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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양의 아리랑로드 (1997-2020)아리랑로드 답사기 기미양_러시아 동포와 함께, 겨레기념일 ‘아리랑의 날’ (뉴시스. 2017-10-01) 기미양_군함도탄광과 아리랑고개 (영웅, 8월호, 2017. 코레아우라) 기미양_지옥섬 군함도, 아리랑 고개 낳았다···저항·대동·상생 (뉴시스, 2017.07.03.) _기미양 “2014, 아리랑 창조적 계승의 해”…위대한 3대 성과 (뉴시스, 2014-12-3) 기미양_민간주도 아리랑의날, 전국 7곳 열광…국가차원 지원 절실 (뉴시스. 2014-10-13) 기미양_우리의 무기여, 아리랑이여!”…기미양 북간도 답사기, (뉴시스. 2015.08.10) 기미양_왜 우리는 일본의 아카지마 아리랑 고개로 가는가" (뉴시스. 2015-02-06) 기미양_7세 박주빈·25세 송미진, 日아카지마 아리랑평화음악제 합류 까닭, (뉴시스, 2015-02-06) 기미양_안 의사 아리랑' 마침내 탄생, 안중근 동양평화론 현장 가다, (뉴시스 2014.07.28.) 기미양_아리랑 루트 확인, 설정…남은혜·기미양·김연갑 '삼인삼색 연변기행' (뉴시스 2013.08.26.) 인쇄하기 닫기 사회 > 사회일반 “우리의 무기여, 아리랑이여!”…기미양 북간도 답사기 등록 2015-08-10 11:28:36 | 수정 2016-12-28 15:26:09 【북간도=뉴시스】중국 방천에서 북중러접경지대를 조망하다. 조러대교가 보이고 북한 두만강시가 펼쳐져 있다. 멀리 압록강 하류가 끝나는 곳에서 동해바다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북간도=뉴시스】기미양 이사 (아리랑학회) = 2013년 북간도 지역 음악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갔을 때는 ‘북간도답사’였다. 2014년 안중근의사독립운동유적지를 찾았을 때는 ‘조·중·로접경지역답사’였다. 그리고 이번 북한대학원대학교 답사는 ‘북·중접경지역답사(단장 이우영 교수)’였다. 모두 같은 역사성으로 연결되는 지역이지만 답사 목적에 따라 지명을 달리했다. 북간도, 또는 만주나 동북삼성으로 불려지는 이 지역은 나로서는 주최 측의 목적에 더해, 나름으로 늘 가슴에 절절하게 담았던 화두를 갖고 갔기 때문에 이런 지명의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왔던 듯하다. 첫 번째 답사는 남은혜 명창의 음반 ‘북간도아리랑’을 구상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안중근의 의병정신을 주제로 한 ‘아무르아리랑’을 구상하기 위해서였고, 이번에는 항일무장 투쟁 ‘무기로서의 아리랑’ 현장을 가슴에 담는 것이 개인적인 관심사였다. 무기로서의 아리랑이란 주제를 가슴 속에 담은 것은 두 가지 계기에 의해서이다. 하나는 북한의 음악정치 원천이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시절 보천보전투와 간삼봉전투에서의 아리랑으로부터라는 사실 때문이다. 또 하나는 최근 읽은 1940년대 말 미국 좌파 포크그룹 <얄마닉 싱어즈>(Almanac Singers)의 ‘무기로서의 노래(Use of Songs as a weapon)’ 동아리 활동상의 감동에서다. 이들은 아리랑을 반전음악으로 사용한 피터 시거(PETE SEEGER)와 맥을 잇는 그룹으로서, 세계 저항음악을 말할 때 내 놓는 ‘무기로서의 노래’라는 슬로건을 창출한 음악가들이다. 필자의 과잉된 생각일런지는 몰라도 일제항일투쟁기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투사들의 아리랑 변용은 바로 이들보다 앞서 노래를 무기로 변용한 사례로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실례는 김산의 아리랑, 정율성의 아리랑, 광복군아리랑, 그리고 김일성의 아리랑 등을 그렇게 본다는 관점이다. 향수를 달래주고, 공동체적 친밀감으로 일체감을 형성시키고, 배우지 않아도 부를 수 있는 아리랑 곡조에 항일적인 사설을 담은 것이다. 이는 향유하는 노래이면서 저항하는 무기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7월 18일부터 24일까지의 조중접경지역 답사 내내 1930년대 말 중국 항일전선 지역으로 돌아가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을 구상했던 용정, 김산이 다닌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던 유하현 합리하, 김정숙이 김일성을 만나러 건넌 삼합, 보천보전투가 있었던 혜산진이 보이는 장백현, 뗏목아리랑이 흘렀던 압록강변에서 나운규와 김산, 그리고 정율성과 김정숙의 아리랑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독립당 출몰, 영사관 오도빠이···아리랑 아리랑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는 부를 수 없는 아리랑이 중국과 러시아에 이르는 접경지대에서 불려졌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게 보게 된다. 필자가 수집한 자료 중 가장 앞서는 것은 1932년 7월 김경재가 북간도 상황의 기록 중에 조사한 다음의 사설이다. “독립당의 출몰이 자즈니/ 영사관 오도빠이 달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백두산=뉴시스】백두산 천지에서 아리랑남북공동등재를 기원하면서. 간도 용정에 있던 일본 영사관이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려고 싸이렌을 울리며 내달리는 상황을 아리랑에 각인시켰다. 일제의 오토빠이는 독립당을 추격하는 상징임을 모두에게 알림과 동시에 독립당은 계속해서 출몰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런 전승양상은 결정적으로 1941년 중경임시정부가 3대 군가의 하나로 채택한 광복군아리랑에서 진가가 발휘된다. “우리네 부모가 날찾으시거든/ 광복군 갔다고 말전해 주소/ 후렴-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소/ 동실령고개서 북소리 둥둥나더니/ 한양성 복판에 태극기 펄펄날려요.” 아리랑이 고난 극복의 추동체라는 사실을 말할 때, 떠올리는 이 광복군아리랑은 국내 진공작전으로 일제를 밀어내고 승리한 기쁨을 앞당겨 자축하게 함으로 용전의 힘을 내게 하였다. 곡조가 밀양아리랑이니 배우지 않고도 즉석에서 합창할 수 있었으니 유용한 심리전술의 무기였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강렬하게 되살아 난 아리랑 사연은 2013년 북간도답사 때 연길 정암촌에서 중국동포 음악가 김봉관 선생이 전해준 이야기이다. 요약하면 독립군 빨지산 활동상의 가슴 아픈 아리랑 사연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 관동군 토벌대들이 산골짜기에 들어섭니다. 앞장에 선 ‘길 안내자’는 흰옷을 입은 조선족 노인이었습니다. 주위의 산봉우리를 둘러보던 노인은 목청을 뽑아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이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도 못가서 발병난다…. 【북간도=뉴시스】2015 조중접경지역 답사 이동경로. 두만강 하류에서부터 백두산, 백두산에서 두만강 상류~하류. 미구에 노인은 일본군인의 군와 총에 쓰러지고 포위망을 늘인 항일유격대들의 분노의 총소리는 노인이 못다 부른 아리랑의 노래 가락을 이어갔답니다. 중국 조선족 가운데 널리 알려진 항일투쟁 이야기입니다. 조선 노인을 왜놈 토벌대가 들이닥쳐 빨지산을 대라고 하며 끌고 갔는데, 노인은 약속한 장소로 가서 의연하게 아리랑을 불렸다 말입니다. 그것은 신호입니다. 그러니 아리랑은 처절한 왜놈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일본 토벌대(討伐隊)와 독립군 간의 추격전에서 “**도 못가서···”라는 대목의 숫자는 일본 토벌대의 규모를 알리는 것이다. 암호로 쓴 것인데, 어느 단계에 이르러 이러한 사실이 간자에 의해 일제에 알려졌고, 결국 독립군을 돕던 한 노인이 이 암호를 쓰다가 희생됐다는 이야기다. 이는 중국민족학교 황유복 교수의 ‘힌 옷의 동포’라는 책 속에도 들어있어 사실로 받아 들여지는 이야기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숙의 아리랑 사연도 관심 있게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앞에서도 말했듯 북한의 음악정치는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제7사 활동의 최고 전과라는 보천보전투와 간삼봉전투에서의 아리랑 역할을 확대, 재현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항일전선에서의 아리랑은 다양한 상황에서 확인 되는 것인데, 북한의 불후의 고전명작 ‘한 자위단원의 운명’이나 혁명가극 ‘밀림아 이야기 하라’, 그리고 다부작(多部作)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불린 아리랑이 이런 상황에서 확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보천보와 간삼봉전투 아리랑> 【북간도=뉴시스】북한대학원대학교 2015 조중접경지역 현장답사단(단장 이우영 교수) 보천보에 홰불 올린 혁명군은 기세 높아/ 간삼봉의 싸움터엔 노래소리 드높았네/ 빨찌산녀장군이 선창 떼신 아리랑/ 봉이마다 릉선마다 뢰성타고 울렸네/ (후렴) 아리랑 스리랑/ 간삼봉에 불비 와서 아라리가 났네. 이 ‘간삼봉전투에 울려퍼진 아리랑’은 앞서 치러진 보천보전투에 이은 승전으로, 이 때 김일성과 김정숙이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는 사실을 표현했다. 당시<매일신보> 1937년 7월 9일자가 보도한 ‘토벌대와 교화 중에도 노래 부르는 여당원, 김일성 일파 공비 격퇴’에서도 추정되듯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30년대 후반기 중국에서의 항일투쟁이 침체에 빠지는 시기로 중국군벌의 도움으로 유지되던 독립투쟁이 지하화 하는 상황에서 거둔 승전보였다. 이 승전은 일본 경찰을 격퇴한 전투로 김일성의 존재를 분명하게 알린 전투이다. 1992년 4월 김일성 80회 생일 기념으로 발행된 자서전『세기와 더불어』에 두 전투에서 아리랑이 혁명의 동지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기록하였고, 이를 계승, 2002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으로 형상화시킨 것이다. 1937년 6월 4일 새벽, 일방적으로 대승한 전투, 장백현에서 보이는 함경남도(현 양강도) 혜산진으로부터 20㎞ 떨어졌다는 기록을 되살려 응시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상상의 전투신이 오버랩 되었다. 빨치산 전투방식대로 방화를 통한 충격과 주재 일본경찰을 비롯한 일인 관리만을 처단하여 공포심을 극대화 했다. 이 사실을 언론에 전해주어 대서특필, 동아일보는 호외까지 발행하게 했다. 선전선동 활동으로 군사적 성과 이상의 정치적 성과를 거둔 전투였다. “간삼봉 전투장에 울린 <아리랑>은 혁명군의 정신적 중심을 비쳐 보이고 낙천주의를 시위하였다. 적들이 <아리랑>을 듣고 어떤 기분에 잠겼겠는가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후에 포로들이 고백하기를 그 노래를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졌고 다음 순간에는 공포에 잠기였으며 나중에는 인생 허무를 느꼈다고 하였다. 부상자들 중에는 신세를 한탄하며 우는 자들도 있었으며 한쪽에서는 도망병까지 났다.” 김일성의 ‘세기와 더불어’ 제6권에 나오는 대목이다. 무장투쟁 사상 처음으로 가장 큰 규모의 국내 진공작전으로 평가하는 전투에서 아리랑을 불렸으니 북한이 아리랑을 ‘혁명동지’로 표현할만한 것이다. 【북간도=뉴시스】수풍댐에서 배를 타고 북한 사람들의 일상과 만나다. 우리가 손을 흔들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면 그들도 손을 흔들며 웃어 준다. ◇백두산은 없고 장백산은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1930년대 아리랑 여행’(?)에서 현실로 일깨운 것은 백두산 답사에서였다. 그 이유는 천지를 오르기 위해 세 번이나 중국에 돈을 내야함은 물론 모든 표기에서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는 사실이었다. 여기에 조선족 동포들이 부르는 ‘장백산아리랑’이 조선족 스스로가 현실적으로 중국신민임을 상징적으로 표현 한 노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심 더욱 안타까웠다. 그래서겠지만 이 노래는 1983년 전국민족단결현상모집에서 창작상을 받기도 했다. <장백산아리랑> “그 옛날 천지엔 선녀 내렸고/ 오늘은 세월 좋아 벗님들이 이 고장에 찾아 오누나/ 신선의 꽃 활짝 피는 우리네 장백산은/ 중국의 명산이요 연변의 자랑일세.” 조국(조선이나 대한민국)의 명산이 아니고, 중국의 명산이고, 연변의 자랑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름도 백두산이 아니고 장백산이다. 만일 북한 지역에서 오른다면 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임은 당연한 명칭이다. 이런 문제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자 갑자기 1930년말 상황과 달라진 것인 없다는 생각에서 천지에 오르는 발길이 너무나 힘겨웠다. 조중접경지 7일간의 답사, ‘여행’이 아니고 ‘답사’여야 하는 이유를 실감했다. 아리랑조차도 역사와 현실적 해석을 달리해야 하고, 산에 오름이 분명 여행이고 등산임에도 여행이 아닌 답사임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의 인내를 필요로 할 듯하다. 중국의 역사와 현재, 이곳에서 만나는 조선족이라는 중국신민들, 그리고 멀리서만 볼 수밖에 없는 북한이 중첩된 곳이기에, 이를 어떻게 풀어 낼 것인지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다시 무거운 마음으로 답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www.arirang21.org Copyr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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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주요 논문/기미양 편(안동대)주요 논문 기미양, 「영화 주제가 ‘아리랑’ 연구」,성균관대학교 석사논문, (2008). 기미양, "김산, 그의 다 부르지 못한 아리랑" 동북아평화재단-계간지 (봄호특집)2008년 1월 기미양,「매천야록 소재 아리랑 기사의 실상과 의미」(2012), 『한국민요학』 제36집, 한국민요학회 기미양,「매천야록 소재 아리랑 기사에 대한 소론」(2012), 『지역문화연구』 제11집, 지역문화연구소 기미양,「문경아리랑 대표사설의 실상과 확산 연구」(2014), 『한국민요학』 제41집, 한국민요학회 기미양, 정선아리랑 설화의 실상, 『정선문화』, 정선문화원, 2014. 기미양, 중첩된 기억의 재현(再現) -명창 남은혜의 구술생애사, 2014동계한국구비문학회발표집, 2014 기미양, 의병아리랑과 기연옥, 아시아문예, 2014. 기미양. 「공주아리랑을 전승하는 소리꾼 남은혜의 구술생애사」, 공주아리랑 발전을 위한 정책자료집.대한민국국회,2015. 기미양, 19세기 전후 <아라리>의 편모, 『정선문화』, 정선문화원, 2017. 기미양,「영화 아리랑의 자장력」, 대한민국 민속악포럼자료집, 국립민속박물관, 2017 발표논문 기미양, "영화<아리랑>의 성격과 나운규의 위상", 아리랑학회, 2010. 기미양, "남북아리랑의 같음과 다름", 아리랑학회. 아리랑학회, 2013. 기미양, "1930년대 아리랑의 실상-조선민요 아리랑에 대한 재검토" 기록민민속학회학술대회, 2017 (12월 2일) 발표예정 기미양, "『俚謠·俚諺及 通俗的 讀物等 調査』의 아리랑 실상", (2015), 추계기록민속학회 발표집, 기미양 , "남북교류속의 아리랑 인식", 2015 동계한국민요학회 주제발표 논문집, (2015). (장소:전북대) 기미양, 1920년대 아리랑 연구-이상준의 잡가집을 중심으로" (2015) 춘계기록민속학회 발표집, (장소:외국어대학) 기미양, "H·B. Hulbert 「Korean Vocal Music」 의 ‘아리랑(Ararung)’에 대한 재검토"(2015), 추계한국민요학회학술대회, (장소:서울 태회빌딩 회의실) 기미양,「적층된 기억의 전승, 소리꾼 남은혜의 구술생애사」 (2014), 동계한국구비문학회발표논문집,한국구비문학회 (장소:서울대) 기미양/김연갑, 의병아리랑에 대한 평가(2014), 아리랑학회,(장소:춘천) 기미양,「문경아리랑 대표사설의 실상과 의미」(2014, )하계한국민요학회발표대회, (장소:문경시) 기미양,「김산과 윤희순 열사 생애사와 재평가」(2013)(의병아리랑보존회/아리랑학회 공동주관) 기미양,「남북아리랑의 같음과 다름」(2014)(주관:아리랑학회) 기미양,「밀양아리랑의 창조적 계승」(2014) (주관:밀양아리랑보존회) 기미양,「나운규 영화 아리랑의 재평가」(2006) , 아리랑아카데미, 그외 다수 기미양,「김산선생의 복권 의미와 재평가」(2005), 김산서훈기념토론회, (주관;(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기미양,「영화<아리랑>의 성격과 나운규의 위상」(2010), 영화‘아리랑'84주년기념학술회, (주관;(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주제가<아리랑>의 특성과 정체성」(2010), 영화‘아리랑’개봉82주년기념학술회, (주관;(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기미양/김연갑, H·B. Hulbert 「Korean Vocal Music」 의 ‘아리랑(Ararung)’에 대한 소고,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2009. 기미양, " H·B. Hulbert 「Korean Vocal Music」 의 ‘아리랑(Ararung)의 재평가, 한국민요학회, 2015 그외 논문 기미양_아리랑의 발생과 기원설 계간 『아시아문예』2012년 겨울호 기미양_지역 아리랑의 종류와 특성, 계간 『아시아문예』 2013년 봄호 기미양_음반으로 보는 아리랑 계간 『아시아문예』2013년 여름호 기미양_의병아리랑과 기연옥 계간『아시아문예』 2013년 가을호 기미양_‘아무나 잘 부를 수 없는’ 진도아리랑, 계간 『아시아문예』 2013년 겨울호 기미양_왜 우리는 일본의 아카지마 ‘아리랑고개’로 가는가? 계간 『아시아문예』 2014년 봄호 기미양-아카지마 ‘아리랑고개’ 계간 『아시아문예』 2014년 여름호 기미양_구술생애사에서 본 남은혜 소리꾼의 아리랑 전승 계간『아시아문예』 2014년 가을호 기미양- 계간 『아시아문예』 2014년 겨울호 기미양- 계간 『아시아문예』 2014년 봄호 기미양-아카지마아리랑(1) 계간『아시아문예』 2014년 여름호 기미양_삼별초·홍길동의 오키나와 ‘아라리’ 전파설, 계간 『아시아문예』 2015년 가을호 기미양_아카지마아리랑(3) 지도에도 없는 아리랑고개 계간 『아시아문예』 2015년 겨울호 기미양_나운규의 아리랑 계간 『아시아문예』 2016년 봄호 기미양_아리랑, 다시 본질을 생각한다 계간 『아시아문예』 2016년 여름호 기미양_ 계간 『아시아문예』 2016년 가을호 기미양_영화 아리랑의 자장력 계간 『아시아문예』 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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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김산의 아리랑*총기획:김산연구회 *후원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아리랑세계화위원회/ *해설- 김연갑·기미양 *낭송- 김수희(영어)·김연갑(한국어) *소리- 김영임 *사진 및 문헌자료 제공- 벤처아리랑 *디자인 (주)신나라 디자인실 *캘리그라피- 강병인 *번역 :기미양/아리랑학회 *Planned by Synnara *Sponsors Korean Arirang Association Arirang globalization board Venture Arirang *Commentary by Yeongab Kim 쪾Meeyang Ki *Reciters Soohee Kim/Yeongab Kim *Singger Youngim Kim *Photos & Materials Venture Arirang *Design Synnara Design Dept. *Calligraphy Byungin Kang *English Translation by Andi Roselund *Editor Chungmyun Lee ---------------------------------------------------------------- Content 08 아리랑의 참다운 이해를 위하여 10 혁명가 김산, 아리랑을 노래하다 16 김산, 그는 누구인가? 18 김산연보 22 집필활동 24 <Song of Ariran>속의 아리랑 35 아리랑에 대한 인식 계기 42 In order to truly understand Arirang... 44 The Revolutionary Kim San Sings Arirang 48 Who is Kim San? 50 Chronology of Kim San 54 Kim San? Writings 56 The Arirang within 《Song of Ariran》 92출연자소개 01 아리랑, 심금을 울려주는 선율 Arirang, The Heart-String Ringing Melody 01-1 김영임 <아리랑고개> Youngim Kim <The Arirang Hills> 02 아리랑, 사형수의 노래 Arirang, The Song of a Death row Inmate 03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Death is not Defeat 04 아리랑, 위험한 노래 Arirang, A Dangerous Song 05 “나는 아리랑고개를 보았다” "I Saw the Arirang Hills" 06 조선의 혁명은 11월에……. The Revolution of Korea in November 07“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며 모두 울었다” "We Sang this Song and All Wept" 08 죽음과 패배의 노래 A Song of Death and Defeat 09 동포의 피눈물로 아로 새긴……. The Bitter Tears of Displaced Koreans 10“또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 "I Am Crossing the Arirang Hills Once Again" 11 활동사진 영화 <아리랑> <Arirang>, The Motion Picture 12 김영임 <아리랑연가> Youngim Kim <Love Song of Arirang> 12-1 아리랑연가 Love Song of Arirang 13김영임 <아리랑옥중가> Youngim Kim <Prisoner's Ballad of Arirang> 13-1 아리랑옥중가 Prisoner's Ballad of Arirang --------------------------------------------------------------------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다. 아리랑은 민요, 노래 그 이상의 절대적 가치를 지닌 노래로 ‘민족’, ‘ ‘조국’을 표상하는 노래이다. 이러한 아리랑의 위상과 의미를 부여한 이가 바로 1930년대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고 혁명가인 김 산이다. 그의 자전적 전기 <song of ariran>과 공동저자 님 웨일즈의 취재노트 <연안 노트> 에서 확인된다. (기미양) “조선에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려 주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이 담겨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오랫 동안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김산) #김산 #아리랑 #기미양 #김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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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아리랑학술답사> (주관:아리랑학회)<국외 아리랑학술답사> (주관:아리랑학회) 1993년-제1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일본(동경/이츠키) 2000년-제2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일본(동경) 2003년-제3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중국 (북경) 제4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베트남(하노이) 아태 22개국해외민속예술학술심포지움 참가 (주관:문광부) 2005년-제5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중국 (북경) 2006년-제6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중국 (상해) 2007년-제7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일본(구마모또) 2008년-제8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일본(도쿄) 2010년-제9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일본(도쿄) 2011년-제10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일본(오사카) 2013년-제11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독일(베르린) -제12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중국(북간도) -제13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러시아(우수리스크)-연해주의병아리랑답사 2014년-제14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러시아~중국) 하얼빈~대련/안중근독립유적지답사 - 제15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유럽(5개국) 2015년- 제16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오키나와 아카지마 아리랑고개(아카지마아리랑평화음악제 단장) -제17차 해외아리랑학술답사-조중접경지역현장답사 참가(주관:북한대학원대학교) 2016년-제18차 해외아리랑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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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총장 :기미양(기찬숙) 프로필기미양(기찬숙) 서울 출생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 안동국립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 박사과정 수료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구비문학대계 연구원(2009년-2014) 한국구비문학학회/한국민요학회/실천민속학회 평생회원 사)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1998-현재) 아리랑학회 연구이사 사할린아리랑학교 운영 아카지마아리랑평화음악제 단장(2015년) 사할린아리랑제추진단장(2016-현재) <김산연구회> 회장 (2000년-현재) www.arirangnara.com YMCA 빛그림사진협회 초대회장(1988년 '통일로 가는 길(통일아리랑)-사진전 주관) <Arirang Institute(USA)> 한반도 자문위원 <벤처아리랑> 대표 -아리랑축제,음반, 출판 기획 및 제작/아리랑 문헌전시업체) (www.arirang.pro)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 (www.arirangsong.net) <아리랑학회> 연구이사 (www.arirang21.org) <사단법인 영남아리랑보존회> 자문위원 (www.arirang77.net) <사단법인 의병아리랑보존회> 자문위원 (www.arirang21.or.kr) <사단법인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자문위원 www.arirang108.net <강원아리랑보존회> 자문위원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자문위원 <문화공정대응시민연대> 대변인 cafe.daum.net/UNESCO21 <나운규의 아리랑나라> 사이트운영자 www.arirang.pe.kr <김채원무용단/아리앤랑무용단 > 자문위원 www.arirang21.net) 국내외 아리랑축제 기획 및 제작 1999년 한민족제전(정선아리랑제) 총기획 2000 진도아리랑축제 총기획 2000 밀양아리랑축제-아리랑환타지 렉처아리랑-해설이 있는 아리랑 공연(2001) 제천아리랑환타지(2001) 총기획 615공동선언제2주년기념음악회-아리랑을 부른다(2002.06.06) (주관:한민족아리랑연합회/조국통일범민족연합회 남측본부 ) 2002 대전아리랑축제 총기획 2001 북한아리랑축전 총기획 2006 DMZ평화아리랑페스티벌 기획 2014 판아리랑 총기획 및 해설 2015 비로비쟌아리랑제 총기획 2016 아카지마아리랑평화음악제 총기획 제1회사할린아리랑제 총기획 2017 제2회사할린아리랑제 총기획 2019 제3회사할린아리랑제 총기획 2017 제11회문경아리랑제 전국아리랑워크샾 2018 제12회문경아리랑제 Diaspora Arirang 총기획 2018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전국아리랑퍼레이드 제12회 문경새재아리랑제(2018)--팔도아리랑이 문경에 다 모였네- (주관:문경문화원/아리랑연합회) 총기획 2019 제13회 문경새재아리랑제 총기획 2020 러시아아리랑답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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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사할린아리랑제’ 김채원 단장, 연출력과 무대 장악력에 사할린교민 찬사김채원 단장, 연출력과 무대 장악력에 사할린교민 찬사 ( 기미양/아리랑학회 이사) 김채원(<아리&랑무용단> 단장/한양대 강사) 단장이 ‘2016 사할린아리랑제’ 총연출과 독무 출연으로 사할린교민과 현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김단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전수자로 원광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2009)한 후 한양대와 중앙대 등에서 강의했고, 1993년 일본 오까야마 모모따로 맛쯔리 참가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여 2008년 ‘김은선의 춤’(국립민속박물관)과 2016년 ‘해원의 짓’(국립민속박물관) 등을 발표, 한국무용가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특히 1996년 가고시마 ‘추석 가을 축제’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전통 춤 안무를 비롯한 집단작품 안무로 그해 전국 예술축제 안무부문 특상 수상을 계기로 안무가로도 활동했다. 또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기념 “무돌이” 전국 중․고등학교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으로부터 학생작품 심사로 무용교육자로서도 크게 활동했다. ‘2016사할린아리랑제’는 한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회장 정은하)가 사할린주한인협회, 사할린주이산가족협회, 사할린주노인회 3개 단체의 초청으로 지난 12월 1, 2일 <사할린한인문화회관>과 <홈스크시문화회관>에서 팔도아리랑과 춤으로 두 차례 공연을 펼쳤다. 12개 지역 아리랑 단체 37명이 펼친 팔도아리랑 무대는 고려인 2, 3세와 러시아인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김단장의 안무는 춘천의병아리랑, 상주아리랑, 대구아리랑, 성주아리랑, 서울아리랑, 구미아리랑, 부산아리랑, 청주아리랑, 문경아리랑 간의 조화와 가사 내용에 따른 라인 구성으로 아리랑의 같고 다름을 부각시켰다. 또한 영하 18도의 추위 속에서 연린 징용한인 유적지인 ‘이중징용자위령비’와 ‘망향의 탑’ 추모제 연출도 맡아 유종의 미를 거뒀다. 사할린 현지 공연 실무자들, 초청 쇄도(殺到) 이번 두 무대의 총연출과 마지막 작품인 <북을 울려라>에 독무로 출연으로 탁월한 연출력과 무대장악력을 발휘하였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인 사할린우리말방송, 새고려신문, 유즈노사할린스크신문, ASTB TV방송국, OTB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김단장은 첫 공연을 마치고 참관한 현지 공연단으로부터 내년 공연의 출연 의뢰를 받기도 했다. 김 단장은 이번 총연출로 아리랑의 다양성과 각 아리랑의 속성들을 파악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이 경험을 발전시켜 해외 동포 공연 맞춤형 ‘아리랑 얼쑤!’ 팀 운영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단장은 1999년 정선에서 개최된 한민족아리랑제전 개막공연에서 김대환의 북과 최선배의 트럼펫과 함께 파격적인 춤을 선보여 아리랑을 형상화한 경험이 있다. 이후 2008년 ‘김채원의 춤’으로부터 2015년 ‘꽃이여 피어나라’(봉선사) 까지 아리랑을 전통춤으로 형상화 하는데 관심을 가졌다.(www.arirang21.net)) 김채원 약력 현-‘<아리&랑무용단> 단장 임이조선생 사사-승무, 살풀이, 교방살풀이, 삼북, 장고 송화영선생 사사-무산향, 춘앵전, 부채춤, 검무 진주검무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전수자 원광대학교 이학박사 전)국립전통예고 무용과교사, 전)동국대학교,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강의 <최근 공연> 2015-베트남호치민 기산국악제전위원회 타무락 2016-풍경소리의 찾아가는 음악회-붓다의 메아리 -대성사 산사음악회 -김채원의춤-해원의몸짓(국립민속박물관) -화선풍류(국립민속박물관) <예술감독> -2016사할린아리랑제(러시아 사할린) -2001통일아리랑축전(인사동) -2000진도아리랑축제(진도) -1999한민족아리랑제전(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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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 지역 아라랑음반 총기획(1999-2020)<아리랑 음반 기획> (기획:아리랑학회/ 해설:김연갑 기미양/ 발매:신나라 뮤직) 01. 1999년03월01일 음반 남북 공식음원 협약에 의한 제1호 <북한아리랑> 공동기획, 공동제작 02. 2002년12월 음반<일본속의 아리랑 >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3. 2002년03월 음반<최은진의 다시 부르는 아리랑>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4. 2003년06월 음반<남북아리랑의 전설> >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5. 2003년11월 음반<3대가 부른 진도아리랑>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6. 2003년12월 음반<탄생, 대구아리랑>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7. 2004년05월 음반<3대가 부르는 정선아리랑>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 08. 2006년06월 음반<연변아리랑:아리랑랑랑> >기획 및 사설정리, 공동제작 09, 2006년03월 음반<정선아라리3대명가>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0. 2007년03월01일 음반 <김산의 아리랑>(영문해설)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1. 2007년07월20일 음반 <영남아리랑의 재발견>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2. 2010년10월01일 음반 H.B. 헐버트 <쌀의 노래 아리랑>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3. 2010년10월01일 음반<밀양의 명물 밀양아리랑>기획, (영문번역). 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4. 2011년03월01일 유네스코아리랑등재신청기념음반<최영숙의 아리랑> (일문 영문 중문 번역)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5. 2012년 유네스코아리랑등재신청기념음반 <남은혜의 공주아리랑> (일문 영문 중문 번역)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6. 2012년 유네스코아리랑등재신청기념음반 <남은혜의 북간도아리랑> (일문 영문 중문 번역)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7. 2012년12월 유네스코아리랑등재신청기념음반 <구동존이 유지숙의 아리랑>(중문, 영문 번역)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18. 2012년12월05일 유네스코아리랑등재기념음반 <역사적 기억의 전승, 의병아리랑> (중문 영문번역) 기획/해설 19. 2013년08월15일 음반<고개의 노래, 문경아리랑>(영문 중문 일문 번역) 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20. 2014년06월12일 음반<남은혜의 아리랑>(영문 중문 일문 번역/국제음성기호 수록) 기획/해설 및 공동제작 21 2015년 실사구시 서울아리랑- 음반기획 및 해설 22. 2019년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음반기획 및 해설 23. 2019년~2020년 한러수교30주년 기념음반 -------이혜솔 아리랑-------음반기획 및 해설 진행중 24 .2020년 카레이스키아리랑: 한러수교30주년 기념음반--------------------음반기획 및 해설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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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리랑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일반 [신동립 잡기노트]우리 아리랑, 이땅에 신나라 없었더라면 등록 2013-12-09 11:43:28 | 수정 2016-12-28 08:29:29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394> 지난해 12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후 1년 곳곳에서 아리랑이 쉼없이 울려퍼졌다.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열렸고 민간이 주도한 ‘아리랑의 날’(10월1일)이 제정, 선포됐다. 6곳에 지역축전, 5곳에 학술세미나가 마련됐다. 경창대회를 벌인 지역도 3군데다. 정선군과 문경시는 기념물을 세웠다. 스포트라이트는 온통 이들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크게 생색을 내도 탓할 이 없는 아리랑 유공자는 따로 있다. 바로 신나라 레코드다. 신나라는 1992년 자사의 CD 발매를 기념해 제1호로 ‘아리랑, 민족의 노래’를 내놓았다. 일제강점기 유성기(SP) 아리랑을 복각한 것이다. 이후 작년까지 ‘최영숙, 아리랑’ ‘유지숙, 아리랑의 재발견’, 올해 ‘기연옥, 의병아리랑’ ‘송옥자, 문경아리랑’ 등 아리랑 음반 25종을 선보였다. 내년에도 ‘남은혜, 공주·북간도 아리랑’ ‘권정희, 강릉아리랑’ 그리고 경북 상주시의 ‘상주아리랑’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신나라레코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노래와 춤 그리고 웃음을 선사하는 종합 음반 기획·제작·유통 기업”이다. 한국의 음악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킨 공로가 혁혁하다. 일제강점기 문화 말살정책, 제2차 세계대전과 6·25동란 탓에 이땅의 사운드 기록은 대부분 소실됐다. 신나라가 이것들을 되살려내고 있다. SP 음반을 수집, 복각한다. 생존 명인·명창의 음반을 낸다. 나아가 국악에 뿌리를 둔 창작음악에 주목한다. 신라 범종 80여종의 웅장한 울림 역시 신나라가 아니었으면 듣지 못했을 감동이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를 비롯해 ‘꿈꾸는 백마강’ ‘선창’ ‘알뜰한 당신’ ‘타향살이’ ‘진주라 천리길’ ‘바다의 교향시’를 여전히 즐길 수 있는 배후에도 신나라가 있다. 국악, 범위를 좁혀 아리랑은 결코 돈이 안 된다. 아리랑 권위자 김연갑 상임이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아리랑을 과연 구매하는 사람이 있을까? 소비층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판단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교육 자료나 외국인 선물용 정도로 구입하는 소수가 수요자”라고 짚는다. 김 상임이사는 “그럼에도 강원 정선의 토박이 3대 가족 소리판을 1개월 간 담아 8장의 CD로 내고, 여러 기관을 거치고 복잡한 절차를 통해 음원을 입수해 ‘북한 아리랑’을 낸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녹음기를 메고 중국과 러시아 동포사회를 물어물어 취재해 김좌진 장군의 딸과 구순 노령 유민들의 눈물 어린 아리랑도 담아 ‘해외동포 아리랑’을 냈다. 아리랑만 25종 40장에 이른다. 신나라 국악음반 전체의 5%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아리랑 음반의 95%라는 사실 앞에서는 놀랍지 않을 수 없다"고 특기한다. 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는 “아리랑 주제 논문이나 전시회 등에서 신나라 아리랑 음반은 활용도가 매우 높다”면서 “아리랑의 다양함과 역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신나라 아리랑 음반 시리즈가 유네스코 등재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평한다. 신나라의 ‘아리랑, 민족의 노래’ ‘한반도 아리랑, 동서남북’(4장) ‘진도아리랑, 남도정서의 정수박이 그 보배로운 3대 소리’ ‘정선아리랑, 삶의 소리 천년의 노래’(8장) ‘아리랑낭낭, 진아리랑’ ‘북한아리랑 명창전집’(3장)은 아리랑의 다양성을 실증한다. 아리랑 민족의 노래는 1920년대 콜럼비아 제작 조모란 긴아리랑부터 1950년대 킹레코드 제작 김옥심 정선아리랑까지 SP음반 13곡을 CD로 복각했다. 변사 성동호가 해설하고 강석연이 노래한 ‘영화설명 아리랑’도 수록됐다. 일제강점기 아리랑 상황과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아리랑낭낭은 중국 동포사회 아리랑의 존재를 일깨운다. 옌볜의 여성동포연주단 7인이 11곡을 담았다. 북한아리랑 명창전집은 북에서 아리랑이 어떻게 전승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명창 25명과 6개 단체가 부른 46곡이 담겼다. 북한아리랑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한반도아리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을 포함하면 아리랑의 전체상을 조감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394> 지난해 12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후 1년 곳곳에서 아리랑이 쉼없이 울려퍼졌다.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열렸고 민간이 주도한 ‘아리랑의 날’(10월1일)이 제정, 선포됐다. 6곳에서 지역축전, 5곳에서 학술세미나가 마련됐다. 경창대회를 벌인 지역도 3군데다. 정선군과 문경시는 기념물을 세웠다. 문화부장 reap@newsis.com 신나라는 아리랑이 역사와 민족의 노래임을 입증하는 사료도 찾아냈다. ‘북한아리랑’ ‘쌀의 노래 아리랑’ ‘김산의 아리랑’ ‘의병아리랑’ ‘문경아리랑’이 보기들이다. 쌀의노래 아리랑은 최초의 양악보 기록인 1896년 H B 헐버트 채보 아리랑을 김영임의 소리, 김연갑의 낭송으로 재현했다. 김산아리랑은 1941년 미국에서 발행된 ‘송 오브 아리랑’을 텍스트로 역시 김영임 소리, 김연갑 낭송으로 재현했다. 춘천 의병아리랑과 문경 의병아리랑은 잃어버린 역사의 발굴이나 다름없다. 아리랑의 역사적 기능에 주목한 음반들이다. 2000년대 중반 학계에서 아리랑 콘텐츠 논의가 활발해지자 각 지자체는 아리랑을 어떻게 지역브랜드화, 관광수익을 올릴 것인지를 고심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축제와 연계해 자체적으로 아리랑 음반을 만들기도 했다. 이 시기 신나라는 콘텐츠의 원천으로 원형 아리랑을 기획했다. 그 결실이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영남명물 밀양아리랑이다. 진도아리랑과 정선아리랑은 가족 3대를 통한 전승 기반에 주목해 취입했다. 영남명물 밀양아리랑은 타 지역에 비해 밀양아리랑의 전승기반이 비교적 약하다는 점을 그대로 드러낸 의미있는 음반이다.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1980년대 시위현장의 개사 아리랑 등은 연극인 김종엽이 맡아야 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나 이들 세 지역은 이 음반을 통해 가장 많은 사설을 담아내며 대표성을 획득했다. 김길자의 아라리 명가 3대와 강송대의 가족을 담은 진도아리랑 그리고 유지숙의 구동존이 아리랑의 재발견은 토속 창법으로 지역 아리랑을 기록했다. 김영임 아리랑, 최영숙 아리랑, 최은진 아리랑은 이들만이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김영임의 아리랑은 관현악 반주에 맞는 김영임을 대상으로, 최영숙의 아리랑은 최영숙을 대상으로 소편성 반주에 맞는 화려한 소리를 표현해낸 최적의 명창 캐스팅이다. 국악의 명반들이다. 1999년 우리나라 최초의 북한 음원에 의한 음반이 북한아리랑이다. 북한아리랑 명창전집은 살폈듯 북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집대성한 음반이다. ‘남북아리랑의 전설’은 남의 이춘희, 북의 김종덕 등 명창들이 참여한 음반으로 15곡을 수록했다. ‘아리랑환상곡’(1·2)은 기악곡이며 주로 관현악 편곡 작품을 수록했다. 북의 오케스트라 수준을 보여주는 자료로서도 의미가 있다. 이들 세 음반은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내용의 아리랑을 제외했다. 21세기 들어 창작된 ‘강성부흥 아리랑’류다. 이 음반은 분명하게 문화교류, 구체적으로는 아리랑교류의 성과다. 신나라가 높이 평가받을 만한 대목이다. ‘대구아리랑’ ‘일본으로 간 아리랑’ ‘아리랑 코리아’(한민족 응원가) 등 셋은 창작곡 음반이다. 대구아리랑은 정은하 작창, 김기현 작사 창작 대구아리랑을 다양하게 변주한 것이다. 일본으로 간 아리랑은 일본에서 불리는 교포 2세와 일본 전통음악 신나이(新內) 예능보유자 오카모토 분야(岡本文彌)의 ‘나의 아리랑’이다. 일본 금지곡으로 대중 공연에서는 부르지 못한 작품이다. “나는 1940년 16세 때 조선학교에서 담임인 일본인 교사와 함께 경찰서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헌병에게 ‘위로부터의 명령이다. 명령에 거역하면 죽을 줄 알라’고 협박을 받으며 몸이 더렵혀진 위안부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조선 여인의 독백체로 정신대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일본이 사과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아리랑의 이름으로. 1990년대 이후 창작된 일본 속의 아리랑에서는 현지 지식인들의 인식을 확인 가능하다. 아리랑코리아는 2000년 8·15 기념음반으로 응원가로도 보급하고자 작곡한 것이다. 최영섭 곡, 이상현 작사다. 일종의 기념가 아리랑인 셈이다. ‘아리랑의 수수께끼’는 한·일 수교 40주년과 유네스코 ‘아리랑상’ 제정을 기려 양국이 함께 제작한 음반이다. 수록 아리랑 중 가극 ‘밀림아 이야기하라’의 ‘아리랑’(노래 석룡진)과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 ‘아리랑 변주곡’(연주 백고산) 그리고 본조아리랑(왕수복)은 북한 작품이다. 4중창 아리랑(일본 남성4중창단 다크닥스)과 관현악 아리랑 환상곡(지휘 김홍재·도쿄 교향악단)은 일본 작품이다. 모두 본조아리랑의 변주로 가치가 큰 작품이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 눈에 안 띄고 표시가 안 나지만 나중에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한국의 정신, 무형 문화를 살렸다고. 국가의 문화사업을 신나라가 대신하고 있다.” (김기순 신나라레코드 회장) 문화부장 reap@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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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옥 남은혜 권정희 노래·김연갑 기미양 해설 '렉처 8도 아리랑'…호응↑인쇄하기 닫기 사회 > 교육/취업/노동 기연옥 남은혜 권정희 노래·김연갑 기미양 해설 '렉처 8도 아리랑'…호응↑ 등록 2013-09-14 18:55:18 | 수정 2016-12-28 08:03:53 【서울=뉴시스】왼쪽부터 김연갑 상임이사, 기미양 연구이사, 권정희 명창, 남은혜 명창, 김찬구 관장 【서울=뉴시스】오제일 기자 = 연구자와 실연자가 아리랑의 진면목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서초구립 반포도서관(관장 김찬구)이 지난 12일 도서관 1층 다목적실에서 '렉처 8도 아리랑'을 펼쳤다. 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가 기획하고, 기연옥(의병아리랑보존회) 남은혜(공주아리랑보존회) 권정희(강릉아리랑보존회) 명창이 공연했다.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이날 특강에서 "아리랑의 특징은 자생적 계승에 있는데, 이는 중요한 전통문화 계승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7개 코드로 읽는 아리랑문화'를 주제로 아리랑의 속성, 특징, 이유, 가치, 유네스코 등재, 원칙, 그리고 '누가?'를 강의했다. 아라리(정선·강릉 아리랑)의 시원성(始原性), 문경·의병 아리랑의 변혁성, 밀양아리랑의 동시대성, 진도아리랑의 즉흥성(토속성), 본조아리랑의 보편성, 영천아리랑의 역동성, 상주·대구·공주 아리랑의 창의성(도시성) 등 특징도 정리했다. 또 전승지역의 광역성(지역초월), 전승기층의 견고성(전세대성), 전승사설의 적층성(積層性), 전승주최의 자발성(커뮤니티 중심) 등 아리랑이 생명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도 제시했다. "왜 아리랑을 부르는가? 한의 정서를 수렴하고, 모순에 대한 저항을 발현시키고, 극단을 차단하고, 고난에 대한 극복의지를 추동(推動)시켜주기 때문"이라는 김 이사의 설명에 참석자들은 특히 공감했다. 춘천에서 의병아리랑보존회를 이끌며 지난해 음반 '의병아리랑'을 발표한 기연옥 명창은 토속적이고 텁텁한 목소리로 춘천 의병아리랑과 윤희순 의병아리랑을 노래했다. 아리랑의 역사와 의병사의 만남을 통해 풍찬노숙 전쟁통에도 아리랑이 불려진 이유를 확인시켰다. 【서울=뉴시스】아리랑 명창들과 함께하는 '렉처 8도 아리랑' 올 여름 북간도를 답사하고, 공주아리랑과 북간도아리랑을 녹음 중인 남은혜 명창은 힘찬 통성으로 공주 엮음아리랑을 들려줬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1940년대 초 이주한 이후 평생 만나지 못한 친정 식구들을 그리워 한 곳이 북간도"라는 사연도 전했다.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장단과 경기민요를 전공한 권정희 명창은 정선아라리와 강릉아리랑에 메나리조 토속 정조를 담았다. "강원도는 메나리조 소리를 바탕으로 강릉·삼척·고성 아리랑으로 지역명을 달아 부른다"는 해설과 함께 즉석에서 가사를 지어 부르기도 했다. 공공기관이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개설하는 '렉처 8도 아리랑'은 전국 곳곳으로 이어진다. kafka@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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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원 아리랑춤, 날개 달았다…‘아리앤랑무용단’ 출범인쇄하기 닫기 문화 > 공연/전시 김채원 아리랑춤, 날개 달았다…‘아리앤랑무용단’ 출범 등록 2017-04-01 15:31:59 | 수정 2017-04-01 16:01:36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무용가 김채원(51)이 아리랑 춤을 본격적으로 알린다. 1일 서울 성북동 아리앤랑무용단 전용공간의 문을 열었다. 김 단장은 ‘아리랑 울림’으로 주목받고 있다. 각 지역 아리랑의 음조와 가사에 맞춰 춤사위에 변화를 주는 안무로 아리랑의 같고 다름을 선보인다. 아리랑의 감동을 노래가 아닌 춤으로 전하는 독보적인 무용인이라는 평가다. 이날 개소식에는 기연옥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장·남은혜 공주아리랑보존회장·송옥자 문경아리랑보존회장 등 아리랑 명창과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 등 아리랑 학자, 태평무 김연자 명무·최인순 한영숙류 명무 등 무용인, 유문식 작곡가 등이 참석해 김 단장의 아리랑춤에 거는 전통예술계의 기대를 드러냈다.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무용가 김채원(51)이 아리랑 춤을 본격적으로 알린다. 1일 서울 성북동 아리앤랑무용단 전용공간의 문을 열었다. 김 단장은 ‘아리랑 울림’으로 주목받고 있다. 각 지역 아리랑의 음조와 가사에 맞춰 춤사위에 변화를 주는 안무로 아리랑의 같고 다름을 선보인다. 아리랑의 감동을 노래가 아닌 춤으로 전하는 독보적인 무용인이라는 평가다. 이날 개소식에는 기연옥 춘천의병아리랑보전회장·남은혜 공주아리랑보존회장·송옥자 문경아리랑보존회장 등 아리랑 명창과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 등 아리랑 학자, 태평무 김연자 명무·최인순 한영숙류 명무 등 무용인, 유문식 작곡가 등이 참석해 김 단장의 아리랑춤에 거는 전통예술계의 기대를 드러냈다. 김채원 단장은 임이조, 송화영 등을 사사한 진주검무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전수자이기도 하다. 아리앤랑무용단(The Ari&Rang Dance Company)에서 다양한 아리랑춤을 정립하는 한편 아리랑춤 교육도 한다. www.arirang21.net 02-744-3737 reap@newsis,com 임이조, 송화영 등을 사사한 김채원 단장은 진주검무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전수자이기도 하다. 아리앤랑무용단(The Ari&Rang Dance Company)에서 다양한 아리랑춤을 정립하는 한편 아리랑춤 교육도 한다. www.arirang21.net 02-744-3737 reap@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