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 (금)
17면 기사보기 신문보기 JPG / PDF김병길 주필승인 2015.07.22 00:00댓글 0
아리랑은 고향을 떠나 고생하며 살면서 이산애수(離散哀愁)의 아픔을 달래는 민족의 노래다. 고려시대 이후로 귀화해 살아온 글안족이나 여진족의 이산애수와 망향이 아리랑의 뿌리라는 설도 있듯이 고통받는 한국인 사이에선 반드시 아리랑이 탄생했었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 한국이민자들의 피해가 막대하다는 보도가 있자 ‘뽕 따러 거려거든 산으로 갈 것이지/ 수만리 갯가로 가 웬 봉연인가’라는 상항(桑港) 아리랑이 탄생했었다. 일본 훗카이도(北海道) 가리카쓰(狩勝) 고개의 철도 난공사에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은 한 달에 100여 명이 죽어나갔다. 그럴 때 동료들이 울부짖으며 부른 아리랑이 있다. ‘밝아도 밟아도 죽지만 말라/ 또다시 태어나는 봄이 오리라’ 이처럼 아리랑은 밟아도 아리랑이었다.
정유재란때 납치돼 간 일본 규슈(九州)의 한국인들이 불렀다는 아리랑이 발굴되어 CD로도 나왔다. ‘이스키(五木) 자장가’가 그것이다. 조선 침공의 선봉장 가토 ( 加藤淸正)의 구마모토성(熊本城) 축조때 강제 노동을 했던 조선포로들이 오지인 이스키에서 살면서, 고향을 그리며 읊은 노래로 구전된 것이다. 이 외에도 노랫말에서 아리랑임을 유추케 하는 대목도 있다. 도입부가 ‘아로롱 아로롱 아롱바이’ 인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의 변음일 수 있다.
아리랑은 2012년과 2014년 남·북한에서 각각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 받았다. 그러나 국내 중요무형문화재가 되려면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반드시 인정해야만 된다는 법적인 문제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늦었지만 법개정으로 지정을 예고했다.
‘날 버리고 가시는 임,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나라’는 아리랑은 19세기 이후 각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면서 오늘날까지도 활발하게 전승돼 왔다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 단체가 있을 수 없는 우리 민족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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