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렛] [포스터] 아리랑행사 뉴스목록
-
2008년 제1회상주아리랑축제2008년 제1회상주아리랑축제 일시 : 2008년 12월 17일 (수) 오후 7시 장소 : 상주문화회관 공연장 주최, 주관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상주지부 후원, 상주문화원 /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 사)아리랑연합회/아리랑학회
-
[아리랑아카데미] 김산 서거 70주년 기념 특강/이원규(김산 평전 저자)
-
[보도자료] 영화<아리랑> 개봉 83주년 기념 학술토론회[보도자료] 영화<아리랑> 개봉 83주년 기념 학술토론회 일시-2008년 9월 30일 늦은 7시 장소-<싸롱 마고> 주최-(사)아리랑연합회 주관-아리랑세계화위원회/아리랑아카데미 주제-나운규의 생애와 주제가의 재평가 발표 논문 1. 나윤규 연표 작성과 생애 재평가-김종욱(영화사가) 2. 주제가<아리랑>의 성격과 특징-기미양 (<김산, 그리고 아리랑> 사이트운영자) 3. 구한말 외국인의 아리랑담론의 실상과 성격(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문의- *한정된 좌석으로 전화 예약이나 이멜 부탁합니다. 연락처: kibada@daum.net 02-762-5030 010-8261-5014 <싸롱 마고>(3호선 안국역2.3번 출구, 현대본사 뒤편, 용수산 뒤,비원옆길 전화-02-747-3152) 발표자 김종욱 영화사가 기미양 <김산 아리랑>사이트운영자 김태호 아리랑학연구소 연구원 김연갑 (사)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김대진 경기대 강사 김종원 영화평론가
-
[새책] 무세중의 전위예술 충돌 50년한국의 1세대 전위예술가 무세중의 50년에 걸친 작업을 한 권의 책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한국전위예술을 실제적인 공연과 이를 뒷받침하는 그의 예술적 자세, 공연의 목적과 행위의 이론적 근거들이 책에 담겼다. 공연이 행해진 연도 날짜, 출연자와 더불어 사진들 또한 함께 수록되어 있다.무세중의 전위예술은 저자의 20대 시절부터 시대에 대한 회의와 대안을 향한 끊임없는 사고의 결과들이다. 따라서 제목의 '충돌 50년'이라는 말은, 저자가 한평생을 바쳐 현실과 역사와 끊임없이 대면하고 저항하고 대안을 찾아 부단히 행위를 해 온 고독하고 힘겨운 예술작업의 과정들을 함축한다.무세중은 또한 이 책에서 한국전위예술의 이론과 사상적 배경을 텍스트화해 정리하고 있다. 그 이론적 틀을 한국의 전통 사상과 민중예술에서 찾고 있다는 특징이 발견된다. 그에 입각하여 무세중은, 서구의 전위예술이 실은 한국민의 정서에 원래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이기도 한다. 들어가는 말 : 충돌1959 ~ 19791959부터1968까지 기록된 것들1969 - 韓國民俗假面舞劇 춤사위 發表會1971 - 호질(虎叱) / 극단 민족 제 2회 공연-목소리1972 - 민속극회 남사당 창립 7주년 기념 대공연 남사당놀이 연속 대공연1973 - 민속악회 시나위창립5주년 민속악회 시나위 정기연주회 / 민예극단동아민속예술원 공동주최 마당극제1975 - 민예부흥운동 제6회 마당굿놀이 판소리 마당굿 / 노비관계문서전 (奴婢關係文書展) / 무세중 창작 발표회 전통과의 충돌1977 - 한국전통택견 발표회1977년 6월 ~ 1979년 3월 - 독일에서의 예술활동 / Mumonde (공생극단)창립1978 - 뮌헨(Munchen) 제 3세계 연극제 심포지움 / 1979 - 베를린 최초의 공연 '공간과의 충돌' (Space in Collision) / 마당횃불극 살풀이, 제 3세계의 비극 '취발이의 죽음'(Death of Chivaree) / 무세중 판토탄즈 공연 얼소리’(Sound of Soul)1980 - 19891980 - 무세중 실험극 공연 '타이치와 콘탁'(Tai·chi & Kontakt)1981 - 테아트로 무 극장 창설 기념공연 '밤의 충격'(Anschlag bei nacht)테아트로 무 극장 제2회 공연 '밤과 싸우는 사람들'(Die Lichtkmpfer) / '살았어도 죽은 삶'(Todesleben) / '페릭과 무의 초현실주의 그림연극'(Perrick & Mu Surreales Bild Theater) / 쇳소리 (Seele des Metalls)1982 - 귀국 후의 예술활동 反 그리고 통, 막, 살(TongMagSal) / 삐에르의 악소리와 베른의 행위춤 '惡소리와 行爲춤'/ 禮 봐라(Look Rye)1983 - 知봐라 돈 놔라 (Look Gee) / 반연극축제 Anti-Theater Fest / 83' 청년 전위 예술제 / 줄(Seil)1984 - 전쟁의식(Kriegs Rituar) / 民喪家 (House of Mourning)1985 - 날개는 침대 속에 (Fando and Lis) / 어느 여름날 밤의 악몽 (Nightmare of a Summer Night)춤판 살얼음판 (Dances of Iris Park)1986 - 막베어(Macbeth) / 正殺法 (Play of Killing at Noon) / 히바쿠샤 (I am HIbakusa)1987 - 그림행위소리춤 (Visual & Sound Dance) / 못생긴 美女 (Ugly Madame) / 통, 피, 살(TongPiSal) / 通·눈 (One Eye)1988 - 검은 넋 (Black Soul) / 어느 뜨거운 여름날 밤의 물귀신 놀이 / 백색의 뜰(White Court) / 통·살·풀이 (TongSalPuri) / 황(黃)·올림굿(YellowOlym) / 황토 빛·소리·짓(Muddy Performance)1989 - 무세중 춤이야기 상하좌우, 동서남북 (Four Direction) / 춤 바탕짓, 감기, 풀기 (Dance, its Origin) / 처용 龍트림 판 (For the Soul of Cheyong) / 검은 겨울 (黑鏡Black mirror)1990 - 19991990 - 늦은 겨울산 발가벗고 달리기죽음만세 (Viva La Muerta)별무리 Z-3약비유상 비무상 (若非有想 非無想)긴머리 춤(Long hair Dance)나무(木)와 해(火)(Sun & Tree)북한산 통일해원(解寃) 굿굿누리를 찾아서(Kutnuri)흑광(黑狂)Black Craziness1991 - 푸줏간의 살코기4.19 민주투사 영령을 위한 무세중의 진혼굿천년의 혼 그리고 그 예언철거, 죽음으로부터의 해방굿통일지킴이 열사해원굿비닐 속의 살코기戰爭 惹起 (Go to war)1992 - 화마가 삼킨 어느 빈민들을 위한 진오귀굿P·굴·통 (PKO로 굴레 씌울 통일)산 것과 죽은 것목화 축원(木火 祝願)무작위적 작위 (無作爲的 作爲)춤· 소리 · 짓 · 그림 그리고 詩 · 아나키의 밤1993 - 산상의 한 (山上의 恨)짐승인간들의 현대 나들이파격(破格)쐬1994 - 사람들은 뱀장어를 먹는다흰피·붉은 강용머리를 향하여꼴 놀이와 종이 굿바다 넋풀이나라, 지킴이 오방해원 굿하얗게 떨어지는 하늘의 눈물 사이로1995 - 유리굿 (Glass Performance)회룡통일 춤판무세중의 환경굿대관령 왕산 개천제슈레알 씻김(Surrealism Death)1996 - 너희 허든 지랄들 다 했느냐통·막·살 통일을 위한 막걸리 살풀이절망하는 바다, 갯벌의 비명1997 - Red and Blue (청홍‘靑紅’놀이)X-예언자통·막·살(End The DMZ)카피틸(Capiteel)통일아리랑(TONG·IL·ARIRANG)별아이(고 강용대님의 영전에 바칩니다)1998 - 소도(蘇塗)의 문을 열면서통일을 문화로 풀자무세중의 예술세계 출판 기념 및 공연 사진전무세중과 무나미의 한 맞춤 결혼'98 통일 예술제보문호 전위 예술제수마가 덮친 생명들을 위한 위령제통일 의식에 젊은 불꽃을物과 물 (Thing and Water)대한민국 홍천강 개천제제 9회 한일 댄스 페스티발 몸으로 그리다사각 속의 핏덩이 무한한 자유를 위하여 저항하다황구(黃狗)의 슬픈 죽음1999 - 춘사(春史) 나운규 영전에 바치는 아리랑 굿닭 위령제 알주고 살주고동강(東江)의 피Ⅰ통일 해원 살풀이통일 아리랑동강의 피Ⅱ99춘천 국제 마임예술제 색상생(色相生)제6회 민족춤 제전 켜봐 ! (Info - Massacre)Crown에서 Crown으로무세중·무나미 황토굿 도공(陶工)의 혼(魂)불Ⅰ무세중 무나미의 황토굿 도공의 혼불Ⅱ무나미 굿 아티휘샬(Artificial)무세중 무나미의 바람 굿제4회 공주 아시아 1人극제 통일 아리랑4332년 개천 해원제백년의 통한을 풀고분단의 사슬을 풀고 통일의 평화로2000 - 20072000 - 황금의 피컴퓨터 굿 '컴퓨터에 살고 컴퓨터에 죽고'새만금 장승제 바다로 간 장승단오(端午)굿무너진 역사의 벽사이로어린이를 위한 퍼포먼스 인형들의 반란제1회 日·韓·朝 Never forget Hiroshima 동아시아 평화 예술제를 위한 序詩동강변 주민을 위한 굿마당닭 넋을 위하여단기 4333년 개천절 기념 민족 공동행사 국조 삼신님들께 바치는 제문(祭文)만남은 필연(必然)인가 우연인가청양 장승 지킴이굿 ‘청양(靑陽)이여 영원하여라’2001 - 2001년 통일 아리랑빨강 (Red Ceremony)제 4회 통일 대학 연극제 분단벽 허물기공양왕릉제 초혼가2002 - 소도(蘇塗) 한뫼 마당그림굿대한민국 통일 솟대 아리랑제 1회 소리산 문화축제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전무후무(前巫後務) 주최 무세중무나미의 함께 하는 단오(端午)굿춤은 있는가넋 춤(넋이야 있건 없건)오방(五方) 해원(解寃)굿과 솟대 탈놀이제52주기 금정굴 양민학살 희생자 해원을 위한 행위예술가 5인의 해원 굿정신(精神)의 빛2003 - 순백의 환상三 · 一 아리랑反戰 굿유리전쟁 (Glass War)통일 아리랑무나미의 統·殺·풀이癌(암)의 극복발의 행방(行方)2004 - 2004년 통일을 위한 막걸리 살풀이 통·막·살송강과 강아극장 제로에 얽힌 예술의 한을 풀어 주시옵소서. 삼신 신령님이시여!아리랑 환타지이 땅 위에 하늘 열린 날 아리랑 삼신제(三神祭)와 통일 염원 한마당2005 - 2005년 3.1절 기념 퍼포먼스 ‘삼신(三神) 할머니, 우리 할머니’제 1회 한민족 대동제 태극기 휘날리며독도(獨島) 아리랑제3회 세계 도자 비엔날레 불멸(不滅)의 즈엄집4338년 한뫼 축제 三神님께 ‘한’ 바치고 한빛 얻다오행(五行)춤, 그 아름다운 상생(相生)을 위하여2005년 천안 예술제 ‘하늘에 바치는 詩’ 오! 시간의 빛이여!Zen-Movement Paper Performance The Light of TimeMUSAWEE Workshop4338년 하늘 열림날에 올리는 아리랑 한뫼 삼신제문북한산 한뫼 삼신(三神) 신령님께 바치는 굿놀이 마당108th 하우스 콘서트 세미나 및 무사위 공연2006 - 4339년 봄 한뫼 아리랑 삼신제4.19탑 자리에 나타난 낮도깨비인왕산 치마바위 아리랑제3회 용추 자연 예술제 장수 용신이여! 삼신명(三神命)으로 비상(飛上) 하소서가을 설화 (Autumn Legend)4339년 한 삼신(三神) 개천제 (開天祭)평택호 축제 용신제2007 - 조문호 초상 사진전 축하퍼포먼스 '黑白으로 무너지는 三色世界'무세중 이야기인터뷰 : 무세중의 전위예술 - 이성의 힘, 예술의 힘연보 접기
-
아리랑연합회 고문. 무세중 선생, 김종욱 선생
-
2007 '아리랑의 시원설' 출판기념식
-
[음반] 독립운동가 김산 '아리랑' 노래 복원독립운동가 김산 '아리랑' 노래 복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14&aid=0000033729 항일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1905-1938)이 부른 것으로 기록된 '아리랑' 노래가 복원되었다.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는 28일 "3.1절을 맞아 수감 중에 감방 벽에 손톱으로 가사를 새겼다는 김산의 아리랑을 복원, 음반제작사인 신나라를 통해 음반으로내었다고 말했다.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영화음악에 맞춰 불렀다는 기록에 따라 명창 김영임 씨가 당시 곡조를 찾아 녹음했다. 음반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 설명도 함께 수록했다.김산의 생애는 1937년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미국의 신문기자 애드거 스노의 부인 님 웨일스가 3개월 간 20여 회에 걸쳐 나눈 그와의 대화를 소설 '아리랑'으로 출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책에는 김산이 '아리랑'을 불렀다는 기록이 10차례 이상 나온다.김연갑 이사는 "공산당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조국에서도 김산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이번 음반을 내게됐다"고 덧붙였다.김산과 님 웨일스의 공저로 출간된 평전 ‘아리랑’과 웨일스의 취재노트에 기록된 김산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발매된 김산의 아리랑지금으로부터 정확히 70년전, 혁명 열정과 항일 의지를 뜨겁게 불사르던 33살의 조선 청년.. 조국 해방을 꿈꾸며 중국 공산당의 ‘불화살’로 대륙을 넘나들던 이 청년이 바로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 ‘아리랑’을 펴내 김산의 혁명열정과 조선의 아리랑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이는 님 웨일즈였다.이번에 발매된 ‘김산의 아리랑’앨범은 김산의 생애와 신념을 민요 아리랑에 초점을 맞춘 음악 앨범이며, 경기명창 김영임씨가 부른 ‘아리랑고개’,‘아리랑연가’,‘아리랑옥중가’등이 수록된 가운데 김산의 신념이 담긴 ‘아리랑, 사형수의 노래’,‘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같은 글도 국문과 영문으로 나란히 낭독돼 그의 진면목을 살피게 한다.김산은 아리랑 고개를 민족사의 고난으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리랑을 불렀으며, 이 음반은 한민족 공동체가 아리랑을 민족의 노래로 인식하고 있는 사실 등에 비춰 선각자들이 말한 아리랑의 힘을 현실화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KIM SAN'S ARIRANG01 . 아리랑, 심금을 울려주는 선율02 . 아리랑, 사형수의 노래03 .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04 . 아리랑, 위험한 노래05 . 나는 아리랑고개를 보았다06 . 조선의 혁명은 11월에...07 .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며 모두 울었다08 . 죽음과 패배의 노래09 . 동포의 피눈물로 아로 새긴...10 . 또 다시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11 . 활동사진 영화 <아리랑>12 . 김영임 <아리랑연가>12 . -1. 아리랑 연가13 . 김영임 <아리랑 옥중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14&aid=0000033729 www.arirangnara.com
-
나운규 영화 아리랑 개봉80주년기념 토론회
-
2006 나운규 감독 영화<아리랑> 개봉 80주년 기념 토론회나운규 감독 영화<아리랑> 개봉 80주년 기념 토론회보도자료금년 10월 1일은 나운규 감독 영화<아리랑> 개봉 80주년 입니다. 필름 한 컷 없는 아쉬움을 대신하여 토론회를 마련했습니다. 이 행사에서는 남북 공히 민족영화 1호로 꼽히고, 우리 영화사의 처음이자 교과서인 영화<아리랑>의 감독 나운규와 그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기념할 것인가? 그리고 세계에 알려진 노래 아리랑이 실상은 전통민요가 아니라 영화 주제가임을 밝히고, 개봉당일 압수당한 전단지의 실상과 압수`삭제당한 사설을 발굴, 그 실상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에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또한, 본 단체에서는 80년전 10월1일 개봉 당일날 아침 압수당한 전단지를 복원, 10월 1일 단성사앞에서 배포할 예정입니다.나운규 감독 영화<아리랑> 개봉 80주년 기념 토론회주최:사단법인 한민족아리랑연합회,주관:아리랑세계화위원회후원:벤처아리랑,일시:2006. 9. 28. 14:00-17:00장소:노불 호텔 회의실(운니동 현대 본사 건너편 삼환까뮤 옆, 노블호텔-742-4025)사회:김이경(전 스포츠서울 가자)발표:제1주제-나운규,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전체)제2주제-주제가 아리랑 누가 작곡, 편곡했나? (형성과 주체화 과정-김연갑-아리랑연구가)토론자:나봉한 감독(나운규선생의 자)(이하 가나다순)기미양(성대 대학원-국문학), 김종원(영화평론가), 김종욱(영화사가),박대헌(영월책 박물관관장-서지학), 조희문(상명대교수-영화학), 홍두표(로고스성가연구소 목사)문의: 02-763-5014/764-5014
-
백선기 교수 영면식
-
공연 사진
-
#DMZ아리랑축제
-
#정선아리랑 #김길자 #박민일 #김연갑 #기미양
-
[악보][사설] 봉화아리랑봉화아리랑 작사 봉화군청자료 작창 배경숙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삽재고개 넘어간다 1. 태백영산 우뚝 솟아 그 정기 이어받고 천삼백리 낙동강 원류가 여기로다 2. 명륜당 훈장소리 학동선잠 깨우고 봉양리 베틀노래 흥겹게 들리누나 3. 사미에 세운정자 풍광도 좋고요 산송이 복수박은 천하의 일미로세 4. 백천계곡 열목어야 너만 어찌 한가하냐 청옥산 꾀꼬리가 함께 놀자 하는구나 5. 청량산 육육봉에 바위마다 깃든 전설 갈래천 맑은 물에 은어 떼 뛰어 논다 6. 성운에 이는 구름 단비를 가져와서 골매산정 좋은 들에 해마다 풍년일세
-
<정선아리랑>의 참맛 보여 드립니다.<정선아리랑>의 참맛 보여 드립니다. [오마이뉴스 2006-02-16 11:14] [오마이뉴스 김영조 기자] ▲ '아리랑 명가 3대의 정선아라리' 음반 표지 ©2006 신나라 우리에게 아리랑이란 무엇일까? 왜 우리 겨레는 전 세계 어디서나 아리랑을 들으면 눈물이 찔끔거린다고 할까? 일제강점기에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보면서 배달겨레의 아픔과 울분을 같이 느꼈을까?신나라 김기순 회장은 "아리랑의 참된 의미"라는 글에서 "아리랑 속에는 인간의 모든 아픔과 갈등, 그리고 용서와 화해, 그리고 강력한 저항과 울분이 녹아 있습니다. 아리랑은 그냥 노래가 아닙니다. 아리랑은 삶과 죽음의 소리입니다. 아리랑은 정신을 토해 내는 울부짖음이요, 천하를 가슴에 품고 용서하는 해원의 소리인 것입니다"라고 말한다.우리 겨레의 4대 아리랑은 누구나 서울의 <본조아리랑>,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을 꼽는다. 또 이 가운데 강원도의 <정선아리랑>을 아리랑의 원형을 간직한 본류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기록상 4천여 수의 가사가 전해 오고 있고, 노래의 전승체계도 변함없이 이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정선아리랑>을 사람들은 "아리랑 중의 아리랑"이라고 한다.<정선아리랑>을 주제로 한 고숙경의 석사논문 '정선아리랑에 관한 연구'에도 "동부지방의 민요에 속하는 강원도 지방의 정선아리랑을 택한 이유는 정선아리랑은 각 지방의 많은 아리랑 중에서 그 기원이 가장 오래되었고, 가락과 선법에서 한국 민요의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우리 민족의 감정 또한 가장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특히 <정선아리랑>은 다른 노래들과는 달리 가사가 고정되지 않고, 삶 속에서 꾸준히 창조되어 온 노래이다. 또, 삶 그 자체임은 물론 사람들의 감정이나 마음에 맺힌 것을 걸러 주고, 풀어 주는 노래라고 말한다.그런 <정선아리랑>을 독자성을 가지고 3대를 이어온 가족이 있다. 1989년 83세로 사망한 1대 정옥선, 61살로 투병 중인 강원무형문화재 제1호 명예예능보유자 2대 김병하, 그리고 강원무형문화재 제1호 예능보유자이며, (사)정선아리랑보존회 이사장인 3대 김길자가 그들이다.1대 정옥선은 많은 일화가 있다. 예를 들면 소를 몰던 사람이 모친의 정옥선의 아라리 소리에 넋을 잃어 그만 소가 귀리 밭에 들어가 밭을 다 절단낸 적이 있다는 얘기나 돌다리를 건너던 이가 모친의 소리에 취해 그만 발을 헛디뎌서 물에 빠져 버렸다는 얘기 등이다. 이런 소리의 소유자였으니 두말할 나위 없이 나라가 인정하는 예능보유자가 된 아들과 손녀의 소리내력을 짚어 준다.또 2대 김병하는 시인 고은이 말했듯 "김병하의 낭낭한 목청은 우리가 넘어온 성마령 쪽에 대고 정선아라리 청승의 극치를 보여준다"라는 평가를 듣는다.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런 일이 있어도 아라리 한 자락 멋들어지게 하고 나면 가슴이 확 트입니다. 아라리를 부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신명이나요. 알 수 없는 기운이 쑥쑥 올라오는 듯하지요"라는 김병하에게서 우리는 신명으로 가득 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그렇게 아리랑에 발자취가 뚜렷했던 김병하는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더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고 대신 3대 김길자에게 아리랑은 넘어갔다.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본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는 그녀를 투병 중인 아버지와 신경통 등의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효성 지극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는 "그녀를 참으로 아름답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그의 소리는 감동을 준다. 가슴을 아프게도 하고 눈물을 짓게도 한다. 그렇다고 청승맞지는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이 3대 김길자가 와병 중인 아버지의 회갑을 맞아 헌정하는 음반 <아리랑 명가 3대의 정선아라리>(신나라)를 통해 내놓았다.이 음반의 첫 장에는 할머니 정옥선과 아버지 김병하 그리고 할머니의 이종과 고종 사촌들과 함께 벌인 소리판이다. 특히 장고 반주에 의한 소리와 향피리 연주도 있다. 사설은 약 80여 수인데 이들 자료는 거의 80년대 말에 카세트에 담은 것으로 상태가 고르지는 못하다. 두 번째 장은 김길자씨의 소리로 부친에게 바치는 헌정곡을 먼저 담고, 무반주와 반주에 의한 긴소리, 자즌소리, 엮음소리를 담았다. 특히 잦은 소리는 물박장단(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치는 장단)과 함께했다.겨레여! 우리는 아리랑의 민족이다. 이를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 정선아라리를 듣고, 한겨레로서의 감흥을 흠뻑 느껴보길 권한다. 그리고 온 세상에 퍼져있는 배달겨레의 모든 이들과 하나 된 마음을 가져보면 좋을 일이다. 어쩌면 이 <정선아라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통일을 앞당길지도 모를 일이다."맨드라미 줄봉숭아는 토담이 붉어 좋고요앞남산 철쭉꽃은 강산이 붉어 좋다봄철인지 가을철인지 나는 몰랐더니뒷동산 행화춘절이 날 알려주네"(<정선아리랑>의 한 대목) 아버지의 회갑에 효심으로 바치는 아리랑 [인터뷰]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김연갑 당연히 음반평이니 소리를 부른 김길자를 인터뷰했어야 했다. 하지만, 여러 번 김길자씨와의 만남을 시도하다 번번이 실패했다. 그것은 그녀가 극진히 간병하고 있는 아버지 김병하씨의 병이 깊어져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다는 말에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이 음반을 기획하여 제작한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에게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아리랑은 무엇인가? 왜 아리랑에 미쳐있는가? "나라밖 동포들은 아리랑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인다. 그리고 아리랑 얘기를 먼저 하지 않으면 다른 이야기로 나아가지 못한다. 중앙아시아에 가면 우리 동포는 그냥 고려인이고, '까레이스키'이다. 남과 북 어디도 고국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헤어질 때면 으레 아리랑을 부른다. 그래서 아리랑은 민족의 노래다. 아리랑에는 한민족의 동질성, 정체성이 있고, 신앙심이 있다. 아리랑 고개의 상징성은 발병이 아니라 고개를 넘으려 하는 것이다. 수난을 많이 겪은 우리 겨레가 아픔보다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부른 노래일 것이다. 나는 이를 깨닫고 아리랑의 순서를 맞추고,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군대에 갔는데 휴전선 근처에서 근무했던 탓에 북한군의 선무방송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해 뜨고 달 뜨고 별도 뜨네'라는 북한 아리랑을 들을 수 있었는데 가사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제대 뒤 사북에서 진폐증 환자가 부르는 아리랑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때 아리랑을 연구해볼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후 20년 넘게 미쳐왔다." - 그렇게 오래 지탱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이 있다면. "이 일을 인정하고, 노력에 대해 대가를 주는 데가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신나라는 이번 음반의 제작뿐 아니라 나의 20년 아리랑 작업을 같이해왔고, 11번째 음반을 내주었다. 음반사가 한 장르에 그것도 돈도 되지 않는 데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집중하는 것은 그 예가 없을 정도이다. 이는 신나라가 아리랑의 역사성, 전통성과 현재적, 미래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에 관한 한 신나라의 공로는 높이 기릴 만 한다." - 정선아라리 3대와 이번에 내놓은 음반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 "김길자 가족은 아리랑을 내림 직업으로 가진 가족이다. 스승과 제자가 이어간 경우는 종종 있지만 가족이 3대를 이어간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김길자의 아버지 김병하가 말을 할 줄 알고, 활동력이 있었던 탓에 정선아라리를 외부에 알릴 수 있었고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이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에 가난까지 겹쳐 고통을 받다가 급기야 목을 쓸 수 없는 중풍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김길자가 아버지의 소리를 물려받아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김길자는 단언컨대 20년 귀명창인 내가 아리랑 소리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길자는 투병중인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한 딸이다. 그 김길자의 소리뿐 아니라 효성에 반한 나와 신나라가 협력하여 김병하 회갑맞이 헌정 음반을 내게 되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당장 통일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통일이 된 뒤 전 세계 135 나라의 동포가 같이 아리랑을 부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비무장지대 안에 박물관을 지었으면 좋겠다. 만일 지어진다면 내가 20여년 모아온 아리랑 자료를 모두 내놓겠다. 그래서 분단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기를 기대한다." 어떤 책의 글쓴이가 '미쳐야 미친다'라고 했던가? 그는 그렇게 아리랑에 미쳐 있었다. 온 나라 땅의 9할을 발로 밟아봤다고 할 정도로 미쳐있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신앙처럼 말하고 있었다. 다만, 그로 인해 가족들을 힘들게 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 김영조 출처 : 오마이뉴스
-
사단법인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연혁(1980-2005년)창립배경 1983년 <아리랑기행단>결성 (고문 : 고은 선생) 1988년 <모임 아리랑>결성 (고문 : 허규 선생) 전국아리랑보존연합회 결성 1989년 <제2회 아리랑축제> 기간 중 전국 15대 지역 아리랑연희자 대표 모임에서<전국아리랑보존연합회>결성을 합의(업무 총괄: 김연갑) 1989년 월 초대 회장에 최서면 박사(국제한국연구원 원장)추대 한민족아리랑보존연합회로 재 창립 1991년 12월 최서면 초대회장의 임기 만료로 제 2대 송성한(외무부 본부대사) 추대해외 동포사회를 아우른다는 취지에서 연합회 명칭을 '한민족아리랑보존연합회'로 변경 1994년 제 2대 회장 임기 만료 /제 3대 회장에 송철원(신문로포럼 공동대표)추대 1994년 8월 사단법인 설립 허가(문화체육부 허가번호 제 111호) 사단법인 한민족아리랑연합회로 변경 (1996-10-01) 1995년 5월 인사동으로 사무국 이전 1995년 3월 강원도 정선 <아리랑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결성(위원장:위봉돈) 1996년 10월 羅雲奎 [아리랑] 필름찾기 서명대회 1997년 9월 송철원 이사장 임기 만료 1997년 10월 임시이사회에서 김선풍. 김 정 이사를 공동 업무대행으로 위촉, 결의 1998년 10월 고문. 자문위원단에서 제 4대 이사장에 한완상 박사 추대 1998년 11월 제 4대 한완상 이사장 취임 1999년 11월 후원업체 < 벤처아리랑 >개설 1999년 3월 음반 <북한아리랑> 공동기획, 발매 1999년 10월 강원도 정선 <99한민족아리랑제전> 개최 2000년 4월 경남 밀양 <아리랑의 밤> 아리랑환타지3공연 2000년 10월 아리랑필름찾기 보고서 1.2.3.편 발행 및 <아리랑이 보고 싶다>출간 2000년 11월 <2000진도아리랑축제>개최및 진도아리랑전시관 개관식 2001년 7월 상주아리랑 지회 개설(국내 14개 지회/해외 4개 지부) 2001년 4월 서울 인사동<01'통일아리랑축전>개최 2001년 6월 충북 제천 <제천아리랑환타지>제천국악원 공동(아리랑환타지 7회공연) 2001년 9월 충남 대전<대전아리랑환타지> 대전문화사랑회 공동 2002년 1월 <북한아리랑축전 어떻게 볼것인가?>세미나 개최 2002년 6월 <6.15 공동선언기념 음악회 ‘아리랑을부른다’>개최 2002년 6월 북측<아리랑축전>, 남측 업무 위탁 받음 2002년 11월 <아리랑축전 업무 종결 보고서> 발간 2002년 12월 <일본속의 아리랑 >음반기획, 발매 < 김산의 '아리랑'원전 기증식> 2002년 4월 서울<한국대학생아리랑축전> 총연출:김경원 아리랑예술단장 2002년 6월15일 인사동<6.15공동선언기념음악회- 아리랑환타지> 범민련등 각 90여개 연대와 공동 2002년 10월 <나운규 탄생 백년 기념 자료전시회> 2003년 1월 정전50주년 기념 판문점<평화의 노래 아리랑>행사 추진 2003년 2월 음반 <다시 찾은 아리랑>음반기획, 발매 2003년 3월< 3.1절 기념 및 음반발매기념 음악회> 2003년 4월 음반 <아리랑을 찾아서> 공동기획, 발매 2003년 6월 음반 <남북아리랑의 전설> 공동기획, 발매 2003년 6월 < 평화의 노래 아리랑 문헌전> 개최 2003년 7월 <아리랑치기 용어 사용금지에 대해 대정부 청원> 2003년 8월 <아리랑박물관건립추진위> 결성 2003년 8월 대구유니버시아드 기념 <대구아리랑축제>공동 개최 2003년 9월 <재외동포음악인 초청 행사>(일본 김학권 선생초청 간담회 및 답사) 2003년 11월 음반 <진도아리랑>공동기획, 발매 2003년 12월 음반< 대구아리랑>공동 기획, 발매 2003년 12월 <2003아시아 태평양 문화연대 공연제및 국제문화포럼> 후원 2004년 5월 음반< 정선아리랑>공동 기획, 제작 발매 2004년 5월 음반<세계속의아리랑>공동 기획, 제작 발매 2004년 9월 <정선아리랑지부>개설(지회장:위봉돈) 2004년 10월 <영월아리랑지부>(지회장:박대헌) 2005년 1월 < 아리랑컨텐츠화 사업> 중앙대와 공동 2005년 3월 음반< 아리랑의 세계화 위원회>결성 (김진선지사/ 한명희박사 공동대표) 본 단체 주관단체로 선정 2005년 3월 <렉쳐 김순녀 정선아리랑 발표회>
-
연합뉴스 <67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김산의 영혼>아버지 김산의 훈장증을 보여주는 고영광씨 고영광씨, 아버지 명예회복 과정 소개(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아버지 김산의 영혼이 고국에 돌아왔다. 한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다."17일 오전 종로구 공평동 태화빌딩의 지하회의실에서는 광복60주년을 맞아 얼마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독립운동가 김산(1905∼1938. 본명 장지락)의 유일한 혈육인 고영광(高永光.69) 씨를 초청해 김산의 복권의미와 생애를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이날 자리는 인터넷에 김산을 기리는 사이트 아리랑나라(www.arirangnara.com)를 운영하는 기미양(45) 씨가 고씨를 초청해 이뤄졌다.고씨는 이날 자신의 아버지의 생애를 다룬 '아리랑'에 나오는 그 가사 그대로 국악인들이 부르는 아리랑 곡조를 들으며 감회에 젖는 듯했다.올해는 조선의 독립운동가 김산이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미국의 여류작가 님 웨일즈가 쓴 김산에 대한 평전 '아리랑'(원제: Song of Ariran)'의 개정판이 최근 출간되고, 그동안 사회주의 계열로 분류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던 김산에게 정부가 최근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등 그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씨는 미리 준비한 아버지 김산의 자세한 활동을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아버지의 독립운동과 생전 활동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김산의 독립운동 활동을 인정한 한국 정부에 대한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일본 스파이로 몰려 1938년 중국에서 33세의 젊은 나이로 총살된 혁명가 김산.그의 아들 고영광 씨는 김산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얘기를 나이 서른이 넘어 처음 들은 후, 1970년대 후반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 조직부장이었던 후야오방(胡耀邦)에게 직접 편지를 써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탄원했다.당시 그는 아버지 김산을 만났던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만나고 "당신의 아버지는 진정으로 멋진 혁명가였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술회했다.결국 1983년 1월, 후야오방과 김산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본의 스파이로 몰려 처형된 김산은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김산의 유품은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씨는 남아 있는 유품은 사진 한 장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이날 질문 중에는 "님 웨일즈와 아버지가 연인 관계였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것도 있었다. 고씨는 이에 대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라고 말한 뒤 "일반적인 동지 관계보다는 가까웠을 수 있겠지만, 상상하기 나름"이라며 님 웨일즈는 조선의 해방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덧붙였다.한편 이날 '아리랑'을 감명깊게 읽었다는 연극인 김경원 씨는 김산의 이야기를 소재로 직접 쓴 희곡을 준비해오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남과 북이 함께 김산의 생애 다룬 연극을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또 주최측이 남녀 국악인을 초청, 님 웨일스와 김산의 '아리랑'에 나오는 '아리랑 옥중가'와 '아리랑 연가'를 직접 들어보는 자리도 마련됐다. '아리랑 연가'는 당시 중국에서 님 웨일즈와 김산이 영어가사로 함께 불렀던 노래.고씨를 한국에 초청해 이날 자리를 마련한 기미양 씨는 "흔히 '아리랑'이 님 웨일즈의 단독 저작으로 알려졌는데 '아리랑' 영문 초판본에는 분명히 저자가 '김산ㆍ님 웨일즈'라고 써 있다"며 "김산은 '아리랑'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공동 저자"라고 강조했다.yonglae@yna.co.kr
-
2005년 광복절 , 독립운동가 김산 서훈 되다
-
정은하의 영남아리랑 음반 자켓
-
반론제기1 -진도아리랑은 “문전~세재로 불러야 한다” -(기미양)반론제기1 -기미양(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 사무국장) 김상유의 논의는 진도아리랑의 형성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씌여진 것으로 논의의 여지가 많다. 진도아리랑비에도 기록되어진 문경아리랑 첫수인 "문경새재 고개는 웬고개인가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 난다."에서 문경새재를 문전세재로 바꿔서 불러야 한다.라는 것은 이미 1930년에 지역 공동체에서 공인한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진도 지역 사회에서는 일부에서 '문전세재'로도 불려지기도 하지만, 고쳐 부른다는 것은 민속학적으로 볼때, 자연스럽지 않은 전승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문경새재와 문전새재 모두 같이 부르면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다. 하나의 사설에 또 하나의 사설을 더하는 것은 그만큼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진도아리랑은 1930년대 전후에 진도출신 음악인들에 의해 남도의 산아지타령과 1910년대에 유행했던 구조아리랑의 첫절을 재구성하여 형성된 아리랑이다. 그러므로 '문경새재'라는 시어를 문전세재로 바꾸어 부르자는 것은 1930년대 진도출신 음악들의 생각을 왜곡시키는 것이므로 재고하여야 한다. 한 세기동안 전국적으로는 문경새재로 기록되어 있고, 다른 지역 사람들도 공유하오고 향유해 온 민속문화라는 차원에서 이러한 제의는 다시 한번 깊게 되짚어 보아야 한다. -------------------------------------------------------------------------------------------------------------------------- 진도아리랑 '문경새재'는 크나큰 잘못! 글쓴이 : 섬동백번호 : 542조회수 : 502005.06.18 00:35 "문전~세재로 불러야 한다”진도아리랑 가사 왜곡 지적광주 정강중학교 김상유교사 논문에서 주장진도아리랑의 대표적인 첫 소리로 알려진 ‘문경세재는 왠 고갠고~’가 왜곡되었다는 사실이 제기되고 있어 진도군 및 문화예술단체, 국립국악원, 군민등이 사실조사에 착수해 진도아리랑의 대표적인 첫소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광주정강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김상유교사는 ‘민요의 생성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중학교 교과서와 인터넷등 진도아리랑의 대표적인 노랫말로 알려진 ‘문경 세재는 왠 고갠고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 난다’는 소리는 왜곡됐다고 자신의 논문을 인용해 지적했다. 김교사는 진도아리랑은 순수한 서민들의 삶으로 희노애락의 노래인데 하필이면 수백여수의 가사중 특정지역의 이름이 게재된 ‘문경새재(경상북도 문경새재)는~’라는 가사를 진도아리랑을 대표하는 첫마디로 교과서에 게재해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한 것은 특정목적에 의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 각종 인터넷 자료검색에서도 진도아리랑의 대표적인 가사로 ‘문경새재~’가 입력되어 있다는 것.김교사는 현행 중학교 음악교과서에서 30년이상 지도되어 오고 있는 이 진도아리랑의 "문경 새재(경상북도 문경새재)는 왠 고갠고" 의 가사는 "문전 세재(인생살이 세 고개)는 왠 고갠고" 라는 본래의 가사에서 왜곡된채 지도되었다고 지적했다. 김교사는 ‘문경’이 아닌 ‘문전’이 본래 가사였다는 내용을 뒷받침할수 있는 몇가지 근거를 제시했다.동부지방 사람들은 동부지역에 위치한 지역이름을 넣은 가사를 언어의 특성상 남도민요 가락에 얹어 부를 수가 없고, 남도사람들은 남도민요 가락에 남도에서 500백리, 진도에서는 1,000리나 멀리 위치한 동부지역 고개이름의 가사를 붙여 노래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500여수가 되는 진도아리랑의 가사 중에서 "문경" 이라는 지역이름을 빼고는 어느 가사에도 지명 이름이 없으며 모두가 인생의 희노애락에 대한 내용 뿐이라고 ‘문경’이 왜곡된 가사임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도 진도지역60세에서 90세가량의 진도 아리랑 보존회원들은 "문경"이 아닌 "문전세재(태어나는 첫번째 고개, 인생살이 두번째 고개, 북망산으로 가는 세번째 고개)는 왠 고갠고" 라고 노래하고 있다는 것.민요란 오랜세월을 거쳐 내려오는 노래임에도 군사정권이 시작되기 이전(1961년) 어느곳에서도 "문경 새재는 왠고갠고" 라는 문헌의 자료가 없다. 특히 진도아리랑은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여 부를수 있는 민요이기때문에 특정지명을 붙여 1회성 여흥으로 끝났다면 문제가 없으나 수백 수가 넘는 가사중 그것도 1절에 나타내어 교과서까지 게재하여 지도하게 하는 것은 민요가 발생한 지역의 고유한 음악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교사는"누군가에 의하여 고유하게 전래되는 민요가 왜곡되었다면 순수하게 발전해야 하는 예술을 훼손하는 것이며 이를 지역문화의 침탈행위로도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인이나 이 지역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좌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교사는 17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진도아리랑은 서민들에 의해 불려져 한국에 가장 널리 알려진 민요라는 점을 이용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문경이라는 지명을 넣은 것으로 판단이 된다”며"이제는 잘못된 가사를 즉각적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도고향인 김교사는 대학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한후 현재 광주 정강중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석사과정으로는 국악작곡을 마쳤다. 한편 최근 진도군이 군과 기관단체장간에 협의회자리에서 제작중인 관광홍보영상물을 시연, 참석자들중 일부는 첫배경과 함께 진도아리랑 첫 가사가 왜 하필 ‘문경새재’가 나왔느냐며 개선을 요구하기도해 진도지역에서는 이미 '문경새재'가사에 대한 거부반응이 널리 퍼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