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V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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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어울리는 아리랑 사설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사시사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옛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아우라지 건너편 유천리에 사는 총각이 연애를 하였다. 그들은 동백을 따러 간다는 구실로 유천리에 있는 싸리골에서 서로 만나곤 하였다. 그러나 어느 가을에 큰 홍수가 나서 아우라지에 나룻배가 다닐 수 없게 되자 그 처녀는 총각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실어 부르게 된 것이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장마 지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후렴)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나 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정선읍내 일백오십호 몽땅 잠들여놓고서 이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정선같이 경치 좋은곳 놀러 한번 오세요 검은물밑에도 해당화만 핍니다 산천이 고와서 뒤돌아다봤소. 정든 곳이라서 뒤돌아다봤지 사꾸라 만발한데 임세워놓고 내님인가 꽃님인가 어질어질하구나 사꾸라 꽃비가 나리는데 내님인지 꽃님인지 모르겠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넘어간다 앞남산 살구꽃은 필락말락하는데 우리들의 정은야 들락말락하누나. 당신이 날 만치만 생각을 한다면 오동지 섣달 진달래가 피지요. 앞 남산(南山)의 저 꾀꼬리는 초성도 좋다 우리임의 목소리와 비숫도 하네. 꽃 본 나비야 물 본 기러기 탐화봉접(探花蜂蝶) 아니냐 나비가 꽃을 보고서 그냥 갈 수 있나 진달래는 년년(年年)이나 피건만 한번가신 그대 님은 왜 아니오시나. 산란한 봄바람아 네가 불지를 말아라 알뜰한 이내 마음이 또 산란하구나. 당신은 거기에 있고서 나는야 여기에 있어도 말 한마디 못 전하니 수천리로구나 돌담 넘어 밭한뙈기를 건너가면 되련만 얼키고 설키었으니 수천리아니냐 아리랑 고개에다가 정거장을 짓고 정든 임 오실 때를 기다려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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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빨래를 소변에 빨았다고?조선시대에는 빨래를 소변에 빨았다고? 세탁기는커녕 마땅한 세제도 없었을 것 같은 옛날, 우리 선조들은 어떤 방법으로 옷을 빨고 관리했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은 자연에서 얻은 천연의 재료로 세제를 만들고, 빨래 방망이로 옷을 두드려 때를 뺐으며, 햇볕을 이용해 옷감을 표백했다고 한다. 조선 최초의 생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를 통해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으로 터득한 조선시대 옷 관리 비결을 들여다보았다. 천연의 재료로 만든 조선의 세제 청계천 빨래터 ©국립민속박물관 냇가나 우물가의 빨래터에서 빨래 방망이를 두들기는 동네 아낙들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 낯선 풍경이다. 우리는 지금 온갖 다양한 종류의 합성세제를 비롯해 세탁기, 건조기를 이용해 편안하게 옷을 세탁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탁기는 고사하고 변변한 빨래비누 조차 없었을 조선시대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빨래를 했을까? 그 실마리는 18세기 말에 편찬된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여성 실학자로 알려진 빙허각 이씨다. 그가 저술한 조선 최초의 생활 백과사전 <규합총서>에는 옷의 세탁법을 비롯해 요리, 살림, 농사, 육아 등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지식들이 망라되어 있다. 규합총서 ©국립민속박물관 <규합총서> 세의편에 따르면 당시에도 세탁을 위해 여러 가지 재료를 세제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에 얼룩진 자국을 없애기 위해 오미자, 매실물, 치자물, 식초, 살구씨, 소금물, 소뼈를 태운 잿물까지 수백 년 전 사람들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세제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천연 세제들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의 산물이다. 최근까지도 많이 사용되었던 잿물은 나무를 태운 재에 물을 부은 뒤 걸러서 나오는 물을 가리킨다. 잿물에는 나트륨, 칼륨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성분은 옷에 묻은 단백질 때를 분해하는 효과적인 천연세제였다. 이러한 재료들 외에 삭힌 오줌을 이용해 빨래를 하기도 했다. 빨래 방망이는 인력을 이용한 공기방울 세탁기 방망이로 두들겨 빨래의 찌든 때를 빼던 풍속은 세탁기가 보급되기 전인 수십 년 전까지도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전통이다. 빨래 방망이로 옷가지를 두드리면 어떤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세제만으로도 어느 정도 때가 빠지기는 하지만 방망이로 두드릴 경우 세탁 효과는 배가 된다. 옷가지 사이에 숨은 공기방울이 방망이에 맞아 밀려나면서 그 압력으로 옷에 밴 얼룩을 지워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때 유행했던 공기방울 세탁기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빨래 방망이 ©국립민속박물관 무명치마 ©국립민속박물관 지금처럼 건조기가 없던 조선시대에는 아무 때나 빨래를 말리기가 어려웠기에 주로 낮 시간에만 빨래를 널어 말렸다. 해가 저물도록 마르지 않은 빨래는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가 이튿날 다시 말렸는데 이는 밤이슬에 빨래가 다시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옷을 말릴 때 강한 햇볕을 이용해 표백하는 방법도 있다. 본래 누런 색깔을 띠고 있는 무명은 우선 잿물에 빨아서 삶은 뒤 해가 잘 드는 양지 바른 곳에 널어 말린다. 밤에는 이슬을 맞지 않도록 걷어다가 실내에 두었던 무명천을 다시 물에 적셔 너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하면 햇볕에 바래 하얗게 표백이 되었다고 한다. 풀 먹여 다듬이질한 옷은 조선시대 멋쟁이의 기본 홍두깨와 홍두깨 틀 ©국립민속박물관 <규합총서>에는 여러 가지 옷감에 따른 다듬이질과 손질법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선 도침(擣砧)이라는 한자어로 기록된 부분에서 옷감의 종류나 색에 따라 다듬이질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풀을 먹여 다듬이질을 하면 옷감이 새것처럼 말끔하게 펴지고 윤기가 난다. 고급 옷감이었던 비단의 경우 ‘대왐풀(난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을 먹여서 다듬이질을 해야 하는데 특히 쪽빛 옷일 경우 이렇게 해야 빛이 난다. 또한 진홍색은 대왐풀에 아교를 섞어 먹인 뒤 밟아서 물기가 마르면 홍두깨에 감아 다듬었다고 한다. 무명과 모시는 잇꽃(국화과에서 속하는 식물)을 담갔던 누런 물과 오미자물에 풀을 섞어 먹여야 푸른빛이 나지 않으며, 자주색은 풀을 묽게 해서 먹인 뒤 다듬이질을 해야 한다. 다듬이질을 할 때는 풀기가 마르기 전 주름을 펴서 홍두깨에 말아 다듬거나 편평한 다듬잇돌에 놓고 다듬이질했다고 한다. 다듬이질을 위해 준비해야 할 도구로는 다듬이 방망이, 홍두깨, 다듬잇돌 등이 있는데 다듬이 방망이는 배가 불룩한 곤봉과 비슷한 형태이며 단단한 성질의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옷감을 감아서 다듬는 홍두깨는 칼국수 밀대처럼 생겼다. 옷 관리에서도 빛나는 선조들의 지혜 포산항견취도 ©부산근대역사관 철지난 옷을 보관할 때도 풀을 먹여 보관하고는 했는데, 무명옷의 경우 풀을 먹였지만 모시옷은 깨끗하게 빨아 건조시킨 뒤 보관했다가 이듬해 다시 꺼내 입을 때 풀을 먹여 손질했다고 한다. 또 좀이 먹어 옷감이 망가질 수 있는 명주옷은 좀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약초의 일종인 마른 궁궁이잎을 옷 사이사이에 넣어 보관했다. 의복을 깨끗하게 관리해 입는 습관은 우리 조상들의 오래된 습관이다. 1123년 송나라 사절로 고려에 왔던 서긍의 견문록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풍속은 깨끗한 것인데 지금도 여전하다”라며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목욕을 한 뒤에야 문을 나서며 여름철에는 낮에 개울물에서 거듭 목욕을 하며 옷을 깨끗이 빤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보다 앞선 옛 문헌들에도 삼한 사람들이 깨끗한 옷차림을 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니 이 땅의 옛 사람들이 의복의 청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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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의병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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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 HOME 아리랑비전 주요사업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 도록은 힘겹고 어려운 인고의 세월을 거쳐 탄생된 아리랑 대장경 기록화 사업이었습니다.앞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결집, 통일을 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2016년 6월 문경시장 고 윤 환 01 세상에서 가장 많고 가장 크고 가장 의미 있는 책 02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모으고 선별하기 전국에 흩어진 모든 아리랑 가사를 수집(25,000수 수집) 아리랑노랫말선정위원회에서 10,068수 가사 선별(2013.6.~2014.7.) 쓰기 전국 최고 서예인 120명 참가 문경전통특수한지 7,000장 사용 분류하기 아리랑 일만 수 서예작품 편집위원회(2013.12.~2014.11.) 제책하기 200수 1권, 50권 제작 고서최고명인 참여 전통제책 방식 이운하기 완성된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 옛길박물관 이운식(2015.9.5.) 도록발간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 도록 발간 1질 6권, 1,000질 발간(2015.12.13-도록출판기념식 개최) 03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 의의 필묵의 조형적 예술인 서예에 음악의 아리랑 가사를 접목하였습니다.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의 가장 주목되는 사실은 미술과 음악의 결합으로 조화를 이루어낸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총 120명의 서예가가 동원되었습니다. 문경시청과 한국서학회의 공조와 상부상조가 있었기에 꿈같은 일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민·관 협동의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각자의 개성 넘치는 서체로 아리랑의 가사를 적고 각자의 기량을 다하여 예술성을 발휘 했으며, 이들이 적은 아리랑 가사는 단순히 아리랑의 연구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 한국의 서예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예술성을 두루 갖춘 21세기 한국 대표 기록물입니다. 아리랑 가사가 지닌 문학성, 곡조가 드러내는 음악성, 서예로 담아낸 조형성을 함께 구비하여 일종의 종합예술 성격을 갖추었습니다. 영구 소장된 21세기 대표 기록 유산이 될 것입니다. 50권의 책자로 전통적인 기법에 따라 장정되어 문경 옛길박물관에 항구적으로 소장되었습니다. 한글 서예 발전에 뒷받침이 될 것입니다. 중국을 뛰어넘지 못하고 우리 한자 서예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를 탈피한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고유 문자인 한글을 매체로 하는 한글 서예 발전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아리랑의 연구와 이해에 지속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를 보관용 이외에 인쇄본으로도 출판하여 더 많은 사람이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리랑에 대한 연구와 이해에 보다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04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 대표 아리랑 노랫말 05 서예로 담아낸 아리랑 일만 수 구성 1권 539페이지 제책 1책~10책 112명 참여 310 x 239 x 48(mm) 2권 539페이지 제책 11책~20책 111명 참여 310 x 239 x 48(mm) 3권 539페이지 제책 21책~30책 86명 참여 310 x 239 x 48(mm) 4권 539페이지 제책 31책~40책 81명 참여 310 x 239 x 48(mm) 5권 559페이지 제책 41책~51책 81명 참여 310 x 239 x 48(mm) 별권 439페이지 아리랑가사 10,068수 120명 참여 310 x 239 x 35(mm)