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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 60주년 기념, “아리랑으로 한일관계 재정립하자”http://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35274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는 일본이 한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한 것으로써 법적지위, 청구권, 경제협력, 어업문제에 대한 협정 체결이다. 1910년으로부터의 긴 한일관계의 정치적 매듭으로, 전후 격심한 혼란을 겪었지만 한일국교정상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임은 분명하다. 이로부터 60년을 보낸 오늘, 새로운 개념의 진정한 한일관계 정상화를 문화의 저력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문화 저력에 의한 한일관계 재정립, 이 시대적 과제의 단서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에 의탁할 수가 있다. 다음의 다섯 가지에 근거한다. 하나는 아리랑 역사상 첫 활자 기록을 일본인에 의해 존재한다. 바로 1894년(明治27년) 5월 31일자 『郵便報知新聞』(유우빈호우치신문) 기사 <朝鮮의 流行謠 아리랑>이다. 이는 조선 민중의 정서를 청취하기 윈한 목적으로 조선의 유행요 아리랑에 관심을 둔 결과이다. 이는 1896년 미국 선교사 H.B 헐버트의 <Korean vocal music> 보다 2년 앞선 기록이다. 둘은 한일회담 과정에서 아리랑은 양국 국가를 대신한 사실이다. 한일회담 최고 난제였던 대일청구권 문제 해결로 한일회담의 실질적인 타결이라는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 오히라(金鍾泌大平) 메모’ 서명 순간, 일본 외무성이 아리랑을 연주해 주었다. 한일 국가 연주를 대체한 것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 이는 1993년 11월 6일 일본 수상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가 김해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리랑으로 환영한 것과 같은 것이다. 셋은 "앞당긴 통일”로 평가되는 남북단일팀 ‘단가 아리랑’ 합의에 따른 단일팀 출전에 공동 국가 아리랑을 처음으로 시행된 곳이 일본이란 사실이다. 1990년 남북단일팀 결성 후 첫 국제경기가 일본 고베에서 개최된 세계탁구경기였다. 이때 분단 46년만에 처음으로 ‘코리아KOREA’란 이름으로 한팀이 되어 ‘한반도기’를 들고 아리랑 연주 속에 출전하여 세계의 장벽 중국을 꺾고 우승을 하였다. 당연히 수상식에서 우승 메달을 받는 순간 아리랑이 국가(國歌)로 연주되었다. 명실공히 아리랑이 한민족의 노래임을 세계에 입증한 것이다. 넷은 1930년대부터 1965년까지 일본에서 유통된 ‘일본아리랑’이 48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일본아리랑’이란 일본에서, 일본 작곡가에 의해 작곡/편곡 되고, 일본 작사가에 의해 작사 되고, 일본 가수가 일본어로 부른 ‘아리랑’ 표제 작품을 말한다. 그런데 이 ‘일본아리랑’이 1931년 ビクター文藝部 編曲, 西條八十八 작사, 小林千代子 노래 ‘アリラン’이 첫 작품이다. 이어 하세가와 이치노(長谷一郞)로 알려진 채규엽이 일본말로 부른 ‘アリランの唄’이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널리 유행했는데, 1932년 일본 최고의 작곡가 古賀政男 編曲, 佐藤惣之助 作詞, 淡谷のり子와 長谷川一郎(蔡奎燁)의 노래이다. 이로부터 ‘아리랑 야곡(’アリラン夜曲), ‘아리랑 추억(アリランの思ひ出)’, ‘도도이야쓰 아리랑(都々逸アリラン)’, ‘아리랑 부시(アリラン節), ’아리랑고우타(アリラン小唄), ‘아리랑이야기(アリラン物語) 등 ‘아리랑’ 표제의 총 48종이나 된다.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어느 나라도 이런 노래의 사연을 갖는 경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섯은 아리랑에 얼킨 숙제 하나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그것은 우리 영화 최고의 작품이지만 필름이 없어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영화 아리랑’ 필름이 일본에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대동아전쟁기 폭약 제조용으로 관리하고 있던 일본 한국 대만의 영화필름 속에 나운규 감독 영화‘아리랑’이 포함되어 있다”는 아베 요시시게(阿部善重)씨의 생전 주장에 근거한다. 아베씨는 군속(軍屬)으로 폭약 제조를 하다 1945년 패전이 되자 3인이 불하(拂下)를 받아 소장하게 되었고, 이 사실을 조총련 영화제작소장 여운각에 의해 남북한에 알려진 것이다. 2005년 사망하여 유품이 일본영상센터에 이관되어 "영화‘아리랑’ 필름이 없음이 확인되었다”고 하지만, 생전 증언에는 "영화‘아리랑’ 필름은 불하를 받은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소장했는데, 고베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여지가 있는 것이다. 특히 아베씨를 나봉한(나운규 선생 차남) 선생과 세 차레나 만난 바 있는 김연갑 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이 조사한 보고서 ‘아리랑이 보고 싶다’에 의하면 3인이 합동으로 작성한 소장 영화필름 목록은 일본영상센타에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존재 여지는 있다고 본다. 이 문제는 다시 접근할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상의 ‘일본아리랑’과 일본 속의 아리랑을 통해 한국과 일본 간에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특히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써 국가 간의 대화 주제임은 분명하다. 이로서 한일회담 60주년을 앞에 둔 시점에서 일본아리랑 주제 학술모임, 양국 공동 타큐멘타리 제작, 한일 교차 공연 등으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국가무형문화재 아리랑, 그리고 일본아리랑을 새로운 한일관계의 중요한 문화 자산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리랑 정신은 대동 상생에 있다는 사실에서 주목해야 한다. 이제 공동의 실행 위원회 구성으로부터 아리랑을 통한 한일관계 교류의 힘찬 걸음을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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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진도아리랑답사 #진도아리랑보존회박병훈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혜솔 #아리랑학회기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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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름처럼 살다간 아리랑 명인 정은하http://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33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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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구미의병아리앙제 '국의병장 허위' 20230901"피고, 허위! 죄인이 감히, 대일본제국에게 저지른 불경한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주겠다. 1896년 의병을 모아 대일본제국을 공격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1907년부터 1908년까지 ‘연합의병창의군’이라는 불순단체를 결성해 대일본제국에 총과 칼을 겨누어 많은 죄를 저지른 대역죄인이다 피고, 의병을 일으키게 한 것은 누구이며 대장은 누구입니까?"(재판관) "의병이 일어나게 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이며 대장은 바로 나다. 이토가 우리나라를 뒤집어 놓지 않았다면 의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죽더라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한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왕산 허위) 대일항쟁기 구미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의병장의 뜨거운 의병운동이 소리극으로 부활된다. 그가 돌아와서 의병들과 함께 '의병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경성으로 진격한다. 진격!!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임규익) 주최주관으로 제15회 구미의병아리랑제에서 배경숙 예술감독의 연출로 소리극 ‘구국의병장 허위’가 개최된다. 1부에서는 '저항의 노래', 2부에서는 '승리의 노래'로 구성되어 의병정신이 발현되는 과정과 영남인의 심성이 담긴 영남전래민요집에서 채록된 영남의 민요와 아리랑이 극의 단막과 어울어져 허위장군의 붉은 애국심을 펼친다. 구한말 대법원장을 지내고 전국 의병을 총지휘해 서울 진격을 노렸던 13도 창의군 대장 허위는 서대문형무소 첫 번째 사형수로 1908년 10월 21일 정오, 경성감옥의 교수대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당시 왕산의 나이 54세였다. 교수대에서 일본 헌병사령관도 그의 당당한 기개에 고개를 숙였다고 알려졌다. 소리극에서 허위 장군의 13년 의병투쟁을 구미의병아리랑에 담아서 허위장군의 의병정신을 기린다. 왕산의병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어얼싸 아라리야(후렴) 1. 여봐라 우리네 대장군나셨다 13도 창의대진 군사장이시다 2. 노래하라 외쳐라 우리네 의병장 기린다 우리는 왕산허위대장군 3. 나시니 구미땅 임은동이요 서시니 경술년 30조 호령이다 4. 오얏꽃 날리는 3월이 오면 밤새도록 노래하라 그립다하여라 5. 역사는 기린다 왕산허위장군 산하가 외친다 너는 아냐고 6. 13도 넘어서 이역 만주 땅까지 창의하여 거병하니 세상이 들썩 극중 등장인물은 허위, 허훈, 허경, 이기찬, 아카시(일본 헌병사령관) 5인과 보존회 30여명이 민중들로 나와서 구미의병아리랑, 구미아리랑, 영남민요 10여 곡을 소리극으로 올린다. 올해왕산 허위 선생 115주년 추모제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광복절에는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가 서울 왕산로, 남인사마당, 광화문,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차례로 순회하면서 '아리랑버스킹' 공연에서 왕산허위장군을 기리는 구미의병아리랑을 널리 알렸다. 임규익 회장은 내년에도 왕산로와 광화문광장에서 구미의병아리랑을 알리겠다고 전했다. 특히 사할린 동포 인무학 교수(모스크바 대학)에 의하면 "왕산허위 손자 허진 선생은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극작가로 일하면서 늘 허위장군의 의병활동을 널리 알렸다. 고려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의병장이다. 당시 많은 의병들이 서울 진격작전을 실패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했다."라고 전한다. 당시 유관순의사, 안중근의사, 윤봉길 의사 등은 널리 알려져있지만 허위 의병장은 구미에서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와 자손들이 국외로 이주하였다. 허위장군 처럼 묻혀졌던 의병운동의 자취를 발굴하고 복원시키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본다. 구미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얼씨구 노다가세 노다가(후렴) 금오산 참꽃은 다시 또 피련마는/나를 버리고 가신님은 언제나 오려나 왕산의 충절과 용맹의 기상은/내 고향 구미의 자랑이라 2005년 배경숙의 '구미아리랑' 발표 후 창립한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는 2009년부터 경상북도과 구미시 후원으로 매년 구미아리랑제 개최, 2018년 이후는 허위의병장을 기리는 구미미의병아리랑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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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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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하·김연갑 《정선 아리랑》 범우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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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병하 아라라요김병하 아라라요 노을녁 광대산 화암 약수대 걸처 앉아 8월 태양 속 녹음에 넘친 한나절 소리공무원 김병하의 아라리를 들었네 소리의 어른 안비취에 머슴 이춘희며 말석의 소인을 향해 나직이 내놓은 소리 정성~ 병하~라는 음감만큼 담백하네 오르는 산길 바람 소리인듯 내리는 계곡 물소리인 듯 아리 아리리요~ 눈이 올라나~ 처연하여 눈길 서편 하늘 향하게 하고 텁텁하여 옛 동무 언약 떠올리게 하는 노래인 듯 푸념인 듯 속삭임인 듯 그대 역광에 여울지는 아리리 음표 그 후 오랫동안 입속에 맴돌다 갔네 아리 아리리 아라리요는 그대 것인가요 광대산 것인가요? 1986년 여름 정선극장 공연과 강연하던 날. 김보성 1986년 3월 1일, 2일에 우리는 참으로도 아름답고도 구슬픈 가락을 뿜어내는 정선 아라리의 고장을 찾아가는 길을 나섰다. 나는 정선 아라리의 기능보유자 김병하 씨를 전날 서울로 오게 해서 우리 집에서 같이 자고 함께 동행했다.고은 시인, 신경림 시인, 인하대 인류학과 김광언 교수 등이 강의와 안내를 맡았다. 서울대 경제학과 변형윤 교수와 서울대 서양사학과 이인호 교수도 참가했다. 연휴라서 아침 일찍 여유롭게 서울을 떠나 강원도의 전통가옥을 살펴보고 오대산의 월정사와 상원사, 평창과 정선을 잇는 비행기재를 넘어 정선으로 들어가는 코스였다.정선 아라리의 서럽기 짝이 없는 음조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흔들어놓는다. 김병하 씨의 정선 아라리는 우리들에게 신비감을 전해주었다.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가 질려나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몰려든다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며모(暮) 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아우리지 뱃사공가 배 좀 건너주게씨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잠시잠간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태백산맥의 그 준령을 넘으면서 우리들은 경악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놓이고 터널이 뚫려 정선의 사람들도 쉽게 나들이를 하게 되었지만, 1980년 중후반에 우리가 찾아가는 정선은 참으로 험준한 성마령 고개를 넘고 넘는 첩첩산중이었다. 고은 시인은 말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이 땅의 아들이다. 삼천리 산과 물의 대지는 내 아버지고 세 바다는 내 어머니다.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싸우고 여기서 이룩하고 여기서 묻히는 것을 어느 것 하나 막을 수 없다. 이것이 나의 불가피성이다. 국토는 이것이야말로 민족을 다른 것으로 해체할 수 없는 삶의 항구적인 규범이다.”정선 아라리가 기원되었다는 아우라지에서 사람들은 다시 노래를 듣고 걸었다. 저 지난 시절 정선의 사람과 물건은 아우라지에서 배를 타고 영월에 이르고 다시 송파나루의 노들나루, 그리고 마포나루와 행주나루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었다. 이 땅의 인심과 풍속, 정서와 사상은 그 강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정선 아라리 기념비 앞에서 한길역사기행 일행들은 다시 김병하 씨와 그의 딸 김길자 양, 그리고 최능출 씨의 소리를 들었다. 아무리 들어도 더 듣고 싶었다. 험준한 산악으로 외지와 차단된 척박한 땅 정선 고을의 사람들은 지극히 서정적이고 질펀한 해학을 노래로 만들어 냈지만 때로는 저항적인 정신으로 진전되는 것이었다.삼십륙년간 피지 못하던 무궁화 꽃은을유년 팔월 십오일에 만발했네사발 그릇이 깨어지면은 두세 쪽이 나는데삼팔선이 깨어지면은 한덩어리로 뭉친다역사와 삶은 노래를 만든다. 정선의 국토와 민중의 삶은 500수 이상 되는 노래를 만들어내게 했다는 것이다. 이른 봄날, 정선 아라리를 찾아가는 역사가행을 통해 우리들은 이 국토가 창출해내는 노래와 정서를 가슴으로 체험하는 것이었다.(어느 출판인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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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아리랑 음반 홍보 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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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북남 아리랑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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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일만수. 그 중 구미아리랑 팔공산아리랑, 구미아리랑 70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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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종합 전승실태 조사보고서』의 구미아리랑 20061. 형성과 유래 <구미아리랑>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27호로 지정된 (1999.4.15. 지정) 「구미발갱이들 노래보존회」에서 <발갱이들노래>를 구연하면서 입장과 퇴장 시에 부르는 <구미아리랑>과 2005년에 처음으로 배경숙에 의해 창작되어 무대화한 <신구미아리랑>이 있다. <정선아리랑>의 영향 아래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전자는 구미 주변지역에서 독자적인 이름과 틀을 갖추며 발전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후자는 최근 일고 있는 <대구아리랑>. <대전아리랑>등과 같은 아리랑 창작운동의 영향으로 구미 지역의 향토애를 고창하기 위해 창작한 노래로 세마치 장단의 경쾌한 노래이다. 배경숙은 대구경북지회와 「영남민요보존회」 「대구아리랑보존회」의 총무를 맡은 젊은 소리꾼으로 최근 그의 첫 개인발표장에서 <구미아리랑>이 초연되어 널리 소개되었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만주소 문경새재에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가네 (후렴) 홍두깨 방망이는 팔자가 좋아 큰애기 손기로 놀아나네 (후렴) 문경새재 고개는 왠 고갠지 굽이야 굽이 굽이가 눈물이 나네 (후렴) (출전 : 구미발갱이들노래본존회 교육자료 사설집, 2003) 신구미 아리랑 사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얼씨구 노다 가세 노다가 금오산 참꽃은 다시 또 피련마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언제나 오려나 낙동강 굽이굽이 떠가는 구름아 우리 님 계신 곳에 날 데려 가다오 비봉산 저 두견아 슬피 우지마라 가신 님 내 못잊어 눈물이 난다 천생산 철쭉꽃은 필락말락 하구요 우리들의 정분은 깊어만 가누나 금오산 채미정에 둥근 달이 떠오면 정든 님 보고파서 비나이다 벚꽃이 만발한 낙동 강변에 벌 나비 쌍쌍이 봄을 노래하네 청천에 외로운 저 기럭아 그리운 우리님께 내말 좀 전해다오 이 노래의 작창 및 사설을 만든 사람은 배경숙으로(여, 47세, 대구시 수성구 만촌3동, 한국국악협회 대구지부 민요분과위원장), 이 노래는 2005년 10월 19일 대구봉산문화회관에서 초연되었다. (369쪽) 가. <구미발갱이들소리보존회> 회원명단 (생략) 나. 전승 활동 현황(전승을 위한 교육)--<아리랑>만의 단독 교육활동은 없음 1983년부터 지역에 전승되는 들소리의 사설을 조사 채록하여 이를 교재로 엮어 지역민들이 익혀 1991년 <구미발갱이들소리>라는 이름으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발표하였고, 지역민의 뜻을 모아 1996년에 노래비 건립하였따. 전승교육은 매달 7,8,9일 저녁 7시에서 10시까지 회원을 대상으로 보존회 사무실(경북 구미시 지산동 85번지)에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관내 지산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매월 토요일을 기해 들소리를 교육하고 있는데 <구미아리랑>도 이 속에 포함되어 있다. 다. 관련 행사 현황 ---<아리랑>만의 단독 행사활동은 없었으며 들노래 공연시 <아리랑>을 가창함 1999.4.15.- <구미발갱이들소리>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27호 지정 선소리 보유자 백남진 75세전승자 조교 이숙원 63세 전수 장학생 홍순민 42세전수 장학생 배인호 37세 전수 장학생 강상복 31세 1999.4.23.-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27호 지정 <구미발갱이들소리> 유래비 정면우측상단에 각자(보존회장 서용교 자필) 2003.11.2.- 금오산 잔디광장 행사 구미놀이패 말뚝이와 공동주최하여 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시작으로 "들소리 한마당”, "들소리 풍물패 놀이” 라. 시도 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없음 마. 아리랑 전승 상황 * <발갱이들노래> 시연 중에 아래 <구미아리랑>과 <영남아리랑>을 가창함 바. 연락처 경북 구미시 지산동 85번지 보존회 사무실(지산 2동 노인정) ☎ 054-453-7421 회장 이승원: 016-399-0096총무 안강호: 011-540-3336 출전: 김기현, 「경산지역 아리랑의 존재양상과 전승실태」,『아리랑 종합 전승실태 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06,367쪽~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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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 (배경숙) 연혁경산아리랑연구보존회 연혁 2006. 10. 설립 2007 경산아리랑 발표(영남대학교 인문관 강당) 국악경연대회 단체전 3등(문화예술회관) 2008 제1회 한국민요대제전 전국경연대회 민요 단체부 차상(2등) 2008~2011 제 4회 문경새재아리랑제 (문경새재 야외공연장) 2008~2015 제 11회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두류야외음악당) 2009 2009~2015 제 7회 구미아리랑제 (금오산 잔디광장) 울진 친환경엑스포 (경산시의날 축하공연) 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은상) 경산시 자원봉사자 대회장상 수상 2010 청송교도소 위문공연 2011 민요경연대회 토속부분 우수상 경산자인 단오 축하공연(자인들소리 전수관) 갓바위축제(팔공산 갓바위) 경산시 평생학습동아리 최우수상 수상 경산영남민요발표회 (경산실내체육관) 2012 <아리랑>이 유네스코에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시, 아리랑 향유 전승단체로서 동의서 작성. 아리랑 군(群) 안에 <경산아리랑>포함 영남의 흥(서울 놀이마당) 가자! 아라리라 (계명아트센타) 경산자인 단오 축하공연(자인들소리 전수관) 우리가락 우리마당(남천둔지) 갓바위축제 (갓바위공영주차장) 다사랑 효마을 정기적 봉사활동 (계양동 요양원) 2013 경산자인 단오 축하공연 (자인들소리 전수관) 우리가락 우리마당 (물소리야외공연장) 평생학습 재능기부 나눔행사(경산실내체육관) 2014 해뜨는 요양병원 매월 봉사공연 우리가락 우리마당 (물소리야외공연장) 2015 제1회 경산아리랑제 '일연의 향가 아리랑으로 꽃피우다' (경산시민회관) 선덕여왕 숭모제 초청공연 아리랑 노랫말의 영구보존을 위하여 문경시의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수」사업, <아리랑대장경>에 <경산아리랑> 포함 (문경옛길박물관) 2016 제2회 경산아리랑제 '삼성현의 고장 장산들아리랑 축제' (남천강변 야외음악당) 경산자인단오 축하공연(자인들소리 전수관) 구미아리랑제 초청공연(문성지 생태공원) 2017 제3회 경산아리랑제 '아리랑이랑 노닐고 거닐고' (경산계정숲 단오마당) 제 1회 <경산아리랑 창작경연대회> 주최/ 주관 (단오마당 특설무대) 아리랑 민요 답사 (청송읍 사부실길) 찾아가는 문화활동 (경산파티마병원 등) 2018 제4회 경산아리랑제 '아리랑에 열광하라' (경산계정숲 단오마당) 제 2회 <경산아리랑 창작경연대회> 주최/ 주관 (단오마당 특설무대) 금오산, 아리랑을 품다 (금오산 분수광장) 경산예술제 (경산실내체육관) 영남소리제전 (경상감영) 대구예술제 (대명동캠퍼스) CD<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제작 (1장: 아리랑, 2장: 영남민요) 2019 제 5회 <경산아리랑제> '아리랑에 반하다' (계정숲 단오마당) 제 3회 <경산아리랑 창작경연대회> (계정숲 시중당) CD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발매 (15년의 작사, 작창 발표곡) (1장: 창작아리랑, 2장: 이재욱 채록 전래민요, 3장: 재발견 영남민요) 광주 대구 달빛동맹문화교류(국립아시아문화전당, 6월) 영호남 명창 명인초정 기획공연(코오롱야외음악당, 8월) 서울아리랑페스티발 (광화문광장, 10월) 아리랑과 서도소리의 향기(달성문화재단, 11월) 2020 제 6회 <경산아리랑제> '아리랑으로 흥하라' (경산 풀볼 경기장 특설무대) 제 4회 <경산아리랑 창착경연대회> (영상 심사) 제12회 <구미아리랑제> (구미문화예술회관) 달성아리랑제(사문진나루터, 10월 19일) 제81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2021 제 7회 <경산아리랑제> '아리랑데뷰'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타) 제 5회 <경산아리랑 창착경연대회>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타) 1 제13회 <구미아리랑제> (구미왕산기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기념일 축하행사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국악협회 언택트 공연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2022 제8회 경산아리랑제 '아리랑데뷰' 발표 (자인 단오제 메인무대) 제 6회 <경산아리랑 창작경연대회> 주최/ 주관 (단오마당 특설무대) 찾아가는 문화활동 (버들미야외공연장) 2022 제18회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2·28 기념공원) 2003 2023 제9회 경산아리랑제 'fall in love arirang' 발표 단오제 축하공연 (경산남매공원 일원) 제7회 <경산아리랑 창작경연대회> 주최/ 주관 (경산남매공원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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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남북아리랑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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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상품 1호 북한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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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명인 정은하 , 추억의 사진 모움[국악신문] http://http://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33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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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교장 김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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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사랑한 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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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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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사할린 동포와 함께 아리랑, 얼쑤!(주)국악신문사 기미양 대표이사는 축사에서 "2012년 아리랑이 유네스코 등재 이후 아리랑담론이 횡행하지만, 오늘 사할린 동포를 대표하는 권경석 회장에게 감사장을 받는 두 단체의 활발한 전승활동 사례를 들어 자랑 좀 하겠습니다.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는 시민의 이름으로 아리랑문화 운동을 하는 자발적 시민운동단체입니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문경아리랑을 널리 알려오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왔을 때는 '코로나아리랑'을 널리 알리고, 전국 아리랑 전승지역 답사를 해오는 과정에서 정선, 진도, 밀양에 이어 사할린을 가려고 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실행을 못하고 해서, 사할린 동포들과 함께 아리랑 하려고 오늘 여기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왕십리아리랑보존회는 '창조성'을 주목하는 아리랑의 속성에 주목하여 왕십리아리랑을 창작. 보급에 성공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도 창작아리랑의 가능성을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어느 고을이든 창작아리랑을 만들어서 공동체의 노래로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할리아리랑보존회도 전승단체로서 정선에 세운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건립비에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 양주 사할린 동포는 해외 전승단체로 2018년 문경 디아스포라 아리랑 축제에서, 매년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개최되는 사할린아리랑축제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아리랑퍼레이드, 지난해 12월 정선에 세운 유네스코아리랑비건립식에도 동참해 주셨습니다. 전쟁으로 사할린 동포들을 만나지 못하는 가운데 이렇게 오늘 이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아리랑도시시민위원회 여러분과 사할린 동포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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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