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학회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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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종합 전승실태 조사보고서』의 구미아리랑 20061. 형성과 유래 <구미아리랑>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27호로 지정된 (1999.4.15. 지정) 「구미발갱이들 노래보존회」에서 <발갱이들노래>를 구연하면서 입장과 퇴장 시에 부르는 <구미아리랑>과 2005년에 처음으로 배경숙에 의해 창작되어 무대화한 <신구미아리랑>이 있다. <정선아리랑>의 영향 아래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전자는 구미 주변지역에서 독자적인 이름과 틀을 갖추며 발전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후자는 최근 일고 있는 <대구아리랑>. <대전아리랑>등과 같은 아리랑 창작운동의 영향으로 구미 지역의 향토애를 고창하기 위해 창작한 노래로 세마치 장단의 경쾌한 노래이다. 배경숙은 대구경북지회와 「영남민요보존회」 「대구아리랑보존회」의 총무를 맡은 젊은 소리꾼으로 최근 그의 첫 개인발표장에서 <구미아리랑>이 초연되어 널리 소개되었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만주소 문경새재에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가네 (후렴) 홍두깨 방망이는 팔자가 좋아 큰애기 손기로 놀아나네 (후렴) 문경새재 고개는 왠 고갠지 굽이야 굽이 굽이가 눈물이 나네 (후렴) (출전 : 구미발갱이들노래본존회 교육자료 사설집, 2003) 신구미 아리랑 사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얼씨구 노다 가세 노다가 금오산 참꽃은 다시 또 피련마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언제나 오려나 낙동강 굽이굽이 떠가는 구름아 우리 님 계신 곳에 날 데려 가다오 비봉산 저 두견아 슬피 우지마라 가신 님 내 못잊어 눈물이 난다 천생산 철쭉꽃은 필락말락 하구요 우리들의 정분은 깊어만 가누나 금오산 채미정에 둥근 달이 떠오면 정든 님 보고파서 비나이다 벚꽃이 만발한 낙동 강변에 벌 나비 쌍쌍이 봄을 노래하네 청천에 외로운 저 기럭아 그리운 우리님께 내말 좀 전해다오 이 노래의 작창 및 사설을 만든 사람은 배경숙으로(여, 47세, 대구시 수성구 만촌3동, 한국국악협회 대구지부 민요분과위원장), 이 노래는 2005년 10월 19일 대구봉산문화회관에서 초연되었다. (369쪽) 가. <구미발갱이들소리보존회> 회원명단 (생략) 나. 전승 활동 현황(전승을 위한 교육)--<아리랑>만의 단독 교육활동은 없음 1983년부터 지역에 전승되는 들소리의 사설을 조사 채록하여 이를 교재로 엮어 지역민들이 익혀 1991년 <구미발갱이들소리>라는 이름으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발표하였고, 지역민의 뜻을 모아 1996년에 노래비 건립하였따. 전승교육은 매달 7,8,9일 저녁 7시에서 10시까지 회원을 대상으로 보존회 사무실(경북 구미시 지산동 85번지)에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관내 지산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매월 토요일을 기해 들소리를 교육하고 있는데 <구미아리랑>도 이 속에 포함되어 있다. 다. 관련 행사 현황 ---<아리랑>만의 단독 행사활동은 없었으며 들노래 공연시 <아리랑>을 가창함 1999.4.15.- <구미발갱이들소리>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27호 지정 선소리 보유자 백남진 75세전승자 조교 이숙원 63세 전수 장학생 홍순민 42세전수 장학생 배인호 37세 전수 장학생 강상복 31세 1999.4.23.-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27호 지정 <구미발갱이들소리> 유래비 정면우측상단에 각자(보존회장 서용교 자필) 2003.11.2.- 금오산 잔디광장 행사 구미놀이패 말뚝이와 공동주최하여 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시작으로 "들소리 한마당”, "들소리 풍물패 놀이” 라. 시도 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없음 마. 아리랑 전승 상황 * <발갱이들노래> 시연 중에 아래 <구미아리랑>과 <영남아리랑>을 가창함 바. 연락처 경북 구미시 지산동 85번지 보존회 사무실(지산 2동 노인정) ☎ 054-453-7421 회장 이승원: 016-399-0096총무 안강호: 011-540-3336 출전: 김기현, 「경산지역 아리랑의 존재양상과 전승실태」,『아리랑 종합 전승실태 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06,367쪽~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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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아리랑제 연보 (1985-2020년) 조사자:기미양정은하의 대구아리랑 전승활동 연보 (1985-2020년) 1985-2002 영남민요발표회 <대구아리랑제(소리극) 연보>(주관:(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이사장:정은하) 2003.8.23~24 제01회 대구아리랑제-팔도아리랑축제 (대구시민회관 대강당) 2003,10.23 제02회 대구아리랑제(앙콜공연)-팔도아리랑축제(계명대학교 노천당) 2004,08.25~26 제02회 대구아리랑제-팔도아리랑! 대구에 다 모였네 (대구시민회관 대강당) 2005,08.15~16 제03회 대구아리랑제-통일아리랑(대구오페라하우스) 2006,08,15 제04회 대구아리랑제-김삿갓의 팔도아리랑(대구오페라하우스) 2007,08,15 제05회 대구아리랑제-대구의 노래. 대구아리랑(대구오페라하우스) 2008,08,15 제06회 대구아리랑제-김구의 아리랑 2009.08,15 제07회 대구아리랑제-김산의 아리랑(대구오페라하우스) 2010.08,15 제08회 대구아리랑제-아리랑을 부른다 영남의 아리랑 2011.08,15 제09회 대구아리랑제-아리랑을 부른다 팔도아리랑축제 2012.08,15 제10회 대구아리랑제-안중근아리랑 (대구오페라하우스) 2013.08.15 제11회 대구아리랑제-김산의 아리랑 2014.08.15 제12회 대구아리랑제-유관순아리랑 2015.08.15 제13회 대구아리랑제-안중근아리랑 (대구 아양아트센타) 2016.08.15 제14회 대구아리랑제-아라리가 났네 (대구 아양아트센타) 2017.08.15 제15회 대구아리랑제-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대구 아양아트센타) 2018.08.15 제16회 대구아리랑제-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대구아리랑 (대구 아양아트센타) 2019,08,15 제17회 대구아리랑제- 2020.08.15 제18회 대구아리랑제-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네 (대구 오페라하우스) (이 글을 인용시 조사자 이름 밝혀주시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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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3대가 부르는 진도아리랑 (강송대.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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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영남아리랑의 재발견정은하, 영남 아리랑의 재발견 이 음반은 우리나라 아리랑권역 중에서 경상도와 대구광역시와 부산특별시를 포함하는 영남지역에서 불려지는 아리랑과 대중적으로 불리는 타지역 아리랑으로 엮은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영남의 아리랑은 토속 아리랑인 문경아리랑과 1926년 일제강점기 잡가적 성격의 신민요로 형성된 밀양아리랑과 근래 들어서 창작된 대구아리랑 등 **종과 전국적으로 불려지는 아리랑 *종을 수록했다. 특히 밀양아리랑·경상도아리랑·광복군아리랑·독립군아리랑·울릉도아리랑·독도아리랑 등을 수록한 것은 감상용으로 형상화 한 뜻깊은 작업이다. 이들 영남아리랑의 음반화는 우선 아리랑이 영남인 공동체의 의사소통어로 존재해 왔음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아리랑의 현재상을 조망케 하여 영남인의 역동성을 담은 심상(心象)의 전승이자 잃어버린 대동의 자족을 복원하는 행위전승으로 예능화 하여 현대적 콘텐츠 요소로 활용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런 사정에서 이번 음반은 의미 있는 ‘영남 아리랑의 재발견’인 것이다. 소리를 한 이는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경기민요를 전공한 명창 정은하이다. 정은하는 1980년대 중반부터 대구에서 <영남민요보존회>를 결성, 운영해오며 2000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기념 <대구아리랑제>를 기획하여 2007년 지금까지 주관해 오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도시형 아리랑축제’로 주목을 받고 있다. 앞으로 이 음반은 2011년 세계육상경기대회 등을 통해 영남아리랑의 세계화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리랑학회 李海植(영남대 교수) 저는 방금 소개 받은 영남대학 이해식입니다. 소개 받은 바와 같이 영남 아리랑의 이론적 설명이라기보다는 몇 가지 축하의 말씀을 겸하고자 합니다. 정은하 선생은 이 자리의 인사말에서 열심(熱心)히 하겠다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열심이란 글자 그대로 뜨거운 마음이요 이를 바꾸어 보면 열성, 또는 열정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보아온 정은하 선생은 국악의 현장에서, 대학의 강단에서, 참으로 민요에 대하여 남다른 열정으로 살아왔고 오늘 이 자리도 그의 열성의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그리고 저의 어느 글에선가 우리 나라 대학의 국악과가 산조로 시작해서 산조로 끝남도 좋지만 국악과가 있는 그 지방의 토속민요(native music)를 발굴, 지역 음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토속민요란 그 지방의 사투리와 같은 것이어서 이런 토속성이야 말로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이고 소중한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바램을 정은하 선생이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었는데 그는 거간의 민요 발표회에서 영남지방의 토속민요를 찾아내어서(재발견) 불렀고 또 오늘 이 자리에서는 영남지방의 아리랑을 재발견하여 기록한 CD 출반 기념회를 열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의 일부가 한류(韓流 Korean stream)라는 이름으로 일본과 동남아에 퍼지고 이제는 북한에까지 흘러서 북한 당국이 제재하기에까지 이르렀다는 최근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류는 한민족의 흐름이겠는데 저는 이러한 한류가 아리랑流이고 또한 한민족을 아리랑 민족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아리랑은 우리의 영혼(sprit)이고 우리 민족의 영성(靈性)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남지방에 이토록 아리랑이 많음은 영남이라는 토리(idiom)가 극명함이요 세태의 반영이요 영남 사람들의 인성적 토리(idiom)가 극명함이요 세태의 반영이요 영남 사람들의 인성적 특색의 들어남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인성적 특색이라 함은 방금 말한 영성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 가운데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삶을 완성하고 죽음은 시간을 달리하는 다른 세상의 시작입니다. 이 사이에서 부르는 사랑가가 곧 아리랑입니다. 실로 어느 아리랑의 가사이든 선율이든 그것은 모두 사랑의 세계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 정은하 선생의 영남 아리랑 재발견은 영남 사랑가의 재발견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다른 표현은 아름다움이요 아름이란 전라도 판소리에서 사투리로 말하는 알속(알의 속내, 眞 또는 實)이요 다움은 如로써 아름다움은 바로 진여(眞如)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정은하 선생은 아름다운 사람이요 오늘 아름다운 일을 벌인 알속 있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움과 동반하는 말이 멋입니다. 우리는 흔히 멋있는 사람, 또는 멋쟁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런 말은 바로 정은하 선생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름다움이 없는, 즉 실속이 없는 멋은 겉멋에 불과합니다. 참 멋은 자유의 세계이고 사유(思惟)와 창조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정은하 선생이 출반한 영남 아리랑 CD는 정은하 선생의 실속이 가득 찬 자유와 사유(思惟)와 창조의 멋진 성과물입니다. 돌이켜보면 정은하 선생의 민요 인생은 아마 태생적(胎生的)이 아닌가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시쳇(時體) 말로 타고난 팔자라는 뜻입니다. 제가 70년대 초에 KBS 라디오의 국악 프로듀서일 때 정은하 선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이미 그때에 민요인생의 초입(初入)에 들어섬으로 보였고, 한결같은 천착(穿鑿)으로 오늘에 이르렀음에 심심한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남 지방의 민요들은 거의 메나리조로 되어 있습니다. 메나리조는 영남 지방의 계면조(界面調)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뜻은 뫼 산(山)의 메와 나루의 옛 말인 나루(津)가 합쳐진 말로써 산나루가 되겠습니다. 나루는 물 가나 바다 가에 있는 거지 산에 무슨 나루일까마는 이것은 물을 뜻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메나리란 산과 물(山水)이란 뜻입니다. 산 계곡을 흐르는 물처럼 삶의 계곡이 민속(民俗 folk)이며 이 민속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통시적인 (diachronic) 삶의 이끼가 될 때 토속이 되며 이때의 노래가 토속민요입니다. 자고로 산과 물을 사랑하는 이곳 사람들의 메나리조 민요는 토속적인 깊은 정서로 그윽하게 불리어왔습니다. 이러한 메나리조 음악은 저 신라시대에 전래된 불교음악인 범패에 그 맥(脈)이 닿고 이 범패는 서역(西域 silk road)을 거슬러서 인도와 소아시아(Asia minor)까지 연관(聯關) 됩니다. 이렇게 보면 영남의 메나리조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넓은 세상과 이미 호흡을 함께해 왔고 그 호흡 속에 정은하 선생이 재발견한 영남의 아리랑들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숨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럼 오늘 정은하 선생이 재발견한 영남 아리랑의 힘찬 숨결이 부디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7. 7. 13. Hotel Inter Burgo, Camellia hall/대구). 참고 문헌 유동식, [풍류도와 요한복음], 서울: 한들출판사, 2007. 이해식, "경상도쪼(調) 민요의 통시성과 토속성,” [산조의 미학적 구조론], 경산: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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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장 정은하 이력서(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이사장 정은하 경북 영천 출생 2003년-2020년 대구아리랑제 주관 2006년-2020년 최계란명창대구아리랑전국아리랑경창대회 주관 1976년 이창배`안비취 선생을 사사,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이수자 2004년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장 2002년 제4회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통령상 1985년 한라문화제 최우수상 1998년~ 대구교원연수원 강사, 대구교대`영남대`대구예술대`경북예고 대구 동구 불로동 출신인 최계란 선생이 1936년 취입한 PS 판 대구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다. 음반 대구아리랑, 영남아리랑의 재발견.- 팔도 아리랑, 여러 음악장르를 넘너드는 음반을 내놓았다. 12월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는데 숨은 공로가 있다. 유네스코 등재시 가장 주용한 대목이 바로 자생적 전승이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영남의 아리랑이다. 영남아리랑지부가 27개 지부, 광복군아리랑. 독립군아리랑, 영천아리랑을 초연했다. 매년 광복절 대구에서 대구아리랑제를 개최한다. ■ 경력 1980,12,23 kbs 민요백일장 장원 1992 경북교원연수원 출강 1992~2000 대구예술대학교 국악과 강사역임 1994,11,01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 1994,06 초ㆍ중등교과서민요 오아시스CD음반 및 해설집 출간 1994 경북예술고등학교 출강 1996 대구교육대학 음악과 출강 1997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출강 1998 대구 교원연수원 출강 2003,12.26 대구아리랑 CD출반 /신나라 뮤직 2002,04,25 전국민요경창대회 명창부 대통령상 수상 2002, 음반 영천아리랑 CD출시 2004, 팔도아리랑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 ■ 연주 및 발표회 1991,06,03 주최 제1회 정은하 민요발표회/대구문화예술회관 대극장 1995,05,06 주최 제2회 정은하 민요발표회/대구시민회관 대강당(2회) 1996,05,09 주최 제3회 정은하 민요발표회/대구시민회관 대강당(2회) 2002,02 23 영남민요보존회 결성,회장 / 대구시민회관 1998,05,08 영남의 소리 국립국악원 초청 2001,11,03 주최 제4회 정은하 영남민요창작발표회 2002,06.15 서울 인사동 야외특설무대 남북공동선언 아리랑 축하공연 2002.01,09 주최 제5회 정은하 영남민요발표회/대구시민회관 대강당 2003.08.23~24 주최 제1회 팔도아리랑축제 /대구시민회관 대강당 2003,10.23 주최 팔도아리랑축제 앙콜공연/계명대학교 노천당 2004,05.15 주최 제6회 영남의 소리 발표회/ 대구시민회관 대강당 2004,08.25~26 주최 제2회 대구아리랑제 대구시민회관 대강당 2005,08.15~16 주최 제3회 대구 아리랑제 대구오페라 하우스 2005,09.10 영남의 소리 아리랑강습회 16주 3개월간 2005,10.10 대구교육대학교 아리랑 및 영남의 소리특강 2005,10.28 영천아리랑제 영천시민회관 2006,08 ,15 주최 제4회 대구아리랑제 시민회관 대강당 2006,11,18 (사단법인) 영남민요 아리랑 보존회 창립 2007,07,13 영남아리랑 재발견 CD음반 신나라 뮤직 2007,08,15 주최 제5회 대구아리랑제 시민회관 대강당 2007,10,3 주최 제1회 영남아리랑 축제 전국아리랑 경창대 2008,08,15 주최 제6회 대구아리랑제 시민회관대강당 2008.10.4.주최 제2회영남아리랑축제 전국아리랑경창대회 2020.08.15 제17회 대구아리랑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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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울려퍼진 저항·대동·상생, 제4회 ‘아리랑의 날’ 현장인쇄하기 닫기 문화 > 문화일반 방방곡곡 울려퍼진 저항·대동·상생, 제4회 ‘아리랑의 날’ 현장 등록 2016-10-02 13:00:59 | 수정 2016-12-28 17:43:20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아리랑’이 곳곳에 메아리쳤다. 전국의 지역 아리랑보존회가 1일 제4회 아리랑의날을 기념했다. 오전 10시1분 서울에서 낭송한 아리랑의날 제정 취지문을 휴대전화 영상으로 전송, 각 지역 전승단체가 공유했다. 지회들은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 전선의 ‘독립군아리랑’, 1940년대 광복군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의 ‘광복군아리랑’에 이어 자기 지역 아리랑을 합창했다. 이를 다시 핸드폰 영상으로 공유했다.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아리랑’이 곳곳에 메아리쳤다. 전국의 지역 아리랑보존회가 1일 제4회 아리랑의날을 기념했다. 오전 10시1분 서울에서 낭송한 아리랑의날 제정 취지문을 휴대전화 영상으로 전송, 각 지역 전승단체가 공유했다. 지회들은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 전선의 ‘독립군아리랑’, 1940년대 광복군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의 ‘광복군아리랑’에 이어 자기 지역 아리랑을 합창했다. 이를 다시 핸드폰 영상으로 공유했다. 영남아리랑보존회(이사장 정은하), 문경아리랑보존회(이사장 송옥자), 공주아리랑보존회(이사장 남은혜),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사장 전은석), 진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박병훈), 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희은),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 기연옥), 상주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동숙), 서울아리랑보존회(이사장 유명옥) 등이 참여했다. 기미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날 제4회 아리랑의날 행사를 시작으로 2일 상주아리랑제, 15일 서울아리랑페스티벌, 11월18일 춘천의병아리랑제, 12월1일 사할린 동포사회와 함께하는 사할린 아리랑 얼쑤 해외공연이 이어진다. 더불어 즐기며 전승하는 아리랑 판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리랑의날은 춘사(春史)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1926년 10월1일에 주목, 한겨레아리랑연합회(이사장 차길진)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제정했다. reap@newsis.com 영남아리랑보존회(이사장 정은하), 문경아리랑보존회(이사장 송옥자), 공주아리랑보존회(이사장 남은혜),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사장 전은석), 진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박병훈), 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희은),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 기연옥), 상주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동숙), 서울아리랑보존회(이사장 유명옥) 등이 참여했다.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아리랑’이 곳곳에 메아리쳤다. 전국의 지역 아리랑보존회가 1일 제4회 아리랑의날을 기념했다. 오전 10시1분 서울에서 낭송한 아리랑의날 제정 취지문을 휴대전화 영상으로 전송, 각 지역 전승단체가 공유했다. 지회들은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 전선의 ‘독립군아리랑’, 1940년대 광복군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의 ‘광복군아리랑’에 이어 자기 지역 아리랑을 합창했다. 이를 다시 핸드폰 영상으로 공유했다. 영남아리랑보존회(이사장 정은하), 문경아리랑보존회(이사장 송옥자), 공주아리랑보존회(이사장 남은혜),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사장 전은석), 진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박병훈), 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희은),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 기연옥), 상주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동숙), 서울아리랑보존회(이사장 유명옥) 등이 참여했다. 기미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날 제4회 아리랑의날 행사를 시작으로 2일 상주아리랑제, 15일 서울아리랑페스티벌, 11월18일 춘천의병아리랑제, 12월1일 사할린 동포사회와 함께하는 사할린 아리랑 얼쑤 해외공연이 이어진다. 더불어 즐기며 전승하는 아리랑 판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리랑의날은 춘사(春史)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1926년 10월1일에 주목, 한겨레아리랑연합회(이사장 차길진)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제정했다. reap@newsis.com 기미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날 제4회 아리랑의날 행사를 시작으로 2일 상주아리랑제, 15일 서울아리랑페스티벌, 11월18일 춘천의병아리랑제, 12월1일 사할린 동포사회와 함께하는 사할린 아리랑 얼쑤 해외공연이 이어진다. 더불어 즐기며 전승하는 아리랑 판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아리랑’이 곳곳에 메아리쳤다. 전국의 지역 아리랑보존회가 1일 제4회 아리랑의날을 기념했다. 오전 10시1분 서울에서 낭송한 아리랑의날 제정 취지문을 휴대전화 영상으로 전송, 각 지역 전승단체가 공유했다. 지회들은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 전선의 ‘독립군아리랑’, 1940년대 광복군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의 ‘광복군아리랑’에 이어 자기 지역 아리랑을 합창했다. 이를 다시 핸드폰 영상으로 공유했다. 영남아리랑보존회(이사장 정은하), 문경아리랑보존회(이사장 송옥자), 공주아리랑보존회(이사장 남은혜),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사장 전은석), 진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박병훈), 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희은),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 기연옥), 상주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동숙), 서울아리랑보존회(이사장 유명옥) 등이 참여했다. 기미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날 제4회 아리랑의날 행사를 시작으로 2일 상주아리랑제, 15일 서울아리랑페스티벌, 11월18일 춘천의병아리랑제, 12월1일 사할린 동포사회와 함께하는 사할린 아리랑 얼쑤 해외공연이 이어진다. 더불어 즐기며 전승하는 아리랑 판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리랑의날은 춘사(春史)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1926년 10월1일에 주목, 한겨레아리랑연합회(이사장 차길진)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제정했다. reap@newsis.com 아리랑의날은 춘사(春史)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1926년 10월1일에 주목, 한겨레아리랑연합회(이사장 차길진)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제정했다. 【서울=뉴시스】신동립 기자 = ‘아리랑’이 곳곳에 메아리쳤다. 전국의 지역 아리랑보존회가 1일 제4회 아리랑의날을 기념했다. 오전 10시1분 서울에서 낭송한 아리랑의날 제정 취지문을 휴대전화 영상으로 전송, 각 지역 전승단체가 공유했다. 지회들은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 전선의 ‘독립군아리랑’, 1940년대 광복군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의 ‘광복군아리랑’에 이어 자기 지역 아리랑을 합창했다. 이를 다시 핸드폰 영상으로 공유했다. 영남아리랑보존회(이사장 정은하), 문경아리랑보존회(이사장 송옥자), 공주아리랑보존회(이사장 남은혜), 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사장 전은석), 진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박병훈), 부산동래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희은),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 기연옥), 상주아리랑보존회(이사장 김동숙), 서울아리랑보존회(이사장 유명옥) 등이 참여했다. 기미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날 제4회 아리랑의날 행사를 시작으로 2일 상주아리랑제, 15일 서울아리랑페스티벌, 11월18일 춘천의병아리랑제, 12월1일 사할린 동포사회와 함께하는 사할린 아리랑 얼쑤 해외공연이 이어진다. 더불어 즐기며 전승하는 아리랑 판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리랑의날은 춘사(春史)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1926년 10월1일에 주목, 한겨레아리랑연합회(이사장 차길진)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제정했다. reap@newsis.com reap@newsis.com https://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1002_0014423892&cID=10701&pID=10700 https://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1002_0014423892&cID=10701&pID=10700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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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명창 이혜솔 발표회 '왕십리아리랑' 초연구(區) 단위 아리랑과 전승단체는 전국 유일 … 왕십리의 역사 문화 전통을 담아 밝은 미래 향해 가자는 내용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와 명창 이혜솔 이사장 ◆구 단위의 지명을 쓴 아리랑 전승단체로는 유일'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는 서울 성동구 고산자로 8길 24(행당동)에 사무실을 두고, 90여명의 회원, 이사 5명, 임기 4년의 초대 이사장에 이혜솔 명창중심의 단체이다. 이사장 이혜솔은 주로 성동구 왕십리에서 20여년 간 '孝 국악한마당' 단장으로 전통문화예술 활동을 해 온 인물이다.2018년 6월 10일, 종로 국악로 김법국예술단에서 창립총회를 거처 지난 11월 법인 인가를 받았다. 12월 5일 오후 3시 인사동 태화빌딩 회의실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이 단체의 성격은 지난 지난 해 6월 발표된 발기 취지문에서 짐작이 된다. 아리랑에 대한 이해가 깊음을 알 수 있다.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고, 2014년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아리랑으로 등록되어 한민족은 물론 전 인류의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이로서 아리랑은 우리 스스로는 민족문화의 정수(精髓)로, 세계적으로는 인류 보편가치의 문화유산으로 위상을 확보하였다."라고 전제하고 단체 결성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아리랑을 우리 성동구와 답십리의 문화예술로서 주체화하기 위해 답십리의 역사와 전통을 아리랑 사설화 하였다. 이는 아리랑에 있어 또 하나의 장르를 발굴하고 발전 승화시켜 보급하며 보존해야할 가치와 당위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추진 사업을 "성동구 문화예술 진작을 위한 음반 발매, 공연 활동, 학술 활동으로 성동구의 전통문화 계승과 창조적인 활동을 전 구민과 더 나아가 모든 국민과 함께하는 예술공동체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출범식은 경과보고에서 사단법인체로 재 창단 하는 과정을 제시하고 사업보고에서는 2019년 음반 발매 등의 실행 사업을 밝히고 회원들의 동의를 구하게 된다. 축사는 정원오 성동구청장, 서한범 충청남도 문화재위원장 등이 예정되었다. ◆이헤솔 이사장은"서울 동부 일대의 중심지인 왕십리(往十里)의 역사를 아리랑 가락에 담아 지역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려 합니다. 아리랑은 그 결속력을 속성을 갖고 있는 노래입니다. '왕십리의 아리랑'은 물론 '아리랑의 왕십리'를 문화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든든한 회원들이 있어 기대가 큼니다.” ◆'왕십리아리랑' 발표회는?·주최/주관-(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회장 이혜솔)·일시-2019. 4. 20(토) 오후 17·장소-성동문화회관 소월아트홀·창작 '왕십리아리랑' 외 4종의 개사곡 그리고 기존아리랑 발표①상주아리랑 ②신아리랑 ③해주아리랑 ④밀양아리랑 ⑤강원도아리랑 ⑥진도아리랑 ⑦통일아리랑(본조) 왕십리아리랑(이헤솔 작사/윤은화 작곡)후렴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아리랑고개를 서로함께 넘어요 서울의 왕십리 우리사는 곳개나리 화창한 꽃동산이래요 사랑과 희망이 넘처흐르는서울의 서울은 우리 왕십리래요 우리서로 벅찬가슴 마주하면서손잡아요 어깨동무 함께할래요 한양도성 동쪽십리 응봉산정기세세년년 우리삶터 희망의 샘터 살곶이벌 응봉기슭 응방의옛터역사문화 오래오랜 우리의 터전 인류유산 아리랑은 우리의 자랑슬기로운 매사냥도 인류유산이래요 성동구 왕십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공동체의 미래상을 담은 '왕십아리랑'을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과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아리랑'에 추가하려 한다. 그래서 역사인물 도선국사(道詵國師)와 무학대사(無學大師) 고사(古史)는 물론, 보물 제1738호 살곶이다리와 매사냥 터였던 응봉산 사연을 담아 개사했다. 바로 창작 '왕십리아리랑'과 개사(改詞)곡 아리랑들이다. 아리랑이 오래 전부터 고장이나 유적을 효과적으로 표상할 수 있는 매체임을 활용한 것인데, 주목하는 것은 서울의 동(洞) 단위를 곡명과 주제로 한 것은 이 '왕십리아리랑'이 처음이란 점이다. 이 번 공연의 표제인 '왕십리아리랑'은 순수 창작이다.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장 이혜솔 명창의 작사이고 세계적인 양금 연주자 윤은화의 작곡이다. 이혜솔은 1990년 경서도민요와 인연을 맺으면서 '아리예술단'을 조직하여 '孝국악한마당'등의 공연을 이끌어 왔다. 40여년 삶의 터전인 성동구 왕십리를 아리랑을 통해 문화가 꽃피는 고장으로 만든다는 신념으로 지난해 '왕십리아리랑보존회'를 조직하여 지난해 사단법인으로 출범, 명창으로서의 꿈을 펼쳐가고 있다. 작곡가 윤은화는 2017년 영화 주제가 '아리랑' 작곡에 이어 지난해 양금을 주제로 한 '문경아리랑' 작곡과 '아리랑나라' 편곡으로 성가를 얻고 있는 연주자 겸 작곡가이다. 그리고 함께 공연되는 7종의 아리랑은 악곡과 후렴은 그대로이고 모두 개사(改詞) 하였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래상을 내용으로 하였다. 그러므로 이번 공연 모든 아리랑은 초연인 셈이다. 이번 공연은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전 회원들이 출연하고, 반주는 8인조 윤은화와 '통일앙상불'이 맡았다. '통일앙상불'은 양금 윤은화를 리더로 하고 국악기와 양악기 그리고 북한 악기 연주가로 구성되었다. 8인조가 12종의 악기를 구사하는 파워풀한 밴드이다. ◆명창 이혜솔 회장은"30여년 국악 인생에서 삶의 터전인 왕십리의 사랑을 표현한 '왕십리아리랑'을 레파토리로 삼게 된 것을 보람으로 생각한다. 내가 노래를 세상에 탄생시킨다는 것은 흥분되고 영광스런 일이다. 새로운 국악인으로 거듭 난다는 자세로 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 머지않아 성동구민이 사랑하는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반주자 윤은화는"창작 또는 개사 한 아리랑만을 발표하는 공연에 반주를 하는 것에 기대를 갖는다. 특히 초연 무대라는 점과 반주하면서 배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다. 아리랑의 세계가 끝이 없음을 실감한다.” ◆가야금 연주자이며 '귀명창'인 김형덕 선생은"국악인생 30년 이혜솔 명창의 아리랑 사랑과 연주자 겸 작곡가인 윤은화의 새로운 아리랑 해석 결과가 '왕십리아리랑'으로 나타나길 바란다. 기대가 크다”라며 기대를 표했다. ◆초연 '왕십리아리랑'에 대하여'아리랑은 희망의 노래다.'이 명제는 우리가 아리랑을 그토록 오랫동안 불러오는 이유로서, 처음 까마득한 날에는 존재의 하소나 절대에의 의탁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구구장천 흐르며 굽이굽이 넘어온 아리랑 역사의 오늘에서는 일상을 자위하며 공동체의 내일을 추동하여 부르기에 그렇다. 어찌 희망을 노래하지 않고 그 오랜 세월을 우리가 불러왔겠는가. 그러므로 아리랑 역사의 막내쯤으로 태어난 '왕십리아리랑'은 대한민국 서울 성동구 왕십리, 우리들의 일상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려한다. 아리랑이 희망의 노래라는 파토스가 공동체 결속의 기재라는 사실을 확인 시켜 줄 것이다. '희망의 노래'라는 이 잠언적(箴言的) 멧시지는 오늘과 내일의 노래로서, 이 시대 아리랑의 성격인 것이다. ◆'왕십리아리랑'은 창작 아리랑이다.1900년대 초 경서도 잡가계층에서 '긴아리랑'을 창작한 이후, 1920년대 박남포선생이 '밀양아리랑'을, 김영환선생이 '본조아리랑'을, 1930년대 대금 명인 박종기선생이 '진도아리랑'을 창작했다. 또 다른 방식도 있다. 기존 아리랑 개사나 편곡에 의한 성공한 재구성 작품들이다. 만주에서 '본조아리랑'을 개사하여 '신아리랑'에 항일의지를 표현하였고, '밀양아리랑'을 임시정부 군가 '광복군아리랑'으로 개사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이창배선생이 긴아라리와 역음을 결합하여 '정선아리랑'으로, 70년대 김소희선생은 '상주 함창 공갈못'을 상주아리랑'으로, 80년대 이은관선생은 정선아라리 사연을 '정선(旌善)의 애화'로 재구성하였다. 또한 2000년대 들어서는 적극적인 자기화로 이어졌다. 2002년 국제 행사 한일월드컵 열기로 조용필이 '꿈의 아리랑'을, 유니버시아드 대회 기념가로 정은하가 '대구아리랑'을, 경기민요 최영숙이 중요 아리랑을 자기만의 색깔로 재해석하고, 서도소리 유지숙이 창작 전곡을 자신의 장르로 주체화 했다. 특히 2014년 한국가곡연구소(회장 최역식)는 현대가곡 10여종을 발굴하고 10여종을 창작하여 발표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아리랑은 이렇듯 사회문화적 변동에 따른 국면마다 창작과 개작을 통해 음악적 구조를 달리하여 창조적으로 계승을 하였다. 이런 현상은 다른 노래가 갖지 못한 아리랑만의 특징인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방식의 계승은 의의가 크다. 즉, 일제가 1894년 조선침략을 기도하며 조정과의 민심 이반을 조작('조선유행요 アリラン') 하고, 강점기 들어서는 일본어로의 아리랑 종속화('アリラン夜曲') 시도와 40년대 들어 친일적 아리랑 유행가를 권장 유포('滿洲아리랑')한 것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또한 2차 대전 종전후 일본 오끼나와와 한국에 주둔한 미군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화(BCB밴드 'ARIRANG' 외)나 53년 한국전 종전 후 미군의 전리품화(재즈 'A DI DONG BLUES' 외)와 UN군 참전 용사들에 의한 '전쟁고아들의 슬픈 노래 아리랑'이란 인식의 의미 있는 전복(顚覆)인 것이다. ◆'왕십리아리랑'의 전형성 확보로 미래 세대에 전승오늘의 '왕십리아리랑'은 일상에서 여유와 신명을 얻고, 세계 속의 서울, 그 속의 성동구 왕십리라는 공동체의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오늘의 노래이다.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작사, 윤은화 작곡이다. 왕십리를 중심으로 한 성동구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법인화를 주도한 이혜솔 명창과 연주, 편곡, 작곡으로 성가를 얻고 있는 중국 동포 음악인 윤은화의 아리랑 사랑 결정체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과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아리랑'은 종래의 원형성에서 전형성(典型性)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시한 것으로, 오늘의 향유 전승체가 미래 계승을 위해 창조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논리이다. '왕십리아리랑'은 '왕십리아리랑보존회'라는 전승단체 스스로가 일상에서 향유해야 한다. 이 동력으로 성동구 왕십리라는 지역 공동체에 신명을 추동(推動하여야 한다. 그리고 '왕십리아리랑'으로서의 전형성을 확보하여 미래 세대에 계승해야 한다. 이 시대 '왕십리아리랑' 탄생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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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에서 제주까지 온 나라 아리랑 들어볼까?강화에서 제주까지 온 나라 아리랑 들어볼까? 유지숙 명창의 <우리아리랑> 음반 출시기념 공연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등록 2014.12.02 14:42:45 목록 메일 프린트 스크랩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 <우리아리랑> 음반 표지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우리 민족의 숨결과 애환이 담겨 있는 아리랑은 각 지역별로 다른 곡조와 가사를 가지고 전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등이다. 아리랑은 전국적으로 70여종이 전하고 5천수가 넘는 가사를 지니고 있다고 하나 현재 대중적으로 알려진 아리랑은 그에 견주면 매우 적다. 지난 2013년 1월에 북한지역의 아리랑을 모아 "아리랑의 재발견”(신나라레코드)을 발표한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인 유지숙 명창(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악장,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2호 향두계놀이보존회 이사장)은 이러한 아리랑을 전승하고 보전하고자 아리랑을 주제로 새 음반을 발표하였다. 아리랑이 전하지 않는 지역의 전설과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강화·경산·김해·남한산성·대전·복사골·연성·강동·제주·포천·양주·평택·천안아리랑 등 14곡의 아리랑을 "우리아리랑” 음반에 담은 것이다. 이 음반에 담긴 곡들은 세한대학교 이상균교수가 각 지역의 음악어법인 토리를 바탕으로 작곡하고 매 곡별로 지역의 설화와 경치 등을 담아 작사하였다. 작사ㆍ작곡을 한 이상균 교수는 천안아리랑을 만드는 도중 진전이 없자 새벽 2시에 차를 몰고 천안으로 내려가 천안의 향기를 접한 다음 곡을 만들었다는 일화를 말해 줄 정도로 한곡 한곡 그 지역의 정서를 듬뿍 담아 냈다는 후문이다. 한편 "우리아리랑” 발매를 기념하여 한민족 아리랑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가 해설하고 음반에 실린 전국각지의 아리랑을 설명하는 렉쳐콘서트가 오는 12월 4일 늦은 2시에 이북오도위원회 대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유지숙의 "우리아리랑”에는 우리 겨레의 어떤 정서들이 듬뿍 담겨 있을까? 인천 강화에서부터 남한산성, 대전, 경산을 거쳐 제주까지 내려가면서 어떤 한을 품어 내고 어떤 무지개를 띄워 올릴까? 우리아리랑과 함께 함으로써 우리는 진정 배달겨레가 되지 않을까? <아리랑 음반> 출시 기념공연 안내 렉쳐콘서트 12월 4일(목) 오후 2시 이북오도위원회 대강당 문의: 02-733-5027유지숙 명창의 <우리아리랑> 음반 출시기념 공연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등록 2014.12.02 14:42:45 목록 메일 프린트 스크랩 글씨크기 크게 글씨크기 작게 ▲ <우리아리랑> 음반 표지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우리 민족의 숨결과 애환이 담겨 있는 아리랑은 각 지역별로 다른 곡조와 가사를 가지고 전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등이다. 아리랑은 전국적으로 70여종이 전하고 5천수가 넘는 가사를 지니고 있다고 하나 현재 대중적으로 알려진 아리랑은 그에 견주면 매우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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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아리랑 시대, 기미양이 만난 ‘아리랑꾼’들인쇄하기 닫기 사회 > 사회일반 바야흐로 아리랑 시대, 기미양이 만난 ‘아리랑꾼’들 등록 2014-11-18 11:24:15 | 수정 2016-12-28 13:41:13 【서울=뉴시스】박병훈 진도아리랑보존회 회장 【서울=뉴시스】기미양 아리랑학회 이사 = 문화의 달인 10월, 그리고 11월에 들어서도 아리랑은 전국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이런 현상은 이달 25일 전후 유네스코 북한 아리랑 등재와 문화재청의 국가주요무형문화재로 아리랑이 지정되는 내년 5월까지 계속 이어질 듯하다. 역대 우리의 무형유산이 유네스코 등재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과정에서 이렇게 집중적으로 세계무대에서까지 조명을 받는 경우는 아리랑 말고 달리 없었던 듯하다. 가히 아리랑 시대를 맞이하여 아리랑의 계절을 살고 있다고 할만하다. 이런 계절에 필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국을 다니며 박수치고 환호하며 아리랑을 만끽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꼭 기록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전국의 ‘아리랑꾼’들의 활동상이다. ‘아리랑꾼’이란 말은 일찍이 김연갑 선생이 1990년 발행한 ‘팔도아리랑 기행’에서 1980년대 지역에서 아리랑을 실연하고 연구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을 꼽아 표현한 것이다. 이 호칭을 지금까지 수용하고 있기에 필자도 그대로 사용하여, 지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아리랑 전승주체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 ‘아리랑시대’의 역할을 기록하고자 한다. ◇진도아리랑의 역사, 박병훈-서울 ‘아리랑판’ 공연 3회 참여 【서울=뉴시스】진도아리랑노래비 앞에서 진도아리랑보존회 박병훈 회장과 회원들이 진도아리랑을 노래하고 있다. 진도아리랑보존회 향전(鄕田) 박병훈(79) 회장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달부터 서울에서 개최되는 연속공연 ‘아리랑판’에 3회나 출연하여 진도아리랑의 진가를 알렸다. 박 회장은 환영하는 관객을 향한 제1성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발언보다는 "인류 보편적 문화가치인 아리랑, 우리 진도아리랑의 가치를 모두가 공유하는데 일조를 하려고 왔습니다. 진도는 육지와 단절된 섬이라는 특수성으로 진도아리랑의 원형보존이 용이했는데, 1984년 진도대교가 개통되며 외지 영향을 갑자기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진도아리랑보존회를 조직한 뒤 멸실돼 가는 가사를 발굴·채록하고 뿌리를 캐냈지요. 현재 진도아리랑 가사는 770여 수에 이릅니다”고 했다. 이런 자세는 이미 최초의 아리랑 가사집(1986)을 발간하고 18t 위용의 진도아리랑노래비 건립을 주관하면서 명실공히 아리랑 인물로서 전국에 큰 자극을 주었다. 현재 진도 민속기행 명소인 울림산방 입구 ‘진도아리랑노래비’는 바로 박 회장이 전남향토문학상(1990) 상금 전액을 기부하고, 군과 군민들의 지원으로 진도문화원장 재임 시인 1995년 건립한 것이다. 이번 ‘아리랑판’에는 아리랑이 관심을 갖게 된 1980년대부터 활동한 아리랑 역사의 증인이라는 배경으로 서울 초청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전승활동을 증언으로 전달하고자 6~7명의 회원과 가족까지 참여했는데, 특히 도쿄에서 활동하는 장녀도 참여하여 공연의 의미를 더하였다. 총 3회에 걸친 공연에서 특기인 육자배기 독창으로 박수를 받았고, 회원들의 진도아리랑·흥타령·강강수월래로 무대를 장악했다. 70대로 이상 3인과 진도 출신 국립창극단 단원이 함께하여 흥과 신명을 선사했다. 9월 첫 공연의 해설과 진행을 맡은 덕분에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었는데, 아리랑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진도아리랑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음은 행운이었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차원에서 전국 아리랑 인물을 대상으로 전기 를 쓴다면 대상 1호인데, 내년 팔순기념으로 출간을 기획하고 있다. 김연갑 한겨례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지목한 ‘아리랑꾼’ 1세대 중 정선 김병하, 중원 지남기, 강릉 동기달 선생이 작고한 상황에서 더욱 소중한 분임을 이번 만남에서 인식하게 되었다. 【서울=뉴시스】지난 13일 제7회 문경새재아리랑제 공연 리허설에서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 송옥자 회장과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영남, 아리랑 제1 전승지역으로 일군 대구 정은하-영남아리랑연합회 결성 지난 5월 경상북도가 아리랑위원회를 조직하게 되자 많은 이들이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아리랑의 도(道) 단위 전승지 중 중심지는 영남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난 10월 영남지역 아리랑 전승단체가 연합한 영남아리랑연합회를 결성하여 중심지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런데 이 중심에서 역할을 한 이가 정은하 선생이다. 현재 대구아리랑축제를 12년 이끌어 온 사단법인 영남아리랑민요보존회 이사장인데, 참으로 활동량이 놀라울 만큼 크고 넓은 ‘아리랑꾼’이다. 매년 8월15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대구아리랑제’(13회)부터 10월 ‘영남아리랑경창대회’, 제3회 ‘대구아리랑경창대회’ 행사장에서 활동성을 확인하였지만, 열정을 넘어 신앙처럼 아리랑을 떠받들고 사는 인물임을 실감하고 있다. 이는 필자만의 평가가 아니다. 지난 11월1일 대구 중구청 대강당에서 결성된 영남아리랑연합회에 9개 지역 아리랑 단체가 참여, 회장으로 추대한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사제 관계로서, 지회 관계로서 전격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는 대구아리랑제 개최를 통해 영남지역 아리랑 전승 실상을 드러낸 것과 그의 레퍼토리인 대구아리랑의 성공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이미 영남지역 언론에서 평가해 알려져 있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대구아리랑’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제1회 대구아리랑제를 준비하며 정은하 작창으로 음반화돼 확산된 아리랑이다. 영남 메나리제에 후렴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는 넘어가네’이고, ‘어데에 아니라예 핑계만 말고/ 좋으면 좋다고 눈만 껌뻑하이소’라는 정감어린 기사이다. 또 하나는 2009년 대구지역에서 활동한 최계란이 1936년 취입한 대구아리랑이다. ‘남도잡가 大邱아리랑’으로 후렴에 ‘아롱아랑 아라리야’를 쓴 것으로 10대 후반의 청초한 육성으로 녹음된 것이다. 정은하 회장은 이 두 아리랑을 통해 대구를 전국에 알리는데 기여했다. 이는 영남지역 아리랑 전체를 동반 상승시킨 효과를 거두게 되었고, 그 공로로 지지와 신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은 "영남아리랑경창대회, 영천아리랑경창대회, 대구아리랑경창대회를 성공시키는 것이 남은 일”이라며 그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아리랑꾼’으로서 공로를 공인 받는 날을 기대하게 한다. 【서울=뉴시스】지난 13일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주관으로 2014 의병아리랑제, 제1회 의병아리랑학술회가 춘천베어스호텔에서 개최됐다. ◇진정성으로 의병정신 선양하는 기연옥-‘해설이 있는 의병아리랑 순회공연’ 아리랑은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하나이다.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다. 또한 옛것이면서 오늘의 것이고, 오늘의 것이면서도 옛것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한국의 메타문화이다. 그런가하면 아리랑은 중층적 유기체이기도 하다 ‘이미 있었던 것이 새로운 것을 있게 하고, 새로운 것이 이미 있었던 것을 다시 새롭게 한다.’ 그래서 동시적이고 역동적인 양상을 가지고 변화와 지속이 이루어지면서 확대 재생산된다. 즉 ‘자기복제에 의한 증식’이라는 프렉탈 이론의 실체이다. 이를 실증하는 아리랑 중의 하나가 의병아리랑이다. 이 의병아리랑을 들고 나온 ‘아리랑꾼’이 바로 사단법인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기연옥 이사장이다. 기연옥 회장은 내가 만난 ‘아리랑꾼’으로서는 개인적 연고가 있는 인물이다. 호남 의병장 기우만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춘천지역에서 아리랑의 1절로 불리는 사설을 독립적으로 하고, 의병들의 사연을 사설로 하여 재구성한 의병아리랑을 가지고 전국 의병 관련 기념 공연에 발벗고 달려나가 참여하고, 기능 기부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기연옥 회장의 진정성에 대해서 주목하게 한다. 특히 영천호국원 공연, 안중근의사숭모회 및 광복회, 의병의 날 및 순국선열의 날 기념공연 등 관내 봉사대상 행사나 보훈행사에 재능 기부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아리랑정신(저항·대동·상생)과 의병정신(정의수호·자발적 희생)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금년 후반기에는 강원도와 춘천시 후원으로 도내 10개 시군 축제현장과 군부대, 경로대상 공연으로 ‘해설이 있는 의병아리랑 순회공연’을 주관해 오고 있다. 그리고 ‘의병아리랑제’를 매년 개최해 오고 있다. 그야말로 ‘아리랑 시대’를 뜻 깊게 한 행사이다. 특히 이런 기회장의 활동은 아리랑이 누가, 언제 불리는 것보다 왜 부르냐가 더 중요함을 깨우쳐 주는 활동이란 점에서 괄목할만한 특별한 전승활동이다.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 동포사회의 의병관련 유적지에 공연과 의병아리랑을 심는 일을 하겠다고 하여 기대를 갖게 한다. 【서울=뉴시스】지난 1일 대구 중구청 대강당에서 영남아리랑연합회가 결성됐다. 영남 9개 지역 아리랑 단체가 참여, 정은하 이사장(사단법인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을 회장으로 추대했다. ◇문경아리랑 붐, 주인공 송옥자-‘문경아리랑제’의 진수 지난 13일 저녁 문경문화예술회관에서 제7회 문경아리랑제가 개최되었다. 이보석 화백과 함께 문경의 특산품인 문경약돌한우를 맛있게 먹고 행사에 참석하였다. 문경새재가 ‘한국인이 가보고 싶은 여행지 1위’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문경새재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기대를 갖고 두 시간 반의 행사를 주목했다. 무용, 아리랑메들리, 판소리 등 지방 공연으로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공연이었다. 그런데 백미는 후반에 출연한 문경아리랑과 ‘찻사발아리랑’이었다. 실제 생활에서 쓰는 물래와 다듬이가 등장하고 지게다리 장단 등으로 소박한 산촌 정서를 표현한 지역성을 무대화하여 아리랑의 진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대의 서사구성은 주인공인 송옥자 회장의 연출에 의해 올려졌다. 사단법인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를 이끌고 있는데, 몇 번의 지병을 딛고 문경아리랑의 멋과 맛을 통해 확산에 역할을 하고 있는 ‘아리랑꾼’이다. 2010년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제5회 ‘아리랑상’ 시상식 심사평이 떠올랐다. "송옥자 선생의 특유의 떨림 소리는 다른 국악인들의 성음과는 다른 오지의 산촌 여인의 소리로 독보적이다. 앞으로 지자체가 지정하는 ‘문경시 무형유산 제1호 문경새재아리랑 제1호 전승자’로 지정되어 전수되기를 바란다.” 이번 공연에서도 주창을 송 선생이 맡아서 그 특유의 떨림이 전해져서 좋았다. 특히 찻사발 제작과정을 축약 표현한 것은 강진, 이천 같은 도자기 관련 축제에서 공연 요청을 받을 것으로 기대할만 했다. 2010년부터 주목을 받은 문경아리랑 붐의 주역이 송옥자 회장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현재적 전승 중심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는 25일 전후 북한이 유네스코에 ‘조선민요 아리랑’으로 등재되고 내년 5월 문화재청이 아리랑을 국가주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 각 지역 아리랑의 위상이 논의될 것이다. 이에 선제적으로 문경시가 선제적으로 ‘무형문화유산 제1호 문경새재아리랑’을 지정하고, ‘전승자 제1호’로 송옥자를 지정한다면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본다. 물론 필자의 소견이지만 어느 지자체가 자체 아리랑의 위상을 정하느냐는 관심의 척도가 되리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리랑꾼’들에 대해 지역에서 위상을 부여하는 것은 국가적 위상을 유도하는 효과를 거두리라고 보아 기대하게 된다. kibada@naver.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쇄하기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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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리랑 운동의 선두에 서게 된 정은하 명창 ( 최종민)정은하는 이창배 · 안비취를 사사하고 경기소리를 이수한 명창인데 대구아리랑축제를 금년 8회째 했고 영천에서 하고 있는 영남아리랑축제와 전국아리랑경창대회를 4회째 하고 있다. 사단법인 영남민요·아리랑본존회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작년에는 영남민요·아리랑심포지움-<아리랑의 세계화>-라는 학술대회를 했는데 초청된 학자들은 성병희, 이보형, 권오성, 최종민, 서한범, 최헌, 장익선(중국연변대학) 등이었다. 특별한 것은 학술대회의 경비 1000만원을 정은하 본인이 부담하였다는 것이다. 영천에서 하고 있는 영남아리랑축제도 2007년에 본인이 2000만원을 내고 도의 지원을 얻어 시작했던 대회이다. 그 다음해인 2008년에도 본인이 1000만원을 부담하고 시와 도의 지원을 받아 행사를 했는데 2009년에는 경상북도에서 3000만원 영천시에서 3000만원을 지원해 주어 6000만원으로 전국아리랑경창대회 등의 아리랑축제 행사를 하고 있다. 8년째 하고 있는 대구아리랑 축제는 나운규가 영화로 만들었던 ‘아리랑’을 각색하여 소리극으로 만들어 공연하는 행사라고 한다. 연극적인 부분은 연극인들이 출연하고 사이사이에 아리랑을 부르게 하는데 정은하의 문하생들이 많은 부분을 하지만 특별한 아리랑은 그 아리랑의 보유자들이 출연하여 부르게 하고 있다. 진도아리랑 같으면 진도의 강송대(전남지방문화재보유자)가 출연하여 부르게 하고 정선아리랑 같으면 역시 보유자인 김길자가 출연하여 부르게 한다. 중요무형문화재인 예천통명농요의 보유자들도 출연하여 수준 높은 민요를 부르게 하고 있다.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이런 소리극 ‘아리랑’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니 그것만 해도 큰일 했다고 칭찬할 만한 일이다. 아리랑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하고 전국아리랑경창대회를 매년하고 ‘아리랑’을 소리극으로 만들어 공연하고 있으니 얼마나 큰일을 하고 있는가? 아리랑 운동의 선두에 서 있는 그녀가 아닌가? 정은하는 1956년 경북영천에서 남자6명에 여자 하나인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남자오빠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다분히 남자 같은 분위기가 있는 여자가 되었다. 무엇을 하면 적극적으로 하고 웬만한 것은 겁 없이 막 해 내는 기질을 갖게 되었다. 영천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갑자기 민요를 하고 싶어졌는데 오빠들이나 부모 누구도 그런 그녀를 용납하는 사람이 없었다. 정은하는 평택 큰 오빠 집에 가 있으면서 오빠 몰래 이른 시간 김밥 집에 가서 김밥 말아주는 일을 하고 모심을 때에는 마을 아주머니들과 함께 모를 심기도 하면서 돈을 모았다. 그리고 민요를 배우기 위해 서울로 갔다. 당시 kbs라디오에서는 매주 한 번씩 민요백일장이라는 프로를 공개방송으로 했었는데 나 최종민은 안비취명창과 함께 심사를 맡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키가 훤칠하게 큰 정은하가 나타났다. 나에게 찾아 온 그녀는 다짜고짜 본인은 무슨 일을 하면서라도 꼭 민요를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말했다. 그래서 나는 즉석에서 이창배선생님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며 거기 가 보라고 했는데 그 길로 최고의 민요사범 이창배를 찾아가 민요공부를 본격적으로 하였다. 정은하는 이창배 선생님 학원에서 숙식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민요의 기초를 탄탄하게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창배선생님이 ‘81년인가 중풍으로 쓰러져 오래지 않아 작고하셨기 때문에 안비취선생님에게로 옮겨 ’97년 돌아가실 때까지 왕래하며 계속 공부하였다. 정은하가 대구로 내려온 것은 ‘85년도였다. 처음에는 유종구선생에게 시조를 배우러 다녔다. 시조 뿐 아니라 가사도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니까 그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돈을 빌려 주며 민요학원을 차려 주었다. 1년만에 돈을 모아 빌린 돈을 갚고 향촌동에 연구소를 차렸다. 처음에는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을 주로 가르쳤다. 카톨릭 복지관에 가서 강습을 하고 무료봉사로 공연도 해 주며 민요활동을 했다. ’86년 아시안게임을 하는 해에 대구국악협회에 들어가서 민요분과위원장이 되어 협회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지역발전을 위한 국악행사에 대한 눈을 뜨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대구·경북지역에서 민요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공연해 주기도 하고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공무원들도 알게 되고 각 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을 많이 알게 됐다. 자연히 정은하의 활동범위도 넓어졌다. ‘92년에는 대구예술대학에 나가 민요를 가르치게 되었다. ’93년 겨울부터는 경북교원연수원의 민요강사가 되어 지금까지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쳐 민요전공으로 경북예고를 보내기도 하고 ‘96년부터 대구교육대학에 필수과목으로 민요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영남대학교나 경북대학교 동국대학교, 대구예술대학 등에 본인이 가르친 학생들을 민요전공을 진학시키는 일도 했다. 그래서 대구출신의 민요전공자 상당수가 정은하의 제자들이다. 정은하는 대구에서 열심히 민요를 가르치고 봉사하면서 본인이 열정을 쏟을 또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남의 토속민요였다. ‘90년쯤에 정은하는 예천의 통명농요 보유자 이상휴를 찾아갔다. 그 소리를 들어보고 너무 좋아서 그 동네에 가서 며칠씩 묵으면서 소리를 배웠다. 그런 식으로 상주, 영양, 수비, 안동 등 경북 일대를 두루 돌아다니며 민요를 채집하고 배우고 하는 일을 거듭했다. 그렇게 공부한 것을 모아서 민요발표회도 여러 번 했다. 2001과 2002년에는 정은하 영남민요 창작발표회도 했다. 말이 발표회지 직접 해 보면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 민요를 채집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악보로 만들고 관현악 반주로 노래 부르게 하려면 단계마다 돈이 들어가게 된다. 그런 영남민요를 발굴하고 창작발표회까지 하는데 자비가 거의 2억원 정도 들었다. 가족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여 모은 돈은 대부분 그런 작업에 다 들어가는 꼴이 되었다. 그 처럼 어렵게 하던 정은하의 발표회도 이제는 훨씬 쉽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었다. 본인이 만든 사단법인체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의 지회가 13개나 되기 때문에 각지회에서 입장권 10000원짜리 100매씩만 팔아도 1000만원이 넘는 돈이 모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본인의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표값만 받아서 행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 2002년에는 상주대회에서 대통령상도 받았고 경기민요는 안비취에게 이수받았고 대구아리랑도 철저히 조사하여 전모를 밝힐 수 있게 됐고 대구아리랑축제나 영천의 영남아리랑축제도 잘 돼가고 있어서 정은하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하지 못한 것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은 영남민요·아리랑 박물관을 건립하는 일이다. 정은하는 민요의 불모지 대구·경북에 많은 것을 이루어낸 것처럼 멀지 않아 영남민요·아리랑박물관도 반드시 만들어 낼 것이라 믿고 그 동안 이룬 성과에 대해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