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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아리랑학교] 우리가 모르는 이별의 이야기' - 이산의 섬 러시아 사할린 [ YTN기획특집 다큐멘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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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아리랑학교] 우리가 모르는 이별의 이야기' - 이산의 섬 러시아 사할린 [ YTN기획특집 다큐멘터리 ]

이중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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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이별의 이야기' - 이산의 섬 러시아 사할린 [ YTN기획특집 다큐멘터리 ]


[인터뷰: 서진길 / 1944년생]

"라디오 보듬고 울고 고향 생각이 나지 아무래도."


[인터뷰: 김정자 / 1942년생]

"누가 누구누구를 찾는다

그런 소리만 들었습니다."


[인터뷰: 조영제 / 1932년생]

"막 아버지가 쫓아와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네 사촌 동생이 

너를 찾고 있다'. 일어나라고 쫓아 나오니 

방송 끝나버렸지."


[내레이션]

1945년 8월, 온 한민족이 기쁨에 넘친 

한반도 해방.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산의 아픔을 뜻하기도 했다.

여기, 애끓는 그리움 속에서

가족을 찾는 동포들의 이야기가 있다.


[내레이션]

러시아 극동의 섬, 사할린.

자작나무 숲과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이곳에

한인들의 애절한 역사가 묻혀 있다.


[인터뷰: 이경숙 / 1952년생]

"(아버지는) 언제든지 날마다 말했습니다. 

(한국에) 가고 싶다고, 고향 이야기했죠.

그래도 뭐 편지도 못 쓰고 가보지도 못하고 

다 돌아가셨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여기서."


[내레이션]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사할린의 

북위 50도 이남을 차지했다.

석탄과 목재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사할린.

일본은 이곳의 자원을 전쟁에 활용하기 위해

한인 3만여 명을 사할린 탄광과

벌목장으로 징용했다.

징용된 이들은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의 땅에서 나무를 베고 석탄을 캐야 했다.


[인터뷰: 김윤덕 / 1923년생]

"(전등이) 무거워요. 그래도 날이 되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요. 

처음에는 해 놓으면 계속 앞으로 떨어지지."

(탄광에서) 앉아서 엎드려 일하는 데도 있고.

뒤로 누워서 일하는 데 있단 말이요. 

여기 봐. 전부 새카매. 

이렇게 엎드려서 올라가다 보니 

모두 굳은살이 됐어, 전부."


[인터뷰: 서진길 / 1944년생]

"겨울에 일한 때 산에서 일한 사람은 

얼어 죽은 사람도 있고. 

추우니까 산에 가다가 돌아가신 사람도 있고."


[인터뷰: 이쾌임 / 1935년생]

"내 남편이 여기 끌려와서 2년 동안 

일본인 밑에서 일하면서, 탄광에 일하면서 

2년 동안 월급 하나도 못 탔어. 

하나도 못 타고 그냥 다 (45년에) 해방되고 

(월급) 다 없어졌지." 



[내레이션]

1941년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일본,

연합군이 반격에 나서자 갈수록 

수세에 몰리게 된다.

사할린 한인들에게 닥친 시련도 더욱 가혹해졌다.

  

[인터뷰: 안복순 / 1934년생]

"41년, 42년, 43년도에 일본이 좀 약해졌네.

소련(연합군)이 강해지고. 

그래서 남자들을 다 일본 규슈로 끌고 갔죠." 


[내레이션]

1944년 연합군이 일본 해상을 장악했다.

일본과 사할린 간 석탄 운반 길도 끊어졌다.

일본은 사할린에서 운영하던 탄광 일부의 문을 닫고

한인 3천여 명을 군함도를 비롯한 

각지 탄광으로 동원했다.

두 번째 징용, 이중징용이다.


[인터뷰: 조영제 / 1932년생]

"학교 가서 공부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낮 12시쯤 되어서 (일본으로) 떠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아버지한테서 

편지 연락도 없고 아무 소식이 없었지요."


[인터뷰: 이수진 / 1942년생]

"남사할린 북쪽, 우글레고르스크, 

레소고르스크, 보쉬니아코보. 

여기서 제일 많이 (이중징용) 갔어요.

그때 빨리 데려가야 한다고, 

'(일본에) 먼저 가라, 식구들 다음에 보내준다'고 거짓말하고 데려갔지. 

그때 그 시대 안 가면 죽여 버리지 말도 못 하지. 그렇게 밤에 빨리 가라고. 그렇게 싹 데려갔지"


[내레이션]

가족을 데려갈 수 없었던 이중징용 광부들.

패전 후 일본은 이들을 

사할린으로 보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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