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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정서의 정수박이, 그 보배로운 3대의 소리 <진도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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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정서의 정수박이, 그 보배로운 3대의 소리 <진도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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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도아리랑(3:49) 창:이근녀(무반주 진도아리랑)

2. 진도아리랑(1)(3:56)
창:이근녀. 후렴:강송대 강은주. 장고:김오현. 대금:정회완. 아쟁:서영호

3. 진도아리랑(2)(25:45)
창/후렴:강송대 강은주. 장고:김오현. 대금:정회완. 아쟁:서영호

4. 진도아리랑(3)(25:56)
창/후렴:강송대 강은주. 장고:김오현. 대금:정회완. 아쟁:서영호 총 59:26

소리

이근녀(90세,진도아리랑 명창)
강송대(63세,무형문화재34호 <남도잡가> 예능보유자·진도아리랑보존회 회장)
강은주(19세,남도잡가 전수자·중앙대학교 한국음악과 입학)

반주
장고-김오현(진도군립민속예술단 수석 단원)
대금·징-정회완(전 광주시립국극단 악장)
아쟁-서영호(전주 대사습 기악부 장원-문광부장관상 수상)

찬조
사설정리-기미양(사단법인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사무국장)
정보제공-강은영(씻김굿 이수자·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

 

<가족 3代가 부른 '진도아리랑' 60수>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응응응 아라리가 났네..."맛깔스런 후렴으로 유명한 '진도아리랑'을 이 지방 출신의 가족 3대(代)가 함께부른 음반「진도 아리랑」이 신나라뮤직에서 출시됐다.

진도아리랑 명창인 이근녀(89) 할머니, 그의 장녀인 강송대(62. 남도잡가 무형문화재 제34호 예능보유자, 진도아리랑보존회 회장), 증손녀인 강은주(18. 남도잡가전수자)로 이어지는 '3대'가 바로 이들이다.

이번 음반은 진도 토박이 명창으로 이제 아흔의 나이인 이 할머니의 육성을 '더늦기 전에' 녹음, 남도 정서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진도아리랑의 토속적 전통을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음반에는 그동안 전승돼 온 진도아리랑 사설 56수가 담겨 있는데, 집안의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는 60수에 가까운 사설이 한 음반에 수록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녹음은 지난달 경기도 파주에 있는 스튜디오와 전남 진도군 의신면 돈지마을에있는 이 할머니의 자택을 오가며 이뤄졌다.

녹음 작업을 하는 도중 이 할머니로부터 진도아리랑의 근원에 대한 중요한 증언이 나왔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 하다.

할머니가 15세쯤 됐을 무렵 진도 출신의 대금산조 명인인 박종기(1879-1939) 선생이 진도아리랑을 처음 만들어 지역 사람들에게 가르쳤으며, 이 아리랑을 배운 사람들이 당시 경연대회에 나가서 1등을 했다는 것.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는 "이 할머니의 증언이 정확한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 왔던 진도아리랑의 근원을 밝히는 중요한증언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故) 김소희 명창도 생전에 '박종기 선생과 함께 일본에 음반을취입하러 가던 도중 진도아리랑을 정리했다'는 증언을 한 바 있다"며 "이는 그동안막연히 진도아리랑을 '아주 오래된 것'으로 여겨 온 지역주민들과 향토사학자, 연구가들 사이에 또 하나의 논란거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음반은 무형문화의 전승 과정에서 바람직한 형태로 여겨지는 가족간 전승체계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강송대 선생은 모친에게서 잡가를, 5촌 고모뻘인 명창 강숙자로부터 춘향가를배우고 김한수, 공대일 등을 사사했으며, 목포와 광주에서 20여년간 활동하다 최근에는 고향에서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증손녀 강은주는 5살때부터 소리를 시작, 1995년 제2회 남도민요 전국경창대회학생부 최우수상 수상에 이어 2004년학도 중앙대 국악대학에 특례입학한 국악영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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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연합회로 부터 보도자료 :

남도 정서의 정수박이 진도아리랑, 그 보배로운 3대의 소리

이근녀,강송대,강은주

1986년이었을 것이다. 종로 3가 <신나라레코드> 라이브 홀에서 일제시대 아리랑 복각 CD 발매를 기념하여 <팔도아리랑>공연을 벌렸을 때, 마침 지나가는 시위대를 향해 쏜 체류탄 연기가 공연장으로 들어와 눈물 콧물을 흘리는 상황에서도 진도아리랑의 감칠 맛으로 우리를 꼼작 못하게 붙들어 맨 이가 이근녀(李根女) 할머니셨다. 그 때 연세가 70을 넘기셨을 때인데도 밖의 함성과 싸이렌 소리를 제압하고도 남는 성음이셨다. 그후 세월이 흘러 할머니의 연세가 90이 되신 지금 우리는 뒤늦게나마 할머니의 진도아리랑을 담게 되었다. 이미 할머니는 아리랑 10수를 부르시기 어려울 정도로 기력이 약해지셨지만 진도아리랑의 살아있는 깊은 속이 절절 묻어있었다. 할머니의 아리랑이 3대를 걸쳐 이어져가는 놀라운 현실이 개성을 강조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나 이것이

바로 아리랑의 생명력이요 천년을 이어온 민족의 노래임을 자부하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신나라라이브홀에서의 첫 만남 후 18년만에 나타나신 할머니는 할머니의 분신의 소리꾼을 2명이나 대동하고 당당하게 스튜디오의 문을 들어선 것이다. 할머니가족의 녹음을 마치고 일주일이 지나서, 음악을 다듬던 우리는 이근녀할머니의 소리가 너무 아쉬워서 녹음기를 걸쳐메고 다시 땅끝 진도로 달려갔다. 진도군 의신면 돈지마을에 있는 할머니자택에 들어서자 백년이나 된 작은 고옥에서 하얀 웃음을 머금고 나오시는 이근녀할머니는 혼자서 집을 지키고 계셨다. 마루가 딸린 작은 토방에는 할머니의 손때묻은 소박한 장롱과 소품이 우리를 반겼다. 그날 저녁 우리는 진도아리랑에 얽힌 할머니의 증언과 고담스런 소리를 녹음할 수 있었다. 특히 진도아리랑외에 할머니가 남기신 자장가와 육자배기는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을 것 같다. 특히 육자배기를 부르시면서 자신도 모르게 초연히 나를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 그 깊고도 편안한 눈속에는 인생을 다 담고도 남을만한 넓은 세상이 펼쳐있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아련히 다가오는 이별의 아픔이 우리 둘 사이를 말없이 오갔다.

할머니의 진도아리랑에 관한 증언중에는 몇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할머니가 젊었을때(15세경으로기억함), 진도 출신의 대금의 명인이었던 박종기씨가 진도아리랑을 처음 만들었으며 진도에서 그가 만든 아리랑을 가르쳤다는 사실과 이 진도아리랑을 배운 진도사람들이 경연대회에 나가서 1등을 했다는 증언이 그것이다. 이근녀 할머니의 이 증언이 사실인지는 누구도 증명할 길이 없지만 진도아리랑에 대한 여러 학설을 일축하고 가장 신뢰할 만한 증언이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진도아리랑의 가장 특이한 후렴인< 아리랑 응-응-응-아라리가 났네>의 이 부분은 대금가락의 독특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목이기도 하다.

본 음반이 진도아리랑의 진수를 담은 기록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진도아리랑 60여수가 담기기도 이번이 처음이다. 진도아리랑이 한 집안에서 대를 이어가는 이 생생한 기록은 우리의 아리랑의 살아있는 역사성을 증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제 할머니의 뒤를 잇는 소리꾼들을 살펴보자.

장녀 강송대(1941년생)선생은 어려서 모친으로부터 잡가를 배웠고, 5촌 고모 뻘인 명창 강숙자로부터 춘향가 등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소리 인생을 시작해서 김한수 공대일 등으로부터도 사사했다. 이후 목포와 광주에서 20여년 간 여러 무대에서 소리를 하며 진도를 오가다 아예 고향에 눌러 앉아 후진양성과 모든 공연의 어른역을 맡게 되었다. <진도아리랑보존회> 회장 등의 활동을 하며 각 지역의 아리랑축제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01년 9월에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34호 <남도잡가> 부문 예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아 '상청이 좋고 한이 배어있는 성음의 소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증손녀 강은주는 5살 때부터 소리를 해서 주위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고, 1995년 제2회 <남도민요 전국경창대회> 학생부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여러 경연대회와 주요공연에 참가해 재능을 발휘했고 2004년도 대학 특례입학 한 국악영재이다. 역시 가계의 내력인 듯, '짠짠하게 걸어 넘기는 목 구성이 예뿐' 것이 특징이다. 이상의 가족사는 이미 진도 안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99년 제2회 남도민요경창대회에서 강송대선생이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선생의 여동생 딸 노부희양이 신인부 장려상을 수상했고, 큰오빠의 손녀인 강은주양이 학생부 최우수상을 받아 3대가 입상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런가하면 2003년 9월에는 강은주, 증조할머니(이근녀), 고모할머니(강송대), 아버지(강충원), 이렇게 4대가 합동공연을 하여 화제에 오른 적도 있다.

반주에 동참 한 세 연주자도 나름의 세계를 구축한 이들로 이 분들의 소리를 제대로 집어 '찔러' 준 명연주자들이다. 오랫동안 진도의 연행공간에서 함께 한 탓도 있겠지만 "잡가 반주는 또 잡가반주 대로 제(制)가 있다"고 말 할 만큼 잡가 반주에 자신을 갖고 있음은 물론 남도잡가의 특성을 잘 아는 이들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예컨대, 장고(김오현), 대금(정해완), 아쟁(서영호)만을 쓴 것은 진도아리랑에는 이들 세 악기가 가장 잘 어울린다는 경험에서 그렇게 택했다는 것인데, 이는 음악성을 강조한 측면이고, 장고와 '어정 징', 여기에 아쟁을 피치로 연주한 것은 창자의 성음과 목구성을 그대로 살려 주려는 배려에서 일 뿐만 아니라 사설을 명확하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악기 소리를 앞세우려는 것이 연주자들의 성향이고 보면 이런 반주도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나 부를 수는 있지만 아무나 잘 부를 수는 없는 노래이고, "남도 황토 밭이랑에 너풀거리는 여인의 머리수건 마냥 살랑이는 맛도 있어야 하지만, 추사체(秋史體)의 그 힘차고 굳건한 맛도 있어야 제 소리"라는 진도아리랑은 참으로 맛깔스런 노래다. 그래서 진도아리랑에 대해서는 그 연원이 어떻고, 그 어원이 어떻고를 따져 묻는 것은 가당치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비록 진도아리랑의 역사가 허풍떨어 말 할 만큼 옛적이 아닐지라도 자신들의 토속적 정서를 응축시킨 소리요 삶의 소리로 부르고 있고, 혹여 '소리 길'을 알아 추임새 붙여 청하는 외지 손이 있으면 신명을 얹어 들려줄 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문의:사무국장 기미양(725-1945/016-261-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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