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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지마 아리랑④]일제 음반으로 아리랑 접한 미군,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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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지마 아리랑④]일제 음반으로 아리랑 접한 미군,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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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지마 아리랑④]일제 음반으로 아리랑 접한 미군, 아이러니

등록 2015-02-16 16:20:41  |  수정 2016-12-28 14: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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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지마(오키나와)=뉴시스】아카지마 아리랑 평화음악제 추진단(단장 기미양)이 10일 아카지마(阿嘉島)의 아리랑고개를 찾았다.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한국인 위안부들의 영혼을 위로했다. 사진= 엄문희 여행작가
【오키나와=뉴시스】김연갑 상임이사·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 해방 직후 미군의 진주로 미군들과 아리랑은 매우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1945년 11월 초 UP통신은 미 제7사단에서 근무한 배우 던 게인이 아리랑을 미국에 소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고, 미 제29사단이 발행하는 화보집『KOREA GRAPHIC(코리아 그래픽)』에 아리랑을 한국의 유명한 노래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전쟁 중인 1951년에는 코르네시우스 오스굿(Cornesius Osgood)이 뉴욕에서『THE KOREANS AND THEIR CULTURE(한국인들과 그들의 문화)』를 발행하며 아리랑을 독립 항목으로 하고 “one of the most famous of all Korean songs(한국의 노래들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라고 했다. 이런 류의 아리랑 소개는 미국과 미군들의 매체 곳곳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동족상잔(同族相殘)을 치른 나라임을 강조하며 아리랑을 “Sad Voices from Korea(한국으로부터의 슬픈 목소리들)”라는 식으로 소개를 한 것들도 있어 일정부분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한 것도 있다. 이의 결과는 아리랑을 미국 영화 <전송가>(주연 록 허드슨) 같은 영화에서 주제가 또는 삽입곡이 되게 하였다.

 이 같은 미군들에 의한 관심은 곧 아리랑을 본국에 전파시키는 결과를 있게 했고, 결정적으로는 한국전쟁 3년 동안 참전한 16개국 UN군(23개국) 병사들에 의해 본국에 전파되는 계기를 맞게 했다. 미군들은 중공군과 북한군 포로를 구분하기 위한 전술상의 필요로 오키나와 기지에서 아리랑을 기본 회화와 함께 익혔다.

 또한 각종의 위문공연이나 인쇄매체를 통해 친근하게 한국의 정서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접한 아리랑은 23개국 참전병사들의 귀국으로 ‘한국의 심벌’로 파급되었다. 대개 귀국 후 참전군인회의 명칭이나 관련 단체명에서 ‘ARIRANG’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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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지마(오키나와)=뉴시스】아리랑춤과 살풀이춤을 추는 무용가 김애경 단장. 아카지마 아리랑 평화음악제 추진단(단장 기미양)이 10일 아카지마(阿嘉島)의 아리랑고개를 찾았다.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한국인 위안부들의 영혼을 위로했다. 사진= 엄문희 여행작가
 “근착 美紙(미지)가 보도하고 있는 뉴쓰에 의하면 目下(목하) 미국의 경음악계엔 난데없이 <아리랑>이라는 애뜻한 동양정서의 신곡이 급작스럽게 유행되고 있는데 거리에서 사교실에서 이 노래의 多情多恨(다정다한)한 멜로디는 모든 사람의 귀를 기울이게 하고 드디어는 너도나도 唱和(창화)하게 될 지경이라고 한다. 더욱이 미국에서 유명한 흑인 째즈 밴드 의 뉴욕시 연주엔 이 노래가 가장 인기를 차지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리랑>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아리랑>일 것은 틀림없는데, 바다 건너 몇 만리 미 본토에까지 그 같이 유행되어진 이면엔 그동안 조선 삼팔 이남에 주둔하였다가 제대 귀국한 병사들이 돌아가서 부른 것에서 비롯된 것이 급기야 오늘날 미 문화교류의 선봉을 차지하게 된 터이라 한다.”

 이 기사는 이틀 뒤 <가정신문>을 통해 알려졌는데, 미국의 신문 기사를 통해 아리랑이 미국에 전파된 경위를 전한 국내 통신의 인용문이다. 이런 현상은 시각에 따라서는 불편한 사실이기도 하다. 아리랑이 “미군의 추잉 껌과 지프차와 바꾸어 버려 민주주의 시대에 구식으로 너무나 우스운 역사의 유물”이라는 항변을 듣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떻든 아리랑은 미국에 널리 퍼졌다. 그 실상은 미군의 진주로 인한 전파이다. 일본 오키나와를 거처 진주하며 일본 발매 음반을 통해서다. 두 번째는 한국 근무 후 귀국한 미군들이 음반이나 공연에서 아리랑을 연주한 경우이다. 세 번째는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발매된 일부 아리랑 음반들로부터 확인이 되는데, 다음의 상황이 그것이다.

 하나는 한국전 위문공연 세션맨으로 참가했던 오스카 페티퍼드(Oscar Pettiford)가 재즈 레이블 <로열 루츠(ROYAL ROOTS)>에서 1952년 S·P <아디동 블루스(A-Dee-Dong Bluse)>를 발매한 사실이고, 둘은 미 보병 제7사단이 아리랑 곡을 사용한 <대검가(大劍歌)>의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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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지마(오키나와)=뉴시스】아카지마 아리랑 평화음악제 추진단(단장 기미양)이 10일 아카지마(阿嘉島)의 아리랑고개를 찾았다. 이후 나하(那覇)로 돌아와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의 특강을 들으며 아리랑의 의미를 되새겼다. 사진= 엄문희 여행작가
 김흥산(金興山) 편곡 아리랑행진곡 미제7사단(師團) 행진곡으로 채택(採擇), 서울신문

 “한국전에 참전하여 용명을 날린 미제7사단에서는 주둔 기념으로 한국의 유명한 민요 <아리랑>을 편곡한 <아리랑행진곡>을 사단군 악곡으로 채택하였다. 이는 지난 18일 이 대통령이 이한하는 존 W 캐러웨이 7사단장에게 악보를 증정함으로써 정식으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동곡(同曲)은 6.25전 한국음악연구회를 주관하던 김흥산씨에 의해서 편곡된 것인 바 씨는 현재 악기점을 운영하는 동시에 리듬음악을 연구 중이란다.”

 또 하나는 1964년 월남전 반전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그 선두에 섰던 피터 시거(PETE SEEGE)가 발매한 라이브 음반 속의 아리랑이다. 첫 번째 것은 ‘아리랑’을 ‘아-디-동’으로 잘못 듣고 명명한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 가와사키 음반사 발매한 것과 1954년 발매된 레인보우 레코드사의 것과의 선후 문제가 규명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의 뛰어난 연주가 돋보이는 재 버전이다. 마지막 것은 반전 음악의 대부 또는 ‘컨트리 뮤직의 아버지’로 평가 받는 피터 시거이지만, 우리에게는 아리랑을 의미 있게 해석한 특별한 존재이다. 이는 벤조 연주에 의한 아리랑을 부르기 전에 다음과 같은 멘트에서 확인된다.

 “한국인이 부르는 노래에 ‘아리랑’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불러왔다고 하는데,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시기에는 부르지 못하게 탄압을 받은 사실도 있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하고 갈라져 살고 있지만, 두 나라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리랑을 함께 부르기 때문인데, 이 자체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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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지마(오키나와)=뉴시스】아카지마 아리랑 평화음악제 추진단(단장 기미양)이 10일 아카지마(阿嘉島)의 아리랑고개를 찾았다.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한국인 위안부들의 영혼을 위로했다. 사진= 엄문희 여행작가
 설령 전쟁으로 서로 등지고 살지만 아리랑을 함께 부르니 하나의 민족이라는 주장이다. 동질감이 없다면 결코 하나의 노래를 같은 정서로 부를 수는 없다는 분석이다. 아마도 이런 결과로 1951년 7월10일부터 159회 본회담과 765회 부속회담 끝에 1953년 7월27일 휴전(정전)회담이 성립, 북(김일성)과 중공군(팽덕화이) 대 미군(클라크) 측이 협정 조인·서명하였다. 악수도, 웃음도, 박수도 없이 맺은 유일한 국제회담으로 이를 마친 대표들이 동서 양측으로 나갔을 때 동시에 각 의장대가 연주한 것이 아리랑이었다는 사실 등이 기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의외인 것이 이들 미군들이 접한 아리랑이 한국에서 들은 것이 아니라 대개는 오키나와 기지에서 먼저 들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바로 미군위문협회(USO)의 공연에서 아리랑을 들었거나 기지 주변에서 판매한 일본 제작 음반을 통해서라는 사실이다. 우리 아리랑을 일본이 음반에 담아 미군을 상대로 판매했다? 찜찜하기 이를데없는 사실이다. 생존을 위해 ‘나는 유엔군입니다’를 한국말로 배웠고,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서 아리랑을 불렀다. 오키나와 기지에서 대기하면서····.

 아리랑은 이렇게 진창에서도 꽃으로 피어났다. 고은 선생이 ‘아리랑은 고난의 꽃’이라 하지 않았던가?

 www.arirangs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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