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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3회사할린아리랑제 가이드북 (사할린 역사 문화)출연 및 작품 1부 축사 사할린주한인협회장 해설 및 통역(2분) [무용]살풀이 아리랑(3분)—김옥순 영덕아리랑보존회 [소리]무반주 사할린아리랑(3분) [밴드]윤은화밴드---아리랑 메들리(5분) [소리]왕십리아리랑-----이혜솔(4분) (사)서울왕십리아리랑보존회 2부 해설 및 통역 (2분) [무용]북한출신 무용수 최신아(3분)-초혼무 아리랑 [소리]의병아리랑-----기연옥/소숙희/이미르(5분) (사)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무용]사할린아리랑-----박영자 외 6인(5분) 사할린아리랑무용단 [소리]영천아리랑-----전은석 (3분30초) (사)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 [소리/몸짓]제주아리랑---강소빈/박선영(5분) (사)제주아리랑보존회 [소극]아리랑을 사랑한 고종—송규철 외 4인 (5분) 남양주아리랑보존회 3부 해설 및 통역(2분) [사할린 춤과 노래] (7분)에스노트앙상블 [소리]울릉도아리랑----황효숙 (4분) (사)울릉도아리랑보존회 [소리]예천아리랑-------장경자(3분) (사)예천아리랑보존회 [소리]카레이스키아리랑---게나김/신이리나 (8분) 하바롭스크아리랑앙상블 [밴드]윤은하 밴드(8인조) 해설(2분) 마지막 인사 총 80분 참가단체 및 후원 사할린주한인협회(회장 박순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이사장 김연갑) 디아스포라문화원(회장 박승희/사무총장 김명기) 통일단체총연합회(사무총장 김연철/이사 정영식)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아리랑학회 나눔성형외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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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청원서 유네스코 ‘아리랑문화’로 남북 공동 재 등재하자!청원서 유네스코 ‘아리랑문화’로 남북 공동 재 등재하자! 아리랑은 한민족 공동체 결속을 유지시켜주는 노래이면서 인류가 향유하는 가치있는 문화유산이다. 금년은 1991년 일본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단가(團歌) <아리랑> 사용 30주년을 맞는 해이다. 또한 내년은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아리랑 등재 1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뜻 깊은 정주년(整週年)을 맞아 아리랑문화를 통한 민족공동체 결속과 전승활성화를 꾀함과 동시에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에 전국의 지역 아리랑 전승단체 연합체인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유네스코 업무 주무부서인 문화재청과 남북교류 주무부서인 통일부에 다음과 같이 청원하는 바이다. 하나, 아리랑을 남북은 ‘민족의 노래’라고 하면서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있어 ‘분단 상태’에 있다. 우리는 2012년 ‘Arirang, lyrical folk song in the Republic of Korea’으로, 북한은 2014년 ‘Arirang folk song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각기 다른 시점에, 다른 명칭으로 등재하였다. 이는 공동 등재로 명칭을 통일하여야 한다. ‘~Republic of Korea’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를 하나의 이름으로 재 등재 하여야 한다. 그 하나의 이름은 남북이 협의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정명(正名)’이야말로 아리랑을 가치화 하는 일인 것이다. 둘, 아리랑은 이미 남북 간에는 단일팀 단가(團歌)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등의 의전음악으로 사용하고 있다. 2002년 우리의 월드컵 축구 광장응원에서나 북의 <아리랑축전>에서는 전통음악을 넘어 대중적인 기능음악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1926년 개봉한 나운규 감독 영화<아리랑>의 자장력(磁場力)은 남북 영화사의 출발이고, 이후의 무대예술, 문학, 민중생활에까지 수용되어 나름의 기층을 형성해 온 문화이기도 하다. 특히 해외 동포사회에서는 한민족 정체성을 표상하는 각별한 ‘상징(象徵)’으로 전승하고 있는 위상을 획득했다. 이러한 실상에서 아리랑은 전통음악 그 이상의 문화 상징임이 분명하다. 이를 주목하여 등재 명칭을 ‘아리랑’이 아닌 ‘아리랑문화’로 할 것을 제안한다. 셋, 현재 남북 문화교류가 단절된 상태이다. 아리랑 공동 재 등재를 계기로 문화분야의 교류를 재개하여야 한다. 이는 남북이 현 등재를 철회함과 동시에 새로운 명칭의 종목 신청서를 작성해야함으로 마주하여야 한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과 통일부는 적극 나서야 한다. 이상에 대한 합의, 실천은 남북 문화교류의 재개임은 물론 인류문화유산의 가치화와 아리랑의 전승을 촉진하는 일이다. 이에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는 당국에 이의 실현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2021.06.09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회장 정은하 국내외 회원 전승단체 영남지역-영남아리랑보존회 대구아리랑보존회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상주아리랑연구보존회 성주아리랑보존회 밀양아리랑보존회 부산아리랑보존회 울릉도아리랑보존회 예천아리랑보존회 예천토속아리랑보존회 구미아리랑보존회 구미인동아리랑보존회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 경산아리랑보존회 청송아리랑보존회 안동아리랑보존회 영주아리랑보존회 영덕아리랑보존회 의성아리랑보존회 경주아리랑보존회 독도아리랑진흥회 충청지역-공주아리랑보존회 충남아리랑보존회 청주아리랑보존회 진천아리랑보존회 제천아리랑보존회 강원지역-태백아라레이보존회 평창우밀어러리보존회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원주어리랑보존회 인제뗏목아리랑보존회 고성아리랑보존회 강릉아리랑보존회 속초아리랑보존회 양구아리랑보존회 홍천아리랑보존회 정선아리랑보존회 서울경기지역-안성아리랑보존회 왕십리아리랑보존회 김포아리랑보존회 군포아리랑보존회 가평아리랑보존회 포천아리랑보존회 인천아리랑보존회 동두천아리랑보존회 전라지역-진도아리랑보존회 제주도-아리랑연구회 제주도아리랑보존회 서귀포아리랑보존회 해외지역-러시아아리랑본부 연변아리랑보존회 사할린아리랑앙상블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사할린아리랑무용단 하바롭스크아리랑앙상블 도쿄아리랑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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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성명서 문광부와 일부 지자체, 아리랑 인식 재고하라!성명서 문광부와 일부 지자체, 아리랑 인식 재고하라! ‘국악신문’ 5월 27일자 보도 <2022년 아리랑대축제 개최지, 경남 밀양시 선정>에 의하면 문화체육관광부는‘문화의 달’ 행사 개최지로 경남 밀양시를 확정, 발표하였다.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계기로 2022년 문화의 달 행사를 밀양·진도·정선 공동 개최를 발표한 것이다. "아리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브랜드로서 한민족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이라며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정주년(整週年)을 맞아 3억 여원을 지원하여 대축제를 개최한다니 반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위의 보도에서 문화체육관광부나 3개 지자치 단체의 아리랑에 대한 인식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확인하였다. 그것은 밀양아리랑·진도아리랑·정선아리랑을 꼽아 ‘3대아리랑’이라고 지칭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여 지원금을 교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사료된다. 이에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전 지역 전승단체 구성원들은 이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문제점은 다음의 네 가지이다. 하나, ‘3대 아리랑’이란 표현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의 위상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협약’에는 "어느 유산이 다른 유산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가치적 사고를 할 수 없다”고 한 것을 간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이나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아리랑’의 해설문에 ‘60여종’이라 했고, 이들에 대해 "끊임없이 재창조(Constantly Recreated)” 되고, "문화적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마치 세 지역 아리랑만이 아리랑을 대표하는 ‘표현을 쓴 것이기 때문이다. 둘, 세 지역 아리랑을 수위(首位)에 놓아 서열화 한 것이다. 이 역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협약 정신을 위배한 것이다. 유네스코가 ‘걸작(傑作/Masterpieces)’이란 표현 대신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이란 표현을 쓴 이유인 것이다. 이를 적용한다면 우리는 ‘60여종’, 북한은 ‘41종’으로 표현할 수 있다. 셋, 과도하게 관요화(官謠化)한 3개 지자체의 아리랑 이해와 전승 목적이 가치지향이 아닌 수익지향의 편향성이 빚은 결과라는 점이다. 이는 여타 지역의 자발적 전승의지를 꺾는 일이며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하는 처사이다. 전국에는 2012년 12월 5일 유네스코 등재 이전에 자발적으로 전승단체를 이끌어 온 곳이 21개 지역 단체이고, 현재는 50여 개 지역 단체에 이른다. 각 지역 아리랑을 계승하고 있는 전승단체에 대한 배려는 ‘60여종’의 아리랑을 전승하는 민족공동체라는 것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넷, 3지역 단체만 사용하는 ‘3대아리랑’이란 표현은 세계가 ‘탁월한 보편성’이라는 위상을 부여한 ‘본조아리랑’에 대한 자격지심(自激之心)에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결국 3개 지자체 스스로 ‘본조아리랑’의 후순위임을 자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본조아리랑’을 배제시킨 우를 범하게 된다. 이에 대한 문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즉, ‘연변자치주 조선족 아리랑’을 국가급과 지방급으로 이중 지정한 중국의 입장을 오히려 강화시켜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연변 ‘조선족아리랑’(본조아리랑)을 지정하며 벌어진 소위 ‘중국의 아리랑 사태’ 때 내세운 명분의 하나가 무엇인가를 보면 알 수가 있다. "문제는 한국이 아리랑을 길거리 음악으로 방치하고 상관하지 않는 기간 동안, 중국은 이미 아리랑을 중국소수민족 전통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问题是在韩国将阿里郎作为路边音乐放任不管期间,中国已经将阿里郎当成了中国少数民族传统) 우리가 아리랑을 제도권에서 방치하는 실정에서, 중국은 ‘민족의 노래’라고 내세우는 당시 우리의 실상을 조롱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도 더욱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네 가지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와 3개 지자체는 아리랑에 대한 깊은 성찰과 전국의 자발적 전승단체에 대한 배려를 표명해야 한다. 이에 아리랑 전승 활성화를 기할 수 있도록 차별적 표현인 ‘3대 아리랑’이란 표현을 즉각 폐기하기 바란다. 2021 06 08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회장 정은하 영남 지역-영남아리랑보존회 대구아리랑보존회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상주아리랑연구보존회 성주아리랑보존회 밀양아리랑보존회 부산아리랑보존회 울릉도아리랑보존회 예천아리랑보존회 예천토속아리랑보존회 구미아리랑보존회 구미인동아리랑보존회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 경산아리랑보존회 청송아리랑보존회 안동아리랑보존회 영주아리랑보존회 영덕아리랑보존회 의성아리랑보존회 경주아리랑보존회 독도아리랑진흥회 충청 지역-공주아리랑보존회 충남아리랑보존회 청주아리랑보존회 진천아리랑보존회 제천아리랑보존회 강원 지역-태백아라레이보존회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원주어리랑보존회 인제뗏목아리랑보존회 평창우밀어러리보존회 고성아리랑보존회 강릉아리랑보존회 속초아리랑보존회 양구아리랑보존회 홍천아리랑보존회 정선아리랑보존회 서울경기 지역-안성아리랑보존회 서울아리랑보존회 왕십리아리랑보존회 김포아리랑보존회 군포아리랑보존회 가평아리랑보존회 포천아리랑보존회 인천아리랑보존회 동두천아리랑보존회 전라 지역-진도아리랑보존회 제주도 지역-제주아리랑연구회 제주도아리랑보존회 서귀포아리랑보존회 해외 지역-러시아아리랑본부 연변아리랑보존회 사할린아리랑앙상블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사할린아리랑무용단 하바롭스크아리랑앙상블 도쿄아리랑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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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문광부와 일부 지자체, 아리랑 인식 재고하라!성명서 문광부와 일부 지자체, 아리랑 인식 재고하라! ‘국악신문’ 5월 27일자 보도 <2022년 아리랑대축제 개최지, 경남 밀양시 선정>에 의하면 문화체육관광부는‘문화의 달’ 행사 개최지로 경남 밀양시를 확정, 발표하였다.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계기로 2022년 문화의 달 행사를 밀양·진도·정선 공동 개최를 발표한 것이다. "아리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브랜드로서 한민족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이라며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정주년(整週年)을 맞아 3억 여원을 지원하여 대축제를 개최한다니 반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위의 보도에서 문화체육관광부나 3개 지자치 단체의 아리랑에 대한 인식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확인하였다. 그것은 밀양아리랑·진도아리랑·정선아리랑을 꼽아 ‘3대아리랑’이라고 지칭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여 지원금을 교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사료된다. 이에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전 지역 전승단체 구성원들은 이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문제점은 다음의 네 가지이다. 하나, ‘3대 아리랑’이란 표현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의 위상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협약’에는 "어느 유산이 다른 유산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가치적 사고를 할 수 없다”고 한 것을 간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이나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아리랑’의 해설문에 ‘60여종’이라 했고, 이들에 대해 "끊임없이 재창조(Constantly Recreated)” 되고, "문화적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마치 세 지역 아리랑만이 아리랑을 대표하는 ‘표현을 쓴 것이기 때문이다. 둘, 세 지역 아리랑을 수위(首位)에 놓아 서열화 한 것이다. 이 역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협약 정신을 위배한 것이다. 유네스코가 ‘걸작(傑作/Masterpieces)’이란 표현 대신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이란 표현을 쓴 이유인 것이다. 이를 적용한다면 우리는 ‘60여종’, 북한은 ‘41종’으로 표현할 수 있다. 셋, 과도하게 관요화(官謠化)한 3개 지자체의 아리랑 이해와 전승 목적이 가치지향이 아닌 수익지향의 편향성이 빚은 결과라는 점이다. 이는 여타 지역의 자발적 전승의지를 꺾는 일이며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하는 처사이다. 전국에는 2012년 12월 5일 유네스코 등재 이전에 자발적으로 전승단체를 이끌어 온 곳이 21개 지역 단체이고, 현재는 50여 개 지역 단체에 이른다. 각 지역 아리랑을 계승하고 있는 전승단체에 대한 배려는 ‘60여종’의 아리랑을 전승하는 민족공동체라는 것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넷, 3지역 단체만 사용하는 ‘3대아리랑’이란 표현은 세계가 ‘탁월한 보편성’이라는 위상을 부여한 ‘본조아리랑’에 대한 자격지심(自激之心)에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결국 3개 지자체 스스로 ‘본조아리랑’의 후순위임을 자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본조아리랑’을 배제시킨 우를 범하게 된다. 이에 대한 문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즉, ‘연변자치주 조선족 아리랑’을 국가급과 지방급으로 이중 지정한 중국의 입장을 오히려 강화시켜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연변 ‘조선족아리랑’(본조아리랑)을 지정하며 벌어진 소위 ‘중국의 아리랑 사태’ 때 내세운 명분의 하나가 무엇인가를 보면 알 수가 있다. "문제는 한국이 아리랑을 길거리 음악으로 방치하고 상관하지 않는 기간 동안, 중국은 이미 아리랑을 중국소수민족 전통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问题是在韩国将阿里郎作为路边音乐放任不管期间,中国已经将阿里郎当成了中国少数民族传统) 우리가 아리랑을 제도권에서 방치하는 실정에서, 중국은 ‘민족의 노래’라고 내세우는 당시 우리의 실상을 조롱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도 더욱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네 가지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와 3개 지자체는 아리랑에 대한 깊은 성찰과 전국의 자발적 전승단체에 대한 배려를 표명해야 한다. 이에 아리랑 전승 활성화를 기할 수 있도록 차별적 표현인 ‘3대 아리랑’이란 표현을 즉각 폐기하기 바란다. 2021 06 08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회장 정은하 영남 지역-영남아리랑보존회 대구아리랑보존회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상주아리랑연구보존회 성주아리랑보존회 밀양아리랑보존회 부산아리랑보존회 울릉도아리랑보존회 예천아리랑보존회 예천토속아리랑보존회 구미아리랑보존회 구미인동아리랑보존회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 경산아리랑보존회 청송아리랑보존회 안동아리랑보존회 영주아리랑보존회 영덕아리랑보존회 의성아리랑보존회 경주아리랑보존회 독도아리랑진흥회 충청 지역-공주아리랑보존회 충남아리랑보존회 청주아리랑보존회 진천아리랑보존회 제천아리랑보존회 강원 지역-태백아라레이보존회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원주어리랑보존회 인제뗏목아리랑보존회 평창우밀어러리보존회 고성아리랑보존회 강릉아리랑보존회 속초아리랑보존회 양구아리랑보존회 홍천아리랑보존회 정선아리랑보존회 서울경기 지역-안성아리랑보존회 서울아리랑보존회 왕십리아리랑보존회 김포아리랑보존회 군포아리랑보존회 가평아리랑보존회 포천아리랑보존회 인천아리랑보존회 구리아리랑연구보존회 동두천아리랑보존회 전라 지역-진도아리랑보존회 제주도 지역-제주아리랑연구회 제주도아리랑보존회 서귀포아리랑보존회 해외 지역-러시아아리랑본부 연변아리랑보존회 사할린아리랑앙상블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사할린아리랑무용단 하바롭스크아리랑앙상블 도쿄아리랑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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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아리랑학교 하계세미나2021아리랑학교 주최: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주관:아리랑학회 아리랑학교(교장:김연갑) 특강: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의 가치성과 위상/기미양(아리랑학회 연구이사) 수강자는 제1기 수강을 하신분. 전승자협의회 가입단체. 초청을 받으신분만 해당합니다. 수강자는 수료식 후 수료증 수여함 (일련번호와 수강자 이름을 기입해야하기에 예약자만 참가할 수 있음) 일시: 2021-06-06 오후 2~4시 장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145 대종빌딩 4F 국악신문 세미나실 연락처:기미양/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 (01074475030) 아리랑학교 연혁 (2017-2021) 기 수 주 최 주 관 일 시 수 료 증 발행 제1기 문경문화원 아리랑학교 2017년-2018년 2018년 제2기 사할린주한인협회 아리랑학교 2018년-2021년 미발행 제3기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아리랑학교 2017년-2021년 2021년 6월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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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용인 은이성지 아리랑노래비를 찾아서http://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5057 기미양 객원기자 등록 2021.05.13 15:54 조회수 187 목록 메일 프린트 스크랩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은 ‘2021아리랑학교’가 주최한 ‘경기지역 아리랑고개를 찾아가는 아리랑답사를 위해 길을 떠났다. 월간 잡지 ’길벗‘에 실린 ’천주교와 아리랑(기찬숙)‘을 읽고 나서, 필자(아리랑학회)에게 용인시 남곡리 아리랑고개에 대한 답사 안내 및 강연요청을 하고 회원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이회장은 지난 주 가평아리랑답사에서 보납산(법업산)에서 의병들이 이승에서 넘었던 마지막 고개 아리랑고개 답사에 이어 이번 주는 용인 지역 아리랑고개를 찾아서 길을 나셨다.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는 ‘은이(隱里) 성지’가 있다. 천주교회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사목한 본당이며 순교 후 유체의 이장 경로이기도 하다. ‘은이’라는 지명은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천주교 박해 시기 숨어 살던 신자들의 교우촌이었다. 여기에는 ‘삼덕(三德)의 길’이라는 고갯길이 있다. 세 개의 덕(德)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하나는 신덕(信德)고개인 ‘별미 고개’, 둘은 망덕(望德)고개인 ‘해실이 고개’, 셋은 애덕(愛德)고개인 ‘거문정 고개’길을 말한다. 오늘에도 인적이 드믄 산길이 포함되어 있는데, ‘120 나무계단 길’과 김대건 신부의 유체 이장 때 호랑이도 물러나 길을 열어주었다는 ‘기적의 길’도 있다. 그런데 은지성지 순례길 첫 번째 신덕고개 ‘별미고개’에는 뜻밖에도 ‘아리랑’비(碑)가 세워져 있다. 이는 천주교 초기에 아리랑이 신앙공동체에서도 불렸음을 추정하게 하는 것이다. 공동체 결속과 포교를 위해 민중의 노래에 신앙심을 얹어 불렀다고 본다. 이 비에 새겨진 가사가 당시의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만한 유래를 담보했기에 비로 새겨졌다고 보게 된다. 은지성지 성지순례길은 총 14km 5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신덕고개, 망덕고개. 애덕고개 세 고개를 넘는 길이다. 답사 일정은 출발점에서 차를 주치하고 1시간 동안 걸어서 올라가면 아리랑고개라고 불리우는 신덕고개가 나온다. 신덕고개비 옆에 세워진 아리랑노래비까지 가는 것이다. 아리랑노래비의 가사는 김진용 작사의 전체 8절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리랑 주님을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후렴구) 천진암 강악회 진리탐구/반만년 어둠속에 동이 트네 청천 하늘에 잔별도많고/천주교 이백년 박해도 많다 심한박해 모진고충 이겨내고/참된신앙 물려주신 순교자여 금자로 발길재는 천사를 보라/격려하며 순교의길 가신님이여 희광이칼 여덟번째 목숨바치고/천당영복 면류관을 쓰신님이여 순교유해 쌓고쌓여 주춧돌되고/순교선혈 흘러흘러 밑거름됐네 한알의 밀알이 이백년썩어/오백만의 열매가 주님찬미해 제1절에서는 상하 계층 없이 사방팔방의 모두가 알고 있는 아리랑의 대표사설을 통해 곡조를 제시했다. 2절은 광주 퇴촌의 천진암(天眞菴)에서의 강학회(1771년 자산 정약전 3형제와 만천 이승훈 등의 천주교리 연구모임) 사실을 말하여 천주교 역사를 제시했다. 3절은 1791년 신해박해로부터 네 차례의 박해를 통해 천주교의 수난사를 나타냈고, 4, 5절은 성스런 순교사를, 6~8절은 신앙 승리의 역사를 찬양했다. 이 가사 천체를 보면 3절과 8절에 ‘이백년’이 있어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으로 작사하여 노래비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200주년을 기념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고, 천주교 신약성서 자체 번역본을 발행하였으니, 이 아리랑 작사도 그만큼 의미를 두어 비로 세운 것이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굳은 신념이 뜨겁게 전해온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회장과 회원들은 아리랑학회가 운영하는 아리랑학교에서 배포한 아리랑 가사를 사전에 받고 가창 연습을 해왔다. 아리랑고개에 오르자. 경건하고 신성한 바람이 일어났다. 묵념을 하고 전국에 곳곳에 있는 아리랑고개의 유래와 은이성지 아리랑고개의 유래에 대한 짦은 해설을 듣고 나서 아리랑노래비에 새겨진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하자 3절에서부터 모두 눈물이 쏟아져서 눈물의 아리랑 공간이 되었다. 이회장은 "코로나로 인해 5월 서울과 제주 지역 아리랑 행사가 취소가 되었다. 그래서 이참에 경기 서울지역 아리랑고개와 아리랑역사 유적지를 답사하고자 한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은 역사의 노래이다. 부르는 이도 왜 아리랑을 불렀는지는 알고 불러야 한다.”라는 취지로 아리랑학회 아리랑고개답사에 동참하고 있다. 이회장은 다음주 안성아리랑보존회가 주관하는 안성의 아리랑고개를 찾아가는 답사에도 함께 할 계획이다. 전국의 아리랑고개의 유래를 살피면 천주교와 관련된 곳은 아직까지는 이곳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한국 천주교 역사와 아리랑은 어떻게 만났을까? 현재 밝혀진 아리랑 자료로는 1823년(道光3년) 청석거사(靑石居士) 필사본 ‘佛說明堂아리랑’이란 기록물에서 1839년 천주교 기해박해 전후에 불렸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문헌자료는 민간신앙에서 수용한 일종의 무경(巫經)으로 "제석천황 관제멸 대범천황 오액명/아라리 사라리 아리사리 아리랑” 같은 사설에서 알 수 있듯이 수명과 복록을 기원하며 아리랑 후렴을 사용하였다. 이 시기 아리랑의 보편성을 이용하여 무경의 보급을 용이하게 할 방편으로 수용한 것이다. 천주교 교인들도 우리의 전통 시가인 가사체(歌辭體)를 수용하여 ‘천주가사’(天主歌辭)를 지어 교리를 전파했듯 민요 아리랑의 형식도 수용했을 것은 분명하다. 천주교인들이 불교 사찰인 천진암을 거점으로 한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전통문화를 수용하여 교리전파에 활용하는 것은 포교의 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초기 교회사 자료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확인되기도 했다. 천주교 초기 인물 이승훈이 아리랑을 수용한 사실에서, 이는 초기 천주교 신앙공동체에서도 아리랑이 포교를 위해 향유되었고, 이러한 맥락에서 200년 기념으로 새로운 아리랑이 창작되어 비로 세워지게 되었음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정조년간에 북경으로부터 들어온 서학(西學)은 단순한 학문으로 연구되다가 점차 뛰어난 진리를 깨달음에 이르러 하나의 실천학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침내 드디어 그리스도 신앙으로 귀의(歸依)해 가게 하였다. 이 때 민중의 노래 아리랑도 향유되었다. 어떤 공동체에게도 아리랑은 결속력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획득하게 하는 노래의 힘을 가지고 있기에. 누구나 만날 수밖에 없는 노래인 것이다. Tag ##아리랑고개 #아리랑비 #아리랑부르기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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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고려신문] 위기 맞은 '사할린 한글학교' 회생 운동 전개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주축 후원회 결성27년 역사를 지닌 사할린 한글교육협회(한국)가 매년 2차례 시행하던 사할린 한글학교 한국 문화체험 연수가 코로나로 중단되어 있다. 주 원인은 경제적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사할린 한글학교 한국 문화체험 연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27년 동안 사할린에 한국어 교육과 차세대들의 모국 방문을 후원해왔다. 이는 임태식 사할린 한국어교육협회장의 헌신으로 이어져왔는데, 코로나로 운영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임 회장은 최근 아리랑학회 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명감을 갖고 사할린 한국어 교육을 도와줄 개인이나 단체가 절실히 필요합니다."라고 밝혔다. 서울 혜화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임 회장이 사할린의 한국어 교육 문제에 열정을 품게 된 것은 가족사와 연결된다. 바로 사할린에 거주하는 고종사촌을 만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을 때 사할린 공식 한글학교 제9동양어문학교를 방문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임 회장의 회고 속에는 앞으로의 운영에 대한 걱정이 절실하게 전해졌다. "한글 교육 수업 장면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국어 교육이 재개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모든 것이 열악했지만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태도만큼은 정말 열성적이었어요. 그 흔한 스티커도 없어서 성적이 올라가는 아이들에게 색종이로 별을 오려서 노트에 부쳐주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서 스티커를 당장 한 보따리 보냈습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고 배우고자 하는 한국어 교사들의 열정에 감동을 받고 귀국 후 친분이 있는 각 학교의 교장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사할린 동포를 위한 한복 700여 벌을 모아 수선해서 보내기도 했다. 사할린 내 유치원 3곳에 한국어반을 설립해 운영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할린 현지에선 한국어를 가르치는 상급 학교가 많지 않아서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어 학교 설립이 시급하지만 당장은 여력이 없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맥을 이어가게 하고 싶습니다. 교사들에게도 아이들이 한국말을 잊지 않게만 도와달라고 하고 있죠." 임 회장은 비영리단체인 사할린 한국어교육협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후원자를 찾아 나섰다.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단체에는 후원이 많이 들어온다는 데 사할린 문제에는 관심있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불행한 역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나야 했던 사할린 한인의 후손들이 우리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설명을 했지만 협회를 함께 이끌어 나갈 사람(동지)을 찾는 일도, 후원자를 모으는 일도 쉽지는 않다고 했다. 26년 동안 이어져온 후원사업은 갈수록 힘들어졌다. 후원자들이 노년을 맞이하여 양로원이나 병원생활을 하게 된 탓이다. 그 결과 후원자는 3분지 1로 줄어들었고, 여기에 코로나로 해서 더욱 힘들어졌다. 차기 한국어 교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 현지 한글 교육을 맡은 교사들의 부족 현상이 있게 되었다, 26년 전에 책정한 차비 정도의 월급과 지원은 경제적으로 너무나 협소해서 계속되는 코로나로 이 교육사업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런데 2016년부터 매년 '사할린 아리랑제'를 주관하는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논의를 하게 되었다. 최근 이에 동조하는 아리랑학회, 국악신문 등이 동조하고 나섰다. 지난 3월 후원회가 구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정은하 회장은 최근 모임에서 "일제강정기 강제동원으로 사할린에 끌려간 조선인 중 경상도 출신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말을 잊지 않고 아리랑까지 부르는 동포들은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우리말을 잊어버리면 아리랑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1차 후원회 결성에 이어 제2차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문제를 측면 지원해 온 공노원 부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류바람을 타고 불어온 한국의 인기는 사할린에도 주기적으로 한국 문화가 움트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사할린에는 남북한 문화가 각각 공존해 있었지만 냉전 이념 속에서도 한국 풍습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어서 '사할민국'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한글 교육이 사라지면 다음 세대는 러시아 문화에 동화되어 정체성 문제에 혼란이 올 것이다" 라고 한글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임 회장은 이 같은 논의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본회의 설립 취지를 이해해 주시고 후원회원으로 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총장님께서 많은 지원을 해 주셔서 큰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리랑 보존과 발전을 위해 수고하시는 전국 아리랑전승단체 회장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국악신문 전직원의 관심 표명에 대해 감사합니다. 특히 이번 공노원 부회장의 사할린 현지 공개수업 참관과 지도하는 기간에 후원을 해 준 나눔성형외과 (원장 노승만)에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임태식 회장 메세지 러시아 사할린! 일제강점기 통한의 상흔이 1,2세대에 머물지 않고 3,4세대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침식되어가는 아픔이 있습니다. 나라 잃어 천대받던 4만 3천여 우리 동포들은 광복의 기쁨도 누리지 못한 채 반세기를 부당한 영어의 몸으로 한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핍박과 허기로 고향을 그리다가 세상을 떠난 수많은 우리 동포들도 있습니다. 1990년 한ㆍ러 수교로 꿈에 그리던 모국을 왕래하게 되었지만 우리말과 글을 쓰던 1세대들의 영주귀국과 타계는 2세대들의 모국어 사용을 중단하게 했고 3,4세대들의 한국어 교육 부재는 이제 문맹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963년 한국어 교육 폐지 이후 조선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러시아어로 교육을 받아야만 해서, 3세대가 모이면 중간에 있는 2세가 1세와 3세의 소통을 위해 통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현실입니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어 교육이 재개되었지만 1963년 이전 양성한 한국어 교사는 영주귀국을 하였거나 고령으로 타계하였습니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사할린 국립대학에서 양성한 300여 명의 한국어 교사는 열악한 보수체계로 거의 전원이 한국어 교사임용을 기피한 실정입니다. 현재 사할린에는 정규교육을 이수한 한국어 교사는 전무한 편입니다. 질 높은 교육을 위해 교사 양성과 연수, 교재ㆍ교구확충 등에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협회는 아직은 어렵지만 사할린에 한글학교가 설립되고 우리 동포가 우리말과 한글을 잊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3월 1일.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임태식 올림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사무총장은 "매년 2차례 모국방문을 하는 학생들의 답사일정을 각 지역 지자체가 주최하는 아리랑축제와 연계시켜 모국의 정서와 문화를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후원단체는 다음과 같다. 후원단체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영남아리랑보존회(정은하). 아리앤랑무용단(김채원), 서울아리랑보존회(유명옥). 영남민요연구회(배경숙), 구미아리랑보존회(임규익), 제주도아리랑보존회(강소빈), 울릉도아리랑보존회(황효숙), 제주아리랑연구회(장경숙), 연변아리랑보존회(김은희). 가평아리랑보존회(최승녀), 군포아리랑보존회(한영숙), 진도아리랑보존회(박숙영), 예천토속아리랑보존회(최수인),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기연옥), 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김희은),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혜솔), 서귀포아리랑보존회(유재희), 연변아리랑보존회(김은희), 문경민요연구원(진미애) 러시아아리랑 본부 본부장(공노원), 하바롭스크아리랑 지부(김석복) 사할린아리랑제추진단 홍보대사(스텝핀 블라디미르) 아리랑학회 (김연갑, 기미양, 이정하, 이강연, 이정홍, 김니은, 지철호, 정정숙, 김미숙) 국악신문 (김지연.김한나.김하늘) 나눔성형외과의원(노승만), 나블리베이커리 카페(지윤주) (본 기사 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사무총장 제공) [출처] 2021년 4월16일(음력 3월5일) 새고려신문 (사할린 새고려신문) | 작성자 bplus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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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전국아리랑 전승단체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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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Pick 인터뷰 (1): '아리랑코로나'를 무대화 한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대표http://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3774 '아리랑코로나'를 무대화 한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대표 기미양 객원기자 등록 2020.12.27 11:12 조회수 485 목록 메일 프린트 스크랩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국악신문은 새로운 코너로 ‘이메일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 코너를 통해 더 원활하게 국악인들의 의미있는 활동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첫 인터뷰어는 제10회 <왕십리아리랑제>를 통해 처음으로 ‘아리랑코로나’를 무대화 한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1952년생) 대표를 객원기자 기미양 선생이 인터뷰했다.(편집자) 기미양-올해 코로나로 인해 많은 단체와 공연자들이 무대에 서지를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0회왕십리아리랑제를 잘 마치셨습니다. 처음 만나는 무관중 언택트 공연에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이혜솔-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엄수하는 가운데 지난 10월 제10회왕십리아리랑제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금년의 국악계는 어느 분야보다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모두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습니다. 공연의 제1조건이 관객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관객 없이 해야 하는 공연을 위해 극히 제한된 출연자와 스탭과 관객으로 치룰 수 밖에 없는 실정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무대에 20명만 올라와야 하는 조건에서 극장밖에 있다가 다른 공연팀과 계속 교체를 해야했습니다. 어려운 시국에도 불구하고 모든 회원들이 일사분란하게 협조를 해주어서 잘 마치었습니다. 우리 회원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끝나서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날을 기원해 봅니다. 기- 매년 정례화 되고 있는 아리랑축제를 올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와 함께 무사히 치루었는데, 올해 제10회 왕십리아리랑제 행사 주제는 무엇입니까? 이-전 세계가 멈춰어져 있는 이 어려운 "코로나19 고개를 넘어가보자”라는 의미에서 어서어서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준비를 했습니다. 코로나라는 힘든 고개를 아리랑 고개 넘어가자라는 의지를 가지고 '아리랑코로나'를 만들어서 보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온 국민과 힘을 합쳐서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라는 의지를 제10회왕십리아리랑제 공연에 담아보았습니다. 기- 이번 행사에서는 전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인류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코로나 19사태를 넘고 가야 할 '고개'로 인식하고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고 주제를 정하셨네요. 회원들 반응은 어떠했는지요? 난생 처음 실시된 무관중 공연에서 어려운 점이 었었지만, 이런 새로운 형식의 실험적 무대에서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요? 이- 우리는 코로나를 넘고 가야 할 '고개'로 인식하고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고 주제는 바로 통했습니다. 올해부터 모든 공연은 코로나 전후로 나누어진다고 봅니다. 그동안 모든 공연은 절대적 관객 대상 공연이었지만 이번에는 관객이 아닌 우리 출연자 스스로를 향한 공연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나섰습니다. 처음으로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기-전체 프로그램은 2부로 나누어져서, 제1부는 대동의 노래, 제2부는 상생의 노래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어떠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나요? 이-전국 지역에서는 아리랑의 힘으로 대동단결하여 코로나를 막아내고 우리 모두가 다시 안정되어 함께 잘 살아보자는 상생의 노래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지역은 '왕십리에서 제주까지' 불리는 지역 아리랑으로 구성했습니다. 왕십리아리랑을 시작으로 서울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상주아리랑, 밀양아리랑, 제주아리랑 등이 불려졌습니다. 서울에서 활동을 하지만 강원도 평창이 고향인 사람은 아라리를 부르고. 경상도 사람은 밀양아리랑, 제주에서 올라온 이는 제주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제주아리랑은 유재희(서귀포아리랑보존회장) 명창이 불렀습니다. 기- 이번 무관중 공연이었지만 제10회를 맏이하면서 소감은? 이-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9호이다." 이 두 유산의 해설문에는 아리랑의 수를 ‘50여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안에 우리 경기 아리랑 선율인 왕십리아리랑도 포함된다고 믿습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왕십리아리랑을 부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리극 ‘김소월이 사랑한 왕십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는 준비 중에 있습니다. 기-왕십리아리랑은 이혜솔 회장이 작사하고, 통일앙상블 대표 윤은화가 작곡한 새로운 아리랑인데, 어떤 내용이 담긴 사설인지 궁금합니다. 국내외 무대에서 왕십리아리랑 반응은 어떤가요? 이-첫소설은 처음에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라고 시작합니다. 본조아리랑을 선율로 해서인지 일단 경쾌하고 따라서 부르기 쉽다는 것입니다. 사할린아리랑제에서는 왕십리아리랑을 작편곡 한 윤은화 작곡가와 통일앙상블 밴드(9명의 연주자)가 함께 가서 연주 반주에 맞추어서 불러서 더욱 좋았습니다. 이미 음반 작업을 하면서 함께 연습을 한 팀들이 그대로 갔기때문에,,,,..그래서인지 현지 동포들이 후렴을 따라서 부르고 음악가들이 악보를 달라고 해서 부고 왔습니다. 2019년 봄에 왕십리아리랑제에 관객으로 참가한 사할린동포들에게서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후렴)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 아리랑고개를 서로 함께 넘어요 서울의 왕십리 우리 사는 곳 개나리 화창한 꽃동산이래요. 사랑과 희망이 넘쳐 흐르는 서울의 서울은 우리 왕십리래요 우리 서로 벅찬 가슴 마주하면서 손잡아요 어깨동무 함께할래요. 이 아리랑을 만들게 된 연유는 제가 청년기부터 몸담고 살았던 서울 동부의 중심지인 왕십리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알고 부를 수 있는 아리랑 가락에 성동구 지역 역사를 담아보았습니다. 아리랑의 대동정신으로 지역공동체 결속에 이바지하려고 합니다. 이 아리랑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 미국 순회공연. 일본, 사할린 공연에서 동포들에게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본조아리랑의 위상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동포들을 만나면서 아리랑은 결속력을 속성으로 하는 노래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러시아 사할린과 하바롭스크 동포들이 와달라고 했는데 올해 못갔죠. 코로나로......코로나만 종식되면 바로 갈려고, 트렁크 짐은 싸놓은채 그대로입니다. 작년 2월 초 가려고 비행기표 예약을 했다가 이대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지쳐서 아리랑코로나를 만들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기- 이회장은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출범이후 첫번째 지도자로, 국내외 사할린 동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바롭스크 아리랑앙상블 회원들이 와서 아리랑을 가르쳐달라고 했을때, 2월초 바로 가려고 준비를 했다가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각해지자 아리랑코로나를 지어서 코로나를 막아내자고 우리들에게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카다로그 앞에 나와있는 이 가사가 아리랑코로나인가요? 어떤 계기로 해서 만든 아리랑인가요? 이- 지난 5월에 새로 만든 ‘아리랑코로나’가 무대에서 초연되었습니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세는 한풀 꺾였지만,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 감염이 이어지면서 신규 확진자가 늘어면서 전국 축제와 예술활동이 거의 중단된 현실에서 이번 무대에서 회원들과 함께 불렀습니다. 기-아라랑코로나에는 어떤 의미를 담아내려고 했나요? 이-일제강점기 1930년대 종두선전가라는 종두아리랑. 마마아리랑이라는 방역아리랑이 불려졌습니다. 아리랑으로 천연두 전염병을 이겨보자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리랑의 힘으로 전세계를 멈추게 하는 이 무서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아보자는 뜻에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 뭉치면 죽고 헤어지면 산다네”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입니다. 90년만에 나온 방역아리랑, 특별한 아리랑이지요. 이회장은 주먹을 높이 쳐들면서 이번 코로나19를 막아내자는 방역아리랑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부터 독도 울릉도에서부터 제주까지 찾아가는 작은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추운 나라 러시아 동포들에게 녹음을 해서 전해주고 국내 이주하고 있는 동포들과 공유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고려인 청소년과 하바롭스크 사할린 동포들에게 음원과 동영상을 전해주고 있다. 아리랑코로나 노래가 알려지자 (재)아리랑선풍재단 아리랑체조단도 이 음원을 보내주면 집단체조를 해보이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아리랑코로나 작사.작창:이혜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후렴) 코로나 택시는 탈만큼 탔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섭어 도망간다 코로나 마마님은 언제 가시려나 구경일랑 그만하고 가시게나 바다 건너 님 보고싶지만 가고 싶어도 갈수없네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수로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지만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네 이혜솔 명창의 국악 입문경위 기- 2년동안 아주 특별한 아리랑 전승활동을 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데, 부모님 고향은 어디인이신가요? 부모님 중 누가 소리를 잘하신 분이 계셨나요? 소리를 하시면서 영향을 주신 분이 계시나요? 이- 아버님 고향은 청주이시고, 어머니는 경기도 평택이시지만 어릴때 서울로 이사를 하고 줄곧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니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공부보다도 소리를 좋아하셔서 판소리 춘향전은 다 외우셔서 사랑방에 손님들 모이면 걸죽하게 뽑아 내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평생 풍류객이라는 소리를 듣고 서울을 오가며 사셨습니다. 우리 형제들 모두 아버지 소리를 듣고 자라서인지 모두 다 소리를 잘합니다. 저의 목소리는 아버지를 쏙 닮아서 통성입니다. 풍류를 찾아서 서울을 오가는 멋쟁이 아버지는 살림을 나 몰라라 하셨습니다. 갈수록 식구들 입은 늘고 살길이 막막해지지만 청주 사람들이면 다 아는 양반집 친정에서 곱게 자란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친정에서 곡식을 얻어서 우리 식구들 먹이다가.....나중에는 나어린 막내에게 젖을 물리다가 몇번이나 달리는 트럭에 뛰어 들었다가 모진 목숨 건지게 되자, 장남만큼은 반드시 공부를 시키겠다고 7남매를 끌고 생면부지 서울로 상경을 하셨습니다. 간신히 아버지를 찾아 용두동에 하꼬방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젖먹이를 업고 어머니는 묵을 쑤어서 머리에 이고 행상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큰언니가 촛불을 키고 바느질을 하다가 집에 불이나서 몽당 다 타버렸습니다. 다시 빈털털이가 되어 창신동으로 이사를 가서 임시 천막을 치고 맨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장사를 마치면 이고 나간 함지박에 매일 벽돌을 한 두개씩 사서 이고 들어오셨습니다. 매일 천막안에 사방에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셨습니다. 마침내 사방을 두를만큼 벽돌을 모아져서 그 자리에 판자집을 짓고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묵장사로 목돈을 모우신 어머니는 비단을 받아서 이고 나가서 비단 보따리 장사로 우리 7남매 자식들을 키우셨습니다. 어머니의 눈물과 땀으로 우리 형제는 하루 하루 커가는데 소리에 미친 아버지는 풍류를 즐기면서 사시느라 어머니는 평생 외롭게 독수공방을 하시면서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긴긴 세월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 하시느라 여린 여자의 몸으로 사내 대장부처럼 우리 7남매를 굳건히 키워주셨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세딸 중 막내딸로 태어난 저는 어머니 품속에서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밑으로 남동생이 3명이나 있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흘린 어머니의 눈물을 제가 가장 많이 닦아 드렸습니다. 두 언니들은 바로 사회에 진출을 하고 집에 남아있는 저는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기에....어머니는 늘 저에게 "곱게 자라야 시집가서 고운 대접 받는다"고 막내딸만큼은 손에 찬물 안 묻히게 하셨습니다. 우리 7남매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의 눈물을 먹고 자랐습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희생하신 어머니를 매일 바라보며, 우리 7남매는 중용을 지키고 불손한 일로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을 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야만 했습니다. 평생 5시가 되면 일어나서 달이 뜰때까지 열심히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졌습니다. 그 덕에 모두 일찌기 자수성가해서 서울에서 부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집에서 사시던 아버지는 칠순을 넘기시고 중풍에 쓰러져서야 집에 돌아와 안주하시게 되었지만 몇해 동안 앓다가 결국 조강지처 품에서 돌아가셨습니다.(이때 우리 형제는 불같이 일어나서 반대를 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받아 들이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수족이 되어 지극정성으로 모셨습니다. 손주들에게 할아버지를 찾아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저의 노래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고생하신 슬픈 어머니의 한을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힘들때나 기쁠때 양평에 있는 어머니 무덤을 찾아가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노래를 불러 드리고 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지인들의 어머니만 뵈도 가슴이 떨립니다. 그래서 저의 인생의 반은 어머니 것입니다. 기-풍류를 즐기시는 아버지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미워하는 아버지의 목을 빼닮아서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네요. 유년기에서부터 들어온 사랑방에서 부르는 노래 소리가 서울에서 들어도 낯설지는 않았겠죠. 자라면서 노래를 무대에서 불러본적이 있나요? 이- 어릴 때부터 고향 청주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소풍을 갈때나 학예발표회 무대에서 늘 일등으로 불려나와서 노래를 불러서 박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저도 소리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스승을 모시고 소리 공부를 하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서울에 이주하게 되자 저축을 하여 돈이 생겨서 제일 먼저 산 것이 녹음기입니다. 길을 지날 때마다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는 민요를 들으면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음반을 사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일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민요 가락을 따라 부르는 저를 보고 피는 못속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10대는 소리공부에 대한 목마름으로 잠 못이루는 밤을 지세웠습니다. 기-늦은 나이에 국악에 입문을 하게 된 경위를 듣고 싶습니다. 이-언젠가는 반드시 소리를 배워야지 하다가 일찍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가정이 안정되고 어린 자식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자, 비로소 마흔살이 훌쩍 넘은 늦은 나이에 꿈에도 그리운 소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수업 중에도 녹음을 해가지고 와서 일하면서 반복해서 혼자 연습을 하면서 열심히 따라 불렀습니다. 당시 단순노동에 불과한 자영업을 하면서 소리는 나에게 많은 위안과 꿈을 주었습니다. 이 소리들은 자라면서 아버지가 신명나게 불렀던 노래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몸서리치게 그리 좋아하시던 그 노래를 이제는 제가 부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더욱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가 미워서 아버지 노래를 녹음을 안해 놓은 것이 후회가 됩니다. 지금도 비오는 날 눈을 감으면 민요에서 판소리까지 즐기시던 아버지의 소리가 들립니다. 드디어 경기민요를 배우게 되고 무대에 서게 되자 집안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연습 공간을 따로 얻어서 소리 도반들과 같이 매일 모여서 공부를 하는 바람에 점점 소리에 깊게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내 안의 나자신이 얼마나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지 심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경기민요 전수자들에게 지도하는 정도의 인정을 받고 내공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스승을 찾아서 경기민요부터 서도민요를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이은관 선생에게서 서도민요 이수를 받았지만 배움의 길은 끝이 없나봅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샌줄 모른다고..... 기-늦게 배운 소리에 불구하고 서도민요 이수자까지 했으니 원은 푸셨네요. 경기민요 서도민요는 어떤 스승에게 배우셨나요? 소리 공부를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스승이 계시나요? 이-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김순자 선생님, 김경배선생님, 이은관 선생님,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묵계월선생님, 전숙희선생님, 김혜란선생님께 사사했습니다. 그 중 이은관 선생님이 무대에 많이 세워주셨습니다. 전숙희 선생님과 김혜란 선생에게 혹독한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이제는 자산이 되어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제자들이 전국경연대회에서 많은 상을 타가지고 옵니다. 늘 스승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기-경기민요, 서도소리를 이수하고, 강원도 아라리도 배우시고, 최근에는 ‘제주민요’도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데 어떤 계기가 되어서 제주의 소리도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요.? 이- 오랫동안 같이 공부를 했던 제주도 소리 친구 유재희 선생이 제주민요축제에 초청공연으로 자주 가게 되면서 신비로운 서우제소리에 반했습니다. 경기민요와 서도민요를 수십년간 불렀지만, 제주민요는 또 다른 맛이 납니다. 서우제소리를 들으면 배를 타고 신비로운 섬으로 끌려가는 듯한 선율에 넋이 나가더라구요. 이어도 소리는 여자들만이 산다는 섬으로 떠나간다는 내용입니다. 고난의 속세를 떠나서 유토피아로 떠나가는 거지요. 한번 간 사람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전설의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도 하라. 이어도 하라. 이엿말 하면 나 눈물 난다. 이엿말은 말앙은 가라. 강남을 가건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한다." 어느새 둥둥 배를 타고 상상속의 섬으로 떠나가는 환타지가 느껴지면서 온 마음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계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주민요를 들으면 어머니가 더욱 생각납니다. 오랜만에 아주 특별한 외식을 하는 기분으로 제주민요도 조금씩 부르고 있습니다. 기-지난 해 3월부터 10월까지 지도를 해주신 사할린아리랑합창단이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전국아리랑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러시아 동포들에게 지도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수상 소감은? 어떤 감동이 들으셨습니까? 이-아리랑학교에서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자를 구하는데 1년동안 책임을 지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기도에서 양주까지 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2번 이상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공주나 문경 같은 지방에서는 1번만 와주겠다는 겁니다. 지도하는 사람이 바뀌면 일정한 곡을 따라 부르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리랑학회 위촉을 받고 3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섹스폰 연주하는 친구들과 제자들까지 데리고 와서 수업시간 중 쉬는 시간 10분 동안 선율을 익히게 하기 위해 섹스폰 연주까지 들려주며 지도를 하였습니다. 드디어 10월 14일 전국아리랑경연대회를 위해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성금을 모아서 단원들 12명의 의상을 새로 마추고 소품을 준비해서 무대에 올렸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사할린 동포들은 난생 처음 입어보는 한복 무대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무대에서 심사위원들도 관객들도 모두 함께 구구절절한 서러운 사할린아리랑을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할린에는 왜 왔나 왜왔나 일본놈 무섭어 따라왔지” 강제동원으로 끌려 간 4만명 조선인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억류된 70년의 한을 가슴에 묵혀두고 있다가 터진 것이지요. 심사위원들이 20여 단체의 경연자 중 2등상인 은상까지 주셔서 그분들의 깊은 한이 그날만큼은 치유가 되셨을겁니다. 왕복 7시간이나 되는 왕십리에서 양주를 다니면서 한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힘들었지만, 사할린 동포 어른들이 아리랑을 배우려고 하시는 열망 때문에 더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더욱이 수상까지 해서 개인적으로는 환갑 이후 저의 생애 가장 기쁜 날입니다.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 갈겁니다. 기-전국아리랑전승단체가 지역적으로 55단체가 존재합니다. 경기도에만해도 10여 단체가 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김포, 인천. 가평. 포천, 수원 등등에서 양주끼지 오기는 너무 멀지요. 길이 막혀서 약 왕복 7시간 이상 걸립니다. 드디어 10월 중순 작년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에 이어 올해 사할린 동포들과 아리랑코로나를 함께 불렀습니다. 두드러진 아리랑 전승활동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합니다. 올해 계획은? 이-"사할린동포분들께 내가 해드릴수 있는 것은 다 해드리고 싶어요” 사할린 동포분들께 아리랑을 가르치며 보람이 있었습니다. 추운 나라에서 고생하시다가 이제는 그리운 조국 한국 나와서 아리랑을 배우시고 싶다는데. 아무리 멀어도 최선을 다해서 해드리고 싶어요. 우선 사할린아리랑과 아리랑코로나 2곡을 가르쳐드릴겁니다. 양주와 인전 지역 사할린 동포들과 다문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코로나가 끝나면 러시아 동포을의 요청을 받아서 하바롭스크와 사할린 동포들에게 아리랑을 가르치러 갈겁니다. 지금은 동영상을 보냈습니다. 기-사할린 동포들에게 직접 아리랑을 가르친 첫번째 사례입니다. 아리랑 소리꾼으로써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이-제가 사할린 동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3년 KBS특별생방송 '누가 이사람을 아시나요'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형제 찾는 방송을 보고 울지 않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 영주귀국 해서 사신다는 것은 사할린아리랑축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벌써 조국에 오신지가 15년이나 되셨다는데..... 4천명이 오셔서 전국 25지역에서 살고 계신다는데,,,,,,,,,작년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아리랑퍼레이드에서 함께 행진을 했던 100여 분의 사할린 동포들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양주에 영주귀국하신 김세르게이 음악가가 살고 계시는 곳에 사할린아리랑합창단이 있고, 인천에 영주 귀국하신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공노원 부회장님이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한국어와 아리랑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3월 아리랑학교에서 위촉을 받고 망서림 없이 수락을 하고 사할린아리랑에 이어 올해는 아리랑코로나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아리랑학교 수업을 통해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국외로 강제이주한 동포들이 조국을 그리는 노래로 불리게 되면서부터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리랑 전승자라는 이름을 걸고 동포들을 찾아가면서 가르치고 싶습니다. 제가 남은 시간 동안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기-사할린 동포 중 이번에 제자로 삼은 어린이가 있으시다는데 소개를 해주세요 이-제가 신아리나를 처음 본 것은 제11회 문경새재아리랑축제 ‘디아스포라 아리랑’ 무대에서 무반주로 사할린아리랑‘을 독창으로 부른 당시 5살 먹은 당차고 씩씩한 신아리나(8세)입니다. 이번에 아리랑코로나를 함께 불렀습니다. 영주 귀국한 사할린 4세로서 할머니를 따라서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직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부모 밑에서 언니(14세)와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아리랑코로나를 가르치면서 영민한 신아리나 어린이를 제자로 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회원들과 함께 장학금도 보내 줄려고 합니다. 기-전국55단체 아리랑전승단체 중 왕십리아리랑보존회는 후발주자이지만, 작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 55개 지역 아리랑워크샾, 경복궁아리랑고,사할린아리랑제 등 국가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느낀점은? 이- 2019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아리랑퍼레이드에서 각 지역 아리랑보존단체 50여개 지역단체가 깃발을 들고 입장하는 현장에서 국악인으로서 아리랑을 선택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수많은 노래가 있지만 각각의 지명을 달고 창출된 **아리랑은 충격이었습니다. 학술적으로도 60여종 아리랑이 전국에서 불려진다는 것. 전국 아리랑 전승단체가 연대한다는 것은 전세계에 없다고 봅니다. 아리랑을 부른다는 것에 자부심이 앞섭니다. 거기에는 책임같은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일년 전에 안중근의사추모제에서 가슴이 벅찼어요. 처음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서 연락을 받고 출발을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간거지요. 안중근의사추모제를 준비하는 주관단체가 일본 사람들이라는 것. 구름같이 모여든 마을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자발적으로 준비를 했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일본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어려웠던 시절 일본 농촌이나 오지로 시집을 간 한국 여성들이 우리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고 도라지타령과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인사를 하면서 서로 손 잡자마자 바로 눈물이 앞섰습니다. 저는 안중근의사의 의병활동을 추모하는 '아우르아리랑'을 헌사했습니다. 다시 한번 아리랑은 동포사회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민족의 노래‘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아리랑의 세계에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국악인으로 살면서 ’노래의 힘‘을 느끼신 적 있으신가요. 이- 아리랑을 통해 노래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은 물론 한민족 동포사회에서 아리랑은 ’애국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폭압에 대한 저항의 노래를 불렸고, 강제이주한 사할린 동포들이 부른 디아스포라 아리랑인 사할린아리랑은 고난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고 봅니다. 사할린아리랑제에서 만난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통해 절절히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말을 모르는 러시아 동포 3세 4세들도 아리랑을 부르고 알더군요. 기-그렇다면 가장 자극을 받은 아리랑축제는? 이-2018년 제11회 문경새재아리랑제에서 '디아스포라 아리랑'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무대에서 러일남북중 5개국에서 향유하는 아리랑이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르게 부른 양상을 보고, 아리랑의 다양성에 대해 감동과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포사회에서 아리랑은 흥얼거리는 민요가 아닌 바로 애국가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나만의 아리랑을 만들어야겠다. 나의 소리길를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할린아리랑합창단 결성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 간 것입니다. 기- 30여 년 국악인생을 살면서 오롯이 담아낸 '이혜솔의 왕십리아리랑' 음반은 녹음을 마친 걸로 아는데 언제 발매가 됩니까? 이-처음에는 왕십리아리랑(작편곡:윤은화)을 중심으로 4년전 서울경기 지역 아리랑을 녹음을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2019년 사할린을 다녀오고 나서 사할린아리랑을 편곡하여서 넣으려고 합니다, 추가로 아리랑코로나도 넣고 싶고, 그래서 4년이나 끌었습니다. 이제는 아리랑에 욕심이 납니다. 내년에는 나올겁니다. 기- 최근 3박 4일 동안 서귀포아리랑보존회 유재희 회장과 함께 제주도아리랑답사에서 얻은 성과는 무엇인가요? 이-서귀포아리랑보존회 회원들과 서귀포 역사 유적지를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었습니다. 제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아리랑 역사에서 사할린과 제주도는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 본조아리랑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1930년대 본조아리랑이 대유행을 했습니다. 1940년 전후 제주에서도 사할린이나 일본, 오키나와에 강제동원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본조아리랑을 불렀지요. 문헌에 있는 제주아리랑 선율은 본조아리랑입니다. 어업에 종사하거나 강제동원된 사람들이 가지고 간 아리랑이라고 봅니다. 출가해녀들이 대마도나 홋가이도로 동원되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부른 아리랑도 본조아리랑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일본 사람들이 부쳐준 아리랑고개가 존재한다는 것, 이번 답사에서 민족 고난이 있는 곳에 아리랑이 불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리랑은 역사의 노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기-앞으로 계획은? 이-내년에는 왕십리아리랑전국경연대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올해 준비를 했다가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사회적 거리가 강화되는 바람에 부득불 취소를 했습니다. 국내외 이주한 다문화 어린이들과 러시아 동포들에게도 아리랑을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해에도 아리랑학교 아리랑 지도자로 위촉을 받았습니다.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자로 알려지게 되면서 하바롭스크와 사할린 동포사회에서 수업 요청을 받았습니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종식되어 러시아 아리랑학교가 성사되어 아리랑배우기 수업이 완수되기를 기원합니다. 연혁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2016년 왕십리아리랑보존회 결성 2018년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설립/이혜솔 이사장 취임 안중근의사추모제(주관:일본 미야기현 대림사) 초청명창 위촉 제8회 이혜솔의 왕십리아리랑발표회(주최:성동구청) 2019년 아리랑학교 지도자 위촉(아리랑학회)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자 위촉 (공동주관:아리랑학회) <찾아가는 사할린아리랑> 공연 (양주사할린동포협회, 율정마을) 제9회 이혜솔의 왕십리아리랑발표회(주최:성동구청) 제7회서울아리랑페스티발 초청공연 및 아리랑퍼레이드 참가 전국아리랑전승단체(55개 지역단체) 워크샾 참가(주관:문화재청) 경복궁 아리랑고유제(45지역 아리랑전승단체) 참가 제3회사할린아리랑제 아리랑명창 초청공연(이혜솔의 아리랑) 2020년 제10회 왕십리아리랑제 주관(주최:성동구청) 전국아리랑전승단체협의회 가입단체 아리랑코로나 발표회 독도에서 제주까지 ‘아리랑코로나 부르기’성료 (공동주관:아리랑학회) www.arirang129.com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정은하 회장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이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9호이다. 이 두 유산의 해설문에는 아리랑의 수를 ‘50여종’이라고 하였다. 그 50여 종의 곡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함의가 있다고 밝혔다. 하나는 제시한 수는 명목상의 수이지 자체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셀 수가 없다’는 의미다. 사실 최근의 한 연구논문에는 음반에서 정리한 곡명 수를 192종이라고 하였다.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조사 기관과 목적에 따라 그 수가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리랑은 자기 복제라는 속성을 갖고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다음 세 번째는 이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여지를 표현한 것이란 점이다. 어쩌면 이 세 번째를 함의한 것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그 가치 향유를 목적으로 한 아리랑 전승단체가 더 형성될 것이고, 그 범위가 세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의 결성과 창작 활동은 이 세 번째의 함의를 실증하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우리가 전래되는 전통민요만 알고 있는 ‘밀양아리랑’은 1926년 9월 창작되었고, 그해 10월엔 영화 나운규의 아리랑에 등장한 ‘본조아리랑’이 탄생되었으며, 1934년엔 ‘진도아리랑’, 1936년에는 대구아리랑, 1972년엔 ‘상주아리랑’이 새롭게 세상에 나왔다. 아리랑은 댓구 형식이라서 기억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2줄의 사설, 2줄의 후렴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한번 들르면 가장 기억하기 쉬어서 각인이 된다. 그래서 누구나 지어 부르기도 쉬운 노래다. 이는 아리랑이 가진 창작과 개사의 속성을 지닌 노가바 형식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랑의 속성에 맞게 ‘왕십리아리랑’도 시대적 요청에 의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기미양:국악신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