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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Pick 인터뷰 (1): '아리랑코로나'를 무대화 한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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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Pick 인터뷰 (1): '아리랑코로나'를 무대화 한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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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코로나'를 무대화 한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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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이사장

 

국악신문은 새로운 코너로 이메일 인터뷰를 마련했다이 코너를 통해 더 원활하게 국악인들의 의미있는 활동을 공유하기 위해서다첫 인터뷰어는 제10회 <왕십리아리랑제>를 통해 처음으로 아리랑코로나’를 무대화 한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1952년생) 대표를 객원기자 기미양 선생이 인터뷰했다.(편집자)

 

기미양-올해 코로나로 인해 많은 단체와 공연자들이 무대에 서지를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회왕십리아리랑제를 잘 마치셨습니다. 처음 만나는 무관중 언택트 공연에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이혜솔-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엄수하는 가운데 지난 10월 제10회왕십리아리랑제를 무사히 마쳤습니다금년의 국악계는 어느 분야보다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모두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습니다공연의 제1조건이 관객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관객 없이 해야 하는 공연을 위해 극히 제한된 출연자와 스탭과 관객으로 치룰 수 밖에 없는 실정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준비했습니다무대에 20명만 올라와야 하는 조건에서 극장밖에 있다가 다른 공연팀과 계속 교체를 해야했습니다어려운 시국에도 불구하고 모든 회원들이 일사분란하게 협조를 해주어서 잘 마치었습니다. 우리 회원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끝나서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날을 기원해 봅니다. 

 

기- 매년 정례화 되고 있는 아리랑축제를 올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와 함께 무사히 치루었는데, 올해 10회 왕십리아리랑제 행사 주제는 무엇입니까?

-전 세계가 멈춰어져 있는 이 어려운 "코로나19 고개를 넘어가보자라는 의미에서 어서어서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준비를 했습니다. 코로나라는 힘든 고개를 아리랑 고개 넘어가자라는 의지를 가지고 '아리랑코로나'를 만들어서 보급하고 있습니다다시 한번 온 국민과 힘을 합쳐서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라는 의지를 제10회왕십리아리랑제 공연에 담아보았습니다.

 

- 이번 행사에서는 전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인류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코로나 19사태를 넘고 가야 할 '고개'로 인식하고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고 주제를 정하셨네요. 회원들 반응은 어떠했는지요? 난생 처음 실시된 무관중 공연에서 어려운 점이 었었지만, 이런 새로운 형식의 실험적 무대에서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요?

- 우리는 코로나를 넘고 가야 할 '고개'로 인식하고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자'고 주제는 바로 통했습니다. 올해부터 모든 공연은 코로나 전후로 나누어진다고 봅니다그동안 모든 공연은 절대적 관객 대상 공연이었지만 이번에는 관객이 아닌 우리 출연자 스스로를 향한 공연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나섰습니다처음으로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리플렛2.jpg
[국악신문] 제10회왕십리아리랑제 리플렛,주관:왕십리아리랑존회. 참여한 이들은 이혜솔 회장과 ,전옥희.김보연.김연갑.박정곤.오희옥.이연정.김재관.김진숙.김창식,양명춘.김태이.김윤식.이순희.임연희.황정근.유재희.정영애.오기운.정정순.김옥림.김화숙.문을란.윤영자.강선희, 박인숙.이민정정상운.김효성.진병일.손현숙.피옥주.강선희.윤영자.이순희.문을란.등이다. 2020-09-17

-전체 프로그램은 2부로 나누어져서, 제1부는 대동의 노래, 제2부는 상생의 노래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어떠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나요?

-전국 지역에서는 아리랑의 힘으로 대동단결하여 코로나를 막아내고 우리 모두가 다시 안정되어 함께 잘 살아보자는 상생의 노래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지역은 '왕십리에서 제주까지' 불리는 지역 아리랑으로 구성했습니다왕십리아리랑을 시작으로 서울아리랑강원도아리랑상주아리랑밀양아리랑제주아리랑 등이 불려졌습니다서울에서 활동을 하지만 강원도 평창이 고향인 사람은 아라리를 부르고경상도 사람은 밀양아리랑제주에서 올라온 이는 제주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제주아리랑은 유재희(서귀포아리랑보존회장명창이 불렀습니다

 

이번 무관중 공연이었지만 제10회를 맏이하면서 소감은?

-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9호이다." 이 두 유산의 해설문에는 아리랑의 수를 ‘50여종이라고 하였습니다그 안에 우리 경기 아리랑 선율인 왕십리아리랑도 포함된다고 믿습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왕십리아리랑을 부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리극 김소월이 사랑한 왕십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는 준비 중에 있습니다.

 

기-왕십리아리랑은 이혜솔 회장이 작사하고, 통일앙상블 대표 윤은화가 작곡한 새로운 아리랑인데, 어떤 내용이 담긴 사설인지 궁금합니다. 국내외 무대에서 왕십리아리랑 반응은 어떤가요?

-첫소설은 처음에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라고 시작합니다. 본조아리랑을 선율로 해서인지 일단 경쾌하고 따라서 부르기 쉽다는 것입니다. 사할린아리랑제에서는 왕십리아리랑을 작편곡 한 윤은화 작곡가와 통일앙상블 밴드(9명의 연주자)가 함께 가서 연주 반주에 맞추어서 불러서 더욱 좋았습니다. 이미 음반 작업을 하면서 함께 연습을 한 팀들이 그대로 갔기때문에,,,,..그래서인지 현지 동포들이 후렴을 따라서 부르고 음악가들이 악보를 달라고 해서 부고 왔습니다. 2019년 봄에 왕십리아리랑제에 관객으로 참가한 사할린동포들에게서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후렴)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

아리랑고개를 서로 함께 넘어요

서울의 왕십리 우리 사는 곳

개나리 화창한 꽃동산이래요.


사랑과 희망이 넘쳐 흐르는

서울의 서울은 우리 왕십리래요

우리 서로 벅찬 가슴 마주하면서

손잡아요 어깨동무 함께할래요.

 

이 아리랑을 만들게 된 연유는 제가 청년기부터 몸담고 살았던 서울 동부의 중심지인 왕십리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알고 부를 수 있는 아리랑 가락에 성동구 지역 역사를 담아보았습니다. 아리랑의 대동정신으로 지역공동체 결속에 이바지하려고 합니다. 

 이 아리랑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미국 순회공연일본사할린 공연에서 동포들에게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본조아리랑의  위상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동포들을 만나면서 아리랑은 결속력을 속성으로 하는 노래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러시아 사할린과 하바롭스크 동포들이 와달라고 했는데 올해 못갔죠. 코로나로......코로나만 종식되면 바로 갈려고, 트렁크 짐은 싸놓은채 그대로입니다. 작년 2월 초 가려고 비행기표 예약을 했다가 이대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지쳐서 아리랑코로나를 만들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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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사)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이 코로나를 아리랑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독도를 찾아가서 아리랑인스티튜드(미국) 서울지부 마이클 람브라우 박사와 함께 '아리랑코로나'를 불렀다. 2020-09-11.(사진:마이클 람부라우 기자)

 

- 이회장은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출범이후 첫번째 지도자로, 국내외 사할린 동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바롭스크 아리랑앙상블 회원들이 와서 아리랑을 가르쳐달라고 했을때, 2월초 바로 가려고 준비를 했다가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각해지자 아리랑코로나를 지어서 코로나를 막아내자고 우리들에게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카다로그 앞에 나와있는 이 가사가 아리랑코로나인가요? 어떤 계기로 해서 만든 아리랑인가요?

지난 5월에 새로 만든 아리랑코로나가 무대에서 초연되었습니다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세는 한풀 꺾였지만전국 곳곳에서 산발적 감염이 이어지면서 신규 확진자가 늘어면서 전국 축제와 예술활동이 거의 중단된 현실에서 이번 무대에서 회원들과 함께 불렀습니다

 

-아라랑코로나에는 어떤 의미를 담아내려고 했나요?

-일제강점기 1930년대 종두선전가라는 종두아리랑마마아리랑이라는 방역아리랑이 불려졌습니다아리랑으로 천연두 전염병을 이겨보자는 의미입니다그래서 저는 아리랑의 힘으로 전세계를 멈추게 하는 이 무서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아보자는 뜻에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뭉치면 죽고 헤어지면 산다네”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입니다. 90년만에 나온 방역아리랑, 특별한 아리랑이지요.  

 

이회장은 주먹을 높이 쳐들면서 이번 코로나19를 막아내자는 방역아리랑이라고 강조했다지난 9월부터 독도 울릉도에서부터 제주까지 찾아가는 작은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가장 추운 나라 러시아 동포들에게 녹음을 해서 전해주고 국내 이주하고 있는 동포들과 공유하고 있다최근 러시아 고려인 청소년과 하바롭스크 사할린 동포들에게 음원과 동영상을 전해주고 있다아리랑코로나 노래가 알려지자 (재)아리랑선풍재단 아리랑체조단도 이 음원을 보내주면 집단체조를 해보이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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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양주 율정마을 사할린아리랑합창단과 지도를 한 이혜솔 명창.2020-11-11 (사진:김하늘 기자)

 

아리랑코로나

 

                   작사.작창:이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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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사)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이 코로나를 아리랑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러시아 동포들을 찾아가서 아리랑코로나를 함께 불렀다. 2020-11-26 .(사진:김하늘 기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후렴)

 

코로나 택시는 탈만큼 탔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섭어 도망간다

 

코로나 마마님은 언제 가시려나

구경일랑 그만하고 가시게나

 

바다 건너 님 보고싶지만

가고 싶어도 갈수없네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수로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지만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네


이혜솔 명창의 국악 입문경위

 

- 2년동안 아주 특별한 아리랑 전승활동을 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데, 부모님 고향은 어디인이신가요?  부모님 중 누가 소리를 잘하신 분이 계셨나요? 소리를 하시면서 영향을 주신 분이 계시나요?

- 아버님 고향은 청주이시고, 어머니는 경기도 평택이시지만 어릴때 서울로 이사를 하고 줄곧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니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공부보다도 소리를 좋아하셔서 판소리 춘향전은 다 외우셔서 사랑방에 손님들 모이면 걸죽하게 뽑아 내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평생 풍류객이라는 소리를 듣고 서울을 오가며 사셨습니다. 우리 형제들 모두 아버지 소리를 듣고 자라서인지 모두 다 소리를 잘합니다. 저의 목소리는 아버지를 쏙 닮아서 통성입니다.

 

풍류를 찾아서 서울을 오가는 멋쟁이 아버지는 살림을 나 몰라라 하셨습니다. 갈수록 식구들 입은 늘고 살길이 막막해지지만 청주 사람들이면 다 아는 양반집 친정에서 곱게 자란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친정에서 곡식을 얻어서 우리 식구들 먹이다가.....나중에는 나어린 막내에게 젖을 물리다가 몇번이나 달리는 트럭에 뛰어 들었다가 모진 목숨 건지게 되자, 장남만큼은 반드시 공부를 시키겠다고 7남매를 끌고 생면부지 서울로 상경을 하셨습니다. 

 

간신히 아버지를 찾아 용두동에 하꼬방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젖먹이를 업고 어머니는 묵을 쑤어서 머리에 이고 행상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큰언니가 촛불을 키고 바느질을 하다가 집에 불이나서 몽당 다 타버렸습니다. 다시 빈털털이가 되어 창신동으로 이사를 가서 임시 천막을 치고 맨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장사를 마치면 이고 나간 함지박에 매일 벽돌을 한 두개씩 사서 이고 들어오셨습니다. 매일 천막안에 사방에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셨습니다. 마침내 사방을 두를만큼 벽돌을 모아져서 그 자리에 판자집을 짓고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묵장사로 목돈을 모우신 어머니는 비단을 받아서 이고 나가서 비단 보따리 장사로 우리 7남매 자식들을 키우셨습니다.  어머니의 눈물과 땀으로 우리 형제는 하루 하루 커가는데 소리에 미친 아버지는 풍류를 즐기면서 사시느라 어머니는 평생  외롭게  독수공방을 하시면서 고생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긴긴 세월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 하시느라 여린 여자의 몸으로 사내 대장부처럼 우리 7남매를 굳건히 키워주셨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세딸 중 막내딸로 태어난 저는 어머니 품속에서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밑으로 남동생이 3명이나 있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흘린 어머니의 눈물을 제가 가장 많이 닦아 드렸습니다. 두 언니들은 바로 사회에 진출을 하고 집에 남아있는 저는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기에....어머니는 늘 저에게 "곱게 자라야 시집가서 고운 대접 받는다"고 막내딸만큼은 손에 찬물 안 묻히게 하셨습니다. 

 

우리 7남매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의 눈물을 먹고 자랐습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희생하신 어머니를 매일 바라보며, 우리 7남매는 중용을 지키고 불손한 일로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을 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야만 했습니다. 평생 5시가 되면 일어나서 달이 뜰때까지 열심히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졌습니다. 그 덕에 모두 일찌기 자수성가해서 서울에서 부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집에서 사시던 아버지는 칠순을 넘기시고 중풍에 쓰러져서야 집에 돌아와 안주하시게 되었지만 몇해 동안 앓다가 결국 조강지처 품에서 돌아가셨습니다.(이때 우리 형제는 불같이 일어나서 반대를 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받아 들이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수족이 되어 지극정성으로 모셨습니다. 손주들에게 할아버지를 찾아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저의 노래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고생하신 슬픈 어머니의 한을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힘들때나 기쁠때 양평에 있는 어머니 무덤을 찾아가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노래를 불러 드리고 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지인들의 어머니만 뵈도 가슴이 떨립니다. 그래서 저의 인생의 반은 어머니 것입니다. 

 

-풍류를 즐기시는 아버지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미워하는 아버지의 목을 빼닮아서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네요. 유년기에서부터 들어온 사랑방에서 부르는 노래 소리가 서울에서 들어도 낯설지는 않았겠죠. 자라면서 노래를 무대에서 불러본적이 있나요? 

어릴 때부터 고향 청주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소풍을 갈때나 학예발표회 무대에서 늘 일등으로 불려나와서 노래를 불러서 박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저도 소리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스승을 모시고 소리 공부를 하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서울에 이주하게 되자 저축을 하여 돈이 생겨서 제일 먼저 산 것이 녹음기입니다길을 지날 때마다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는 민요를 들으면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바로 음반을 사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일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민요 가락을 따라 부르는 저를 보고 피는 못속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10대는 소리공부에 대한 목마름으로 잠 못이루는 밤을 지세웠습니다.

 

-늦은 나이에 국악에 입문을 하게 된 경위를 듣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소리를 배워야지 하다가 일찍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가정이 안정되고 어린 자식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자, 비로소 마흔살이 훌쩍 넘은 늦은 나이에 꿈에도 그리운 소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수업 중에도 녹음을 해가지고 와서 일하면서 반복해서 혼자 연습을 하면서 열심히 따라 불렀습니다당시 단순노동에 불과한 자영업을 하면서 소리는 나에게 많은 위안과 꿈을 주었습니다.  이 소리들은 자라면서 아버지가 신명나게 불렀던 노래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몸서리치게 그리 좋아하시던 그 노래를 이제는 제가 부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더욱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가 미워서 아버지 노래를 녹음을 안해 놓은 것이 후회가 됩니다. 지금도 비오는 날 눈을 감으면 민요에서 판소리까지 즐기시던 아버지의 소리가 들립니다.

 

드디어 경기민요를 배우게 되고 무대에 서게 되자 집안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연습 공간을 따로 얻어서 소리 도반들과 같이 매일 모여서 공부를 하는 바람에 점점 소리에 깊게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내 안의 나자신이 얼마나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지 심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경기민요 전수자들에게 지도하는 정도의 인정을 받고 내공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스승을 찾아서 경기민요부터 서도민요를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이은관 선생에게서 서도민요 이수를 받았지만 배움의 길은 끝이 없나봅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샌줄 모른다고.....


-늦게 배운 소리에 불구하고 서도민요 이수자까지 했으니 원은 푸셨네요. 경기민요 서도민요는 어떤 스승에게 배우셨나요? 소리 공부를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스승이 계시나요?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김순자 선생님김경배선생님이은관 선생님경기민요 예능보유자 묵계월선생님전숙희선생님김혜란선생님께 사사했습니다. 그 중 이은관 선생님이 무대에 많이 세워주셨습니다. 전숙희 선생님과 김혜란 선생에게 혹독한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이제는 자산이 되어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제자들이 전국경연대회에서 많은 상을 타가지고 옵니다. 늘 스승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경기민요, 서도소리를 이수하고, 강원도 아라리도 배우시고, 최근에는 제주민요도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데 어떤 계기가 되어서 제주의 소리도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요.?

오랫동안 같이 공부를 했던 제주도 소리 친구 유재희 선생이 제주민요축제에 초청공연으로 자주 가게 되면서 신비로운 서우제소리에 반했습니다경기민요와 서도민요를 수십년간 불렀지만, 제주민요는 또 다른 맛이 납니다. 서우제소리를 들으면 배를 타고 신비로운 섬으로 끌려가는 듯한 선율에 넋이 나가더라구요. 이어도 소리는 여자들만이 산다는 섬으로 떠나간다는 내용입니다. 고난의 속세를 떠나서 유토피아로 떠나가는 거지요. 한번 간 사람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전설의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도 하라. 이어도 하라. 이엿말 하면 나 눈물 난다. 이엿말은 말앙은 가라. 강남을 가건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한다." 어느새 둥둥 배를 타고 상상속의 섬으로 떠나가는 환타지가 느껴지면서 온 마음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계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주민요를 들으면 어머니가 더욱 생각납니다. 오랜만에 아주 특별한 외식을 하는 기분으로 제주민요도 조금씩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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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이 코로나를 아리랑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러시아 동포들을 찾아가서 '아리랑코로나'를 가르치고 함께 불렀다. 2020-11-26 .(사진:김하늘 기자)

 

-지난 해 3월부터 10월까지 지도를 해주신 사할린아리랑합창단이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전국아리랑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러시아 동포들에게 지도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수상 소감은어떤 감동이 들으셨습니까?

-아리랑학교에서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자를 구하는데 1년동안 책임을 지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기도에서 양주까지 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2번 이상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공주나 문경 같은 지방에서는 1번만 와주겠다는 겁니다. 지도하는 사람이 바뀌면 일정한 곡을 따라 부르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리랑학회 위촉을 받고 3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섹스폰 연주하는 친구들과 제자들까지 데리고 와서 수업시간 중 쉬는 시간 10분 동안 선율을 익히게 하기 위해 섹스폰 연주까지 들려주며 지도를 하였습니다. 드디어 10월 14일 전국아리랑경연대회를 위해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이 성금을 모아서 단원들 12명의 의상을 새로 마추고 소품을 준비해서 무대에 올렸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사할린 동포들은 난생 처음 입어보는 한복 무대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무대에서 심사위원들도 관객들도 모두 함께 구구절절한 서러운 사할린아리랑을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할린에는 왜 왔나 왜왔나 일본놈 무섭어 따라왔지” 강제동원으로 끌려 간 4만명 조선인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억류된 70년의 한을 가슴에 묵혀두고 있다가 터진 것이지요심사위원들이 20여 단체의 경연자 중 2등상인 은상까지 주셔서 그분들의 깊은 한이 그날만큼은 치유가 되셨을겁니다.

왕복 7시간이나 되는 왕십리에서 양주를 다니면서 한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힘들었지만사할린 동포 어른들이 아리랑을 배우려고 하시는 열망 때문에 더 열심히 가르쳤습니다더욱이 수상까지 해서 개인적으로는 환갑 이후 저의 생애 가장 기쁜 날입니다.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 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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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안중근의사추모제에서 전 샌다이주지사와 함께 한 (사)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 장소:일본 미야기현 센다이, 필자도 동행을 했다.  2019-09-22.

 

-전국아리랑전승단체가 지역적으로 55단체가 존재합니다. 경기도에만해도 10여 단체가 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김포, 인천. 가평. 포천, 수원 등등에서 양주끼지 오기는 너무 멀지요. 길이 막혀서 약 왕복 7시간 이상 걸립니다. 드디어 10월 중순 작년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에 이어 올해 사할린 동포들과 아리랑코로나를 함께 불렀습니다. 두드러진 아리랑 전승활동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합니다올해 계획은?

-"사할린동포분들께 내가 해드릴수 있는 것은 다 해드리고 싶어요

사할린 동포분들께 아리랑을 가르치며 보람이 있었습니다. 추운 나라에서 고생하시다가 이제는 그리운 조국 한국 나와서 아리랑을 배우시고 싶다는데아무리 멀어도 최선을 다해서 해드리고 싶어요. 우선 사할린아리랑과 아리랑코로나 2곡을 가르쳐드릴겁니다. 양주와 인전 지역 사할린 동포들과 다문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코로나가 끝나면 러시아 동포을의 요청을 받아서 하바롭스크와 사할린 동포들에게 아리랑을 가르치러 갈겁니다. 지금은 동영상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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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2019년 제7회서울아리랑페스티발 전국아리랑경연대회 사할린아리랑합창단(단장:최미분)은상 수상기념 사진, 왼쪽부터 양주 영구귀국사할린동포협회 강상용 회장, 사할린아리랑합창단장, 심사위원 한국고음반협회 정창관 부회장. 2019-10-14 (사진:기미양)

 

-사할린 동포들에게 직접 아리랑을 가르친 첫번째 사례입니다아리랑 소리꾼으로써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제가 사할린 동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3년 KBS특별생방송 '누가 이사람을 아시나요'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형제 찾는 방송을 보고 울지 않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 영주귀국 해서 사신다는 것은 사할린아리랑축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벌써 조국에 오신지가 15년이나 되셨다는데..... 4천명이 오셔서 전국 25지역에서 살고 계신다는데,,,,,,,,,작년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아리랑퍼레이드에서 함께 행진을 했던 100여 분의 사할린 동포들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양주에 영주귀국하신 김세르게이 음악가가 살고 계시는 곳에 사할린아리랑합창단이 있고, 인천에 영주 귀국하신 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공노원 부회장님이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한국어와 아리랑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3월 아리랑학교에서 위촉을 받고 망서림 없이 수락을 하고 사할린아리랑에 이어 올해는 아리랑코로나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아리랑학교 수업을 통해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국외로 강제이주한 동포들이 조국을 그리는 노래로 불리게 되면서부터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리랑 전승자라는 이름을 걸고 동포들을 찾아가면서 가르치고 싶습니다제가 남은 시간 동안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사할린 동포 중 이번에 제자로 삼은 어린이가 있으시다는데 소개를 해주세요

-제가 신아리나를 처음 본 것은 제11회 문경새재아리랑축제 디아스포라 아리랑’ 무대에서 무반주로 사할린아리랑을 독창으로 부른 당시 5살 먹은 당차고 씩씩한 신아리나(8세)입니다이번에 아리랑코로나를 함께 불렀습니다영주 귀국한 사할린 4세로서 할머니를 따라서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아직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부모 밑에서 언니(14세)와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아리랑코로나를 가르치면서 영민한 신아리나 어린이를 제자로 삼게 되었습니다앞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회원들과 함께 장학금도 보내 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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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2019년 경복궁아리랑고유제 45개 지역 아리랑 전승단체 참가한 왕십리아리랑보존회. 경복궁특설무대, 2019-11-01

 

-전국55단체 아리랑전승단체 중 왕십리아리랑보존회는 후발주자이지만, 작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 55개 지역 아리랑워크샾경복궁아리랑고,사할린아리랑제 등 국가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느낀점은?

- 2019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아리랑퍼레이드에서 각 지역 아리랑보존단체 50여개 지역단체가 깃발을 들고 입장하는 현장에서 국악인으로서 아리랑을 선택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특히 수많은 노래가 있지만 각각의 지명을 달고 창출된 **아리랑은 충격이었습니다학술적으로도 60여종 아리랑이 전국에서 불려진다는 것. 전국 아리랑 전승단체가 연대한다는 것은 전세계에 없다고 봅니다. 아리랑을 부른다는 것에 자부심이 앞섭니다. 거기에는 책임같은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년전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 대림사 주최하는 안중근의사추모제 공연 무대에서 한국 대표로 참석했습니다소감은.

-일년 전에 안중근의사추모제에서 가슴이 벅찼어요처음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서 연락을 받고 출발을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간거지요안중근의사추모제를 준비하는 주관단체가 일본 사람들이라는 것구름같이 모여든 마을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자발적으로 준비를 했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일본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어려웠던 시절 일본 농촌이나 오지로 시집을 간 한국 여성들이 우리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고 도라지타령과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인사를 하면서 서로 손 잡자마자 바로 눈물이 앞섰습니다. 저는 안중근의사의 의병활동을 추모하는 '아우르아리랑'을 헌사했습니다. 다시 한번 아리랑은 동포사회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민족의 노래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아리랑의 세계에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악인으로 살면서 노래의 힘을 느끼신 적 있으신가요.

아리랑을 통해 노래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남과 북은 물론 한민족 동포사회에서 아리랑은 애국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아리랑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폭압에 대한 저항의 노래를 불렸고강제이주한 사할린 동포들이 부른 디아스포라 아리랑인 사할린아리랑은 고난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고 봅니다. 사할린아리랑제에서 만난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통해 절절히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말을 모르는 러시아 동포 3세 4세들도 아리랑을 부르고 알더군요. 

 

-그렇다면 가장 자극을 받은 아리랑축제는?

-2018년 제11회 문경새재아리랑제에서 '디아스포라 아리랑'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무대에서 러일남북중 5개국에서 향유하는 아리랑이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르게 부른 양상을 보고아리랑의 다양성에 대해 감동과 자극을 받았습니다그리고 동포사회에서 아리랑은 흥얼거리는 민요가 아닌 바로 애국가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집에 돌아와서 나만의 아리랑을 만들어야겠다나의 소리길를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할린아리랑합창단 결성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 간 것입니다.  

 

- 30여 년 국악인생을 살면서 오롯이 담아낸 '이혜솔의 왕십리아리랑' 음반은 녹음을 마친 걸로 아는데 언제 발매가 됩니까?

-처음에는 왕십리아리랑(작편곡:윤은화)을 중심으로 4년전 서울경기 지역 아리랑을 녹음을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2019년 사할린을 다녀오고 나서 사할린아리랑을 편곡하여서 넣으려고 합니다추가로 아리랑코로나도 넣고 싶고, 그래서 4년이나 끌었습니다. 이제는 아리랑에 욕심이 납니다. 내년에는 나올겁니다.

 

최근 3박 4일 동안 서귀포아리랑보존회 유재희 회장과 함께 제주도아리랑답사에서 얻은 성과는 무엇인가요?

-서귀포아리랑보존회 회원들과 서귀포 역사 유적지를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었습니다. 제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아리랑 역사에서 사할린과 제주도는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모두 본조아리랑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1930년대 본조아리랑이 대유행을 했습니다. 1940년 전후 제주에서도 사할린이나 일본, 오키나와에 강제동원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본조아리랑을 불렀지요. 문헌에 있는 제주아리랑 선율은 본조아리랑입니다어업에 종사하거나 강제동원된 사람들이 가지고 간 아리랑이라고 봅니다. 출가해녀들이 대마도나 홋가이도로 동원되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부른 아리랑도 본조아리랑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일본 사람들이 부쳐준 아리랑고개가 존재한다는 것, 이번 답사에서 민족 고난이 있는 곳에 아리랑이 불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리랑은 역사의 노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기-앞으로 계획은?

이-내년에는 왕십리아리랑전국경연대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올해 준비를 했다가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사회적 거리가 강화되는 바람에 부득불 취소를 했습니다. 국내외 이주한 다문화 어린이들과 러시아 동포들에게도 아리랑을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해에도 아리랑학교 아리랑 지도자로 위촉을 받았습니다.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자로 알려지게 되면서 하바롭스크와 사할린 동포사회에서 수업 요청을 받았습니다. 내년에는 코로나가 종식되어 러시아 아리랑학교가 성사되어 아리랑배우기 수업이 완수되기를 기원합니다.

 

                 

               연혁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2016년 왕십리아리랑보존회 결성

2018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설립/이혜솔 이사장 취임

          안중근의사추모제(주관:일본 미야기현 대림사초청명창 위촉

          제8회 이혜솔의 왕십리아리랑발표회(주최:성동구청)

2019 아리랑학교 지도자 위촉(아리랑학회)

          사할린아리랑합창단 지도자 위촉 (공동주관:아리랑학회)

          <찾아가는 사할린아리랑공연 (양주사할린동포협회, 율정마을)

          제9회 이혜솔의 왕십리아리랑발표회(주최:성동구청)

          제7회서울아리랑페스티발 초청공연 및 아리랑퍼레이드 참가

          전국아리랑전승단체(55개 지역단체워크샾 참가(주관:문화재청)

          경복궁 아리랑고유제(45지역 아리랑전승단체참가

          제3회사할린아리랑제 아리랑명창 초청공연(이혜솔의 아리랑)

2020 제10회 왕십리아리랑제 주관(주최:성동구청)

          전국아리랑전승단체협의회 가입단체

          아리랑코로나 발표회

          독도에서 제주까지 아리랑코로나 부르기성료 (공동주관:아리랑학회)                       www.arirang129.com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정은하 회장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이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9호이다이 두 유산의 해설문에는 아리랑의 수를 ‘50여종이라고 하였다그 50여 종의 곡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함의가 있다고 밝혔다.

 

하나는 제시한 수는 명목상의 수이지 자체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또 하나는 셀 수가 없다는 의미다사실 최근의 한 연구논문에는 음반에서 정리한 곡명 수를 192종이라고 하였다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조사 기관과 목적에 따라 그 수가 차이가 있을 수 있고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아리랑은 자기 복제라는 속성을 갖고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란 것이다다음 세 번째는 이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여지를 표현한 것이란 점이다어쩌면 이 세 번째를 함의한 것일 수가 있다왜냐하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그 가치 향유를 목적으로 한 아리랑 전승단체가 더 형성될 것이고그 범위가 세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바로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의 결성과 창작 활동은 이 세 번째의 함의를 실증하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우리가 전래되는 전통민요만 알고 있는 ‘밀양아리랑’은 1926년 9월 창작되었고, 그해 10월엔 영화 나운규의 아리랑에 등장한 ‘본조아리랑’이 탄생되었으며, 1934년엔 ‘진도아리랑’, 1936년에는 대구아리랑, 1972년엔 ‘상주아리랑’이 새롭게 세상에 나왔다. 아리랑은 댓구 형식이라서 기억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2줄의 사설, 2줄의 후렴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한번 들르면 가장  기억하기 쉬어서 각인이 된다. 그래서 누구나 지어 부르기도 쉬운 노래다. 이는 아리랑이 가진 창작과 개사의 속성을 지닌 노가바 형식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랑의 속성에 맞게 ‘왕십리아리랑’도 시대적 요청에 의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기미양:국악신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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