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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노랫말의 '밀양 아리랑' 감상하세요

기사입력 2010.11.1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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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 '영남 명물 밀양아리랑' 소리꾼들 (서울=연합뉴스) 12월 발매 예정인 음반 '영남 명물 밀양 아리랑'(신나라레코드) 녹음에 참여한 소리꾼들. 왼쪽부터 신인자(69), 김경호(70), 김종엽(63) 씨. 2010.11.18

    '밀양 아리랑'의 여러 버전 실은 음반 발매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기자 =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구성진 곡조의 '밀양 아리랑'은 1920년대 당시에도 전국적으로 불리던 민요 중 하나였다.

    문필가 청오 차상찬(1887-1946)은 잡지 '별건곤(別乾坤)'의 1928년 8월호에 쓴 '밀양의 7대 명물, 구슬픈 밀양 아리랑'에서 '밀양 아리랑'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느 지방이든지 아리랑 타령이 없는 곳이 없지만 이 밀양의 아리랑 타령은 특별히 정조가 구슬프고 남국의 정조를 잘 나타낸 것으로 지금은 전국에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중략) 특히 화악산 밑에 해가 떨어지고 유천역에 저녁연기가 실낱같이 피어오를 때 낙동평야 갈수통 속으로 삼삼오오 목동의 무리가 소를 몰고 돌아오며 구슬픈 정조로 서로 받아가며 부른다. 이렇게 하는 소리를 들으면 참으로 구슬프고도 멋이 있고 운치가 있다. 아무리 급행열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라도 그 누가 길을 멈추고 듣고 싶지 않으랴."

    '밀양 아리랑'은 시대 변화에 따라 본래 곡조에 가사만 바뀌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1920년대 중반 국내에서는 신민요로, 해외 독립운동 진영에서는 광복군 군가인 '광복군 아리랑'으로, 1950년대 한국전쟁 때는 중공군의 선무공작(적국의 영토를 점령한 군대가 지역 주민에게 군에 협력하도록 하는 선전 혹은 원조 등의 활동) 노래인 '파르티잔 유격대 아리랑'으로 불렸다.

    1960년대 이후로는 국가적 의전 음악인 '행진곡 밀양 아리랑'으로, 1970년대 '밀양 백중놀이' 과장의 중요 소리로, 1980년대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는 '신 밀양 아리랑'과 '통일 아리랑' 등으로 연주됐다.

    그동안 '밀양 아리랑'의 다양한 버전은 문헌으로 가사만 전해져왔지만 조만간 이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밀양 아리랑 곡조에 이들 가사를 붙여 부른 노래를 담은 음반 '영남 명물 밀양 아리랑'이 신나라레코드를 통해 발매되는 것.

    마당극 배우 김종엽 등이 창자(唱者)로 참여한 이 음반에는 모두 9곡이 수록된다.

    김연갑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18일 "'밀양 아리랑'은 이 같은 중요성에도 지금까지 독립적인 음반이 제작되지 못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녹음해 음반으로 발매하게 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ng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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