려진 임소향은 해방 이후 월북해 북한의 민족성악가수로 활동했다. '문경새재 박달나무는'으로 시작하는 문경새재아리랑은 '문경새재는 몇 구비드냐~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로고나' 등 3절까지 소개되면서 방송과 음반발매 등으로 일제강점기 때 전국에 널리 불렸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김 이사는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문경새재아리랑은 헐버트 선교사가 서양 악보로 채보하기 시작한 1890년대부터 1930년대 방송을 타고 임소향이 음반을 낸 이후인 1940년대까지 서울 경기 지역에서 널리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만일 임소향이 월북하지 않았다면 문경새재아리랑은 해방 후에도 전국에서 널리 불렸을 것이다"고 했다. 문경시는 7일부터 시작되는 제10회 문경새재아리랑제에 이 자료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문경 고도현 기자 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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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으로 활짝 연 새해,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지역아리랑 활성화'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일반 아리랑으로 활짝 연 새해,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지역아리랑 활성화' 등록 2016-02-12 11:41:45 | 수정 2016-12-28 16:35:45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지원한 '지역 아리랑 활성화' 사업이 전국을 들썩였다. 지난달 집중적으로 공연, 새해 벽두부터 방방곡곡에 아리랑이 울려퍼지게 했다.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회장 정은하)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대구·영남아리랑 얼씨구 한마당!'을 펼쳤다. 매년 대구아리랑경창대회 지정곡인 1936년 최계란본 대구아리랑과 2000년 정은하본 대구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아리랑을 망라했다. 성주아리랑보존회(회장 임옥자)가 참외를 들고 부른 성주아리랑, 광복군아리랑, 밀양아리랑에 객석이 환호했다. 아리무용단 김나영 단장, 전 영남대 김경혜 교수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시민들은 대구아리랑을 흥겹게 따라부르고, 추임새를 주고받았다. 전은석 회장(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른 영천아리랑의 역동성이 영남 소리의 멋을 더했다. 대구에서는 젊은 소리꾼들이 아리랑을 이어가고 있다. 곽동현, 오은비, 김명진 등이 국내외에서 활약 중이다. 아리랑학회 기미양 이사는 "아리랑의 원소스멀티유스 실례를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한 무대"라고 평했다. ○…공주아리랑보존회(회장 남은혜)는 공주문예회관에서 '해설이 있는 공주아리랑'을 선보였다. 다듬이 공연으로 무대를 열었다. 제1부 공주아리랑 한마당에는 공주에 전래돼 오는 산아지타령과 긴·엮음·잦은 공주아리랑이 모두 모였다. 남은혜 명창은 장기인 긴아리랑과 김옥심제 정선아리랑을 들려줬다. 2부는 '역사의 노래 아리랑'을 담아냈다. 긴아리랑, 정선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북간도아리랑, 치르치크아리랑이 메아리쳤다. 공연을 해설한 기미양 이사는 "북간도아리랑, 치르치크아리랑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남 명창의 가족사가 아리랑으로 연결된 고리가 현 남은혜의 소리 인생이 됐다. 1935년 이후 북간도로 집단이주한 남 명창의 가족사가 북간도아리랑으로 확장됐고, 2012년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신청을 기념해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고려인아리랑페스티벌에 참여하고 돌아와서 고려인이 애창하는 치르치크아리랑을 작곡, 이듬해 방문 무대에서 헌사하게 된다. 개인의 가족사가 민족사로 승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공주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대외 활동이 많은 공주아리랑 전승자 남 명창을 주목했다. 치르치크아리랑을 작곡한 이병욱 교수도 참석했다. 최연소 창자인 조아해(8)와 누나 조아랑, 미국에서 온 라파엘(24·원어민 교사)의 이색무대도 관심을 모았다.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기연옥)는 춘천박물관 강당에 '해설이 있는 춘천의병아리랑'을 올렸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지원한 '지역 아리랑 활성화' 사업이 전국을 들썩였다. 지난달 집중적으로 공연, 새해 벽두부터 방방곡곡에 아리랑이 울려퍼지게 했다.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회장 정은하)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대구·영남아리랑 얼씨구 한마당!'을 펼쳤다. 매년 대구아리랑경창대회 지정곡인 1936년 최계란본 대구아리랑과 2000년 정은하본 대구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아리랑을 망라했다. 성주아리랑보존회(회장 임옥자)가 참외를 들고 부른 성주아리랑, 광복군아리랑, 밀양아리랑에 객석이 환호했다. 아리무용단 김나영 단장, 전 영남대 김경혜 교수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시민들은 대구아리랑을 흥겹게 따라부르고, 추임새를 주고받았다. 전은석 회장(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른 영천아리랑의 역동성이 영남 소리의 멋을 더했다. 대구에서는 젊은 소리꾼들이 아리랑을 이어가고 있다. 곽동현, 오은비, 김명진 등이 국내외에서 활약 중이다. 아리랑학회 기미양 이사는 "아리랑의 원소스멀티유스 실례를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한 무대"라고 평했다. ○…공주아리랑보존회(회장 남은혜)는 공주문예회관에서 '해설이 있는 공주아리랑'을 선보였다. 다듬이 공연으로 무대를 열었다. 제1부 공주아리랑 한마당에는 공주에 전래돼 오는 산아지타령과 긴·엮음·잦은 공주아리랑이 모두 모였다. 남은혜 명창은 장기인 긴아리랑과 김옥심제 정선아리랑을 들려줬다. 2부는 '역사의 노래 아리랑'을 담아냈다. 긴아리랑, 정선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북간도아리랑, 치르치크아리랑이 메아리쳤다. 공연을 해설한 기미양 이사는 "북간도아리랑, 치르치크아리랑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남 명창의 가족사가 아리랑으로 연결된 고리가 현 남은혜의 소리 인생이 됐다. 1935년 이후 북간도로 집단이주한 남 명창의 가족사가 북간도아리랑으로 확장됐고, 2012년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신청을 기념해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고려인아리랑페스티벌에 참여하고 돌아와서 고려인이 애창하는 치르치크아리랑을 작곡, 이듬해 방문 무대에서 헌사하게 된다. 개인의 가족사가 민족사로 승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공주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대외 활동이 많은 공주아리랑 전승자 남 명창을 주목했다. 치르치크아리랑을 작곡한 이병욱 교수도 참석했다. 최연소 창자인 조아해(8)와 누나 조아랑, 미국에서 온 라파엘(24·원어민 교사)의 이색무대도 관심을 모았다.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기연옥)는 춘천박물관 강당에 '해설이 있는 춘천의병아리랑'을 올렸다. 춘천에 전래되고 있는 춘천의병아리랑과 창작아리랑인 윤희순의병아리랑, 춘천의병아리랑, 홍천아리랑, 평창아리랑, 인제뗏목아리랑 등 강원도의 다양한 아리랑이 율동과 함께 흘러나왔다. 아리랑 춤을 비롯, 정선아라리, 홍천아리랑, 평창아리랑, 아리랑 부채춤 등 다채로운 무대가 이어졌다. 아리랑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엄찬호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사회를 봤다. 기연옥 회장이 매년 추모 행사에서 부른 천안함용사아리랑, 안중근 장군을 기리는 안의사아리랑 활동도 소개됐다. 의병아리랑후원회, 최동용 춘천시장, 김진태 국회의원, 서인자 춘천보훈지청장, 유호순 시의회 부위원장, 최성현 도의원, 이종호 광복회장, 황용기 무훈수훈회장, 6.25참전우회장, 춘천시광복회장, 유연경, 윤희순기념사업회장, 아리랑학회 등이 성원했다. 춘천의병아리랑 배우기, 시민들과 함께 부르는 춘천의병아리랑으로 막을 내렸다. ○…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회장 김은희)는 부산시민회관에서 '2016 부산동래아리랑제'를 펼쳤다. 제1부는 문헌에 있는 부산아리랑, 음반에 있는 동래아리랑, 2부는 영남의 아리랑 중 영천아리랑, 상주아리랑, 예천아리랑, 광복군아리랑, 독립군아리랑, 창작아리랑인 평화아리랑, 신부산아리랑으로 이뤄졌다. 사물놀이로 막을 올린 무대는 조상영 웃음소리박사의 사회와 기미양 이사의 해설로 진행됐다. 일제강점기 부산부(府)가 설치될 때까지 동래가 곧 부산이었던 역사와 일제강점기 동래중학교의 항일운동이 소개됐다. 기 이사는 "부산은 아리랑의 도시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성공으로 부산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주목 받았다. 올해가 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이다. 나운규의 영화인생은 배우에서 시작된다. 독립운동을 하다 1년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1923년 출감해 부산으로 와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연구생이 된다. 이후 시나리오와 영화 주제가는 바로 이곳 부산에서 구상, 완성된다"고 밝혔다.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회장 송옥자)는 문희아트홀에서 '문경새재아리랑 새재를 넘다'를 선보였다. 20여년 동안 문경새재아리랑을 전승해 온 송옥자 회장의 굴곡진 세월로 눈물의 콘서트가 됐다. 정은하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 영남아리랑보존회 이옥자 성주지회장, 김동숙 상주지회장, 정봉남 달성지회장, 우종현 경산지회장 등이 참석해 공연을 축하했다. 축원무와 아리랑 무용에 이어, 문인협회 이만유 작 '문경새재는 아리랑고개'를 황인필 시인이 낭송했다. 함수호 문경전통예술단 지휘자의 장구 반주에 맞춘 퓨전 문경새재아리랑도 주목받았다. 문경새재아리랑 송옥자 전승자와 회원들은 헐버트아리랑, 문경찻사발아리랑, 문경농요, 문경의 아라리 등을 스토리텔링화 해 퍼포먼스와 곁들여 공연하며 박수를 받았다. 문경시 최석홍 행정복지국장은 "문경시는 지난해 12월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아리랑 도시 선포식을 갖고 아리랑도시 협의체 구성, 361개 경로당에 아리랑 보급, 아리랑 비림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그 기초는 문경새재아리랑으로, 이를 오늘날까지 보존 전승해 온 송옥자 선생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정은하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은 "송옥자 선생을 만난 것은 1991년 경상북도 공무원교육원에서"라며 "그때부터 송 선생이 문경새재아리랑을 불렀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문경시민들이 송옥자 선생을 잘 지켜 달라"고 청했다. ○…공주아리랑연구회(회장 이걸재)는 공주문화원 대강당에서 '병신년 새봄맞이, 공주-아리랑세상'을 펼쳤다. 제1부에서는 공주 잦은아리랑과 예울림 휴양마체험단(우성면 봉현·안양리), 공주아리랑연구회, 우정출연 한 논두렁밭두렁 회원들이 부르는 공주 긴아리랑과 공주 엮음 아리랑, 그리고 새아리랑을 선보였다. 2부에서는 백두산아리랑과 냉산모판아리랑, 3부에서는 이걸재 회장과 회원들이 창작아리랑인 이걸재시·최병숙 작곡의 민요조 엄니 아리랑, 사랑 아리, 어울렁 더울렁, 해 떠온다 등 새로운 노래를 불렀다. 관객과 모든 출연자가 함께 공주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을 연곡으로 노래하며 막을 내렸다. realpaper7@newsis.com 춘천에 전래되고 있는 춘천의병아리랑과 창작아리랑인 윤희순의병아리랑, 춘천의병아리랑, 홍천아리랑, 평창아리랑, 인제뗏목아리랑 등 강원도의 다양한 아리랑이 율동과 함께 흘러나왔다. 아리랑 춤을 비롯, 정선아라리, 홍천아리랑, 평창아리랑, 아리랑 부채춤 등 다채로운 무대가 이어졌다. 아리랑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엄찬호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사회를 봤다. 기연옥 회장이 매년 추모 행사에서 부른 천안함용사아리랑, 안중근 장군을 기리는 안의사아리랑 활동도 소개됐다. 의병아리랑후원회, 최동용 춘천시장, 김진태 국회의원, 서인자 춘천보훈지청장, 유호순 시의회 부위원장, 최성현 도의원, 이종호 광복회장, 황용기 무훈수훈회장, 6.25참전우회장, 춘천시광복회장, 유연경, 윤희순기념사업회장, 아리랑학회 등이 성원했다. 춘천의병아리랑 배우기, 시민들과 함께 부르는 춘천의병아리랑으로 막을 내렸다. ○…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회장 김희은)는 부산시민회관에서 '2016 부산동래아리랑제'를 펼쳤다. 제1부는 문헌에 있는 부산아리랑, 음반에 있는 동래아리랑, 2부는 영남의 아리랑 중 영천아리랑, 상주아리랑, 예천아리랑, 광복군아리랑, 독립군아리랑, 창작아리랑인 평화아리랑, 신부산아리랑으로 이뤄졌다.사물놀이로 막을 올린 무대는 조상영 웃음소리박사의 사회와 기미양 이사의 해설로 진행됐다. 일제강점기 부산부(府)가 설치될 때까지 동래가 곧 부산이었던 역사와 일제강점기 동래중학교의 항일운동이 소개됐다. 기 이사는 "부산은 아리랑의 도시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성공으로 부산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주목 받았다. 올해가 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이다. 나운규의 영화인생은 배우에서 시작된다. 독립운동을 하다 1년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1923년 출감해 부산으로 와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연구생이 된다. 이후 시나리오와 영화 주제가는 바로 이곳 부산에서 구상, 완성된다"고 밝혔다.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회장 송옥자)는 문희아트홀에서 '문경새재아리랑 새재를 넘다'를 선보였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지원한 '지역 아리랑 활성화' 사업이 전국을 들썩였다. 지난달 집중적으로 공연, 새해 벽두부터 방방곡곡에 아리랑이 울려퍼지게 했다.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회장 정은하)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대구·영남아리랑 얼씨구 한마당!'을 펼쳤다. 매년 대구아리랑경창대회 지정곡인 1936년 최계란본 대구아리랑과 2000년 정은하본 대구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아리랑을 망라했다. 성주아리랑보존회(회장 임옥자)가 참외를 들고 부른 성주아리랑, 광복군아리랑, 밀양아리랑에 객석이 환호했다. 아리무용단 김나영 단장, 전 영남대 김경혜 교수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시민들은 대구아리랑을 흥겹게 따라부르고, 추임새를 주고받았다. 전은석 회장(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른 영천아리랑의 역동성이 영남 소리의 멋을 더했다. 대구에서는 젊은 소리꾼들이 아리랑을 이어가고 있다. 곽동현, 오은비, 김명진 등이 국내외에서 활약 중이다. 아리랑학회 기미양 이사는 "아리랑의 원소스멀티유스 실례를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한 무대"라고 평했다. ○…공주아리랑보존회(회장 남은혜)는 공주문예회관에서 '해설이 있는 공주아리랑'을 선보였다. 다듬이 공연으로 무대를 열었다. 제1부 공주아리랑 한마당에는 공주에 전래돼 오는 산아지타령과 긴·엮음·잦은 공주아리랑이 모두 모였다. 남은혜 명창은 장기인 긴아리랑과 김옥심제 정선아리랑을 들려줬다. 2부는 '역사의 노래 아리랑'을 담아냈다. 긴아리랑, 정선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북간도아리랑, 치르치크아리랑이 메아리쳤다. 공연을 해설한 기미양 이사는 "북간도아리랑, 치르치크아리랑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남 명창의 가족사가 아리랑으로 연결된 고리가 현 남은혜의 소리 인생이 됐다. 1935년 이후 북간도로 집단이주한 남 명창의 가족사가 북간도아리랑으로 확장됐고, 2012년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신청을 기념해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고려인아리랑페스티벌에 참여하고 돌아와서 고려인이 애창하는 치르치크아리랑을 작곡, 이듬해 방문 무대에서 헌사하게 된다. 개인의 가족사가 민족사로 승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공주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대외 활동이 많은 공주아리랑 전승자 남 명창을 주목했다. 치르치크아리랑을 작곡한 이병욱 교수도 참석했다. 최연소 창자인 조아해(8)와 누나 조아랑, 미국에서 온 라파엘(24·원어민 교사)의 이색무대도 관심을 모았다.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기연옥)는 춘천박물관 강당에 '해설이 있는 춘천의병아리랑'을 올렸다. 춘천에 전래되고 있는 춘천의병아리랑과 창작아리랑인 윤희순의병아리랑, 춘천의병아리랑, 홍천아리랑, 평창아리랑, 인제뗏목아리랑 등 강원도의 다양한 아리랑이 율동과 함께 흘러나왔다. 아리랑 춤을 비롯, 정선아라리, 홍천아리랑, 평창아리랑, 아리랑 부채춤 등 다채로운 무대가 이어졌다. 아리랑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엄찬호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사회를 봤다. 기연옥 회장이 매년 추모 행사에서 부른 천안함용사아리랑, 안중근 장군을 기리는 안의사아리랑 활동도 소개됐다. 의병아리랑후원회, 최동용 춘천시장, 김진태 국회의원, 서인자 춘천보훈지청장, 유호순 시의회 부위원장, 최성현 도의원, 이종호 광복회장, 황용기 무훈수훈회장, 6.25참전우회장, 춘천시광복회장, 유연경, 윤희순기념사업회장, 아리랑학회 등이 성원했다. 춘천의병아리랑 배우기, 시민들과 함께 부르는 춘천의병아리랑으로 막을 내렸다. ○…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회장 김은희)는 부산시민회관에서 '2016 부산동래아리랑제'를 펼쳤다. 제1부는 문헌에 있는 부산아리랑, 음반에 있는 동래아리랑, 2부는 영남의 아리랑 중 영천아리랑, 상주아리랑, 예천아리랑, 광복군아리랑, 독립군아리랑, 창작아리랑인 평화아리랑, 신부산아리랑으로 이뤄졌다. 사물놀이로 막을 올린 무대는 조상영 웃음소리박사의 사회와 기미양 이사의 해설로 진행됐다. 일제강점기 부산부(府)가 설치될 때까지 동래가 곧 부산이었던 역사와 일제강점기 동래중학교의 항일운동이 소개됐다. 기 이사는 "부산은 아리랑의 도시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성공으로 부산의 역사가 다시 한 번 주목 받았다. 올해가 영화 '아리랑' 개봉 90주년이다. 나운규의 영화인생은 배우에서 시작된다. 독립운동을 하다 1년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1923년 출감해 부산으로 와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연구생이 된다. 이후 시나리오와 영화 주제가는 바로 이곳 부산에서 구상, 완성된다"고 밝혔다.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회장 송옥자)는 문희아트홀에서 '문경새재아리랑 새재를 넘다'를 선보였다. 20여년 동안 문경새재아리랑을 전승해 온 송옥자 회장의 굴곡진 세월로 눈물의 콘서트가 됐다. 정은하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 영남아리랑보존회 이옥자 성주지회장, 김동숙 상주지회장, 정봉남 달성지회장, 우종현 경산지회장 등이 참석해 공연을 축하했다. 축원무와 아리랑 무용에 이어, 문인협회 이만유 작 '문경새재는 아리랑고개'를 황인필 시인이 낭송했다. 함수호 문경전통예술단 지휘자의 장구 반주에 맞춘 퓨전 문경새재아리랑도 주목받았다. 문경새재아리랑 송옥자 전승자와 회원들은 헐버트아리랑, 문경찻사발아리랑, 문경농요, 문경의 아라리 등을 스토리텔링화 해 퍼포먼스와 곁들여 공연하며 박수를 받았다. 문경시 최석홍 행정복지국장은 "문경시는 지난해 12월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아리랑 도시 선포식을 갖고 아리랑도시 협의체 구성, 361개 경로당에 아리랑 보급, 아리랑 비림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그 기초는 문경새재아리랑으로, 이를 오늘날까지 보존 전승해 온 송옥자 선생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정은하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은 "송옥자 선생을 만난 것은 1991년 경상북도 공무원교육원에서"라며 "그때부터 송 선생이 문경새재아리랑을 불렀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문경시민들이 송옥자 선생을 잘 지켜 달라"고 청했다. ○…공주아리랑연구회(회장 이걸재)는 공주문화원 대강당에서 '병신년 새봄맞이, 공주-아리랑세상'을 펼쳤다. 제1부에서는 공주 잦은아리랑과 예울림 휴양마체험단(우성면 봉현·안양리), 공주아리랑연구회, 우정출연 한 논두렁밭두렁 회원들이 부르는 공주 긴아리랑과 공주 엮음 아리랑, 그리고 새아리랑을 선보였다. 2부에서는 백두산아리랑과 냉산모판아리랑, 3부에서는 이걸재 회장과 회원들이 창작아리랑인 이걸재시·최병숙 작곡의 민요조 엄니 아리랑, 사랑 아리, 어울렁 더울렁, 해 떠온다 등 새로운 노래를 불렀다. 관객과 모든 출연자가 함께 공주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을 연곡으로 노래하며 막을 내렸다. realpaper7@newsis.com 20여년 동안 문경새재아리랑을 전승해 온 송옥자 회장의 굴곡진 세월로 눈물의 콘서트가 됐다. 정은하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 영남아리랑보존회 이옥자 성주지회장, 김동숙 상주지회장, 정봉남 달성지회장, 우종현 경산지회장 등이 참석해 공연을 축하했다. 축원무와 아리랑 무용에 이어, 문인협회 이만유 작 '문경새재는 아리랑고개'를 황인필 시인이 낭송했다. 함수호 문경전통예술단 지휘자의 장구 반주에 맞춘 퓨전 문경새재아리랑도 주목받았다. 문경새재아리랑 송옥자 전승자와 회원들은 헐버트아리랑, 문경찻사발아리랑, 문경농요, 문경의 아라리 등을 스토리텔링화 해 퍼포먼스와 곁들여 공연하며 박수를 받았다. 문경시 최석홍 행정복지국장은 "문경시는 지난해 12월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아리랑 도시 선포식을 갖고 아리랑도시 협의체 구성, 361개 경로당에 아리랑 보급, 아리랑 비림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그 기초는 문경새재아리랑으로, 이를 오늘날까지 보존 전승해 온 송옥자 선생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인사했다.정은하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은 "송옥자 선생을 만난 것은 1991년 경상북도 공무원교육원에서"라며 "그때부터 송 선생이 문경새재아리랑을 불렀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문경시민들이 송옥자 선생을 잘 지켜 달라"고 청했다. ○…공주아리랑연구회(회장 이걸재)는 공주문화원 대강당에서 '병신년 새봄맞이, 공주-아리랑세상'을 펼쳤다. 제1부에서는 공주 잦은아리랑과 예울림 휴양마체험단(우성면 봉현·안양리), 공주아리랑연구회, 우정출연 한 논두렁밭두렁 회원들이 부르는 공주 긴아리랑과 공주 엮음 아리랑, 그리고 새아리랑을 선보였다. 2부에서는 백두산아리랑과 냉산모판아리랑, 3부에서는 이걸재 회장과 회원들이 창작아리랑인 이걸재시·최병숙 작곡의 민요조 엄니 아리랑, 사랑 아리, 어울렁 더울렁, 해 떠온다 등 새로운 노래를 불렀다. 관객과 모든 출연자가 함께 공주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을 연곡으로 노래하며 막을 내렸다. realpaper7@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